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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의 성장 과정(누가복음 2장 41-52절),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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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는데 오늘 본문이 유일합니다. 누가복음 240절은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다.”아이가 신체적으로 자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그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태어나서 성장하는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건강을 유지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란 주 안에서 기뻐하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고 대가를 치루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졌습니다. 예수가 강하여졌다는 것은 정신적인 성장을 말합니다. 아이의 시각과 청각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는 역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이가 말을 하고 지적으로 자라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예수가 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지혜가 충만했다는 것은 도덕적이고 영적으로 성장함을 말합니다.

 

아이들이 하나님을 알아가고 영적인 습관을 형성한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아이가 영적 성장에 관심을 보인다면 그 아이의 미래는 복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사랑스러워가기를 진심으로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의 열 두 살때부터 30세가 될 때까지 18년 동안 성장 과정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더라.” 예수는 지혜와 키, 즉 육체적인 성장과 인격적인 성장이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십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여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사랑스러워 가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님의 부모는 율법에 순종하는 경건한 분들이었습니다. 율법에는 성인 남자들은 일 년에 삼대 절기인 유월절(보리추수), 오순절(7주 뒤에 밀 추수), 초막절(과일 및 포도추수)에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절기를 지키라고 했습니다(16:16). 당시에 많은 남자들은 유월절 절기만큼은 꼭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려서부터 경건한 부모의 신앙의 교육을 받으면서 자라났습니다.

 

예수님께서 12살 때 마리아와 요셉을 따라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율법에는 열 두 살 이상 남자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10대에 자녀들에게 경건의 연습을 통해 신앙의 확신을 갖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멀리하기가 쉽습니다. 통계적으로 십대 이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70-80%라고 합니다.

 

유월절과 무교절은 보통 7일간 계속되는데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은 적어도 이틀은 머물러 있어야 했습니다(12:15-16). 그 날들을 마치고 마리아와 요셉이 집으로 돌아가는 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부가 서로 예수는 같이 가고 있겠지 하고 일행들과 오다가 하루 길을 와서 숙소에서 확인해 보니 예수가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부모가 잘 챙기지 못해서 그럴까요? 당시에 축제를 마치고 돌아갈 때는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은 행렬의 앞에서 가고, 남자들과 큰 아이들은 그 뒤를 따라 갔습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가는 것이 아니라 여자는 여자대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남자들은 남자들대로 길을 갔습니다. 해가 지고 숙소에 와보니 예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가던 길을 되돌아와서 사흘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를 만났습니다. 예수가 성전에서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성경에 대해 묻고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같이 있던 랍비들이 예수의 지혜와 대답에 대해 놀랍게 여깁니다. 그의 부모가 예수를 보고 놀랍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입니다(2:3).

 

그이 어머니 마리아가 아이야 내가 얼마나 걱정하며 찾았는지 아니, 왜 우리를 그렇게 놀래킨거야?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노심초사했던 나머지 속상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가 충격적인 답변을 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

 

예수는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표현합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우리 아버지, 혹은 하늘에 있는 나의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어머니에게 무례한 태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거룩한 사명이 우선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신자의 관심은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의 일에 있어야 합니다.

 

이때 마리아와 요셉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합니다. 마리아는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마음에 깊이 간직해 두었습니다. 예수는 사명을 감당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셨지만 부모와 함께 고향인 나사렛으로 내려가셔서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며 잘 받드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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