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자신의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예식입니다(롬 10:9).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가 없으신 분이기 때문에 굳이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셔야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것은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하여 광야를 거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간 사건을 되돌아 보며, 앞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부활, 오순절 성령강림, 신약 교회에 속한 성례식, 성도인 교회와 어린 양의 혼인 잔치 등을 한꺼번에 내다보는 총체적인 사건입니다.
세례 요한은 죄 없고 깨끗하신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는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얼굴을 보고서 그에게 절대적인 완전함과 전혀 흠이 없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모든 의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세례받는 것이 합당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15절).
1. 예수님의 세례는 모든 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함입니다(15절).
예수님은 자신이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는 사람인 요한에게 복종하심이 아니요 하나님의 의로우신 요구에 대한 복종의 표시였습니다. 예수님의 세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죄 없으신 분이 죄 지은 자와 동일시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 죄로 타락한 인간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우리 인류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율법의 저주를 감담하심으로 우리를 위하여 죄를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사야 53:11절에 보면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2. 예수님의 세례는 대표와 연합의 원리입니다(15절).
예수님은 죄인들이 강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시고 그들과 함께 들어가셔서 요단강에 물을 담그심으로써 자신이 장차 감당하여야 할 죽음을 미리 보여 주시고 또한 그 죽으심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자기 자신을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내어 던지신 것이며, 또한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동의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위한 대속자로 오신 예수님의 효력이 우리 같은 죄인인 각 개인에게 미칠 수 있게 해주는 원리가 대표와 연합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간의 대표로 오셨는데 이 대표와 연합함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본질적인 죄인인 우리도 법적으로 예수님의 죄없으신 신분과 같은 신분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것은 바로 씻음과 연합을 골자로 하는 세례의식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3.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의 내주하심을 공적으로 드러낸 것입니다(16절).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례받은 직후에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과 세례요한 이외에는 아무도 보지 못했음이 거의 확실합니다. 공생애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예수님께 특별히 기름을 붓는 상징적이고 의식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오로지 예수님에게서만 이와같이 외적이며 가시적이며 상징적인 형태로 임하셨습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셨다고 하는 것은 성령의 온유하심, 또는 그의 중요한 화평의 사역 등이 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비둘기에 대해 들을 때마다 항상 속죄제를 연상했습니다.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한 속제 재물인 비둘기 형상으로 성령께서 내려오신 것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가장 깊은 희생 제사의 목적을 이루신 사건이었습니다.
현재 성령은 모든 성도의 심령 속에 내주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고후 1:22). 우리가 의식을 하든 못하든간에 우리가 참으로 거듭난 성도라면 성령은 누구에게나 죽기까지 함께 거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지금 이 순간에도 내 심령 속에서 나의 인격에 깨달음과 감동을 주심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믿고 감격하며 더욱 성숙된 신앙 인격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난 오늘 당신과 함께 교회에 가려고 했는데 "남편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감짝 놀랐으나 그가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곳에 대해 내심으로 매우 기뻐했습니다. 항상 사업과 돈버는 일에만 몰두한 나머지 영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처럼 보여졌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는 길에 아내는 쓸데없는 걱정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오늘 설교는 무엇에 관한 것일까? 교회에 도착하자 마자 그녀는 예배 순서를 보고 낙심하였습니다.
성경 말씀이 창세기 5장이였습니다. 남편은 예배가 끝날때까지 고대인들의 이름이 적힌 긴 목록을 잃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편은 큰 관심을 갖고서 예배 시간이 끝나기까지 조용히 듣고 있었고 몇 주일 후에는 그리스도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남편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도록 만든 문제가 무엇이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그 말씀이지. 한 구절이 계속 반복되는데 나는 그것을 피해 달아날 수 없었오, "그 죽었더라" 문구말이요. 그후 죽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오. 그래서 나에게 구주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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