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들도 때로는 주일날 예배를 앞두고 아내와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이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은 주일 예배 점검을 하다가 아내와 서로 언성을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화가난 목사님의 아내는 "저리로 가세요"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이 말을 "절로 가세요"라는 말로 잘못 들으셨던 모양입니다. 목사님은 더 큰 목소리로 "아니 예배 시간이 다 되었는데 목사보고 절로 가라니". 싸움은 그만 둡시다. 나는 예배당에 가겠소! 했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시간에 마음을 더욱 온유하고 겸손하고 부드럽게 가져야 합니다. 사단이 마음 문을 두드려도 절대로 열어주어서는 안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소개하면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는 한 마디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기록 방법에 있어서도 족보를 세대별로 나열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판정하여 14세대씩 분할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특정한 숫자에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유대인의 풍습을 좇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14개씩 구분한 것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왕통을 이어 오신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에는 메시야가 장차 다윗의 왕통을 이어 오시게 된다는 예언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시 132:11, 렘 23:5, 겔 37:25).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과 땅의 왕이 되신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이 족보가 세 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그런즉 모든 대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더라"(17절).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내 대란 이스라엘을 한 국가로 통일하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으로 군림했던 때를 의미합니다. 다윗으로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길 때까지 열네 대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와 외세의 침략으로 멸망을 보여 주었던 바벨론 포로시대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란 바벨론 포로 해방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출현까지 이르는 역사로서 그리스도의 역사의 개입과 출현으로 전인류의 구원과 소망을 보여 주는 역사를 가리킵니다.
첫 열네 대는 약속의 역사를 말했고, 두번째 열네 대는 비극의 역사를 말했고. 세째 열네 대는 은혜의 역사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일시적인 충동이나 우연한 사건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오래동안 예언되었던 메시야의 출생이 역사의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가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사실은 인류 역사에 거의 충격을 줄 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인간의 허물과 죄를 친히 담당하시기 위해서 완전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죄보다 더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죄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족보에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 천한 족보에서부터 가장 귀한 족보에까지 모든 족보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본래 유대인의 족보에는 여인들의 이름은 제외되어 있지만 마태복음에는 언급되어 있습니다. 족보 속의 여인들은 행실이 그렇게 깨끗하지 못했던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말은 시부였던 유다와의 관계를 통해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라합은 기생신분으로 보아스를 낳았고 이방여자 룻은 보아스와의 결혼을 통하여 오벳을 낳았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다윗왕과의 비정상적인 결혼을 통하여 솔로몬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족보에 죄인이 등장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21절에 보면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죄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당면한 모든 문제, 자기성공이나 번영에 관한 일에 너무 마음이 빼앗겨 죄에 관하여는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다. 세상의 불행은 죄의 형벌로 시작됩니다. 죄를 범하면서도 그것을 죄로 깨닫지 못하고 번뇌와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것이 죄악의 형벌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인간의 심성은 허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엡 4:18-19).
우리는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인간은 죄로부터 피할 도리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담이 상실한 그 지위를 되찾기 위해 갖가지 수단으로 노력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교육에 의하여, 철학에 의하여, 종교에 의하여, 그리고 정부를 통하여 타락과 죄의 멍에를 벗어버리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인간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죄 문제를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그 외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망각해서는 안됩니다.때로는 우리가 실패하여 넘어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대로 용납해 주시고 사랑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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