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교회 생활을 잘 해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대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첫째는 예배입니다. 둘째는 교제입니다. 셋째는 양육입니다. 넷째는 봉사입니다. 다섯째는 전도입니다. 우리는 항상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부터 집중적으로 보강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서로 봉사하십시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받고 도전받는 기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44-4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도대체 무엇이 초대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할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4장 3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서로 함께 하는 축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는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는 성도들을 돕는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을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성도들을 보면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실제적으로 가능한 일일까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습니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었을 때 성도들은 서로의 물건을 나누어 주고 싶었습니다. 심지어 자기의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의 재물을 조금도 자기의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더 이상 그들에게 재물이 필요없다고 생각이 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했기 때문에 이렇게 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서로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주었을까요? 자신이 직접 전달해 주었을가요?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서로에게 도움을 주었을까요? 사도행전 4장 35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즉 성도들이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제자들 앞에 가져가면 사도들이 그것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정말 모를까요? 어떤 분은 헌금을 드릴 때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 분문은 그게 아닙니다.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한다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서로의 필요한 것을 나누고 싶을 때 목회자들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들에게 자기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가져가면 사도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습니다.
봉사는 누가 누구에게 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4장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봉사는 하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어떤 사람은 봉사하고 어떤 사람은 봉사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러한 일들이 계속해서 반복되면 교회 안에서 어떠한 현상이 나타날까요?
출애굽기 18장 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와 또 너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모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판결하는 것을 보고 그의 장인이 권면하는 내용입니다. 신명기 1장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런즉 나 홀로 어찌 능히 너희의 괴로운 것과 너희의 힘겨운 일과 너희의 다투는 일을 담당할 수 있으랴.”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서로 봉사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지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각자 은혜를 받은대로 서로에게 봉사해야 합니다. 서로에게 이렇게 인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당신을 필요로 하십니다. 나도 당신이 필요합니다. 당신도 내가 필요합니다. 서로 봉사합시다. 뭐 도와드릴 것 없을까요 뭐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 없을까요?
서로 봉사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바로 ‘말‘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우리가 서로에 대하여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라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은 살리는 것과 같이 우리가 말할 때 서로 살리는 말을 해야 합니다.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베드로 전서 4장 11절 말씀에 보면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우리가 서로 봉사할 때에 자신의 노력이나 재능으로 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하면 봉사하다가 실망하거나 교만하기가 쉽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서로 봉사하고 대접하다가 원망을 해서는 안됩니다. 언제나 우리는 서로를 위해 봉사할 때 하나님의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위해 봉사하면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4장 11절 하반절에 보면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우리는 열심히 봉사한 후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올라올 때에 그것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그것 때문에 서운해 하거나 마음이 상하여 원망하면 우리의 봉사가 헛된 것이 되고 맙니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 봉사해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요? 금요일 저녁기도회 후에나 토요일에 시간이 나시는 분들 잠시 교회에 들리시면 30분 이내로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전화를 주시면 함께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든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시간으로, 어떤 사람은 물질로, 어떤 사람은 자기의 재능으로, 어떤 사람은 기도로, 서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정에서 일터에서 사회에서 섬기기를, 즉 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교회의 직분을 주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에베소서 4장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봉사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다섯 달란트 가진 자는 바로 가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를 가진 자도 바로 가서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자에게 동일하게 이렇게 칭찬하셨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그 자체에 대해 차이를 두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가 받은 달란트로 얼마나 남겼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우리의 실적이나 성공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것에 대해 얼마나 충성하는가? 그것을 귀하게 보십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주인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만 1달란트 가지고 나가서 장사하다가 잘못되면 오히려 주인의 책망을 받는다면 차라리 한 달란트 돌려드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섯 달란트, 두 kq은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였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에 대해 주인은 이렇게 책망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시니라.”
주인이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 이렇게 책망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지 자기의 돈을 가지고 이익을 남기지 못해서 심하게 추궁한 것일까요?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여 남기겠다고 하는 생각 자체가 없었던 것이 문제입니다. 더구나 주인에 대한 불신이 결국 자신은 손해 볼 일은 안하겠다는 방향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달란트 받은 자를 “무익한 종이라고 하시면서 바깥에 내쫓고 이를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갈며 슬피 우는 곳이 어디일까요? 자신의 달란트를 잘 활용하지 못하면 지옥의 고통을 당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많은 것을 주셨는데 봉사하는 일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지 않겠습니까? 새벽기도회에 계속해서 그런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6-24절에 보면 가인의 계보가 나옵니다. 가인의 계보는 믿지 않는 자의 계보입니다. 그들가인의 계보는 문화와 과학과 기술에 있어서 뛰어난 재주를 갖고 있었습니다(창 4:20-22).
반면에 셋의 후손은 믿음의 후손입니다. 창세기 5장 6-32절에 보면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의 차이점은 가인의 후손은 연대가 빠져있는데 반해 셋의 후손은 연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후손들의 연대는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산 날만이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화려하고 성공했다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산 날이 아니라면 우리의 생애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봉사는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선택이 아니라 필수입니다. 이제는 단 하루를 살더라도 주님 위해 살아가는 생애가 되시기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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