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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타성이냐, 사명이냐(삼상 15:10-19),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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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한 곳에서 오래 머물다 보면 타성에 젖기가 쉽습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면 열정이 식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신앙도 처음에는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신을 모습을 보고 놀라게 됩니다. 타성에 젖으면 더 이상 발전이 없습니다. 타성에 익숙하면 더 이상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기도의 타성에 젖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 기도하고 응답받을 때는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기도의 응답을 받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기도 응답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간혹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대개 섭섭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이전에 응답받은 것을 의지하지 말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타성이냐, 사명이냐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제 그동안에 타성에서 벗어나서 사명을 붙잡히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기름을 부어 그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을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어쩔 수 없는 부득이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사울 왕에게 이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라고 권고합니다. 지금까지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근성으로 듣고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울이 왕이 되어서 범죄한 최초의 사건은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을 떠나고, 사무엘이 정한 날에 오지 않자, 사울이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직접 제사를 드린 사건입니다.

 

이때가 바로 사울이 왕이 된지 2년이 되는 때입니다. 사무엘상 131절입니다. “사울이 왕이 될 때에 사십 세라 그가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이년에.” 이 사건의 내용이 사무엘상 138-9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이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를 기다리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가로되 번제와 화목제물들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번제를 드리니.” 바로 그때 사무엘 선지자가 들어와서 제사장이 행해야 할 것을 왕이 직접 행한 것이 범죄 행위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그때 사울 왕은 블레셋이 공격하려고 하는데 백성은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에 오지 않아서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변명합니다. 타성에 젖은 사람은 특징은 부득이 하여 잘못된 줄을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왕은 망령되이 행하였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셨기 때문에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입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부득이한 상황에 굴복하는 타성에 젖고 말았습니다.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신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 왕에게 이제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것을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아말렉이 노약자들을 뒤에서 공격했습니다. 신명기 2517-18절입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 이유는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유를 무시하면서까지 사람의 이유를 내세우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이유를 무시하고 사람들의 이유를 받아들였습니다. 사울 왕이 아말렉의 양과 소 가운데 좋지 않은 것, 즉 상품 가치가 없는 것은 진멸하였습니다. 그런데 양과 소 가운데 가장 좋은 것, 기름진 것은 남겨 두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하여 남겨 두었다고 변명하였습니다(15). 인간적으로 보면 이것이 효율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는 정확성을 요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 아무리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면, 그것은 자기 영광을 위하는 것이요, 자기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짐승을 가장 좋은 것을 남겨 둔 것이 하나님을 위하여 그렇게 했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의 영광과 유익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무엘상 1512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을 만나려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더니 어떤 사람이 사무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사울이 갈말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발길을 돌려 길갈로 내려갔다 하는지라.” 사울 왕은 아말렐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려고 하였습니다. 사울 왕은 말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성공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원하고 과시하고 싶은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다윗 왕 역시 계속되는 전쟁의 소식과 승리의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의 능력과 힘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역대상 211-2절에 보면 다윗이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를 요압 장군에게 지시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 사건을 사탄이 일어나 다윗을 충동한 사건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7만 명이 죽게 됩니다(14).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의 행동에 대해 책망했을 때 사울 왕은 자신이 범죄를 인정합니다. 사무엘상 1530절입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사울 왕은 자신의 범죄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세워달라고 부탁합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사람의 말을 더 두려워하다가 자신이 왕위에서 내쫓기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상황이 주는 압력에 불구하고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그 자체가 얼마나 무서운 죄악인지 그 자체를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타성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승리의 타성에 젖어서는 안됩니다. 성공이 주는 도취에 빠지거나 자축하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됩니다. 내가 잘해서 그렇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우리는 타성에 젖지 말고 사명에 붙잡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다시 한 번 사무엘상 151절 말씀 읽도록 하겠습니다.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어 왕에게 그름을 부어 그의 백성 이스라엘 위에 왕으로 삼으셨은즉 이제 왕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소서.”

 

타성에 젖은 사람은 지금의 자신에 대해서 너무 당연하게 여깁니다. 사울 왕은 자신이 어떻게 왕이 되었는지를 잊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습니다. 사울 왕은 마치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성공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자수성가한 사람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고생한 것을 내세워서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고집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을 통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셧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가 성공했을 때 과거에 고생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셨던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당신이 어떻게 성공했느냐고 물을 때 자신이 잘나서 그렇게 된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 까지 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붙잡고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자신의 능력인양 내세우는 사람을 하나님은 가장 싫어하십니다(6:17).

 

무엇보다 우리는 성공한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인정하다가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신의 공로나 노력인 것처럼 여겨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성공한 이후에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17절입니다.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지 아니하셨나이까 여호와께서 왕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으시고.”

 

사무엘 선지자는 사울이 스스로 작게 여길 때에 당신을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높게 여기는 것이 교만이고 스스로 낮게 여기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는 높이시고 교만한 자는 낮추십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지금 자신이 높아진 상태에 머무려고 하는 타성에 젖었습니다.

 

성공한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이 작은 자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명자의 특징입니다.

 

그런데 같은 사울이라도 신약 시대에 바울은 사명에 붙잡혀 있었습니다.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면서 아직도 자신은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9-10절입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많은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이 사도라 칭함을 받는 자 그 자체에 대해서도 감당하지 못할 자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장 작은 자이기 때문에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핑계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한 것이 결코 아니라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을 성공한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참된 성공자는 성공의 정상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라 내려와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빌립보서 26절입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계신 분이시만 그렇게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사명에 붙들린 사람은 자신이 성공한 사람, 위대한 사람, 힘이 있는 사람,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내세우지 않습니다. 진정한 성공자는 자신을 그렇게 여기지 않고 자신을 비워서 보통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일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주십니다.

 

사울 왕은 자신이 왕의 위치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이라는 타성에 접어서 결국에는 하나님이 후회하시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사무엘상 1535잘 하반절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였더라.” 혹시 하나님께서를 우리를 바라보시면서 내가 너를 목회자로 세우신 것을, 내가 너를 직분자로 세우신 것을, 내가 너를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비롯 다윗도 때때로 범죄하였지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면서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목적을 알고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인정을 받았습니다. 다윗도 한 순간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 적이 있었지만 곧바로 회개하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자신의 위치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섬기는 위치로서 역할을 잘 감당하였습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타성에 젖어 있었던가를 깨닫고 사명을 감당하는 주의 일꾼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사명을 아는 사람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나 같은 죄인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기억합니다.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귀한 자리에 세워 주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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