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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시간 관리를 위한 하나님의 법칙(엡 5:1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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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적인 시간 관리의 세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시간을 이렇게 보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15절입니다. 곧 너희가 어떻게 행할 지를 자세히 주의하여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자세히 주의하라는 말씀은, 인생을 신중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의 지배만을 받지 않습니다. 감정의 지배대로 행한다는 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가?

 

예를 들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때 그가 같은 지역 사람이니까 무조건 표를 찍어준다면, 이러한 사람은 감정을 따라서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람에게 충분한 식견이 있는가? 지조가 있는가? 애국심이 있는가? 지역을 맡기고 나라를 맡길 만한 경륜이 과연 있는가? 심사숙고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신중하지 못한 사람은 모든 일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신중한 사람은 단지 열심의 지배만을 받지 아니합니다. 어떤 경우의 열심은 심각하게 그릇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칫 잘못되고 거짓된 동기로 열심일 수 있습니다. “불은 선한 종이다. 그러나 악한 주인도 된다.”는 말이 있는데, 열심에도 그 말이 적용됩니다. 잘못된 열심이 환상주의를 낳을 수도 있습니다. 잔인과 핍박을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개종하기 전에는 유대교에 지나친 열심 때문에 교회와 성도들을 얼마나 핍박했는지 모릅니다. 열심은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무서운 전쟁과 참화를 불러오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의 열심을 의뢰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감정이나 열심으로만 살지 않고,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내 삶은 과연 인생의 정도를 걷고 있는가? 자세히 혹은 신중하게 생각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2. 지혜 있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지혜에 대하여 많은 교훈을 가르쳐 쥡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에 관하여, 궁극적으로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고 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은, 그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혜와 총명에 있어서 부족합니다. 지혜는 단순하게 지식이나 능력이나 지성이나 심지어 비상한 재능도 아닙니다.

 

그러한 모든 것을 구비하고 있으면서도, 어떤 사람은 지혜를 가지고 있지 아니할 수 있습니다. 지혜는 그 모든 지식들을 응용하는 능력, 또는 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적 의미에 있어서 지혜란 사람답게, 만물의 영장답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공부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대학을 가기 위해서입니까? 간판을 따기 위해서입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까? 취직하기 위해서입니까?

 

공부하는 목적은 알 것을 알고, 배울 것을 배워서 사람답게 살기 위함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의 학교 교육은, 참된 교육의 목적을 상실한 채, 단순한 지식만을 주입시키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지혜 중의 지혜가 무엇입니까? 지혜 중의 지혜는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9:10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요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만을 전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가 되었다.” 지혜! 우리는 그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 안에서 최고의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이것은 실로 놀라운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진리에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보화로 말미암아 눈이 열린 사람입니다. 그리하여 올바른 세계관, 올바른 가치관, 올바른 인생관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사람입니다.

 

3. 세월을 아끼라는 것입니다.

 

시간이 귀중하다는 진리는 과거나 현재나 미래에나 변함이 없습니다. 시간은 일생 중에 한정되어 주어지지만, 돈이나 명예는 시간을 잘 활용했을 때,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입니다. 탈무드는 한정되어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한정된 것은 사람의 생명과 시간입니다. 그래서 시간은 돈보다 더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돈을 사용할 때에는 신중해도, 시간을 낭비하는 일에 대해서는 별로 마음을 쓰지 않습니다. 약속 시간에 늦거나 또 하찮은 용건으로 남의 시간을 축내거나 낭비하는 일에는, 그다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시간보다는 돈을 소중히 여기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시간도 돈도 다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둘 가운데 시간이 더 귀중함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간은 값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것이지만, 우리는 어리석게 시간을 낭비합니다. 우리는 샤워가 끝난 후에, 수도꼭지를 그대로 틀어 놓지 않습니다. 또 태양이 환하게 방안을 비췰 때에, 불을 그대로 켜 두지 않으며, 자동차가 밤새도록 차고에 있을 때에, 엔진을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 시간을 어디에 써 버리고 어떻게 사용했는지 알지 못한 채 흘려보냅니다.

 

왜 또 우리가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안 됩니까? 물론 인생이 짧고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시간을 아끼지 않으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상태에 대해서도 바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결코 돈만 있으면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을 가리켜 의로운 롯이라고 하면서, 그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음란한 행실과,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날마다 고통하고 의로운 심령이 상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영의 세력들이 판을 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때가 악하기 때문에 시간을 구속하는 사람입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시간을 사라혹은 기회를 구속하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세월을 아끼라는 말을 ‘Redeem the time’이라고 했는데, Redeem이란 단어는 구원 받는다혹은 구속함을 받는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월을 아끼라는 말은 시간을 구속하라’ ‘시간을 구원하라는 의미가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영혼이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잃어버려진 영혼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렇다면 잃어버려진 영혼을 구원하는 일은 또 얼마나 시급한 일입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이 악한 세상에서 시간을, 혹은 날들을 구원해 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의 삶을 큰 기회로 봅니다. 여기 이 세상은 우리의 본향이 아닙니다. 외국인과 나그네, 행인과 순례자들,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이 그리스도인에게는 그렇게 절실한 삶이 아닙니다. 진정한 삶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는 잠깐 동안의 장소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귀중한 시간을 의미 없는 불필요한 일에 소비합니다. 우리가 한 가지 꼭 기억할 것은 바쁜 일이 반드시 중요한 일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바쁘게 살았는가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쁘게 살면서 무엇을 하는가를 보십니다.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해드리고, 인생을 좀더 바르게살기 위해서는 자를 줄을 알아야 합니다.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불필요한 가지를 잘라 내는 작업이 필요하듯이, 중요하지 않고 무가치한 일들은 여지없이 잘라 버리고, 하나님이 내게 요구하시는 삶의 우선순위를 중심으로, 시간을 짤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위하여 시간을 만들기보다는, 겨우 주님과 함께 보낼 짬을 낼뿐입니다. 주님을 첫 번째 우선순위로서 대접하지 않고, 문제가 있을 때나,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만 나아갑니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제일 중요합니까? 누구와의 관계가 제일 중요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우리에게 더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올바로 하기 위해서, 우리가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 읽고 기도하고,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하루의 생활에서 무엇이 제일 먼저 와야 합니까? 기도의 시간, 이 시간이 제일 먼저 와야 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나는 너무 바쁘다. 따라서 나는 더욱 더 기도해야만 하겠다.” 루터는 바쁠수록, 그래서 시간을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주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러한 고백을 한 것입니다.

 

시간을 아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뛴 우리의 수고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낭비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 그 하나님의 뜻대로 시간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우리가 해야 할 많은 일들의 우선순위를 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해야 할 하나님 앞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주님께서 마르다에게 하신 충고는 중요한 시간 관리의 원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시간을 아끼고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수 믿는 일, 주일을 지키는 일, 기도하는 일, 성경을 읽는 일, 전도하는 일, 이웃을 위해 선을 베푸는 일 등을 우리의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아니하면 여러분이 아무리 열심히 살고, 아무리 바쁘게 살았더라도, 훗날 주님 앞에서 세월을 허비한 악한 사람으로 평가될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한 설교자는 미국 사람들이 평균 75년 정도를 산다고 할 때 그 75년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사람들은 20년은 잠자는 데, 20년은 일하는 데, 7년은 노는 데, 6년은 먹는 데, 5년은 텔레비전 보는 데, 5년은 어떤 옷을 입을까 고민하며 옷을 사는 쇼핑에 시간을 보내고, 3년은 누군가를 만나고 기다리는 일에 소모하고, 2년 반은 화장실에서, 2년 반은 잡념과 잡생각을 하는 데, 그리고 일생 중 2년은 커피를 마시는 일에, 그리고 1년은 전화 받는 일에 보낸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은 어떠한 것일까요?

 

미국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토니 캠폴로 박사가 95세 이상 노인들을 대상으로 인생을 다시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습니까?"라는 설문조사를 했다고 합니다. 질문에 대한 그들의 응답은 매우 다양했으나, 그들이 공통적으로 대답했던 것 중의 하나가 영원한 것에 투자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인생을 다시 살게 된다면, 내가 죽은 후에도 계속될 일들을 더 많이 하겠다.”

 

영원한 것에 투자한 시간만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진정한 투자는 붙잡을 수 없는 헛된 것, 이 땅에서 사라질 것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영원히 빼앗기지 않을 것을 위한 투자가 진짜입니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생명을 얻는 일을 위해, 다음 세대를 위해,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 내 삶의 진액을 한 방울도 헛되이 하지 않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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