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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혼을 생각하는 분들에게(마 19:3-6),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9.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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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사람들이 너무 쉽게 이혼을 결정하고 후회하는 경우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우리 가운데 이혼을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리스도인들은 이혼의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로 접근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원리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현실적인 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혼 이후에 발생할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혼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분명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십니다. 아마 우리는 지금 이혼할 것인가? 이혼 하면 안되는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계실 것입니다. 먼저 우리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이혼의 문제가 나오게 된 배경이 중요합니다. 누가 이 문제를, 왜 가져 왔는가에 따라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누가 이혼의 문제를 가지고 왜 예수님에게 찾아왔을까요?

 

본문 3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찾아와 어떤 이유가 있으면 이혼해도 되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이렇게 질문한 동기 자체도 정말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아내를 버려도 된다고 대답하면 자신이 그동안 가르쳐 왔던 사랑에 교훈과 모순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내를 버리면 안된다고 주장하면 율법과 상충되는 것입니다.

 

1. 혹시 이혼해야 할 이유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이혼을 쉽게 허락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습니까? 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신명기 241절에 근거한 것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쥐어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 당시에 주류를 이루는 랍비 학파 가운데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는 특히 이혼 문제로 해서 크게 대립하였습니다. 수치스러운 일에 대한 해석의 차이가 달랐습니다.

 

삼마이 학파는 수치스러운 것을 간음으로 해석하였습니다. 힐렐학파는 실제로 간음한 죄와 상상 속의 범죄, 심지어 사소한 잘못까지도 포함시켰습니다. 예를 들어 음식이 태우거나 짜게 하는 경우, 즉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경우, 남편이 자기 아내보다 더 좋아하는 여인이 생겼다든지 또는 더 이상 애정이 생기지 않는 것 등의 부당한 일에 의해서 남편의 이혼 요구가 있는 경우 아내는 이혼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이혼할 때 위자료로 남자의 재산을 거의 여자에게 주게 되어 있습니다. 이혼하면 알거지가 됩니다. 바리새인들의 관심은 어떻게 해서라도 이혼의 이유를 찾으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많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이혼해야 할 이유를 쌓아가는 분이 없습니까? 당시에 이혼을 요구할 수 있는 대상은 남자들 뿐이었습니다.

 

2. 결혼을 유지해야 할 이유를 찾지 않으시겠습니까?

 

이에 대해 예수님은 본문 6절에서 이혼은 안된다고 원론적으로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예수님께서는 결혼과 이혼의 문제를 사람의 관점에서 보지 말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라고 하십니다. 본문 4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최초의 남자 아담, 최초의 여자 하와를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남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여자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각각 만드셨습니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드셨습니다. 갈비뼈는 가장 약하고 중요하지 않은 뼈이지만 그 안에 심장과 허파와 간과 소장, 대장이 다 들어있습니다. 남자와 여자는 생명을 유지하는 가장 소중한 존재입니다. 사람은 결혼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회복하게 됩니다. 누군가의 사랑을 받고 누군가를 사랑할 때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혼 예식의 주인공은 신랑과 신부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결혼제도는 필요에 따라서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결혼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각각 다르게 만드셔서 상호 보완하도록 하셨습니다. 동성애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성적으로 서로 다른 존재를 만드셔서 상호 보완하는 것을 위반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독신의 은사가 있기 분이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신비한 연합입니다.

 

먼저 남편은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어야 합니다. 남편이 부모를 정신적으로 떠나지 않으면 아내와 연합이 불가능합니다. 남편은 아내를 중심으로 육체적인 연합과 정신적인 연함과 영적인 연합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여기서 연합이란 떼려야 뗄수 없는 불가피한 관계를 말합니다. 결혼 제도를 통해서 남편과 아내가 연합하였기 때문에 이제는 둘이 아니요 한 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 한 이후에도 한 몸이 아니라 각자 따로 살아가는 것은 안됩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는 식의 마이웨이를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결혼한 이후에는 마이웨이가 아니라 원웨이입니다.

 

결혼 제도를 주신 하나님의 원래 목적은 남자와 여자가 결혼해서 일생동안 정조를 지키는 것입니다. 결혼한 이후에 서로에게 실망하고 마음이 안드는 부분이 반드시 생깁니다. 달라도 너무나 다르고 맞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너무 마음이 상하고 실망되고 인격적으로 존중이 안되고 신뢰가 깨어져서 회복이 쉽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차라리 이혼해서 각자 따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붙잡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이혼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2:16). 그런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계속 폭행을 당하고 남편이 나애 외에 다른 여자와 살림까지 차리고 있는데 이혼은 절대 안된다고 고집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십니다. 부부란 서로에게 바쳐진 몸이요 계속해서 헌신해야 할 대상입니다. 이혼을 생각하는 시간에 결혼의 명령을 주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을 헤아리고 회복되길 원합니다.

 

3. 막상 이혼하면 어떤 일이 닥칠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의를 제기합니다. 본문 7절입니다.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령하였나이까.” 8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모세가 남편의 학대를 이기지 못하여 고통당하는 아내를 보호하기 위하여 이혼증서를 아내에게 써주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남편들이 이것을 악용하여 너무 쉽게 아내를 버렸던 것입니다. 당시에 바리새인들은 이혼을 쉽게 허락하는 분위기에 예수님은 일침을 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면 안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남편이 바람을 피우거나 아내가 부정행위를 저지르면 이혼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라도 더 좋은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회복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12-13절입니다.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물론 부부간에 신뢰와 사랑이 깨어진 상태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혼은 종이 두 장을 접착체로 붙였는데 나중에 뗄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누가 잘 했던 잘못했던 간에 뗄려고 하면 이혼하면 많은 관계들이 파괴됩니다. 부부간에 말할 수 없는 상처, 자녀들에게 찾아오는 정신적인 충격,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게 됩니다.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마음의 완악함 때문이라고 결론을 내립니다. 부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다른 것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고 보완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혼을 당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에게는 적잖은 충격과 아픔으로 인해 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물론 누구나 건강한 가정에서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라나면 좋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성경적인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자녀들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지혜로 훌륭하게 키워나가야 합니다.

 

비록 가정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하더라도 나 역시 그런 전철을 밟지 않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으면 과거에 어떤 상처와 아픔 가운데서도 치유되고 회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말할 수 없는 자책감에 시달린채 어둡게 살아가지 마십시오. 당신의 바하인드 스토리를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복음을 당신에게 적용하는 것이 무엇보다필요합니다.

 

당신이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복음 안에서 소망을 가지시고 해처럼 밝게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해 주십니다. 잃어버린 것들에 애달파 하지 않으면 오늘 하루를 살아있는 날들로 만들어 가시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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