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불신자들이 지나가면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것이었습니다. “무슨 죄가 많아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그러자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덩달아 “그러게 말이지”하고 지나갑니다. 신자들 불신자든 인간이 죄가 많아서 어려운 일을 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고난과 죄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러면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우리가 지은 죄 때문에 생기는 걸까요? 욥의 경우를 보면 반드시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통해서 고난의 깊은 의미를 깨닫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성경은 고난과 죄의 관계를 어떻게 교훈하고 있을까요? 네 가지 경우를 보게 됩니다.
첫 번째 경우는 고난은 인간의 죄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결과 인간에게 고통과 죽음이 찾아온 것입니다.
두 번째 경우는 다른 사람이 잘못해서 내가 억울하게 당하는 경우입니다. 요나가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가는 바람에 풍랑이 일어나 배에 탄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세 번째 경우는 의를 행하다가 고난을 당하는 경우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경우입니다.
네 번째 경우는 나면서부터 맹인의 경우입니다. 제자들이 이 사람이 이렇게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신의 죄 때문입니까, 부모의 죄 때문입니까? 누구의 죄도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어갈 때에 이 경우는 고난과 죄의 관계가 어떤 지에 대해서 점검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이사야 1장 6절은 고난과 죄의 관계에 있어서 어떤 경우일까요?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하였기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4절입니다.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까지 상하고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 뿐입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이 계속해서 얻어터지고 있습니다.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는 죄라고 하면 하면 안되는 것을 하는 것이 죄라고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죄는 더 근본적이고 총체적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도다.”
소나 나귀는 자신이 누구인지 잘 알고 있는데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것이 죄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뭐 재미있는 것 없을까, 왜 아무런 낙이 없는지 아십니까? 전도서 12장 1절입니다. “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그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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