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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떤 왕을 원하는가?(요 12:1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0.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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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은 출생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가장 이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태복음 2 1, 2절에 보면 당시에 헤롯 때에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말하기를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질문합니다. 헤롯 왕은 자신이 유대인의 왕으로 있는데 유대인의 왕이 어디에 나셨다는 소식을 듣자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지경 안에 있는 아래 사내 아이를 죽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머리 위에 유대인의 예수라 죄패를 붙였습니다( 27:37). 요한복음 19 21절에 보면 대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쓰라고 부탁했지만 빌라도는 그냥 유대인의 왕이라고 썼던 것입니다.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입성하실 당시에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해 무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다니와 인근 마을에서 예수님과 함께 올라갔습니다(17).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으로 예루살렘에서 나왔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기쁨의 환호성을 외쳤습니다.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스라엘의 왕이시여.””호산나 의미는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입니다. 종려나무는 초막절과 유월절에만 사용하였습니다.

 

1. 어떤 왕을 원하십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간절히 원했던 왕은 어떤 왕일까요?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가 원하는 왕은 어떤 왕입니까? 당시에 그들이 원하는 왕은 어떤 왕일까요? 마가복음 11 10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 호산나 하더라. 다윗의 나라란 다윗의 자손에게 약속된 메시야 왕국을 의미합니다(삼하 7:13).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로마 제국의 속박 아래에서 정치적으로 해방시키고 다윗 왕국을 재건할 이스라엘 왕으로서 예수님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무리가 겉옷을 펼치는 것은 왕에 대한 예우입니다(왕하 9:12-13). 당시에 무리들은 예수님을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환호하면서 당장이라도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하에 독립시켜 달라고 열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는 일을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어떤 왕으로 오셨습니까?

15절입니다. 이는 기록된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한복음 12 15절은 스가랴 9 9절에 예언된 본문을 인용한 것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나귀 새끼니라.

 

출애굽기 34 20절입니다. 나귀의 새끼는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예수님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기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나귀는 양으로 대속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왕으로 오셨는데 다른 세상의 왕들과는 구별된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만왕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은 다른 왕들과는 구별됩니다. 예수님은 성품면에 있어서 다른 왕들과 구별됩니다.

 

첫째, 예수님은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하게 반영하신 분으로서 공의로우십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공의롭게 행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함으로써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은 겸손하게 섬기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왕들이 타고 다니는 군마가 아닌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실 만큼 겸손하십니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서 갑질을 하거나 권위를 내세우지 아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은 진정한 평화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스가랴 9 10절에 보면 그는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하는 분이십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질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갈등과 불안에 쫓겨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참된 평안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특징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이 도저히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의 칼러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세상의 왕들과는 다른 예수님의 되심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예수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공의, 구원, 겸손, 평화를 주시고자 오셨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자신들의 왕으로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당시에 분위기로는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추대될 있는 결정적인 찬스였는데 거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을 자처하셨을까요? 누구를 위해서일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은 방어 능력이 없어서 당하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6 53, 54절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갑작스럽게 힘이 없어서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하시기 위해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을 우리의 왕으로 어떻게 모셔야 할까요?

 

예수님을 왕으로 모되신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을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인으로 모셔들이고 그분의통치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시지만 우주의 왕이십니다. 스가려 9 10절에 보면 예수님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땅끝까지입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모셔들이고 그분의 통치를 받을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십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위협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예수님의 통치는 강요가 아니라 섬김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제도와 틀을 바꾸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통치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서 대우를 받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이시지만 자기 백성들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따라서 신자는 세상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간에 섬기기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어야 합니다. 나의 재능, 나의 시간, 나의 재물,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기 위한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교육, 정치, 사업, 예술, 문화 삶의 영역에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신자가 직장생활과 불신자가 직장생활하는 것과 같은 것일까요? 다른 것일까요? 차원이 완전히 달라야 합니다. 신자들이 직장을 선택할 어떤 것을 보고 직장을 선택하십니까? 근무조건이나 혜택, 월급이나 수당, 미래에 비전이 있는가? 이런 저런 것을 검토해야 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무엇보다 직업을 선택할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한 태도로 직업을 선택해야 합니다. 직업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위한 ,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기독교세계관, 이승구 교수).

 

크리스천들이 믿음과 일을 동떨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크리스천일 뿐인지, 아니면 요얄보호사, 배관공, 의사, 연구원, 요양보호사, 자원 봉사자, 교사이면서 일이 매일 복음으로 집어지고 있습니까? 복음은 우리가 일하는 동기를 변화시킵니다. 과거에는 돈을 벌기 위해서 생계를 잇기 위해서, 혹은 지위를 얻거나 인정받기 위해서 일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일합니다.

 

골로새서 3 23-24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아나니 너희는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우리는 직장에서 사람들이나 돈을 위해 일하지 않고 정말로 하나님을  일합니다( 겔러의 복음과 ).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통치하실까요? 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했을 ,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됩니다. 우리를 다스리시는 왕의 명령을 지키며 살아갈 진정한 기쁨과 만족이 있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라는 복음 성가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우리가 왕께 드리는 영광을 받아주소서 . 우리는 주님의 백성 주님은 우리 왕이라. 왕이신 예수여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1). 예수 우리 왕이요 이곳에 오셔서 우리가 주께 드리는 찬양을 받아주소서 우리는 주님의 종들 주님은 우리 주시라 주되신 예수님 오셔서 찬양을 받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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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지도자는 doing보다는 being이 더 중요합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는 먼저 지도자의 자격에 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자격이란 적합한 인격, 지식, 기술, 경험을 갖추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감독의 직분이란 베드로전서 2 25절에 보면양떼롤 돌보는 목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이에게로 돌아왔느니라.”초대교회의 감독이 되는 것은 온전한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1:5-9). 오늘날 감독이 직분은 목회자와 장로와 교회와 같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지도자는 크게 두 가지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나는 잘 다스려야 하고 다른 하나는 잘 가르쳐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피해야 할 덕목이 있습니다. 술을 즐기지 아니하고 구타하지 아니하며 다투지 아니하고 돈을 사랑하지 않아야 합니다. 갖추어야 할 덕목은 절제하고 근신하며, 단정하고 관용하며 나그네 대접을 잘 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의 첫번째 조건은 선한 일을 사모해야 합니다. 선한 일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교회에 유익을 끼치는 것에 힘쓰는 것을 말합니다. 일상생활에 충실한 것을 말합니다. 감독이 자격 요건, 교회의 지도자는 두번째 책망할 것이 없어야 합니다. 책망할 것이 없다는 것은 완벽해야 되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만한 것이 없어야 합니다. 지도자는 도덕적, 인격적, 신앙적으로 모범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의 세번째 조건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합니다. 아내에게 신실해야 하며 가정을 잘 지키는 자라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은 절제가 배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욕망뿐 아니라 모든 면에 절제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근신해야 합니다. 충동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분별있게 행동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신중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잘 단속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외모가 단정해야 합니다. 도에 지나치지 않고 정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나그네 대접을 즐겨해야 합니다. 베풀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가르치기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배워야 합니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만 아니라, 가리킬 수 있는 능력과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설교시 진정성과 영적인 감화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술을 즐겨하지 말아야 합니다. 술 곁에 오래 앉아있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술을 즐겨하지 않아야 합니다. 술에 취하면 자제력을 상실하여 판단이 흐려집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관용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4 5절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이라고 했습니다. 진리에 대해서는 철저하고 단호해야 하지만 비본질적인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고 관대해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구타하지 않아야 합니다. 폭력을 행사하거나 언어 폭력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서로의 의견이 달라도 다투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돈을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도자에게도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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