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어버이"란 뜻이 무엇인지 아시죠?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어버이날의 유래를 아십니까? 처음에는 어머니 날이었습니다. 1956년 당시 한국 전쟁이후 어머니의 노고를 기억하기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그후 1973년 3월 30일 어머니 날이 어버이 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버이가 계신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양가부모님들이 다 돌아가신 후에 더욱 깨닫게 됩니다.
어버이가 계신 것 하고 안 계신 것 하고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십니까? 마음을 터놓고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는가, 없는가 그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그것을 나누고 싶은 대상이 있다는 것은 큰 위로와 기쁨입니다. 넉두리를 해도 받아주시는 부모가 계신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위로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부모는 어떤 존재인가? 각자의 사정에 따라서 달라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 부모를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은혜를 입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짧다는 것을 기억하고 지금부터 잘 해야 합니다.
잠언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솔로몬 왕이 자녀들에게 가르쳐주는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부분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잠언 3장 1절입니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잠언 4장 1절입니다. “아들들아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명철을 얻기에 주의하라.”
잠언 31장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1, 2절입니다.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르무엘은 왕입니다. 어머니가 ”내가 무엇을 말하랴”를 세 번씩이나 사용하면서 아들에게 간곡하게 부탁합니다.
1.부모는 자녀양육을 잘 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에 성경적인 두 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한 가지 원리는 잠언 13장 2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
다른 한 가지 원리는 에베소서 6장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
과거에는 전자를, 요즈음은 후자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징벌을 가하되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두 가지 양육 방식의 균형을 잘 이루는 것이 관건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에베소서 5장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술에 취한 사람은 쉽게 흥분하며 분노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자신을 훈육할 때에 자신의 감정을 먼저 다스려야 합니다. 자녀들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 말과 행동을 도무지 예측할 수 없는 부모에게서 가장 큰 반발심을 느낍니다. 훈계할 때에도 불합리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합리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상황을 고려하지 않거나 미쳐 알지 못한 상황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주지 않고 훈육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훈계할 때에도 자녀의 유익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자녀의 인격을 짓밟는 것만큼 잔인한 것은 없습니다. 자녀를 훈육하되 억을하고 분한 마음을 품게 해서는 안됩니다. 훈계할 때에도 자녀의 인격과 개성을 존중하는 마음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훈계는 사랑으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나야 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면 부모와 자녀 모두가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부모가 된 우리가 자녀를 대하듯 하나님이 우리를 대하신다면 어떻게 될까? 돌아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끊어야 할 습관을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요? 내 자녀가 내가 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길 원치 않는다면 지금 끊어야 합니다.
2. 아버지의 역할은 가정의 텅빈 곳을 채워야 합니다
르무엘의 어머니는 아들에게 세 가지를 부탁합니다.
첫번째는 성공한 후에 여인들에게 정력을 낭비하면 망한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두번째는 술을 마시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는 것을 세 번씩이나 강조합니다.
4절입니다. “르무엘아 포도주를 마시는 것이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고 왕들에게 마땅하지 아니하며 독주를 찾는 것이 주권자들에게 마땅하지 않도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술에 취하여 잘못된 판단을 함으로써 돌이킬 수 없는 후회를 하게 됩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큰 아픔을 가졌던 가정이 술로 인해 불행해지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술에 취하여 마음이 곤고하고 슬퍼지면 제가 전화를 거시는 분이 있습니다. 맨 정신으로는 제게 전화를 하지 못합니다. 제가 전화를 하면 끊어버립니다. 어버이는 자녀들에게 술에 비틀거리는 모습이나 취한 모습을 보이지 말아야 합니다. 더 이상 술 때문에 정신이 몽롱하거나 흐뜨러진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술은 뇌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자제력을 잃게 하고 심한 경우에는 필름이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마땅하지 않으며, 자녀들에게도 마땅하지 않고, 자신에게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나이가 들어서 뇌의 기능이 저하되지 않도록 지금부터 끊어야 합니다. 알코올 중독이나 게임 중독이나 도박 중독에 빠지면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평생 상처와 고통을 안겨줍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책에 보면 어머니와 아들이 살과 피로 만들어진 애착관계라면 아버지와 아들은 사회적 관계입니다. 어머니가 아버지로 인정하거나 아버지가 아들로 인정해야 비로소 아들의 관계가 성사된다”고 합니다. 고대 로마 사람들은 아들이 태어나면 집안 사람들 앞에서 아들을 공표했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아들을 번쩍 들어올리면 “이 아이는 내 아들로 인정한다”는 사회적 의미를 가졌습니다.
아들은 사회적 관계이자 위계질서를 지닌 아버지로부터 힘의 균형, 서열, 복종, 주도, 통제, 적응의 힘을 배웁니다. 딸로 사회 안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기술을 주로 아버지에게서 습득합니다. 마치 스펀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아버지를 닮아간 아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아버지처럼 대합니다. 저자는 또한 이렇게 역설합니다. “아무리 어머니가 완벽하다고 해도, 아들에게는 언제나 2% 부족함이 있어요 그 부족함은 아버지만이 채워줄 수 있지요.” 라고 역설합니다.
세번째가 현숙한 여인을 구하는 것입니다.
잠언 3장 10절에서 31절에 나오는 장면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어떨까요? 그림의 제목은 무엇일까요? 행복이 가득한 가정입니다. 본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가정은 귀족이나 왕가가 아니라 평범한 가정에 대한 묘사입니다. 10절입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느니라.” 행복한 가정의 분위기를 만들어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현숙한 여인입니다.
현숙한 여인은 남편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11절입니다. “그런 자의 남편의 마음은 그를 믿나니 산업이 핍절하지 아니하겠으며.” 부부가 서로 신뢰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는 일에 복을 주십니다. 자신의 수입에 맞게 지출하기 때문에 살림살이가 어렵지 않게 됩니다. 과소비 성향으로 인해 부부의 갈등을 초래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본문 12절입니다. “그런 자는 살아있는 동안에 그의 남편에게 선을 행하고 악을 행하지 아니하니라.”
3. 어머니의 역할은 너무 중요합니다.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하고 섬기는데 있어서 탁월합니다. 15, 18절에 보면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밤에 등불을끄지 않을 정도로 열심히 일합니다. 13절입니다. “그는 양털과 삼을 구하여 부지런히 손으로 일하며.” 이 여인은 양털과 삼을 구해서 가족들의 옷을 만듭니다. 상인이 배를 타고 각종 물건을 교역하듯이 온가족들을 먹여 살리는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이 번 돈으로 포도원을 구입하고 포도나무를 심어 재배합니다. 21절에 보면 자신의 직원들의 식사뿐 아니라 의복을 잘 챙겨서 눈이 와서 걱정이 없도록 배려합니다.
23절에 보면 그녀의 남편이 사회에서 인정을 받도록 합니다. 남편은 사회적으로 존경과 인정을 받을 때 행복해 합니다. 남편에게 있어서 social position이 중요합니다. 또한 현숙한 여인은 남들을 챙길 뿐만 아니라 자신을 돌보고 마음의 여유가 있습니다. 23절입니다. “그는 자기를 위하여 아름다운 이불을 지으며 세마포와 자색 옷을 입으며.”
현숙한 여인은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합니다. 26절입니다. “입을 열어 지혜를 베풀며 그의 혀로 인애의 법을 말하며,”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행복이 가득한 가정은 말을 통해서 행복이 가득한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의 자녀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감사로 인사를 합니다. 감사는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이 곧 행복이고 그 행복은 경이로움을 느낄 때 더 커집니다. 경외심은 감사를 낳고, 감사는 기쁨을 낳고, 기쁨은 만족을 가져다 줍니다.
남편은 아내를 칭찬합니다. 29절에 보면 덕행있는 여자가 많으나 그대는 모든 여자보다 뛰어나느니라. 자녀들의 감사와 남편의 칭찬이 가득한 이 여인의 가정은 행복한 가정의 모습입니다. 30절에 의하면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은 칭찬을 받을 것이라.” 즉 현숙한 여인에게서 많은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인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헛된 것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현숙한 여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나타나는 지혜가 가정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혜를 가진 사람은 복잡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압니다. 삶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의미를 상실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합니다.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운데 인간됨의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수년전에 성경컨퍼런스에서 “경외”라는 책을 선정하여 각 장별로 서로 도전받은 것을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12장에 보면 경외심을 되찾을 때 자녀는 영적 어둠에서 벗어난다고 했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자녀들이 예수님을 잘 믿고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원합니다. 자녀들이 훌륭한 교육을 받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운동이나 음악에 재능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실제로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즉흥적으로 처리하는데 급급합니다. 많은 경우에 뚜렷하고 분명한 원칙이 없이 부모의 감정이나 기분에 좌우됩니다. 모든 자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보다 자아를 경외하는 마음에 더 많은 지배를 받습니다. 자녀들의 마음이 먼저 자아를 경외하는 마음에 속박된 상태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사로잡혀야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 자신의 삶이 뒤틀린 원인이 무엇일까요? 돈을 벌어도 여전히 빚이 많고 마음이 허전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근본원인은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제공하셨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물질에서 내 안정감을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기분이 달라지고 특정한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어떻게 하면 여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이 문제의 근본원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나의 정체성을 잃고 사람을 경외하는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나는 나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때 불안합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권력과 통제에 대한 욕망을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요? 이 문제의 근본원인은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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