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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살아나는 교회를 해부하다, 톰 레이너

by liefd 2024.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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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하느니 죽는 편을 선택한다는 이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라. 삶의 길이 있고 그 길을 갈 자원도 있고 그 길을 갈 선택권도 있는데 사람들은 필요한 변화를 단행하느니 죽는 편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도이치먼은 그런 주장을 뒷받침해 주는 충격적인 데이터를 제시했다. 예를 들어, 매년 심장 우회수술을 받은 1,500만 명 이상의 환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바꾸기만 해도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

 

90퍼센트는 그 어떤 변화를 위한 노력도 실천하지 않는다.

핵심 문제는 해법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교인들과 리더들이 왜 변화를 선택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그는 자기 교회의 잘못된 선택들을 정확히 지적할 수 있었다. 그가 설명할 수 없었던 것은 자신의 교회가 그릇된 선택의 길로 계속해서 갔던 이유이다.

 

그의 교회는 변화보다 전통을 선택했다. 그의 교회는 변화보다 안위를 선택했다. 그의 교회는 변화보다 취향을 선택했다. 궁극적으로, 그 교회는 변화보다 죽음을 선택했다.

 

“‘무엇어떻게바꾸어야 할지만이 아니라 바꾸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세요. 물론 충격적인 사람들이 교회로 오기를 기대하지 말고 교회가 지역 사회로 나가야 하지 않을까요?”

 

책임을 받아들인 교회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 교회 건물 안팎의 사람들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들이지 않는 교회는 쇠퇴를 넘어 죽음으로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상대명령과 대계명을 따르는 교회는 생존을 넘어 번영하고 성장한다.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교회 주변의 상황이 문제가 아니다. 소생한 교회들을 해부한 결과 우리는 비난의 말이 소망과 격려와 섬김과 가능성의 말로 바뀐 것을 발견했다.

 

해부의 첫 번째 결과는 분명하다. 이 교회들의 리더들과 교인들은 책임을 받아들였다.

 

이제 그 교회의 초점은 더 이상 항상 해 오던 방식이 아니다. 그 교인들은 전통의 우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일에 마음을 열었다.

 

그래서 그 교회는 회복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그 교회는 지상대명령에 대한 순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교회가 점수판을 만들었을까?

 

제임스는 점수판이란 용어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두 가지 척도를 철저히 추적하면서 옳은 궤도를 유지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그 척도는 예배 출석 교인 숫자와 소그룹 참석자 숫자였다.

 

그 교회가 회복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시작한 똑똑한 행동 중 하나는 가장 많은 열매가 맺히는 곳을 찾는 것이었다. 그 결과, 쇠퇴기에도 교회를 지킨 사람들은 대부분 소그룹 활동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일관되게 드리는 사람들이라는 점도 발견했다. 또한 사역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십중팔구 소그룹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었다.

 

쇠퇴기에 사람들을 붙잡는 데 소그룹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발견했습니다. 소그룹이 우리 교회의 회복에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회심자의 숫자

 

답이 빤한 질문을 해 보겠다. 교회가 지역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물론 중요하다.

저는 분기에 약 2시간씩 이 척도를 측정하고, 기본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교회 내 모든 사역의 참여자 명단을 입수하되, 한 사람이 하나 이상의 사역에 참여해도 한 번만 셉니다. 그런 다음 모든 숫자를 합칩니다. 이게 다입니다. 간단하죠.”

 

제니는 1년에 4, 하나의 숫자를 교회의 다른 리더들에게 전달한다. 그녀는 그렇게 하면 리더들이 교인들의 사역 참여를 더 열심히 독려하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강력한 기도의 운동이 뒷받침되지 않고서 교회의 회복이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경우를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기도는 절대적이다.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 기도는 최우선사항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소생한 교회에서 기도는 하나님이 사용하신 도구였으며, 하나님은 꾸준하고도 끈덕진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우리 교회가 자신보다 남들을 더 생각하는 쪽으로 방향을 트는 순간, 회복은 이미 시작되었답니다.”

 

소생한 교회들에서는 분명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섬김을 받기보다 섬기기를 원했다. 그들은 최근 당신이 나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는가?”라고 묻기보다는 오늘 내가 당신을 어떻게 섬길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

 

교회들이 죽는 것은 지역 사회 섬김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을 얻기 위해 필요한 변화를 단행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생한 교회들은 살기로 선택했다. 그 선택은 힘들었다. 그 선택은 위험했다. 그 선택의 열매는 때로 고통스러우리만치 느리게 나타났다. 그 선택은 지독히 고통스러웠다. 그 선택은 자신보다 하나님과 남들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필요로 했다. 그 선택은 희생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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