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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교리 설교를 잘 하려면

by liefd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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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설교란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의 안내를 따라 성경본문을 설교하는 것이다.”

 

교리자체에 대한 공부

 

1. 무엇보다 교리설교의 중요성을 확실하게 인식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회성으로 끝나고 만다. 교리설교는 평생 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자신뿐만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교리설교의 중요성을 공감하게 만들어야 한다. 교리설교 자체를 너무 잘 해서 성도들에게 필요성을 공감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평소에 그 중요성을 잘 가르쳐서 성도들이 인식하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면 성도들이 설교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진다.

 

1.1 이를 위해서 본인 스스로가 교리 공부를 통해서 복음의 진리를 확신해야 한다.

 

교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안다는 것과 그것을 스스로 확신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예를 들어서 은혜에 대해서 설교하면서 정작 본인은 은혜를 이해하고 체험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교리 설교를 잘 할 수 있겠는가? 도르트신조 해설이라는 책을 읽고 정말 개혁주의가 말하는 은혜와 알미니안주의가 말하는 은혜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를 정확하게 이해할 뿐만 아니라 개혁주의가 말하는 은혜의 교리가 정말로 은혜의 은혜됨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2. 교리의 내용을 정확하게, 총체적으로, 체계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교리는 핵심적인 내용을 함축적인 용어로 정교하면서 체계적으로 진술되어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시각 속에서 세밀하고 정확하게 글자 한자 한자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교리는 기본적으로 논리적이기 때문에, 개념적인 이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성화나 칭의를 대충 이해하게 되면, 이와 관련된 모든 교리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교리설교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전체적인 내용들을 먼저 충분히 다 공부를 해 놓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2.1 내용분석이 끝나면, 왜 그런 내용이 진술되어 있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교리는 역사적 산물이기 때문에 역사적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으면 우리의 신앙고백들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전달하는 내용도 정확해야 하지만, 왜 중요한지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사를 잘 알고, 그 당시 상황 속에서 교리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2.2 “?”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면 그 다음에는 어떻게 진술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특히 앞/뒤의 순서를 확인하고 그 관계를 잘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마인드 맵을 사용한다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지도를 사용하면 전체에서 부분을, 부분에서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적어도 가장 가까운 교리들은 잘 연결시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25장부터 30장까지 교회, 성도의 교제, 성례, 세례, 성찬, 권징을 차례로 다루고 있다.

 

설교로서의 교리설교

 

1.교리 설교는 다른 설교와 마찬가지로 설교다. 따라서 설교로서의 기본을 놓쳐서는 안 된다.

 

설교는 들려야 한다. 이것은 설교의 최저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설교와 전도지 혹은 전도 책자는 구분이 된다. 설교는 들리는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설교가 들리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설교가 아니다.

 

교리공부가 부실하면 설교의 논지가 흐려질 수 있기 때문에 교리 공부를 충분히 해야 한다. 교리 공부가 아무리 충실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전달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다. 똑같은 교리설교를 어렵고 재미없게 할 수도 있고, 쉽고 재미있게 할 수 있다.

 

) 성례는 표와 인이다. 이 간단한 문장을 성도들에게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까?

 

2. 설교와 성경공부 혹은 강의는 구별되어야 한다.

 

교리 설교가 의외로 교리공부나 교리해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동일한 것도 아니다. 강의나 공부의 목적은 정확한 이해를 시키는 것이 목적이지만, 설교의 목적은 이해를 뛰어넘어서 믿음과 순종으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

 

2.1 교리설교와 교리공부는 서로 잘 보완할 필요가 있다.

 

교리는 기본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일반신자들이 잘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설교 시간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교리 자체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견인(perseverance)”이라는 말을 생각해 보자. 처음 듣는 사람은 아마도 견인차를 연상할 지도 모른다. 일단 잘못된 인상이 머리 속에 자리 잡으면 고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이런 일들은 성경공부를 통해서 잘 교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교리설교를 잘 하기 위해서는 평소 교리 공부를 통하여 교리에 대해서 익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나 청소년들 경우에는 암송을 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2.2 교리설교는 교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교리설교는 결코 지적인 설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로 이어져야 한다. 더 나아가서 설교는 교회 전체를 말씀에 따라 개혁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한다. 설교는 기본적으로 한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교회를 향한 것이다. 예를 들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쳤다면, 예배가 삼위일체적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2.3 교리설교는 교리 특강이 아니다.

 

따라서 교리에 대해서 모든 설명을 다 할 필요는 없다. 일반적으로 교리문답에 대한 해설집이나 설교는 각 교리에 대한 모든 설명을 자세히 해 놓고 있고, 어떤 경우에는 아주 수준 높은 신학적 논쟁도 포함하고 있다. 교리설교를 준비함에 있어서 목사는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하지만, 그것을 실제 설교에서 다 이야기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것들은 나중에 교리공부를 위해서 남겨 두면 된다. 교리공부를 할 때, 어차피 성도들이 질문을 하게 되어 있다. 사실, 교리설교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이 부분이다. 모든 목사들은 자기가 준비한 것, 설교준비하면서 은혜받은 것은 다 설교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쉽다.

 

3. 교리설교는 성경본문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어야 한다.

 

교리설교는 교리의 안내를 받아서 성경본문을 설교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교리와 성경의 관계는 분명하다. 교리는 수단이고 성경본문은 목적이다. 이 두 관계를 항상 정확하게 인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1) 부자와 나사로 본문을 살펴보자.

 

여기서 어떤 교리를 전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의 목사들은 종말에 대한 교리를 중심으로 설교할 것이다. 종말 중에서도 지옥이 중심 교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선행과 구원의 관계에 대해서 설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과연 예수님의 의도가 그런 교리들일까? 그렇지 전혀 그렇지 않다.

 

2) 성전청결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선포하셨다. 이 본문을 읽고 대부분의 설교자는 기도에 대해서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과 의도가 기도의 중요성을 가리키는 것일까? 기도하지 않는 것이 그토록 예수님으로 하여금 분노하게 하셨을까?

 

4. 설교가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리설교만 잘 한다고 해서 교회가 잘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교리와 예배와 직분이 같이 조화를 이룰 때 교회가 건강하게 세워질 수 있다.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이것은 교리설교뿐만 아니라 모든 목회 활동에 적용된다. 목회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변화시키면 다른 것들도 자연스럽게 바뀔 수밖에 없다. 소위 세미나 목회가 실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로그램 자체는 좋을지 모르지만 그것이 목회 전반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별 효과가 없다. 대표적인 예가 가정교회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교리 설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서 교리설교를 하고 성경공부는 조엘 오스틴의 책으로 한다면 그것은 성도들에게 오히려 혼란을 일으킬 뿐이다. 교리설교가 시행되면 성례도 같이 보강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예배도 예전 중심적으로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목회 활동이 보다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게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교리설교를 시작할 때 전체 그림을 염두에 두고 조금씩 신중하게 실천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리설교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 목사 혼자만으로는 부족하다. 장로들도 교리교육에 참여시켜야 한다. 특히 입교와 세례교육(입교 포함)이 당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이 당회의 책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면 설교시간에 가장 열심히 듣고, 교리 공부에 참석하는 사람은 장로들이 될 것이다.

 

5. 흥미있게 전달하여야 한다.

 

교리란 딱딱하다는 선입관을 대부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교리를 재미있게 가르칠 수도 있고, 재미없게도 가르칠 수 있다. 당연히 재미있게 가르쳐야 하며 이것은 많은 노력과 힘이 드는 작업이다. 하지만 일단 어느 정도 숙달되어 있으면 굉장히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교리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3대지 설교식으로 논문 발표하듯이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스토리 방식 혹 은 그림을 그리는 방식으로 풀어 나갈 수도 있다. 여기서 스토리는 예화설교를 말하지 않는다. 마치 이야기를 풀어내듯이 설교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은 방법이고 항상 적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교리설교를 너무 천편일률적으로 하는 것은 좋지 않다.

 

5.1. 흥미있게 하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좋은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실제로 요리문답 자체가 이 방식을 취하고 있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방식이다. 물론 설교는 일방적 의미에서 선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질문을 전혀 제기하지 말라는 말은 아닐 것이다. 좋은 질문을 제기하고, 그 질문에 답을 하고, 그 답에 대한 질문을 해 가면서 점층적으로 설교를 인도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 자기 교회를 위한 교리문답을 만든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5.2 흥미있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교리공부나 심방을 통해서 성도들이 직접 제기한 질문을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평소에 그런 질문들을 잘 모아서 설교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질문들은 대부분 요리문답에 어떤 식으로든지 제기되어 있는 것이지만 훨씬 더 쉽고, 구체적이고, 생생한 질문이라는 점에서 요리문답의 질문보다 훨씬 흥미를 일으킨다.

 

)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무엇입니까?” -> “왜 태어났니?‘

 

) “유아들에게 왜 세례를 줍니까?” -> “유아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5.3 좋은 실례를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결코 예화설교를 의미하지 않는다. 교리설교에서 예는 간단하고 명료하고 적실성이 있어야 한다.

 

) 언약을 어떻게 예를 들어서 설명할 수 있을까? -> 놀이터

 

) 세례와 성찬의 관계 -> 손 씻고 밥 먹기

 

6. 교리설교는 될 수 있는 대로 쉽게 하는 것이 좋다.

 

쉽게 한다고 해서 쉬운 예화를 사용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쉬운 설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선명한 논지이다.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하는 중심 메시지가 선명한 것이 쉬운 설교이다.

 

6.1. 설교를 쉽게 하는 좋은 방법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많이 해 보는 것이다.

 

주의: 어린이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설교도 설교이기 때문에 교리설교가 아니라 모든 설교에도 적용이 된다. 이 점에서 동화책을 많이 읽는 것도 도움이 된다. 동화책은 창의적으로 설교를 함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된다. ) 플랜팅가 교수.

 

6.2 설교문 작성에 있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단문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설교는 청중들에게 어렵게 들린다. 단문을 사용하되 적절하고도 변화된 반복적 표현을 잘 사용할 필요가 있다. (물론 했던 말 또 하는 시의 반복을 말하지 않는다.) 설교는 말이기 때문에 한 번 놓치면 설교를 다시 따라 오는 것이 쉽지 않다. 이것은 교리 설교인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하나의 개념을 여러 개념으로 설명하고, 적절하게 앞에 했던 내용을 다른 식으로 표현하여 다시 상기시켜주는 것이 필요하다.

 

6.3 문단의 중요성

 

문단은 생각의 덩어리라고 불린다. 문단을 잘 작성하는 사람이 좋은 설교를 할 수 있다. 한 문단 안에는 하나의 생각이 들어 있어야 한다. 여러 생각이 들어있으면 청중들은 설교를 어렵게 생각한다. 문단 안에서 교리의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교리의 목적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 교리의 적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설교문을 작성해 놓고 그것을 보지 않고 자기 말로 설명해 보는 것이다.

 

6.4 구체적인 방법: 사모나 자녀들에게 한 문단의 내용을 가지고 설명을 해 보라.

 

만약 사모나 자녀들이 잘 알아들을 뿐 아니라 흥미 있게 들으면 좋은 설교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설교가 된다. 당연히 설교의 모든 책임은 목사에게 있다. 성도들이 머리가 나쁘다는 식으로 책망해서는 안 된다. 이해가 잘 되지 않으면 동일한 내용을 다른 방식으로 (다른 예를 사용하거나 질문을 사용하는 것) 전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7. 마태복음 1장부터 강해설교를 하는 것이 좋지 않듯이 교리설교를 신앙고백서나 요리문답 순서대로 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성도들이 교리문답에 생소한 경우에 특히 중요하다. 교리공부는 처음부터 차근차근 하는 것이 좋겠지만, 교리설교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달리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주기도문이나 십계명 강해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렇게 하면 성도들에게 교리를 설교한다기 보다 성경을 설교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굳이 오늘부터 교리문답으로 설교하겠습니다!”고 말하면서 설교할 필요가 없다.

 

7.1 1년 내도록 교리설교를 하는 것도 그렇게 권장할 만하지 않다.

 

처음 시작하는 경우에는 특별하게 그러하다. 준비가 정말로 잘 되어있지 않으면 차라리 평소대로 설교하는 것이 훨씬 좋다. 좋은 교리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한 달이나 두 달 씩, 혹은 큰 주제별로 묶어서 정기적으로 설교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도신경의 경우 성자에 대해서 설교를 한다면,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를 나누어서 전자를 한꺼번에 설교를 하고, 좀 쉬었다가 후자를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5. 교리설교의 유익

 

아무리 교리설교가 올바르다고 하더라도 교회와 본인에게 유익이 없으면 일단 중단해야 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 않다는 사도바울 권면은 여기에도 적실하다. 본인은 유익을 얻지만 성도들이 유익을 얻지 못한다면 교리설교를 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1. 본인 스스로가 큰 유익을 받는다.

 

스스로가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그 결과 많이 배운다. 단순히 교리만 배우는 것이 아니고 다른 교의학 책이나, 역사, 실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특히 성경 본문을 교의학적 관점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게 된다. , 성경을 보는 안목이 체계적이고 종합적이고 거시적이 된다.

 

2. 특별한 설교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의 보편성을 유지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교회를 키워야 한다는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다.

 

3. 설교 준비에 있어서 어느 정도 부담을 덜게 된다.

 

미리 교리적 주제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 늘 이것과 관련하여 묵상을 하게 된다.

 

4. 성경을 부분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전체를 가르치게 하고, 본인 스스로가 성경의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가지게 됨.

 

5. 소위 성도들이 나를 치는 설교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구체적 실천방법

 

1.교리에 대한 좋은 책들을 최대한 수집한다. 요리문답, 조직신학, 신앙고백서 해설 등.

 

2. 그 중에 자기에게 맞는 책을 기본 텍스트로 정한다.

 

정하는 법: 1) 어떤 교리를 하나 정한다. 예를 들어 유아세례를 선정하였다고 하자. 여러 교리 해설서 중에서 유아세례를 설명한 부분을 읽고 서로 비교해 본다. 그 중에서 자기에게 가장 적절한 것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의 추천을 받는 것은 좋지만 그것은 참고 사항으로 생각해야 한다. 이것은 좋은 주석을 고르는 것에도 적용할 수 있다.

 

3. 평소에 교리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을 필요가 있다.

 

특히 청교도들이 작성한 설교는 모두가 교리 설교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지평서원에서 이 분야에 대한 책을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사실 이들의 설교문을 요약만 해도 좋은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청교도들 중에 한 명을 정해서 집중적으로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휫필드나 존 오웬의 설교집은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 정기적으로 1년에 한 두 차례 교리나 성경 세미나에 1주일 정도 참석하는 것이 좋다.

 

집중적으로 자신의 지식을 한 단계 업데이트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쉬면서 정리와 반성 및 성찰을 할 수 있다. 교리설교 역시 깊은 묵상이 필요한데 이것은 기본적으로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5. 같은 생각을 가진 목사들끼리 연대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리설교는 평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혼자 성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여러 동역자들이 필요하다. 필요하면 좋은 정보도 서로 공유할 수 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자문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좋은 강사를 초청하여 집중적으로 자신들만의 강의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 성도의 교제(코이노니아)라는 교리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교리설교의 실제

 

매우 탁월한 교리설교의 실례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이것은 본문설교(textual preaching)의 방식에 따른 것으로, 미국 카버넌트신학대학원 총장이며 설교학 교수인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의 설교이다.

 

채플은 갈라디아서 220절을 본문으로 택하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본문으로 택한 한 절을 분석하면서 세 가지 주제를 뽑아내었다

 

. 1) 하나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20)는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의 연합이라는 주제를,

 

2)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0)는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삶과의 연합이라는 주제를,

 

3) 그리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20)는 구절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이라는 주제를 이끌어 낸다.

 

채플은 각각의 주제를 다루면서 본문의 문법적 분석을 필요에 따라 제시한다. 예를 들어, ‘나를 사랑하사’(과거시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과거시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현재시제) 등을 시제에 따라 구분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의 문제는 현재 내가 무엇을 하는가를 보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것을 바라보는 데에 있음을 이끌어 낸다. 말하자면 오늘 내가 어떠한가와 관련한 성화의 문제를 나를 위하여 죽으신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칭의를 통해 해결해 간다. 채플의 이러한 주해는 그가 칭의와 성화에 대한 교리적 이해를 정확히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채플은 근접문맥을 살피는 해석을 통해 주해를 열어간다. 즉 채플은 20절 본문 가운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의 의미풀이를 19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에서 찾는다. 채플은 여기서 바울 자신이 율법에 대하여서는 죽은 자이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생명의 길로 나가는 길이 있으니 곧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길임을 15-16절을 인용하여 밝힌다.

 

이렇게 근접문맥을 통해 주해뿐만 아니라, 채플은 율법의 용도를 밝혀 자신의 해석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좀 더 넓은 문맥으로 나가서 324절을 인용한다. 채플의 이러한 노력은 그가 본문 자체뿐만 아니라, 가까운 문맥과 책 전체를 살피는 이해에 기초하여 주해를 충실히 하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설교의 구성논리를 형성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뿐만 아니라 채플은 적절하게 성경의 다른 책들에서 필요한 관련 구절들을 살펴 제시하는 주제설교의 특징도 설교 가운데 반영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안에서의 거룩함과 관련하여, 2:6, 19, 12:1, 64:6, 17:10, 3:9, 3:3-4 등 성경 전반에서 적절한 해석을 따라서 인용을 하며, 그것을 설교의 본문에 용해하여 자신의 설교 요점을 보강하고 있다. 말하자면 앞서 말한 교리설교의 준비로서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과제들을 잘 이행을 하였음을 알게 한다.

 

채플은 또한 자신이 본문에서 만나고 있는 교리를 충분히 다룰 만한 조직신학적 이해를 잘 갖추고 있다. 그는 갈 2:20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개혁신학의 구원론에 있어서 핵심적 개념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이와 맞물려 칭의와 성화의 상관적 관계도 빈틈이 없이 훌륭하게 정리하고 있다. 특별히 성화에 있어서 점진적인 측면과 확정적인 측면이 있음을 구별하여 잘 제시하고 있다.

 

설교 전반에 걸쳐서 이해의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율법의 기능과 관련하여 채플은 훌륭한 개요를 제시한다. 이러한 신학의 탄탄한 기반 위에서 채플은 그리스도인이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는 거룩한 삶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누리는 은혜로 인한 것임을 바르게 밝힌다.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와 함께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사는 은혜가 새 생명으로 살아가는 성화의 동력이며 근원이고 또한 그 실상임을 풀어내고 있다. 이러한 관찰은 채플은 교리설교를 위한 세 번째 준비과제를 잘 갖추고 있음을 엿보게 한다.

 

이제 마지막으로 적실성의 문제이다. 과연 채플은 이러한 설교를 통해 회중들로 하여금 사변적이지 않으며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이 되는 교훈을 전해줄 수 있었을까? 설교가로서의 채플의 뛰어남은 이 점에서 남다르다. 그는 설교를 통해 답을 주고자 하는 교리의 문제에 봉착한 한 사람의 영적 상황을 인용하면서 설교를 시작한다. 충분히 회중의 관심을 집중시킬만한 도입이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과의 연합,’ ‘그리스도의 삶과의 연합.’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세 주제들에 꼭 들어맞는 탁월한 예화와 자기 자신의 간증을 적절한 자리에서 제시를 한다. 채플은 이것들을 통하여 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우며, 또한 이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신앙과 삶에 있어서 얼마나 실존적인 문제인가를 깨달아 적용의 교훈을 받아가도록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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