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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간단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그러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갖추어야할 자격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자가 되려면
첫째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한다고 합니다(마 16:24).
둘째는 자기의 목숨까지도 버려야 합니다(눅 14:26).
셋째는 말씀 안에 살아야 합니다(요 8:31)
넷째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요 13:35)
다섯째는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요 15:8)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이렇게 갖추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그래서 제자가 되는 길이 험난하고 어려운 길입니다. 주님의 제자는 공부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회의 직분자가 되는 것, 즉 집사가 되는 것, 권사가 되는 것, 장로가 되는 것도 과정이 필요합니다. 성경에서 집사는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된 사람을 세웠습니다. 왜냐하면 직분은 감투나 계급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능이나 실력이 있다고 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을 위해 훈련을 받은 사람이 많아야 교회가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왜? 교회에는 하나님의 일꾼이 많이 있어야 합니까? 교회는 일하지 않으면 생명력을 잃습니다. 일하지 않는 교회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지 못합니다.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도 필요가 없고 이 세상에도 아무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골로새서 1:24-25절입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어떤 괴로움도 어떤 고난도 교회를 위하여 감당하고 맡겨주신 직분으로 알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으로 만족하며 구원의 감격이나 은혜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됩니다. 힘들고 부담스러운 것이 찾아와도 포기하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모든 것을 넉넉히 이기는 예람의 공동체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일꾼이 절실히 필요한 교회입니다. 현재의 일꾼 수보다 더 많이 준비되고 훈련되고 소명에 불타는 일꾼이 많아져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소원이기 전에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교회의 일꾼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교회의 일꾼으로서 훈련이 합니다. 훈련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실전입니다. 즉, 행함이 있는 훈련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행함에 대한 믿음을 말하면서 아주 극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야고보서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 2:20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야고보서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행함에 의하여 믿음의 죽고 사는 것이 결정됩니다. 우리가 교회의 일을 하고 주님의일에 헌신하려고 할 때, 과연 내 믿음이 어느 정도 행함으로 나타나고 있는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것을 통해 나의 믿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전도, 섬김, 대접, 나눔, 헌신, 희생, 드림, 예배 등등, 모두가 행함으로 판가름 나는 믿음의 행동들입니다. 그러나 행함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행함을 말한다면 그것은 사랑의 행함일 것입니다.
교회에서 그리고 성도들의 믿음 생활에서 가장 약한 것이 이것입니다. 말씀, 기도, 은혜, 축복에 대해서는 많은 훈련을 받았지만 사랑에 대해 훈련을 받은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기에 사랑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자들이나 모든 성도들이 끊임없이 고백하고 표현하고 응답해야 할 부분이 바로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의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사랑인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행동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나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15-17절)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인간의 몸을 입으로시고 이 땅에 내려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기 위해서입니다(요3:16).
사랑한다는 것은 미워하는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미움은 살인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에 미움이 시작되면 결국 살인까지 가게 됩니다. 미워하는 하는 마음이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도와주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7절입니다.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합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진정한 사랑은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 인줄로 믿습니다.
2. 진실한 행동으로 실천하라(18-20절)
무엇을 하든지 사람에게 제일 어려운 것은 진실한 행동입니다. 거짓, 위선, 가식적인 것은 자기도 모르게 쉽게 하게 됩니다. 그러나 진실, 순결, 깨끗함으로 행동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인간적인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과 혀로는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실천하는 것이나 진실함에 있어서는 많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단순한 감정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람들이 사랑이 없는 것처럼 느끼고 그들이 사랑을 못 느끼는 것입니까? 진실함이 빠져있기 때문입니다. 진실한 사랑은 누구든지 알 수 있습니다. 진실한 사랑을 하면 사람을 녹입니다. 치료해 줍니다. 일어서게 합니다. 마음을 움직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거짓이 없는 진실한 사랑이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주고 그들을 변화되게 하시고 따르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예람교회는 말과 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사랑을 실천하는 성도가 되어야합니다.
일상적인 말로 하지 말고, 가볍게 혀로 하지 말고, 진정한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심정으로 진리 안에서 진실한 사랑이 나를 통하여 넘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라(22-24절)
사랑은 단순히 믿는 것이 아니라 계명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한다는 것은 당연히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계명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사랑하지 않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10계명은 이스라엘의 언약 백성들이 지켜야할 율법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그 10가지의 계명들을 두 가지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마가복음 12:29-31절입니다.
즉,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지키도록 하신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전심을 다해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진정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0:25-37절까지에서 실천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바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강도만난 이웃 사람의 이야기 가운데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앞의 두 사람은 그냥 지나쳐갔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만이 강도만난 이웃을 향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행동을 했습니다. 첫째는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33). 둘째는 그를 싸매고 돌보아 주었습니다(34). 셋째는 그에게 넉넉한 마음을 배려하는 마음을 베풀었습니다(35).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는 언제나 들어도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동적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사에게도 묻고 오늘 우리들에게 묻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는가?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신 말씀이 “너도 이와 같이 하라. ”이것은 엄청난 사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들이 했던 모습인 ‘피하여’(31, 32)가 아니라 너희는 ‘싸매고 돌보고 베풀어 주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에 필요한 사람은 여기에 나오는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닙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필요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사랑이 넘치는 제사장, 사랑이 넘치는 레위인이 있다면 너무나 소중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들처럼 종교적인 매너리즘에 빠지면 사랑을 베풀 때에 피하게 되는 습관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교회에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라 사마리아인과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순수한 예수님이 베푸시는 자비의 사랑을 가지고 이웃을 이해하고 불쌍히 여기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몸이 아픈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이제부터는 종교지도자가 되려는 마음을 버리고 사랑을 전하는 자가 되려고 힘쓰시기를 축원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교회의 일을 하는 것은 종교의 힘이 아니라 사랑의 힘입니다.
그래서 본문 24절에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주 안에 거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성령 안에 거하는 사람 인줄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우리에게 주신 이유는 축복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싫고 어려운 순종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축복으로 받아들으면 사랑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은 행위입니다. 사랑은 실천입니다. 사랑은 오늘 해야 될 삶입니다. 사랑을 한다는 것이 말과 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진실하게 바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랑은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행동하는 사랑이란,
첫째,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둘째, 진실한 행함으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금년 남은 기간들을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몸같이 사랑하여 아름다운 덕을 나타내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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