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교회 생활을 1년 이상 하신 분이라면 한 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좀 더 잘하고 싶은 갈망이 다 있습니다. 기도도 좀 잘 하고 싶고, 봉사도 좀 더 잘 하고 싶고, 전도로 좀 더 잘하고 싶습니다. 예배의 각종 모임과 봉사하는 모임이 다 참석하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일까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만큼만 하면 신앙생활 잘 하는 것일까요? 부담이 되지 않는 만큼 신앙생활 하면 잘 하는 것일까요? 시험들지 않을 만큼 거리를 유지하면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일까요?
에베소서 4장 12절은 신앙생활의 잘 하는 비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성도를 온전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장 13절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즉 신앙생활의 목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이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사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반드시 봉사의 일을 해야 합니다. 봉사란 주님과 교회외 이웃을 섬기는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래해도 말씀을 듣고 봉사하지 않으면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말씀을 듣고 배울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봉사를 통해서 자신이 받은 은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표현할 때 신앙생활의 근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해서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 성도들 간에 반드시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16절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성도들은 사랑과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결코 혼자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어야 신앙생활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1. 사정을 진실하게 생각하는 것이 최고의 봉사입니다.
오늘 본문 19-20절입니다. “내가 디모데를 속히 너희에게 보내기를 주 안에서 바람은 너희의 사정을 앎으로 안위를 받으려 함이니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 밖에 내게 없음이라.”헬라어 원문에는“나도”라는 주어가 명기되어 있습니다. 즉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소식을 들음으로 위로와 격려를 받아야 했습니다. 바울도 빌립보 교회의 소식을 들음으로 위로를 받기를 원했습니다.
디모데는 어머니 유니게와 외할머니 로이스의 신앙교육으로 신앙의 명가에서 성장하였습니다. 바울의 제2차 선교 여행 때에 바울의 제자가 되고 선교의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김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복음 사역의 도움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디모데는 철저한 신앙훈련을 통해서 바울과 뜻을 같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이 평소에는 협력을 잘 할 것 같은데, 사실은 마음이 맞지 않아서 곤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과 디모데에게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에 관련된 일에 대해서 염려해 줄 정도로 관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고 바울에게 위로와 격려를 전해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이렇게 중요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던 노하우가 무엇일까요? 본문 20절입니다. “이는 뜻을 같이하여 너희 사정을 진실히 생각할 자가 이밖에 내게 없음이라.”디모데가 빌립보에 가서 무슨 결정을 내리든지 그것은 바울의 결정과 같은 것이 되었습니다. 중간에서 쌍방 간에 서로에게 위로와 격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본문 28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그를 보낸 것은 너희로 그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면 내 근심도 덜려 하려 함이라.” 에바브로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하고 기쁨을 안겨 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에게도 근심을 덜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의 봉사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위로와 기쁨을 안겨 주고 근심을 덜어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남에게 대해 피상적인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것은 자신의 사정을 진실하게 헤아려 주는 사람입니다. 신자는 주님의 사정을 진실하게 생각하는 훈련이 되어 있습니다. 주의 종의 사정을 깊이 헤아리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문제를 나 자신의 문제같이 생각하고 공감하는 사람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 상태에 대해 나 자신의 상태만큼 관심을 갖고 기도해 주는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최고의 봉사입니다.
본문 21절입니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
디모데는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않고 에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소유나 명예나 성공이나 자기 계획이나 자기 가족을 첫째로 삼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을 삶의 최고의 우선순위를 두었습니다. 디모데는 사심없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일에만 관심이 있지만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디모데는 로마에서 빌립보 교회까지 피곤한 여행 일정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은 주님의 일을 하다가도 마음이 상하면 그만 둡니다. 자기에게 조금만 손해가 오고 힘이 들면 중도에 포기하려고 합니다. 과연 우리는 나의 일을 앞세우는 사람입니까? 그리스도의 일을 앞세우는 사람입니까?
3. 시련을 통과하는 것이 최고의 봉사입니다.
그리스도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 사람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 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 자식이 아버지에게 함같이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였노라.”바울이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에 보내기 원하는 이유는 그가 여러 가지 면에서 충분히 준비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는 여러 가지 시험을 잘 견뎠고, 인격이 검증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 평소에는 참 괜찮은 사람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을 겪어 봐야 진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시련과 고통과 역경 가운데서 연단을 받아서 인격이 검증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바울은 디모데가 자신의 복음 사역을 위하여 마치 자식이 아버지에게 섬기듯이 그렇게 잘 섬겨왔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또한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스도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과 동역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성격과 일하는 스타일 때문에 인간적으로 보면 많이 힘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있는데 반해, 디모데는 소극적이고 신중형이었습니다. 바울은 주도적이고 정열적이었는데 반해, 디모데는 협조형이고 자제형입니다. 많은 사람이 누구를 도와서 일하는 것보다 자신이 혼자 일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에도 자기의 생각과 계획을 따라서 자기 혼자서 일하기를 원합니다. 디모데는 이러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과 환상적인 조화를 통해서 복음의 진보를 이루었습니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 얼마나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서 일 할 수 있는가 하는 능력입니다.
디모데는 복음을 위해서 세대 차이를 극복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사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아무리 그 사람의 능력이 있다 해도 자기 일을 앞세우는 사람은 위험합니다. 자기를 위하는 마음, 자기를 알아 달라는 마음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모데의 훈련 과정을 통해서 디모데의 사람됨과 진실함을 확인했습니다. 사람을 알아 보려면 세 가지를 보면 안다고 합니다. 돈을 쥐서 어떻게 쓰는 가를 살피면 안다고 합니다. 칭찬해서 겸손한지 교만한지 그 반응을 살피면 안다고 합니다. 그리고 책망하여 반응이 어떤지 보면 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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