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창세기의 결혼으로 시작해서 계시록의 결혼으로 끝난다.
1장에서 결혼이란 두 가지 기본적인 사상, 곧 결혼이란 창조주께서 친히 만드신 제도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되비쳐 보여주는 거울이다.
복음은 결혼의 본질을 깨닫도록 이끌어주며, 결혼은 복음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제 1부 결혼은 현실이다
결혼하면 불행해질 것 같다
결혼에 대한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으라(엡 5:31-32)
코미디언 크리스록이 던진 질문이다. 싱글로 외롭게 사실래요? 아니면 결혼해서 지겹게 사실래요?
이제는 25세부터 39세 사이에 결혼하지 않은 여성 가운데 1/4 이상 이성 파트너와 함께 살고 있으며, 그 가운데 60%정도는 30대 후반부터 그런 생활을 시작한다. 몇 가지 믿음들 때문이다.
우선 결혼생활은 십중팔구 불행하다는 편견이다.
실제로는 혼전동거 커플들은 결혼한 뒤에 결별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커플보다 더 높다.
많은 젊은이들이 결혼 전 동거를 선택하는 데는 경제적인 이유도 크다.
성경은 딱 맞는 짝을 만난 결혼하겠다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이라는 이유를 들려준다. 결혼은 한 인간을 또 다른 인간과 밀접하게 묶어주는 것이다. 누군가와 결혼하는 순간 당사자는 물론이고 배우자 또한 엄청난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신은 죽었다는 말을 앞세워 위대한 신앙공동체의 세계관을 간과하는 순간, 인간이 주님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사랑하는 상대를 하나님의 지위로 격상하면서 사람들은 결국 무엇을 기대하는 걸까? 바로 구원이다. 다른 것이 아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첫 번째 결혼을 설계하실 당시부터 이미 그리스도와 교회를 염두에 두셨다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와 사함 받은 주님의 백성 사이의 영원한 관계를 구현해 내는 것이야말로 결혼의 가장 큰 목적 가운데 하나다.
스스로의 관심사를 포기하고 가족의 유익을 추구하는 것이 결혼의 목적인가? 아니면 혼인을 자아실현의 디딤돌로 삼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성취와 희생 사이에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희생을 통해 상호 성취하는 길을 따르라고 말한다.
이 책의 메시지는 결혼이 복음의 신비를 드러낸다는 그 사실에서 출발한다. 결혼은 복음을 통해 심령이 속속들이 세워지며 바닥을 헤매던 삶이 다시 일어서게 되는 주요한 수단이다.
2.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기중심성과 맞서라
이런 남편, 아내와 정말 살고 싶지 않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21).
성령님의 권능으로 남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만 결혼생활이라는 난제에 맞설 힘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는 스스로가 아니라 상대방을 위해 살아가라는 것이다. 부부는 반드시 배우자를 섬겨야 하며 기꺼이 스스로의 유익을 포기해야 한다.
어느 편의 뜻을 따르고 누가 포기할 것인가?
이때 세 갈래의 선택이 있다. 기꺼이 상대를 섬기는 것, 원망스럽고 서운한 마음으로 기분을 맞춰 주는 것,
자신의 입장을 내세우며 뜻을 굽히지 않는 것.
결혼생활을 하면서 종의 마음을 가지고 서로를 섬기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죄에서 비롯된 지독한 자기중심성이다.
상처 받은 이들에게 맞는 처방은 무조건 지지해주고, 자기 삶을 남의 손에 맡기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라고 권면하며, 맞는 꿈을 찾아서 차근차근 이뤄가라고 다독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자기중심성이 어떤 식으로든 학대의 선물이라고 가정한다.
기독교적 접근 방식은 전혀 다른 상황에서 출발한다. 심각한 상처를 받은 인간일지라도 자신에게 몰입하는 성품을 낳은 원인이 학대가 아니라 스스로 생겨서 확장된 성향일 따름이라고 믿는다.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이 아니라 자기만을 위해 사는 것을 죄의 중심이라고 지적한다.
처음에는 상대가 아주 멋지게 보이지만 한두 해가 지나면 일반적으로 세 가지 증상이 나타난다.
가장 먼저는 근사한 파트너가 얼마나 이기적인지 깨닫게 된다.
다음에는 그 훌륭한 인간도 비슷한 경험을 해왔으며 이편을 가리켜 이기적인 말을 입에 담기 시작한다.
마지막으로 저도 모르는 사이에 배우자의 이기심이 자신의 것보다 더 문제가 된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최소한 두 가지 길을 택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이 받은 상처를 앞세우고 배우자가 이편의 문제를 알아서 보살펴 주지 않는 한 절대로 마음을 풀지 않겠다고 정하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그렇게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서로를 자극하는 이러저러한 문제는 건드리지 말라는 묵시적인 합의가 이뤄진다. 선을 넘으면 즉각 응징하겠다는 식의 계약만 있을 뿐이다.
만약 남편과 아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자신의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상대방을 돌보는 데 힘을 기울인다면 보다 풍성하고 근사한 부분관계를 가꿀 수 있을 것이다.
보수적인 결혼관은 전통적인 성 역할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자연스럽게 남편과 아내의 차이를 강조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특히 남편 쪽의 자기중심주의를 부추길 가능성이 높다.
반면 세속주의 결혼관은 배우자에게 이쪽의 잠재력을 알리고 최대한 개발하도록 돕게 하는 것이 부부관계의 가장 큰 목표는 자아실현에 있다. 부부생활에 적용해야 할 기독교적인 원리는 성령님의 역사에 기대어 자기를 부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을 덜 또는 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부족한 존재로 여긴다는 의미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깊은 이들은 방향을 돌이켜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가짐이 문제의 핵심임을 받아들이고 해결할 길을 찾는다.
주님을 경외한다는 말의 참뜻은 관계와 연관이 있다. 주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그 사랑의 크기에 눌려 숨이 막힌다는 뜻이 된다. 결국 성령으로 충만하다는 것과 주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같은 뜻이다. 두 가지는 모두 자신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제 2부 결혼은 성장이다
사랑하는 데 꼭 혼인신고가 필요하다
3. 서로를 책임지겠다는 공개적인 약속이다(엡 5:31, 창 2:24)
성경은 사랑에 관해 이야기 할 때 얼마나 많이 받고자 하는가가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많이 줄 수 있는가를 먼저 따진다.
현대 문화 속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믿음은 로맨틱한 사랑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현대문화와는 판이하게 자신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이 결혼의 핵심이라고 가르친다.
성경은 개인도 가족도 아닌 하나님을 최고의 선으로 보고 감정과 의무, 열정과 약속이 단단히 결합된 결혼관을 제시한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 개념의 중심에는 언약이 자리 잡고 있다. 성경은 사랑이 온전히 사람다우려면 구속력이 있는 의무로 틀을 잡아 주어야 한다. 구속력을 가진 언약 관계 속으로 자신해서 들어간다는 것은 사랑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깊게 심지어 넘치도록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실한 사랑은 본질적으로 영속성을 염원한다. 결혼서약은 현재 사랑하고 있음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장래의 사랑을 염두에 두고 함께 나누는 상호간의 구속력을 갖는 약속이다. 부부가 오랜 시간을 함께 하며 밑바닥까지 다 들여다보고 장점과 결함을 속속들이 알게 된 뒤에도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면 더 바랄 것이 없는 축복받는 결혼 생활이 될 것이다.
뜨거운 열정은 결혼을 약속하게 했지만 잔잔한 애정은 갈수록 그 약속이 더 풍성하고 깊어지도록 해준다.
키에르케고르는 세상에는 세 가지(심미적, 윤리적, 신앙적) 실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심미적으로 태어나지만 스스로 선택한 방향에 따라 윤리적이거나 신앙적이 된다는 것이다. 심미적이란 선악을 묻지 않고 재미만 따지는 인생이다. 심미적 삶에는 매력적인지, 스릴이 넘치는지, 흥분되고 즐거운지의 여부가 유일한 판단 기준이 된다.
사실 결혼한 부부가 서로 사랑하게 되는 요인은 약속에 대한 헌신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령이며 감정은 명령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하기 위해서 반드시 감정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은 그릇된 생각이다.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사랑스럽게 만드시려고 우리를 사랑하신 거야 배우자를 사랑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4.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한 몸 되는 것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결혼했다(엡 5:25-27)
지금부터는 결혼이 무엇을 위한 것인가에 대해 물을 차례다. 결혼의 목적은 무엇일까?
이에 대한 성경의 답은 결혼이 곧 우정이라는 원리에서 출발한다. 우정이란 무엇인가? 친구의 으뜸가는 자질은 한결같음이다. 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잠 17:17). 참다운 친구의 두가지 특성은 향상성과 투명성이다.
우정에는 세 번째 특성이 있다. 같은 감정, 공감
두 사람이 서로 마주 보는 일이 에로틱한 사랑이라면, 우정은 둘이 나란히 서로 같은 대상을 바라보며 자극을 받고 황홀해 하는 것이다. 신약으로 들어가면 우정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새로운 겹이 더해진다. 우정은 오로지 동일한 비전과 열정을 공유할 때만 가능하다.
또 다른 길은 영적인 향상성이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서로 영적인 짐을 나눠지고 있다(갈 6:2). 우정이란 서로 사랑을 고백하는 두 사람이 같은 목표를 향해 나가는 가운데 차침 깊어가는 하나 됨을 가리킨다.
그러면 결혼의 목적은 무엇인가? 서로 도와 장차 영광스러운 자아, 곧 하나님이 마침내 이루실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다. 남편과 아내가 함께 바라볼 목표는 하나님 나라의 보좌, 그리고 장차 얻게 될 티도 흠도 없는 거룩한 인성이다.
배우자를 근사한 대리석 덩어리로 여겨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들 완성된 조각상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처럼 멋진 다윗 상을 만들 수 있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미켈란젤로는 유명한 대답을 내놓았다. 대리석을 잘 뜯어보고 다윗답지 않은 부분을 떼어냈을 따름이다.“
결혼 상대를 찾을 때는 반드시 서로의 내면을 볼 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인식하고 새사람이 드러나게 하는 과정에서 동참하는 감격이 있어야 한다.
부부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힘은 배우자를 거룩하게 하고자 하는 헌신에서 나온다. 파트너가 지닌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추구하는 열정에 대한 헌신이다. 이것이 배우자의 역할이다.
성경은 부부들에게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사랑의 방식과 특징들뿐만 아니라 그 목표를 본받으라고 말한다. 분명한 사실은 아내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만 나보다 상대의 요구를 우선 채울 수 있다.
좋은 엄마가 되는 최선의 방법은 남편에게 좋은 아내가 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주님을 결혼생활의 중심에 두라. 결혼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열쇠는 영적인 우정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고 섬기고 사랑하고 닮아 가도록 온 마음을 다해 서로 돕는다.
5. 진실한 사랑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콩깍지가 벗겨졌어도 계속 살아야 하나(엡 5:25-26)
세상만사가 대부분 그렇듯, 결혼도 일단 시작하고 나면 더 이상 전에 알던 그 사람이 아닌 법이다. 중요한 것은 더불어 살게 된 낯선 상대를 사랑하고 보살피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서로의 문제점이 눈에 들어올 대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가, 아니면 힘을 모아 해결하려는 소망을 가지게 되는가?
결혼은 두 인간의 삶을 통합시키고 최대한 긴밀하게 연결시켜 주므로 배우자의 긍정적인 평가는 최고의 신뢰도를 갖게 해준다.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에 나오는 샘 갬지의 말마따나 “칭송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이의 칭찬은 최고의 상급이다.”
결혼은 온갖 상처를 치유하고 저마다 지난 남다른 아름다움과 가치를 확신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다. 이는 세상의 어떤 인간관계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능력이다.
6. 다름의 복을 누리라
우리 부부 달라도 너무 다르다(엡 5:22-23)
남성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시키면서 성숙하는 반면, 여성은 다른 사람들과 결함하면서 무르익는다는 것이다.
보편적으로 남성은 독립을 추구하는 특성, 곧 내보내는 자질을 가지고 있어서 밖을 내다보고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보편적으로 여성들은 상호의존적인 특성, 받아들이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
성경적인 관점에서 결혼은 남성과 여성의 격차를 해결하고 이성간의 차이를 넘어 온전히 서로를 끌어안게 한다.
성별이 다른 두 인간이 그 다름을 끌어 앉고 서로 헌신하며 희생하다 보면 때로는 아프고 번거롭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가 성장하고 성숙해지는 가장 유익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제 3부 결혼은 하나 됨이다
7. 하나님과 하나 되는 싱글은 아름답다
독신은 잘못된 선택인가?(고전 7:8)
기독교는 다른 종교나 세계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호하게 독신의 유익을 인정한다.
기독교는 하나님 나라가 영원한 유산과 상속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독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가장 깊은 갈망을 채워 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독신을 선한 일로 파악한다.
궁극적으로 결혼대상자는 가치관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성품이나 소명, 미래상이나 가치관 같은 것이 바로 평생
자신의 짝이 될 이에게서 찾아야 할 포괄적인 매력이다.
너무 빨리 달아오르지 않도록 주의하라. 콩깍지 단계가 지나갔는지 여부는 몇 가지 질문만으로 분별할 수 있다.
첨예한 갈등을 몇 차례 겪고 해결해 본 적이 있는가?
공동체의 권면을 대폭 받아들여서 충실히 따르라.
8. 성생활은 결혼의 언약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다
왜 잠자리는 부부끼리만 해야 하나?(엡 5:31)
역사적으로 보면 성에 대한 다양한 태도가 있어 왔다. 우선 성행위를 자연스러운 욕구로 보는 시각이다. 또 다른 시각은
부정적인데 고상하고 이성적이며 영적인 인간의 본질과는 달리 성이 낮은 수준의 육체적인 성격을 지닌다고 보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세 번째 관점이 지배적이다. 앞의 두 입장이 성교를 불가피한 욕구나 필요악으로 본다면, 이번에는 결정적인
형태의 자기 표현, 자아를 실현하거나 발견하는 수단으로 인식한다. 성교의 일차적인 목적은 개인적인 성취나 자아실현이다. 성교는 우리 몸뿐 아니라 마음, 곧 속사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의 성 윤리는 “섹스는 결혼의 울타리 안에서 남성과 여성 사이에 사용하도록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은 결혼 관계 속에서 섹스를 허락하셨을 뿐 아니라 강력하게 명령하셨다(고전 7:3-5).
성 관계는 언약을 새롭게 하는 행위다. 연합하여 한 육체가 된다(엡 5장, 창 2:24). 자신을 내어 주는 헌신의 관계다.
그리스도의 연합을 암시하는 예표다. 결혼의 울타리 안에서만 성을 누리라(잠 5:19, 고전 7:3-5).하
나가 되는 경외감으로 충분하다. 먼저 친밀감을 향상시키라.
에필로그
사랑이라는 결혼을 떠받치도록 하라(요일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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