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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광야에서 시작된 복음(막 1:1-13),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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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은 여러 복음서 중에 가장 뉴스 속보에 가까운 복음서입니다. 유대인들을 위해서는 마태가 마태복음을 기록했고, 헬라인들을 위해서는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로마인을 위해 마가가 마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마가는 베드로의 통력관으로서 로마에서 베드로를 따라 다니면서 베드로의 설교를 통력했습니다. 마가복음은 실제로 베드로의 예수님에 대한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은 거위 이야기 중심으로 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아들 복음의 시작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오셨다는 사건은 너무나도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그냥 방문하고 가신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무엇인가 중요한 일을 하고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결정적으로 확인하게 된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들이 실제로 만났던 하나님의 아들은 너무나도 겸손하셨고, 사랑이 충만햇으며 인간의 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진 분이셨습니다. 인간이 죄에서 놓여날 수 있고 하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인간의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2. 광야에서 시작된 복음

 

복음이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광야였습니다. 복음의 진앙은 로마의 수도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의 아테네도 아니였습니다. 심지어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도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광야에서 셰례요한과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하나님의 복음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는 특별한 의미를 가진 곳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한 후에 그들이 찾아간 곳은 광야였습니다.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라”(8:3).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처음으로 하신 복된 말씀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광야는 철저하게 사람들로부터 소외된 곳입니다. 광야에서 인간의 마음은 가난해질 수 있고, 거기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이스라엘 자손을 광야로 부르셨습니다. 그 광야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어렵고 물잘적으로 긍핍한 바로 그곳입니다. 우리는 거기서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예전에는 왕이 행차하긴 전에 먼저 사신이 갔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사신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언덕 위에 한 사람을 세워 놓아 거기로 오는 모든 사람에게 소리를 질러 길을 안내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고 첩경을 만드는 자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광야로 몰아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 광야는 출세의 길도 없고 성공의 길도 없고 부자의 길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끝없는 불모지만 계속되는 곳입니다. 여기서 우리 인생은 실패한 것 같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한 기간은 완전히 시간을 낭비한 시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느 한순간 길을 찾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그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으면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첩경이 생기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막 1:4-6). 세례요한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상당한 시간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만 가지고 살았습니다. 처음에는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니라.”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바뀌었던 것 같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가 되었습니다. 현대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광야로 나가야 합니다. 거기서 살아있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다. 인간의 위로나 정을 잡으면 안됩니다. 오직 능력의 말씀을 붙잡을 때 거기서 길을 찾게 됩니다.

 

3.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분

 

세례요한 사람들에게 두 가지를 증거했습니다. 하나는 죄를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에게 죄를 자복하고 세레를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세례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자복하고 세례받을 때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1:7-8).

 

세례요한이 했던 엄청난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죄를 자복하면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우리 모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세례는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성령은 불같이 임하셔서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녹이고 우리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시는 일을 합니다. 성령세례는 단순한 도덕적 결단이나 각오가 아닙니다. 우리 속에 있는 속사람이 진정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음으로 죄의 사술은 끊어지고 능력이 종이 됩니다. 우리 속에는 죄로 인한 답답함과 고통이 있습니다. 성령은 이 고통을 깨끗하게 치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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