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왜 캐나다 이민을 꿈꾸는가?
얼마 전 인터넷 홈쇼핑에서 캐나다 이민 상품이 대박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 이민 상품은 캐나다에 대한 정확한 정보나 지식도 없이 만들어진 근거 없는 것이었다. 그 홈쇼핑에서 내놓은 상품은 마니토바 주 이민이었는데, 마니토바 주는 이민자들을 그렇게 많이 수용할 수 있는 일자리도 없는 주이다. 하지만 그 상품에 수만 명이나 몰렸고, 그 이민을 상품화한 회사는 엄청난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그런데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왜 하필 캐나다의 인기가 높은 것일까? 우리가 흔히 캐나다 하면 흔히 떠올리는 것은 자연환경, 사회보장제도, 자녀교육, 여유로운 생활 등일 것이다. 물론 캐나다 이민 생활에서도 문제가 생길 수 있고, 캐나다를 바로 보지 못한 데서 오해가 생길 수도 있다. 이에 관해서는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먼저 내 경험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다.
우선 캐나다의 자연환경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나는 유학 초기에 토론토 다운타운 한복판인 휴론에 있는 예수회 공동체 기숙사에서 몇 달 신세를 진 적이 있다. 내가 묵고 있는 그 기숙사의 옥탑방에는 발코니가 하나 딸려 있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그곳 발코니에서는 매우 맑은 공기의 향기를 느꼈다.
대도시인 토론토의 공기가 그렇게 맑을 수 있었던 것은 토론토가 온타리오 호수를 끼고 있어, 엄청난 크기의 호수가 지닌 정화능력이 있고, 시에서는 정책적으로 녹지나 습지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해에 관한 정책에도 예민해서 어느 차라도 1년에 한 번 배기가스 테스트를 반드시 받아서 번호판에 붙이고 다녀야 한다. 그리고 토론토 시내는 숲 속에 건물을 몇 개 던져놓은 듯 숲이 울창하다. 도심 한복판에는 토끼나 여우, 청설모, 새 등을 쉽게 볼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서울에 비교하면 훌륭한 도시 환경인데도 때로는 이 평화로운 토론토를 떠나서 한적한 곳으로 이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보았다. 그리고 토론토를 떠난 사람들 중에 간혹 토론토를 다녀가면 복잡하고 정신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만큼 그들은 환경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캐나다에서는 자연을 개발하지 않고 녹지 그대로 둔 공간을 참으로 많이 볼 수 있으며, 보존을 위한 인위적인 노력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교육제도
자녀 하나 대학 보내기 위해 한국의 부모들이 힘겨운 투자를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캐나다는 거의 천국 수준이다. 캐나다에서는 아이를 출산하면 우유 값, 이유식 비용을 비롯하여 정부 보조금이 나온다. 학교에 들어가면 학비는 물론 교육 지원비가 나온다. 정부에서 교육비를 모두 마련해주므로 어려서부터 대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부모가 사교육에 대한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만 않는다면 자녀에 들어가는 비용은 먹히고 입히는 데만 들어간다. 그리고 대부분의 캐나다 사람들은 아이들이 대학을 가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긴다. 캐나다에서는 성인이 되면 스스로 벌어서 학비와 생활비는 대는 것이 미덕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정부의 혜택을 받고 고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을 한다면, 부모가 자녀들 때문에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낄 이유가 없고, 돈을 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된다.
자녀들의 교육비 부담만 덜어도 이민자들에게는 편안한 삶이 될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실제로 교육비 부담을 정부에서 거의 맡고 있다. 나는 캐나다에서 미국에 비하면 반 정도밖에 안 되는 비용으로 유학을 했지만 영주권자나 시민권자의 대학교 등록금은 유학생들에 비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저렴했다. 또한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들은 정부로부터 등록금을 전액 무이자로 융자받을 수 있다.
제2장 캐나다는 어떤 나라인가?
캐나다는 사회주의 국가다
어느 날 자동차 엔진오일을 교체하기 위해 정비공장을 찾았다가 그곳에서 기름때를 묻히면서 일하는 정비공이 한국에서
한국제합동법률변호사사무소에 다니는 한 변호사의 연봉과 거의 같은 수준의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이유를 물어보자 나는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 “자격증이 있으면서 힘들고 지저분한 일을 하잖소.”
나는 인간의 노력이 존중받고, 그만큼 대가가 돌아오는 캐나다 사회를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내 차의 엔진오일을 갈아준 그 정비공이 그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면 세금은 아마 45% 이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에서는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많이 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캐나다식 사회주의의 일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사회주의라고 하면 제일 먼저 사회복지를 연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재화의 분배이다. 캐나다가 재화를 분배하는 원칙은 돈 많이 버는 사람에게는 많이 거두고 적게 버는 사람에게는 적게 거두어 재분배하는 데 있다. 가장 기본적으로 내는 세금은 주세, 연방세를 합쳐서 소득의 15%이다. 하지만 최고로 70%까지 내는 사람들이 있다. 캐나다에서는 직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꾸준히 세금을 내왔다면 직장을 잃거나 이직을 위해 잠시 쉬고 있더라도 정부에서는 그 사람 수입의 70%까지 지원해준다. 캐나다에서는 세금 내기 아까워하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탈세를 한 사람이라면 세금을 적게 냈을 테니 당연히 정부 지원금이 적어질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캐나다 사람들은 정부가 자신의 미래를 책임져줄 것이라는 신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적어서 융자 통장을 몇 개나 가지고 있어도 아무도 걱정 안 한다. 미래는 그 나라 정부에 맡기고 그날그날 벌어서 그때그때 쓰고 남으면 저축하고 안 남더라도 세금만이라도 꼬박꼬박 낸다고 한다. 세금을 안 내면 미래도 불분명해지지만 세금을 내기만 하면 미래가 투명해지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내는 세금은 대부분 직접세이기 때문에 자신이 세금을 얼마나 내는지 분명히 의식하면서 세금을 낸다. 자신에 얼마나 세금을 내는지 잘 알 수 없는 간접세를 나는 캐나다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도 수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1년에 한 번 기간을 정하여 세금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하는데, 그 액수가 만만치 않다. 세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SIN(Social Insurance Number) 번호가 있어야 한다. 자신이 내는 세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의심스럽다거나 자신에게 혜택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고, 자신들이 어떤 혜택을 받는지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면 세금을 안 낼 이유가 없을 것이다. 캐나다는 이러한 것들이 비교적 투명하기 때문에 많은 세금 부과에도 큰 불만 없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 사회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있다
흔히 미국 이민을 용광로 방식에, 캐나다 이민을 모자이크 이민에 비유하곤 한다. 다시 말하면 미국은 이민자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나 문화 등이 존중되기보다는 미국 사회에 흡수되어 한 덩어리가 되게 하는 방식의 이민정책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캐나다는 다민족을 수용하면서도 각 민족의 고유함을 유지하며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추구하는 이민정책을 가지고 있다. 모자이크는 각각의 조각 하나가 다 소중하며 전체 그림 안에서 고유한 역할을 하게 된다. 몇 개의 조각만 없어도 모자이크의 전체 그림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양함을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캐나다만이 간직해온 고유한 영성이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그리고 캐나다는 적은 인구여서 방대한 국토와 경제활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인구가 부족하다. 캐나다는 노동력이 부족한 데서 생긴 문제를 대부분 이민으로 충당하고 있는데, 이민자들은 가톨릭 문화가 우세한 캐나다와는 다른 다양한 종교적 가치관을 가지고 이민을 온다. 뿐만 아니라 이민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보다는 자본주의 방식의 경제활동을 하다 온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을 존중하면서도 어떻게 그들을 캐나다의 영성에 융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결국 이민자들이 캐나다 문화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와 갈등들을 어떻게 풀어나가느냐 하는 것이 문제이다.
또한 캐나다 사람들은 이민자들에게 부정적인 것들을 배우기도 한다. 나는 우리나라 부모들의 촌지, 거칠고 난폭하며 틈만 나면 끼어드는 한국의 운전자들이 캐나다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우려를 들은 적이 있다. 캐나다 사람들의 영성은 더불어 살아가는 것인데,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로 삶의 방식이 변할 수도 있다. 혹시 내가 여태까지 손해만 보며 살아온 것이 아닐까 하고, 자신의 삶의 방식에 회의를 갖지 않을까 우려된다. 결국 캐나다가 본래 지니고 있었던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다양한 이민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 유지하고 발전시킬 것이며, 그들의 고유한 영성이 변질될 가능성들을 어떻게 차단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캐나다식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과제도 문제다. 사회주의 국가의 가장 큰 모순은 삶에 대한 적당한 긴장이 부족한 것이고, 그 때문에 사회 발전이 더딜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캐나다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맛을 본 젊은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자꾸 건너가는 추세다. 미국은 캐나다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세금이 적고 환율도 높기 때문에 돈을 얼마든지 모을 수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건너온 과거의 이민자들은 캐나다 사회주의를 쉽게 받아들이고 잘 적응하면서 사는 것 같지만, 최근에 이민을 오는 제2, 제3세계 국가들의 사람들은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찾아 캐나다로 이민을 온다. 대부분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제2, 제3세계 국가에서 살다 온 이민자들이 사회주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살아갈 수 있는지도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캐나다에 과제가 하나 더 있다면 계속되는 재정적자와 경기침체, 노동력과 고용 등의 가장 현실적인 문제이다. 캐나다의 전체 인구는 이제 겨우 3,000만 명을 넘었는데, 내수시장에 의해 자력경제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1억의 인구가 필요하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필요한 인구의 3분의 1도 미치지 못하는 인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렇다 할 사업체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은 캐나다로서는 수출로 인한 경기 활성화에 큰 기대를 걸기 힘든 것 같아 보인다. 설령 수출 사업체를 육성한다 하더라도 그 사업체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력도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출산을 늘일 수도 있고, 이민자들을 더 많이 수용할 형편도 없어 보인다. 이외에도 캐나다는 자력경제를 지향하고 있지만 풍부한 자원의 개발과 그것의 분배를 둘러싸고 각 주마다 의견의 차이를 보이고 있고,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가 심화되는 것도 앞으로 캐나다가 풀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캐나다 사회는 모든 것이 비교적 투명하다고 보고 있고, 정의와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문제들을 해결되리라 믿는다.
제3장 캐나다로 이민 가서는 안 될 사람, 가도 될 사람
사람의 사고방식이 멈춰 있어서는 곤란하다. 세월은 계속 흐르고 있어서 멈춰 있다는 것은 곧 퇴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민 온 뒤에도 변화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이민 생활이 만족스럽지 못하고 심한 경우 고통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의 삶의 방식을 캐나다에서 그대로 연장하는 것은 스스로를 질식시키는 일이다.
․사회주의를 이해할 마음이 없다면 캐나다 이민 가지 말라
미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편안한 나라다. 왜냐하면 우리나라가 근대화된 이후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미국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미국은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논리를 무의식적으로 교육하고 정당화해왔지만 캐나다는 약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한다. 미국화된 우리나라도 역시 미국의 자본주의 교육을 받아 그와 같이 생각해온 것이 사실이다. 미국식 자본주의 경제활동 방식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은 통장에 돈이 늘 있어야 마음이 편하고 든든하다. 반면에 캐나다 사회에서는 아무리 잘 벌어도 버는 만큼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돈을 모을 수가 없다. 그래서 한국의 이민자들이 돈을 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자신이 버는 것보다 세금을 덜 내는 방법밖에 없다. 그러나 그렇게 돈을 모아도 그 돈을 캐나다 안에서는 쓰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다못해 당장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싶어도 세금을 적게 냈다면 그만큼 수입도 적었을 텐데 어떻게 사업을 확장했는지에 대한 조사가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세금을 안 내고 돈을 모아봐야 부정적인 결과만 얻는데도 왜 돈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자녀교육 때문일 것이다. 미래의 안정적인 생활에 대한 보장도 없고, 그나마 있는 재산도 불의의 사고를 당하면 하루아침에 날려버릴 수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이다. 재산을 모아서 불안한 미래에 대처하지 않으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경제습관 때문에 캐나다에 와서도 돈을 모으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돈을 많이 모을 수 없는 캐나다라는 나라가 늘 불만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재산을 모으고 싶은 사람들은 캐나다로 절대 이민 가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비록 위험부담은 있지만 차라리 미국 이민을 권하고 싶다.
․한국식의 자녀교육을 원한다면 캐나다 이민 가지 말라
캐나다의 교육방식은 출세나 성공이 아닌 자아실현을 지향하고 있다. 따라서 자녀의 사교육을 포기하고, 자녀가 하고 싶어 하고 즐기는 것을 하면서 자아를 실현하도록 격려하는 방식으로 자녀들을 교육해야 한다. 게다가 인건비가 엄청난 캐나다에서 자녀들의 엄청난 사교육비를 마련하기도 힘들다. 그리고 캐나다에서는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모든 것을 다 제공해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한국의 부모들은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캐나다에서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이나 스스로 돈을 벌어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나 간혹 들고 다니는 휴대폰을, 한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자녀들에게 다 사줘야 하고, 나이가 들면 차도 사줘야 하고, 얼른 졸업해야 하니까 중간에 휴학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고, 등록금도 전부 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탈세를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돈을 모을 수 없는 나라인데 어떻게 돈을 모아서 그런 것들을 다 해줄 수 있단 말인가? 자녀교육을 이유로 돈을 벌려고 하면 재산을 많이 모을 수 없도록 되어 있는 캐나다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들겠는가? 캐나다에서 부모의 역할은 자녀들에 대한 재정지원이 아니라 가정교육뿐이다.
직업의 귀천을 따지려면 캐나다 이민 가지 말라
캐나다 이민자 중에는 의사, 변호사, 약사, 변리사, 회계사와 같은 전문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그러한 직업을 가지고도 캐나다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일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캐나다 사회의 현실이다. 그래서 몇몇 전문직 이민자들을 제외하고는 가게나 세탁소, 주유소, 음식점 같은 자영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외국어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업종이나 본토인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고용이 적은 캐나다에서는 그런 자리조차 많지 않아서 한국인들끼리 가게를 사고파는 것이 잦다. 그러나 캐나다에서는 무슨 일이든 가리지 않고 하면서 세금만 제대로 내기만 하면 나머지는 정부가 책임진다. 캐나다는 직업의 귀천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한 나라다. 따라서 한국에서 살 때의 사회적 지위를 생각하지 말고 비록 3D업종이라 하더라도 기꺼운 마음으로 일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캐나다 이민 생활은 지옥이 된다.
생활방식을 바꾸지 않으려면 캐나다 이민 가지 말라
한국에서의 생활방식을 바꿀 마음이 없으면 캐나다를 택하지 않는 것이 좋다. 한국에서 일하던 방식대로 여유 없이 일하고자 한다면 원래 이민의 목적과는 동떨어진 생활로 늘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다. 내가 살던 이사벨라 거리에는 24시간 영업을 하던 슈퍼가 있고, 그 슈퍼의 바로 맞은 편에는 인도 사람이 운영하는 아주 작은 가게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슈퍼가 들어서면 그 일대의 구멍가게는 모두 문을 닫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작은 가게의 주인은 5년이 넘은 지금도 바뀌지 않았고, 아직도 그럭저럭 가게가 잘되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분명 가게는 큰 슈퍼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 가게로 들어가는 것을 그렇게 자주 볼 수 없었다. 그리고 24시간 운영하는 것도 아니라서 문이 자주 닫혀 있었다. 나는 가게가 잘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았다. 우선 가게 주인은 돈을 많이 벌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집세 내고 밥 먹을 수 있으면 만족했으리라. 그는 세금만 충실히 내면 정부가 미래를 책임져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하다. 또한 캐나다 사람들은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슈퍼에 가다가도 가끔씩은 그런 작은 구멍가게도 이용해주기 때문에 굶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게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손님을 빼앗길 것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사업은 대부분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업종이기 때문에 도우미를 쓰거나 가게 문을 닫지 않으면 도저히 개인 시간을 가질 수가 없다. 캐나다에서 삶을 여유 있게 살기 위해서는 도우미를 잘 써야 되겠지만 과감히 문을 닫을 수 있어야 한다. 정기적으로 가게 문을 닫는 시간을 미리 손님에게 지속적으로 알리면 손님들이 그 시간을 피해서 올 것이므로 큰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리고 돈 벌 생각보다는 세금 내고 먹고 사는 것으로 만족하면 삶이 편안해진다. 그것이 어려운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를 축적하면서 살아왔던 방식에 익숙해 있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사벨라 거리에서 구멍가게를 하는 가게 주인처럼 과감하게 문을 닫기 바란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늘 시간이 없고 여유 없는 이민 생활이 된다.
제4장 무엇이 캐나다 이민자들을 힘겹게 하는가?
부부 사이의 문제
이민자들이 힘들어하는 것 중 하나는 부부 사이의 갈등과 위기일 것이다. 캐나다에서는 자신의 직업을 갖기 전에 이런저런 정보를 먼저 얻는 시간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대개 가장은 1년 내지 2년 가량 집에서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면 부부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진다. 뿐만 아니라 부부가 함께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때로는 서로 떨어져 있는 시간이 필요한데, 늘 붙어 있으면 트러블이 생기게 마련이다.
캐나다에서는 남편의 경제력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상대적으로 약하고 때로는 부인이 남편의 경제력을 능가하기 때문에 남편을 존경하기보다는 무시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그리고 부인이 남편을 무시하지 않고 있다 하더라도 남편 입장에서는 부인이 자기를 무시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고, 자신의 권위가 서서히 실추하고 있다는 자격지심에 힘들어할 수 있다. 이처럼 남편의 권위가 실추되면서 부부 사이에 위기가 올 수도 있다. 또한 가정의 주도권을 여성에게 넘겨주게 되는 데서 생기는 남성의 권위 상실 또한 부부 사이를 힘들게 하는 원인 중 하나다. 이민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나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서 여성이 더 빠르다는 사실 또한 남성들이 자격지심을 느끼게 되는 이유이다.
부부 사이의 갈등의 원인은 이외에도 많이 있지만 성격, 기질, 일처리 방식에 차이가 있어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서로 다른 점에서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을 여기에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문제의 핵심은 상대방에게 매력을 느끼게 해준 차이점이 나중에는 상대방에게 불만을 느끼게 한다는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부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우선 서로 존중해야 한다. 여성 쪽에서는 남성에게 최소한 ‘나는 당신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말이나 행동에서 느낄 수 있도록 처신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남성은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느꼈다 하더라도 ‘저 사람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무시당했다고 느꼈는지도 모르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서로 존중해주면 된다. 남성은 여성이 자신을 무시했다고 생각하기에 앞서 스스로 무시당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결국 자기 자신을 컨트롤하는 게 중요하다. 여성도 남성을 무시하는 말이나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설령 무시하는 마음이 없었다 하더라도 혹시 자신의 말과 행동이 남성에게 무시당하는 느낌을 주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행동하는 것이 어떨까.
부부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많게 되면 서로를 잘 알게 되고, 서로를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상대방을 통해 나를 성찰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함께 있는 시간은 오히려 ‘서로를 위한 성숙의 기회’라고 긍정적인 측면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부부 사이의 갈등을 성숙의 차원까지 끌어올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함께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항상 함께 일을 해야 하는 처지라면 가끔은 각자 다른 곳에서 일을 하는 것도 부부 사이를 좋게 만드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같이 일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면 교대로 여행을 떠나는 방법을 써서 가끔씩 덜어져 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 물론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사랑을 돈독히 할 의지나 신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서로의 차이를 수용하는 일도 중요하다. 자신의 기준대로 상대방이 맞춰주기를 원한다면 서로가 서로를 힘들게 하는 결과를 부른다. 자신과는 다른 상대방을 존중해주고 서로 보완해주면 된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바로 ‘다양성 속의 일치’이다. 이 개념에 대해 좀 더 설명하자면, '다양성 속의 일치‘는 완전한 합일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름이 보장되면서도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하면서 함께 공존하는 것을 의미한다.
끝으로 가장의 권위를 내세워 생기는 부부 사이의 갈등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우리나라 사회와 문화가 잉태한 가장이라는 형식권위에 익숙해 있다. 그러나 형식권위만 내세우면 실질권위가 죽는다. 한국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역할이 분명하여 여성의 일, 남자의 일이라는 성의 역할의식이 분명하다. 그런데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캐나다 문화에 빨리 적응하므로 남성은 남성 중심의 한국 사회에 익숙해 있어서 가부장 문화의 방식으로 처신하기를 요구하고, 여성은 이민 사회에서 배운 새로운 문화적 방식을 가지고 서로 대립하게 된다. 이것을 어떻게 조절하느냐 하는 것이 부부 사이의 또 한 가지 해결과제이다. 남성이 가장으로서 권위만 내세우지 않고 가정을 위해 헌신하는 태도를 보일 때 가장과 남편으로서의 실질권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남성 주도적인 부부 관계를 개선하지 않으면 위기가 올 것은 뻔하다. 어쩌면 이민 생활은 부부 관계를 힘들기도 하지만 반대로 둘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고 다시 쌓아올려 그전의 관계보다 더욱 성숙한 관계로 발전하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민자들 사이의 문제
세계 구석구석 어디를 가도 중국인들이 있다고 한다. 어떤 곳이든 중국인이 새로 이민을 오면 주변에 살고 있는 중국인들이 모두 출자하여 조그마한 사업을 하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그래서 자본 없이 무일푼으로 이민을 와도 같은 중국인들이 도와주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일을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나라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은 이민자들은 이민 사회에 정착하여 잘살게 되면, 도움을 준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갚는 것이 아니라 자신보다 뒤에 오는 새 이민자를 도와주면 된다고 한다. 이처럼 그들은 서로 협조하여 이민 사회에 쉽게 뿌리를 내린다.
이와는 반대로 한국의 이민자들은 자기 자신이 살아가기에도 너무 바빠서 남을 돌아보고 도움을 줄 여유가 없어 보인다. 물론 초창기 이민자들이 후기 이민자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도와준 사례가 적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근래의 이민자들은 자신만 잘살면 된다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한국인 이민자들을 돕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관계 때문에 새 이민자들의 정착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받으며 불신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이민 생활이 힘들어진다.
혼자 살려고만 하면 자신도 잘 못살게 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못살게 하는 결과를 낳는다.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중국 사람들의 이민 생활방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중국 이민자들과 우리 이민자들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수 있으리라.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면 관계도 좋아지고 서로 잘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마음이 없으면 관계는 다 깨어지고, 결국 그 화살이 자신에게로 돌아와 이민 생활을 힘들게 할 것이다.
이민 사회는 너무 좁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이것은 한국의 이민자들이 캐나다 사회에 깊게 침투하지 못하여 한국 사람하고만 친교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국의 이민자들끼리 나누는 정보는 비교적 정확한 정보가 아닐 수 있다. 자신의 방식과 기준에서만 판단한다면 다른 기준이나 방식을 도저히 알 수 없으며,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중에는 “캐나다를 다녀온 사람마다 모두 다 딴 소리한다”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며, 캐나다에 대해서 무엇을 얼마나 공부했으며, 어떤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누며 얻은 정보들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캐나다 사회를 깊게 알기 위해서는 그 사회에서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토론할 정도의 언어구사 능력이 안 되면 대화도 안 되고, 캐나다 사회에 대해서 깊게 알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한국 사람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되면 자신의 시각에서만 캐나다 사회를 바라볼 수 있으므로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게 된다. 캐나다 사회를 깊게 공부하지도 않고 본토인들과 깊은 친교를 쌓으며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 사회를 움직이는 원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관계 속에서 주고받는 잘못된 정보들이 이민자들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좁은 이민 사회에서 자신이 들은 타인에 대한 이야기나 소문이 몇 단계를 거쳐서 자신에게까지 오게 되었는지 모르면서도 타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무조건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나마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가 넓으면 피할 곳이 있겠지만, 이민 사회가 좁으니 피할 곳도 없기 때문에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산다는 것이 숨 막히는 일이 되기도 한다. 사람들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사람들과 관계를 맺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이민자들이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이민 생활에서 생기는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민자들의 관계가 단절되는 이유 중 하나는 서로 자존심의 대립구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과시해온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캐나다 이민자들은 그것을 캐나다에서도 계속 연장하고자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캐나다는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같은 것은 관계에 있어서 무의미하다. 그러나 한국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자리에 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관계는 자존심의 대립구도로 나타나고, 자존심이 손상되면 사람들의 사이는 금이 가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민자들이 관계 문제로 힘들어하는 이유를 들여다보면 외적인 원인보다는 자신의 내적인 문제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내적인 문제만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면 캐나다 이민 생활을 하는 동안 예측되는 관계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내적 문제들은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혼자 살아가려는 마음보다 함께 살아가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 방법을 배워야 한다. 자신만 잘 살겠다고 하면 관계에 분열이 일어날 것이고 자신은 고립되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이다. 둘째,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변화시켜 서로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자신의 세계를 확장해야 한다. 좁은 세계에서 얻게 된 잘못된 정보는 불신을 낳고 관계를 소원하게 한다. 그리고 좁은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말들이 자신을 괴롭힐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자신과 화해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다. 자신과 화해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편안해질 것이다.
제5장 더불어 사는 숲을 그리며
삶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진정한 여행, 캐나다 이민
삶의 가치를 찾아 캐나다로 이민을 한다면, 나는 육지에서 바다로 생활권을 옮겨가는 것이라고 비유하고 싶다. 육지와 바다 속에는 각각 전혀 다른 세상이 있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는 방식은 서로 다르다. 하늘을 나는 새에게 물 속에서 살라고 하면 물 속은 지옥이 된다. 새에게 물 속이 천국이 되는 유일한 길이 있다면 새의 날개를 떼어내고, 지느러미를 다는 것이며, 허파를 떼어내고 아가미를 다는 것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새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육지보다 더 큰 세계인 넓은 바다 속에서 평화롭게 즐기며 살게 될 것이다. 즉 생존방식을 바꾸면 지옥이 천국으로 되는 것이다.
날개와 허파를 제거하고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달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살던 방식을 포기하고 캐나다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먼저 캐나다를 알아야 하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참된 것인지 그렇지 않은 것인지를 먼저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검증되지 않은 불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으면 참으로 ‘안다’고 말할 수 없고, 더욱이 ‘이해했다’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그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을 기준으로 캐나다 사회를 판단하고 평가할 것이 아니라 캐나다 사회를 있는 그대로 보고 평가해야 한다. 우리의 기준만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반대로 그들의 기준이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어떠한 문제를 발견했을 때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현상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비슷한 문제가 끊임없이 발생하게 된다. 문제의 뿌리인 본질적인 것부터 해결해야 비슷한 문제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다. 자신이 피부로 느끼는 현상적인 것이나 부수적인 것보다는 본질적인 것들을 볼 수 있어야 한다.
바다는 높고 낮음이 없어서 높은 데서 떨어져도 다칠 일이 없다. 나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캐나다 사회를 바다로 비유하고 싶다. 캐나다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지위와 학식의 높고 낮음은 별 의미가 없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를 똑같이 존중하고 비교적 동등한 기회가 주어진다. 그래서 높게 올라갈 이유도 없고 설령 높게 올라가도 떨어지는 충격으로 상처를 입지도 않는 사회다. 캐나다 사회는 출세나 성공에 인생의 목표를 두거나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조금 부족한 듯 살아도 자신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나는 이것을 바다의 삶에 비유한 것이다.
캐나다 사회의 특징에 대해 거듭해서 말하자면 삶의 질이 평준화되어 있다. 삶의 질이란 반드시 물질적인 측면만을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신적인 것도 물질적인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캐나다가 구조적으로 재화를 재분배해온 것도 사회가 그만큼 투명하고 정의로우며, 국민들의 보편적인 의식이 그러한 정책을 지지해왔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정신 문화의 토대가 없다면 재화의 분배와 같은 삶의 평준화는 이상일 뿐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이상을 실현하고 있는 나라가 바로 캐나다라고 나는 생각한다.
캐나다로 이민 간다는 것은 물질적 가치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우위에 두고, 나누는 삶을 실천하는 사회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준비가 되어 있으면 캐나다에서의 삶은 편안하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여유로운 삶을 누리며 살고 싶었던 이민의 동기를 늘 상기한다면, 진정한 삶의 질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숙고하고 깨닫는다면, 이민 생활은 새로운 삶의 가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된다. 따라서 캐나다 이민은 자신의 마음가짐에 따라 자신을 계발하고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사회로 떠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역이민을 하려는 생각을 접고 캐나다에 적응하고 살 생각이 있다면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바꾸어야 할 것 같다. 캐나다라는 외부조건들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며, 바뀐다 하더라도 아주 서서히 바뀔 것이다. 이렇게 외적 조건이 바뀌지 않는다면 내가 변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하면 날개를 떼어내고 지느러미와 아가미를 달아야 바다 속에서 살 수 있다.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캐나다는 욕심 안 부리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 각자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곳, 혼자면 잘살게 내버려두지 않으며 더불어 살아가는 곳,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그러한 삶의 조건들에 만족하면 물질적인 풍요로움 하나쯤은 포기해도 되지 않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캐나다에서는 전혀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릴 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캐나다 사회에서 일하면서도 실제도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사는 이민자들도 많이 있다. 나는 다만 삶의 비중을 어느 곳에 두는가 하는 문제를 다루고 싶은 것이다. 캐나다 이민은 성공이나 출세보다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여정일 수 있다. 보다 높은 삶을 추구한다면 캐나다를 배우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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