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무드의 [무엇을 위해 달려가는가]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사나이가 한눈 한번 팔지 않고 서둘러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랍비가 그 사나이를 불러 세우고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서두릅니까? 사나이는 대답했습니다. “삶을 따라 가려고 그럽니다.” “어떻게 그런 걸 다 아셨소?” 랍비는 말을 계속했습니다. “삶을 따라가려고. 그래서 쫓아가고 있는 것이군요. 그러나 실제로 삶은 당신의 뒤쪽에 있어서 당신을 쫓아오고 있는 것 아닐까요? 그러니 당신을 뒤쫓아오고 있는 것을 얌전히 기다리면 될 텐데. 당신은 점점 더 도망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일에 열중한 나머지 인간다운 삶으로부터 멀어진 사람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바쁘다는 것에만 정신을 빼앗겨서 주위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가요? 심지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요? 때로는 일손을 멈추고 인생 카운트 다운이 필요합니다.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난 건가? 내게는 어떤 사명이 주어졌는가?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내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1.인생을 살아보니 깨달은 것이 무엇입니까?
시편 90편은 시편 가운데 유일하게 나오는 모세의 시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이 대단한 것처럼 보여도 결국에는 티끌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셨기 때문입니다(3절). 인생은 밤의 한순간처럼 지나가고, 생각지 않은 일로 홍수처럼 쓸려갑니다(5절).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러 말라버리는 것이 인생입니다.
10절에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규정합니다. 평균 수명이 많이 늘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좋아할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전에 연세 드신 권사님, 집사님들이 제게 이런 기도를 부탁하셨습니다. 자녀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폐를 끼치지 않고 가야 할 텐데! 곱게 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가슴이 찡하곤 했습니다.
10절에 보면 인생을 살아보니 깨닫게 되는 두 단어가 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는 수고와 다른 하나는 슬픔입니다. 우리 인생은 요약하는 두 단어를 티셔츠에 쓴다면 앞면에는 “수고”요 뒷면에는 “슬픔”입니다. 저는 그렇지 않은데요 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티셔츠를 뒤집어 입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사실은 그런데 거렇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건 아닐까요?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진노 아래에서 죽음의 선고를 받고 허무하게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7절입니다.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9절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11절입니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이러한 인생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세삼에 오셨습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가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사망에서 맹명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슬픔에서 기쁨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수고가 슬픔이지만, 그ㅜ리스도인의 삶은 보람과 기쁨의 삶의 방식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2. 남은 인생을 주안에서 카운트다운 하고 계십니까?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오셨습니까? 근년 한해동안 무엇을 위해 그렇게 신경을 쓰면서 살아오셨습니다. 우리 인생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12절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인생이 허망하고 순식간에 지나간다는 것을 깨달은 시인은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갖게 해달라고 호소합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카운트다운 하면서 때에 맞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의 남은 날을 주님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요즈음은 모두 바쁘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가만히 살펴보면 선생들보다 학생들이 더 바빠 보입니다. 모처럼 시간을 마련해 놓고 학생들이 찾아오기를 기다리지만, 연구실 문을 두드리는 학생들의 수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선뜻 선생을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 학생들도 있겠지만 선생이 정해 놓은 시간에 자기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때로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학생들을 초청하기도 해 보지만, 바빠서 올 수 없으니 양해해 달라는 말을 전해오기도 합니다.
이처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물어보고 싶은 말이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니라, "그렇게 바쁘시다니,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하는 물음입니다. 일에 쫓겨 늘 잠이 모자라는 사람은 시간이 나면 실컷 자보겠다고 합니다. 일상 업무에 쫓겨 가족과 함께 지낼 시간이 거의 없는 사람은 시간이 나면 가족을 데리고 어디 야외라도 나가보겠다고 합니다. 숙제에 쫓겨 교과서나 학과 참고서 보기에 바쁜 학생은 시간이 나면 자기가 보고 싶은 책을 읽겠다고 합니다. 신학 여러 분야 공부에 쫓기는 신학생은 시간이 나면 성경책을 마음껏 읽어보겠다고 합니다. 나날이 닥치는 일과 때문에 늘 시계를 보고 기도하던 사람은 시간이 나면 한번 실컷 기도해 보겠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시간이 나면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하는 하는 날은 살아있는 날이요, 주님 없이 살아가는 날은 죽은 날입니다. 여름, 가을 겨울, 계절에 따라 맞는 옷을 갈아입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때에 맞게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인생의 남은 날을 카운트 다운하면서 주님을 사랑하고 기뻐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면서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육체의 남은 때를 영혼의 때를 위하여 준비하는 지혜로운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인생 카운트다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입니다. 13절입니다. “여호와여 돌아오소서 언제까지니이까 주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인생의 마지막에 헛살았다는 고백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렵고 힘들 때 삶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스스로 타락의 길을 자초하지 마십시오. 삶을 허비하지 않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게으르지 않고 성실하게 산다는 말인가요?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는 것을 말할까요?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다는 것일까요?> 그런게 아니라 삶의 목적과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이 모든 것은 허비되는 삶입니다. 인생은 한번 뿐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한번 뿐인 인생을 허비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가 되는 인생이 아니라 그때 참 잘 했다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잘 풀아가야 합니다. 나중에 남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저는 두 가지를 선택했습니다. 하나는 책을 읽거나 인생의 멘토를 찾아가 좋은 교훈을 들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영혼이 잘 되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좋아하고 아끼던 것을 잃어버렸습니까? 그만큼 영혼의 부요해지고, 하나님께 부요해지는 기회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3. 인생의 카운트다운 어떻게 역전이 가능할까요?
모세는 인생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인생의 대역전을 시작합니다. 자신의 힘이나 능력이나 상황에서 찾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에 호소하였습니다. 14절입니다. 아침에 주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만족하게 하사 일생 동안 즐겁고 기쁘게 하소서.”자신의 힘으로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안 될 때에는 밖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에 호소해야 합니다.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나아와야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서 주의 인자하심을 경험한 사람은 인생의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주님의 인자하심만 있으면 우리를 일생동안 즐겁고 기쁘게 해 주십니다. 인생의 대반전이 일어납니다. 제가 목회하면서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자주 인용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15절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와 우리의 화를 당한 연수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이것은 문자 그대로 날 수를 계산해서 연수를 계산해서 기쁘게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많은 고통과 픔을 겪었기 때문에 이제 지속적인 축복을 베풀어 달라는 것입니다. 화를 당할 수밖에 없지만 주님은 우리가 괴로움을 당한 날 수대로와 화를 당한 연수대로 기쁘게 바꾸어 주십니다. 나 자신도 그 누구도 이렇게 할 수 없지만 주님은 능히 그렇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반드시 너를 축복하리라]는 가사가 생각이 납니다. 1절,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쓰리라 천지는 변해도 나의 약속은 영원히 변치않으리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네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여라. 2절, 반드시 내가 너를 축복하리라 반드시 내가 너를 들어쓰리라 세상의 소망이 사라졌어도 온전히 나를 믿으라 두려워 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인내하며 부르짖으라 부르짖으라 네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 돌리리 네 소원 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찬양하여라”
우리의 인생은 주의 구원과 주의 영광이 나타날 때 대역전이 일어나게 됩니다 “주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종들에게 나타내시며 주의 영광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나타내소서.” 주께서 행하신 일이란 주의 구원과 주의 영광은 이스라엘 백성의 가나안 땅 진입 및 정복을 통해 드러날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선하심 그리고 그의 능력과 은혜을 가리킵니다. 인생을 대반전시킬 수 있는 것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행하실 때 가능합니다.
주께서 행하신 구원의 놀라운 역사를 주의 종들에게 나타낼 때 가능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인생의 참된 목적이 무엇인지를 심어주는 것입니다.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데 있습니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우리 자녀들에게는 주의 영광을 나타내 십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주의 영광을 나타나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주의 은총이 내려서 우리의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해 실 때 대반전이 가능합니다. 17절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의 은총을 우리에게 내리게 하사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우리에게 견고하게 하소서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견고하게 하소서.” 민수기 6장 25절입니다.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의 은총이 내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가시적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입성하게 될 것을 시사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에 대해 오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 한 테 천국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흐느냐?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이렇게 대답합니다. 착하게 살아야죠”라고 말합니다. 은혜란 자격이나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냥 하나님께 나아와 그냥 도와주세요! 부르짖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은혜에 대해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은혜란 하나님의 사랑을 더 받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은혜란 또 무엇으로도 하나님의 사랑을 약화시킬 수 없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대부분의 정서 문제의 주요 원인은 다음 두 가지라고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용서를 깨닫고 받아들이지 못하며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 용서, 은혜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못하는 것입니다(필립 얀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모세는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이 손으로 하는 모든 일을 경고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나타날 때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우리의 손이 행한 일을 하나님이 견고하게 세워 십니다. 인간이 아무리 세우려고 애를 써도 하나님이 세워주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모든 것이 그냥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굳게 세워 주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려고 하다가 지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반응할 때 복된 인생을 살아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전에는 행복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을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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