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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말세를 준비하는 삶(베드로후서 3:3-1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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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에 대한 종말이 있는 것처럼 전 인류의 종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9:27). 지난 주에는 말세의 징조에 관해서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말세를 준비하는 삶에 관해서 함께 은혜와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에수님은 마태복음 241-31절에서 말세의 징조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37-39절에서 말세의 나타나는 현상에 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 시대에 물로 전 인류를 심판하신 것처럼 예수님 다시 오실 때 전 인류에 대한 심판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런데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는 일, 즉 일상생활에 너무 분주한 나머지 심판에 전혀 대비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면 일상생활에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다만 우리의 일상생활이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삶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는 방주를 준비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에까지 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말세에도 동일한 현상이 그대로 나타난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24:37).

 

베드로후서 33-4절 말씀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대로 행하며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이디 있느냐? 즉 심판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은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숭배와 주술과  원수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이와 같은 걸들(5:19-21)을 행하면서 심판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베도로후서 35절 말씀입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같이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여기서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이 무엇일까요? 노아 시대의 홍수사건을 말합니다.

 

창세기 12절 말씀에 보면 땅은 본래 물속에 있었습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세기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둘째 날에 궁창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창세기 19-10절에 보면 셋째 날에 천하의 물을 한 곳에 모으셔서 뭍이 드러나게 하시고 그 뭍을 땅이라 칭하셨습니다. 즉 물속에 잠겨있던 땅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천하의 물이 한 곳으로 모이고 뭍이 드러나라 하시매니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뭍을 땅이라 부르시고 모인 물을 바다라 부르시니.”

 

그런데 창세기 711-12절 말씀에 보면 노아 시대에 하늘의 창들이 열리고 땅의 샘들이 터져 천하의 높은 산들이 모두 물속에 잠겨 버렸습니다. “노아 육백 세 되던 해...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이것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아래의 물이 하나로 성림되었음을 증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엄청난 사건이 바로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의 사건을 일부러 잊으려고 합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전 인류를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일부로 의식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노아시대에 물심판이 있었던 것처럼 말세에 불심판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37절 말씀입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노아 홍수 시대에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 인류를 물로 심판하신 것처럼 말세에는 불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베드로후서 31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베드로후서 312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따라서 우리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가 방주를 예비하여 물심판 때에 생명을 보존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불같은 환난에서 구원받기 위해 방주를 예비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아직도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깨어있지 않고 예비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로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442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즉 우리는 항상 깨어 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깨어 있어야 할까요?

 

먼저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136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다음은 말씀으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25절에 보면 사람들이 말씀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원수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간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그리고 우리는 물질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322절 말씀입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또한 세상의 염려와 물질로 인한 걱정 때문에 마음이 둔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말세를 준비하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둘째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11-12절 말씀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인류의 종말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준비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내일 인류의 종말이 온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내일 인류의 종말이 온다하더라도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지혜로운 일이 아닙니다. 주님을 맞이할 때가 가까워 왔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은 내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남은 삶을 무엇을 위해 준비해야 할까요? 많은 업적과 실적을 올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언젠가는 다 풀어 없어지게 됩니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은 과연 누구일까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말세를 준비하는 삶은 또한 어떠한 삶일까요?

 

셋째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살아가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14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심판 날에 주 앞에서 점도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점과 흠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베드로후서 213절 말씀입니다.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여기서 점과 흠이란 베드로후서 22-4절에 나오는 세 가지를 가리킵니다.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여기서 '점과 흠'이란 곧 1절에 호색, 2절에 탐심, 3절에 자기영광을 가리킵니다.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 호색을 좇으면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게 됩니다. 탐욕을 풐고 있으면 잔라의 말쑴이 막히게 됩니다. 타락한 천사와 같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 영광을 구하게 되면 지옥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천국을 바라보는 사람은 육체의 정욕을 바라보지 않고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빌릴보서 212-16절 말씀입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주님의 재림을 늘 깨어 준비하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물질로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곧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삶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하나님을 섬기는 삶,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주님오시는 그날까지 점과 흠이 없이 평강 가운데 주를 맞이하는 자가 됩시다. 더 이상 호색과 탐욕과 자기영광으로 인해 진리의 도가 막히지 않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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