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소원대로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의 소원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까? 빌립보서 2장 12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당신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도대체 내가 무엇이관대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나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지! 그저 감격하고 또 감격할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시는 소원에 대해 부담스러워 하고 불평했던 지난날의 삶이 얼마나 부끄러운 지! 그래도 기다려 주시고 아직도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당신의 소원과 하나님이 주시는 소원이 일치하기를 축원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려고 하실 때 모세와 같이 자신이 부족하다고 거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출애굽기 4장 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능력과 기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모세가 자신은 약점 때문에 도저히 못하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그 약점을 해결해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보낼 만한 자를 보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또 다시 형 아론을 붙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려고 하실 때 얼마나 불편하게 해드렸는지 모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실 때 마리아처럼 그렇게 고백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누가복음 1장 38절 말씀입니다. “마리아가 가로되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다.”
물론 마리아가 처음부터 이런 믿음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 역시 자신의 한계 상황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이 사내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녀를 낳을 수 있겠는가? 고 반문합니다. 더구나 살아하는 연인 요셉에게 자신이 성령으로 잉태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최종적으로 하나님의 소원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우리 역시 새해에 여러 가지 많은 한계와 걱정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믿고 그대로 이루어 드리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소원대로 행하십시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시편 37편의 저자인 다윗도 하나님의 소원대로 행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본문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땅에 거하여 그의 성실로 식물을 삼을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새해를 맞고 있는 우리에게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선은 창조의 목적대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을 말합니다. 사랑의 감동을 끼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원대로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이요 가장 축복된 삶입니다. “전도서 3장 12-13절 말씀입니다.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는 줄을 알았고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을 또한 알았도다.“ 즉 사람이 살아가면서 기뻐하면서 선을 행하는 것이 가장 보람된 삶입니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일을 통해서도 낙을 누리면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렇습니다. 새해에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가장 행복한 삶을 누리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특별히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시편 37편 1절 말씀입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사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 마음 같지 않습니다. 이외로 우리 주위에는 잘못 살아가는 사람들,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 짜증과 불평이 나기 쉽습니다. 심지어 나만 왜 그렇게 살아야 하냐고 못마땅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 그들로 인하여 결코 불평하거나 투기하지 않기를 당부합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면서 불평하면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우리는 선을 행하면서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 시편 37편 4절 말씀입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 여호와를 기뻐해야 할까요? 선을 행하면서 우리는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서 감정을 상할 때에도 기뻐해야 합니다.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기뻐해야 합니다. 시편 37편 7-8절 말씀에 보면 도저히 참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분노를 터트리고 싶은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하박국 3장 17-18절 말씀입니다. "비록 무화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성경의 인물의 공통된 특징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재앙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잃었어도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하나님께 대한 서운한 마음이 들 수 있어도 오히려 하나님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어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뻐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선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는 사람은 반드시 선을 행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 말씀입니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시 아니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 항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 하시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나타났습니다.
믿음의 선진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기뻐하실까요? 로마서 14장 18절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 사랑하셨던 것처럼 희생적으로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흔히 우리가 놓치기 쉬운 부분이고 심지어 싫어하는 부분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9-10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할 또 다른 차원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선악 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심판을 받기 때문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 그 자체가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과 감정에 좌우될 것이 아니라 이것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가 선악 간에 행한 대로 갚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들을 위하여 희생과 수고를 다하면서 그래도 소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앞으로 자녀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입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통해서 어떤 대가나 상을 받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를 통해서 어떤 마음이나 사랑을 받을 때 커다란 위로와 힘을 얻게 됩니다. 반면에 자녀가 부모에 대해서 전혀 사랑의 관심을 나타내지 않을 때 서운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사랑의 관계는 서로 기쁘게 하는 행동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약의 하나님은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마지막 날 우리가 선악 간에 행한 대로 갚아주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물론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시지 않아도 되는데 그 모든 것을 잊지 않고 상까지 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다. 우리가 아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만 해도 감사한데 상가지 준다고 약속해 주시니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우리는 상 같은 것 안주셔도 된다고 스스로 판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상 같은 것 받기 위해서 한다면 차라리 안한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1억을 주신다면 나는 안받겠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 것 자체만 해도 최고의 축복인데 게다가 심판 날에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009년도 새해에 소원대로 이루어지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소원을 품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당신의 소원과 하나님의 소원이 일치하도록 하십시오, 만약 그렇게 되었다면 감사하면서 선을 행하는 자가 되십시오. 선을 행하면서 기뻐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앞에 서는 날 선악 간에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당신은 새해에 좋은 일이 많이 크게 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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