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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찬에 대한 올바른 태도(고린도전서 11:17-3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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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성찬의 잘못된 태도에 책망합니다(17). 그들이 교회에서 모임을 갖지만 유익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해롭다고 지적합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찬식에 참여하는 모임에서 교제가 강화되기는커녕 더욱 악해지고 나빠졌습니다. 그들이 모일 때 분쟁이 있어서 그들의 모임이 오히려 해를 끼쳤습니다. 과연 우리의 모임은 어떠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19절입니다.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옳은 것처럼 행동하고 분파를 조성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바울은 크게 실망했습니다. 분쟁 속에서 행하는 그들의 만찬은 주의 만찬이 아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의 분열은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안식일 다음날 주일 저녁에 떡을 떼려 모였습니다(20:7). 그들은 매 주일 저녁 교회에 모여서 함께 식사하고 성만찬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애찬을 가진 후에 성만찬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가 된 것일까요? 본문 20-22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은 너희가 함께 모였을 때 먹는 것이 주의 만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린도교인들은 성만찬을 드리려 교회에 왔다가 영적 상태가 더 나빠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주의 만찬은 '성만찬' 전에 애찬의 시간을 같이 가졌습니다. 각자 교인들은 집에서 형편에 따라 먹을 것을 싸가지고 교회에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를 나누었습니다(2:46; 고후 8:14). 이런 애찬 후에 성만찬이 행해졌습니다.

 

부자들은 일을 일찍 마치고 교회에 와서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고 마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은 일을 마치고 늦게 도착하여 성찬이 시작되기 전에 먹을 것이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성찬 전에 식탁교제가 이렇게 분열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부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하나님의 백성을 분리하고 구별지어 가난한 자들로 하여금 열등감과 굴욕감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빈부의 차이가 아니라 서로를 대하는 것이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의 만찬이 아니라고 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형제 자매를 무시하고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은 주님의 십자가의 희생을 모욕한 행위입니다.

 

바울은 성만찬의 규례가 주께 직접 받은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가롯 유다의 의해 배신당하여 잡히시던 밤에 성만찬 규례를 제정하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은 가롯 유다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십자가의 죽으심을 예표하는 이 규례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유월절 만찬의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 만찬에서 떡은 애굽에서의 고통을 상징하며, 성만찬 규례에서 떡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해서 찢기실 자신의 몸을 상징합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는 것은 신자들이 영원히 행하여야 할 규례임을 시사합니다(22:19). 한다. '나를 기념하라'는 표현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으며 누가복음에만 나타나고 있다(12:14, 22 :19). 유월절의 경우에서는 애굽에서의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며, 성만찬의 규례에서는 고난을 당해서 찢길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상징합니다.

 

떡을 다 먹은 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628, 마가복음 1424절에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220절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히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새 언약'(31:31-34)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흘리신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더 이상 동물의 희생의 피로 맺는 옛 언약이 아닌 그리스도 자신의 죽음을 통해 영원히, 단번에 이룬 은혜의 언약을 말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성만찬을 그리스도의 고난의 의미를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지 않고 즐거운 연회로 받아들였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의 몸을 분변한다는 것은 주의 만찬과 다른 식사들을 구별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찬식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차별없이 구원을 받는 것이 핵심입니다. 교회 안에서 그 어떤 것으로도 차별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나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성찬에 합당하게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떡을 먼고 잔을 마셔야 합니다. 자기를 살피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해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하는지 자신을 살피고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으면 참여하지 말라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자신의 죄를 살피고 주님의 희생에 감사드리며 서로에게 사랑과 헌신으로 섬겨야 합니다. 주님의 대속의 피를 인정하고 자신의 죄인된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 용서하지 않은채 성찬에 계속 참여했습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요? 만약 성만찬에 합당하게 참여하지 못하게 되면 육체적인 연약함과 병든 자가 많고 심지어 죽음까지도 초래합니다. 자신을 살피고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지 않습니다. 자신을 살피라는 것은 자신의 죄를 살펴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속죄가 있음을 살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은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돌이킴으로 회복케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가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기 위함입니다.

 

주의 만찬에서는 서로 기다리며 함께 참여해야 합니다. 성찬은 먹고 마시는 일반 식사와는 다릅니다. 만약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어야 합니다. 식사는 집에서 먹고 와서 함께 기다렸다가 같이 성찬식에 참예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들의 모임이 판단 받지 않는 모임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만찬의 의미를 바로 알고 참여해야 할 것을 촉구합니다. 성찬식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인 것을 확인하는 예식입니다. 고린도전서 1016, 17절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뱌 측복의 잔 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요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성찬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해줍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언약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는 주의 만찬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을 선포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주의 만찬을 통해 우리는 주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을 확인하고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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