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후에 사울 왕의 시기로 인하여 10년동안의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스라엘 경내에 있으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으로 주변의 나라 모압 땅으로, 그리고 시글락으로 도피하였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도피했던 장소만 하더라도 무려 16군데가 됩니다. 그러나 다윗이 모압 땅으로 도주한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사무엘상 22장 5절입니다.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후에 다윗이 블레셋 땅으로 도주한 것은 더더욱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다윗은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이 생각할 때 안전곳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더구나 블레셋은 이스라엘과 적국이었기 때문에 위험한 나라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동안의 괴로운 도피생활에서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사무엘상 27장 1절입니다.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그러나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서 우리는 극단적인 결론을 내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블레셋의 시글락에 거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다윗은 아기스 왕에서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만 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을 침략하여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전리품으로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아기스에게 바칩니다. 아기스가 다윗에게 오늘은 누구를 침노하였느냐? 다윗은 거짓말로 유다 네겝을 침노하였다고 둘러댔습니다. 거짓이 폭로되는 것이 두려워 모두다 죽이는 잔인함을 보였습니다.
이를 통해 다윗은 아기스의 신뢰를 받았지만 이러한 처사는 위험한 도박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윗의 생애에 최악의 날이 오고 말았습니다.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에게 이번 전쟁에서 확실한 전과를 올려달라고 당부합니다. 그러나 불레셋의 지휘관들이 이번 전쟁에서 다윗의 참전을 반대하였던 것입니다.그들은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뜨린 것과 당시에 이스라엘에 여인이 불렀던 노래의 가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는 수 없이 아기스가 다윗을 불러서 이번 전쟁에 참전할 수 없다고 통보합니다. 괜히 블레셋의 지휘관들이 너를 좋아하지 않으니 거슬러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아기스에게 내가 무슨 잘못을 하였기에 이번 전쟁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까? 내 주 왕의 원수, 이스라엘과 싸우지 못하게 하시나이까? 그러나 이미 결정된 상황이라 다윗의 일행은 자신들이 거처하던 시글랏까지 돌아오게 됩니다.
다윗과 그의 일행들은 블레셋의 지휘관들로부터 불신을 당하여 이번 전쟁에 참전하지 못한다는 것으로 인해 마음이 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다윗의 일행이 이 전쟁에 참전하지 못한 것은 하나님의 간섭하심 때문입니다. 만약에 이 전쟁에 참여하였더면 어떤 상황이 벌여졌을까요? 적국을 돕는 이적 행위의 오명을 뒤집어쓰고 더 이상은 이스라엘에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편에 선다고 해도 블레셋이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거처인 시글랏에 도착했을 때 그들 앞에 전개된 상황 앞에서 그들은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말렉 사람들이 침노하여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절거나 늙은 여인들을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포로로 사로잡혀 갔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성읍이 다 불탔고 자신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혀 갔다는 것을 알고 통곡하였던 것입니다.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소리를 높여 울었던 것입니다. 갑자기 상황이 험악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1.원망의 쓴 뿌리를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다윗과 함께 했던 일행의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이 돌로 치자고 소리칩니다. 그동안 다윗이 자신들에게 해준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다윗을 돌ㅇ로 쳐서 죽이자고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 다윗은 최악의 상ㄴ황에서 그렇게 자신과 함께 하고 도와주었던 사람들조차 배신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에게 있어서 이 순간은 인생 최악의 날이었습니다
인생 최악의 날에 가장 안 좋은 것이 누구를 원망하고 탓하는 것입니다. 다윗 일행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신이 왕이 된다고 해서 따라다녔는데 그 결과가 고작 이것이란 말입니까? 너무 슬퍼서 그런 반응이 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서 누구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광야를 지날 때 좀 불편하면 그들은 모세에게 당신이 이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나와서 이렇게 고생시킨다고 원망했던 것입니다.
저는 미국의 9.11 테러 사건을 두고 미국 국민들이 어떻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도전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슬픔의 현장에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하나로 뭉쳐서 위기를 대처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위기상황에서 누구의 탓으로 돌렸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은 반응을 나타내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다윗은 이런 인생의 최악의 날에 어떻게 한지 아십니까? 인생 최악의 날에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그것을 통해 주시는 교훈을 발견하고 해결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최악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다윗은 인생 최악의 날에 어떻게 했을까요?
2.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격려해야 합니다
6절 하반절입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자기를 향하여 돌로 치려고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요? 다윗은 아말렉 사람들에 의해 집이 불타고 성읍이 폐허가 된 광경을 지켜보면서 맨붕 상태에 빠졌을 것입니다. .
다윗의 두 아내 역시 포로로 사로잡혀 갔기 때문에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기가 막혀서 울 기력이 없을 정도로 큰 소리로 통곡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윗과 함께 했던 사람들이 돌로 자신을 치려고 할 때 그 배신감으로 안해 치를 떨었습니다. 보통 사람들 같으면 죄책감과 자책감에 시달렸을 것입니다. 인생 최악의 날에 제일 안 좋은 것이 누구를 탓하는 것이고, 그 다음에 안 좋은 것이 자책감과 상실감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습니다. 9-10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을 돌로 치려 하는 큰 소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를 일순간에 반전시켜 그들 모두로 하여금 자신을 좇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백성들 모두가 다윗을 좇은 것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전달된 하나님의 긍정적인 답변(8절)으로 인하여, 아내와 자식을 되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 속에서 다윗을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었습니다. 인생 최악의 날에 하나님 한 분만을 의지하는 것이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입니다. 최악의 순간에 그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의지할 대상이 아무도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인생에 있어서 골든타임입니다. 문제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십니다. 좋지 않은 현재 상황을 부각하지 말고 칠흙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한 가닥이 빛이 비치면 어두움이 물러갑니다.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인생 최악의 날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신앙생활하면서 뭐가 좋은가 물어본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격려할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자신이 미워지고 실망하게 될 때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격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아시고 나와 함께 한다는 사실을 알 때 용기가 생깁니다. 스바냐 3장 16, 17절입니다.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인생 최악의 날에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용기를 내야 합니다. 어려운 시험 가운데서도 주님이 주시는 기쁨을 유지해야 합니다. 상황이 주는 기쁨이 아니라 나를 잠잠히 사랑하시는 그 기쁨 말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또한 우리는 최악의 상황의 순간에서도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어떤 약속일까요? 고린도전서 10장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가 감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최악의 상황에서도 충분히 감당하게 하십니다.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십니다. 사방으로 막혀있는 것처럼 보여도 하늘은 뚫려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쥐 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 이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도 좋은 날이 온다는 뜻입니다.
다윗이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힘입어 어떻게 용기를 얻었을까요? 본문 7, 8절입니다.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하나님께 묻습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 잡고 도로 찾으리라.” 그때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 최악의 상활에서 하나님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물어야 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움직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말씀을 통해 모든 것을 도로 찾을 수 있다는 비전을 주셨습니다. 갑자기 낙담과 자기 연민의 부정ㄹ적인 기운이 새로운 기대로 바뀌었습니다.
도저히 자신의 힘으로는 일어날 용기조차 없을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위로부터 부어 주시는 용기를 힘입을 때입니다. 시편 84편 5절입니다. “주께 힘을 얻고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신자는 어렵고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 힘을 입어 용기를 내는 사람입니다. 다니엘 10:18-19절에 의하면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로 힘이 나게 하셨나이다”고 했습니다. 이사야 40장 30, 31절에 의하면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3.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인생 최악의 날에 사람을 얻도록 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상황이 많이 힘들기 때문에 사람을 잃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요? 다윗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자신을 따르던 육백명과 함께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브솔 시냇가에서 피곤하여 뒤떨어진 진 자, 이백명을 거기 머물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다윗의 입장에서는 힘이 빠지는 일이긴 했지만 다윗은 사 벡명만 거느리고 추격합니다. 그들이 뒤쫓던 중에 들에서 우연히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났습니다. 애굽 사람 하나를 만나 그를 다윗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사흘 동안 떡과 물을 마시지 못해 기력이 쇠하였습니다. 그래서 떡과 물, 무화과 뭉치 한 조각, 건포도 두 송이를 주었더니 그가 정신을 차리자 다윗이 그에게 너는 누구에게 속해 있으며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애굽 소년으로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사흘 전에 병이 들자 주인이 나를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다윗이 묻지도 않은 말을 하였습니다. 지기네 군대가 시글락을 불살랐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렛 사람의 남방과 유다에 속한 지방과 갈렙 남방을 침노하고 시글랏을 불살랐습니다. 더구나 이 애굽 사람이 아말렉 군대에게 충성을 다하고 군사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절대로 아말렉 군대에게고 인도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다윗이 그에게 네가 나를 그 군대로 인도하겠느냐, 그가 이르되 당신이 나를 죽이지도 아니하고 내 주인의 수중에 넘기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내가 당신을 그 군대로 인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뒤쫓아서 도로 찾아오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죽어가는 애굽 소년을 만나게 하심으로 어디로 가야할지를 가르쳐주셨던 것입니다.
만약 그 애굽 소년을 지나쳤다면 뒤쫓는 것이 힘들었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얻게 하심으로 뒤쫓아갈 수 있는 길을 인도해 주셨던 것입니다. 아말렉 족속에게는 여자, 어린이, 가축 등 많은 약탈물이 딸려 있었기 때문에 진행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따라서 다윗 일행은 애굽 소년의 안내로 쉽사리 아말렉 족속을 따라잡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말렉 족속들은 승리에 도취하여 방심한 상태에 여기 저기 흩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경계심을 푼 상태에서 모두 정신없이 먹고 마시며 취하기 때문에, 다윗의 기습 공격이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과 아말렉 간의 접전은 새벽 무렵부터 그날 저녁 무렵까지 하루 동안 진행되었습니다. 이는 다윗이 저항하는 아말렉 족속을 얼마나 철저하게 진멸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윗의 기습 공격을 당하여 400명만 약대를 타고 도망침으로써, 간신히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다윗은 아무 것도 잃은 것이 없고 오히려 양 떼와 소떼들을 다 찾아왔고 전리품들도 가지고 왔습니다. 가장 피곤하고 지친 다윗의 일행들이 이렇게 모든 것을 찾아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으니 육신의 힘까지돟 생겨났던 것입니다. 그들이 다 찾아서 돌아올 때 피곤하다고 출전하지 못한 이백명이 머물렀던 브솔 시냇가로 왔습니다.
그들이 승리하고 돌아온 다윗 일행들에게 문안하였습니다. 이에 다윗과 함께 갔던 사 백명이 다윗에게 이런 제안을 합니다. 함께 가지 않았던 이백 명의 사람들에게는 처자만 데리고 가게 하고 도로 찾은 물건들을 주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다윗은 우리가 다 창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고 우리를 공격했던 사람들을 우리에게 붙여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도 똑같이 분배해야 한다고 합니다. 다윗은 사랑을 얻는 일에 탁월하였습니다.
\다윗이 시글락에 이르러 13명의 친구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소와 양과 금과 은으로 선물을 보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고 부언설명을 합니다. 다윗이 이 전쟁을 모든 것을 다 찾아오고 승리하였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다윗의 일행 뿐만 아니라 그들의 전리품을 선물하였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다윗의 정치 철학은 보복 정치가 아니라 보은 정치였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람을 얻는 일에 힘썼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쫓기는 신세에서도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육백 명이 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사람들을 얻는 데 탁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생 최악의 날에 꼭 기억해야 할 세 가지가 있습니다. 원망의 쓴 뿌리를 키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격려해야 합니다. 어떠한 상황애서도 사람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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