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세상의 일을 하셨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일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30년 동안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이 30년 동안의 목수의 일이 예수님의 3년 동안의 공생애를 위한 준비의 기간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1. 예수님은 일상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거룩한 삶을 사셨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교회 활동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일은 세상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위기 19장 2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2. 거룩이란 어떤 장소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인 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거룩을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봉사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룩은 활동이 아니라 관계입니다.
레위기 19장 3절입니다.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안식일, 오늘날은 주일을 지키는 것 그 자체가 거룩이 아니라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나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3. 주일은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날입니다. 거룩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 하나님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레위기 19장 5-7절입니다. “너희는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고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셋째날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셋째 날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기쁘게 받으심이 되지 못하고.” 화목제물을 드리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화목 제물 중 감사제로 드린 제물은 제사 당일까지만 먹을 수 있으며 이튿날까지 남은 고기는 불태워야 합니다(레 7:15). 반면 화목제물 중 서원제와 자원제로 드린 제물은 그 이튿날까지 먹을 수 있었으며 삼일째 되는 날은 불살라야 합니다(레 7:16).
성도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방법과 규례를 그대로 준수할 때 가능합니다. 또한 제사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제물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4.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도록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고 하나님의 심정을 헤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관계가 중요합니다.
거룩은 또한 대인관계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레위기 19장 3절에 보면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부모를 경외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요 그것이 거룩입니다. 유대인들의 교육 지침서에는 다음과 갈은 내용이 있습니다.
먼저 랍비가 이렇게 질문을 합니다. "자녀가 마땅히 부모에 대하여 가져야 할 공경이란 어떠한 것이뇨?" 그러면 다음과 같이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부모님의 뜻을 거스리거나 부모님의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니요. 또한 부모님의 말씀에 반박하거나 그 허물을 들추어내는 것도 아니며, 살아계실 때는 물론이요 돌아가셨을 때도 부모님의 존함을 그 이름으로 부르지 아니하고 대신 '제 부친'(모친) 혹은 '어르신‘으로 부르는 것이며, 또한 물질적으로도 성심껏 보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6-17절입니다. “너는 네 백성 중에 돌아다니며 사람을 비방하지 말며 네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너는 내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지 말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5. 거룩은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타인을 험담하며 비방하는 것은 공동체를 깨뜨리며 거룩하지 못한 것임으로 결코 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보다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세워주는 말로 은혜를 끼쳐야 합니다(골 4:6).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타인을 궁지에 몰아넣거나 입장을 난처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거룩하지 못한 일입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웃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레위기에서는 그것이 거룩하지 못한 모습이라고 책망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을 살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에 대해서 현명한 방법으로 바로 잡아 주는 것이 거룩입니다(마18:15-17).
레위기 19장 13절입니다. “너는 네 이웃을 억압하지 말며 착취하지 말며 품꾼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성경은 갑과 을의 관계를 통해서 사회적인 약자나 가난한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것은 거룩하지 못한 모습입니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월급을 제때에 주지 않고 미루는 것은 올바른 크리스찬의 모습이 아닙니다.
거룩은 대신 관계뿐 아니라 대인 관계를 통해서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물 관계를 통해서도 거룩이 나타나야 합니다. 기독교라는 이름을 걸고 임금을 착취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최대한 직원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교회에 헌금을 많이 하면서 직원들의 임금을 필요한 만큼 제공하지 않는 것 역시 도둑질입니다.
레위기 19장 36절입니다.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에바는 고체의 무게를 재는 단위로서 1에바는 약 23리터에 해당합니다. 1힌은 액체의 무게를 재는 단위로서 6/1에바는 약 3.8리터에 해당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많이 모아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장사할 때 공정한 추와 저울을 사용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사업을 할 때에도 좋은 물건을 정량에 맞추어서 다른 것을 섞지 말고 제품을 만들어야 합니다. 선교 사업한다고 좋지 않은 물건을 시중보다 비싸게 파는 것은 지향해야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바자회를 하지 말고 구제금 명목으로 기부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돈을 버는 목적이 분명해야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만 돈을 번다면 그것은 신앙이느이 구별된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돈을 버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긍극적으로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먹거리를 위한 사업을 한다면 사업이 잘되면 잘 될수록 많은 사람들의 건강에 도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 잘못된 먹거리 사업으로 잘 되면 잘될수록 많은 사람들의 건강을 위협한다면 정말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거룩이란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사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세상 가운데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이지 격리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자는 세상에서 착한 행실을 통하여 선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거룩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신앙생활에서도 물론 나타나야 합니다. 무엇보다 대신 관계를 통해서 신앙적인 성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대인관계를 통해서 거룩한 삶의 모습이 나타나야 합니다. 대물 관계를 통해서 가정과 일터와 사회를 포함한 삶의 전 영역에서 거룩이 표현되어야 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향력으로 남는 교회 (1) | 2024.12.18 |
---|---|
거룩한 삶으로 나타나야 한다(레위기 19:19-37), 김덕선 목사 (2) | 2024.12.18 |
예수님은 왜 비유로 말씀하셨을까? (마태복음 13:10-15), 김덕선 목사 (1) | 2024.12.17 |
보화와 진주의 비유(마태복음 13:44-46), 김덕선 목사 (1) | 2024.12.17 |
인생 최악의 날 꼭 해야 할 세 가지(사무엘상 30:6-8), 김덕선 목사 (3) | 2024.1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