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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노인 문제

by liefd 2024.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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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장 서 론

 

 제 1 절 문제제기와 연구 목적

 

 1. 문제제기

 우리 나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유교적 전통 문화의 영향 아래서 가부장적 대가족 제도를 존속시켜 왔다. 그래서 우리 노인들은 친애 경로사상 아래 자녀에 의하여 부양 받았고 사회로부터도 존경을 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산업화 사회의 도래로 인한 생활 구조의 변화와 인간수명의 연장, 가치관의 전도 등으로 앞으로 노인 문제는 보다 어려운 국면으로 번지게 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노인에 대한 관심은 범세계적으로 사회 문제화 되어있다.

 

 비록 노인들의 정력은 쇠퇴하고 육신은 민활하게 움직이지 못하지만, 왕성한 판단력과 풍부한 경험을 십분 활용함으로써 가정과, 사회와 국가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긴급한 것은 노인을 푸대접하는 일부 잘못된 풍조를 몰아내는 일이다. 뿌리 없는 나무는 살지 못하는 법이다. 아무리 세태가 변하고 고도의 산업화와 발전을 도모한다고 하더라도 노인 문제에 대한 방관과 회피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교회도 다른 부서에 비하여 노년부에 대한 관심과 활동이 미약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평생교육의 장으로서 노인 문제에 대하여 다각적으로 검토하여 착실한 계획을 세우고, 노인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부서를 속히 마련하여, 보다 알찬 노후 생활을 기약할 수 있는 복지 시설을 갖추도록 힘을 모두어야 하겠기에 여기에서 다루어 보고자 한다.

 

 2. 목적

 

 경제 성장은 경제 그 자체의 변화뿐 아니라 사회적 변동을 수반한다. 그리고 이 사회적 변동은 기존 사회 질서체제를 붕괴시키고 새로운 형태의 사회체제를 지향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갈등과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충격에 대한 극복과 새로운 질서에의 적응은 기존 질서에 익숙한 노인 층일수록 어렵다. 따라서 노인문제가 야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사회의 변동으로부터 일어나는 노인문제의 양상은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표현되는 현대화 과정에서 사회구조의 급진적인 변화로 인해 노인이 사회 적응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어,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활동하기가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둘째로는, 대가족제도의 붕괴와 핵가족제도의 일반화로 가정 내에서의 노인의 지위가 날로 저략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는, 서구식 물질문명의 직수입으로 인한 동양윤리와의 갈등 속에서 신세대와 구세대간의 가치관의 차이가 심화되어 가는 한편, 종래의 유교적 효와 가정에 대한 개념이 크게 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네째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신체적으로 오는 건강상의 문제점등이다.그러나 교회차원에서는 이에 대한 아무런 관심이나 반응은 없었던 것 같다. 아직도 교회 차원에서 행하여지는 노인에 대한 관심은 늘 반복되는 어버이 주일을 기하여 기독교적 행사로써 표명할 뿐이고,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하지 못할 뿐아니라 아무런 대책도 없다시피한 것이 오늘날 교회의 현실이다.

 

이러한 교회 현실에 대한 인식을 통하여 본 논고에서는 노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참여 방안을 다루어 보고, 노인을 위한 목회적 차원의 방향 모색을 정립하여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 대한 교회의 올바른 방향 설정과 더불어 그들의 영혼을 구하며, 전도하며, 교육하고 인도하는 구체적 방안을 연구 제시하고자 한다. 평생교육의 장으로써 노인문제에 대하여 다각적인 검토와 착실한 계획을 세우며 노인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부서를 속히 마련하여 교회적 차원에서 급증하는 노령 인구에 대한 베려와 다가오는 고령화 사회에 교회가 해야 할 참다운 노인 목회에 대처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러한 노인문제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노인 선교 및 노인 교육에 구체적이고도 교회가 참여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해 보고자 하는 것이 본 논문의 목적이다.

 

 3. 목 표

 

 노인문제는 일차적으로 경제 문제에서부터 발생한다. 대체로 자신의 노후생활 대책을 스스로 준비해두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생계 대책은 노인문제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며, 다음으로 질병문제, 주택문제 등이 있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그들 스스로의 책임 하에 해결해 나가는 노인의 수는 극히 제한되어 있다. 또한 자녀라 할지라도 노부모의 시중을 위하여 자신의 생활을 희생할 수 없는 것이 고도 산업화 사회의 특징이다. 그래서 노인문제는 개인이나 가족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에서 책임을 져야하는 사회문제로 발전하게 된다.

 

 선진 복지국가들에 있어서 경제문제로서의 노인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노령연금, 주택, 병약자를 위한 보호시설 서비스 등 모두가 정비되어 있으므로 경제문제는 별 염려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진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인의 자살문제를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 것인가? 복지국가의 모범이라 할 수 있는 영국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노인 자살은 하나의 사회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문제와 달라서 공적인 부양, 또는 노인대책 등이 제아무리 잘되어 있다해도 피할 수 없는 심층문제이다. 개인의 힘, 사회의 힘으로도 이러한 현상을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보다 고차원적인 종교적 문제로 접근할 필요성이 여기서 발생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우리 나라의 노인문제의 현황을 살펴보고 한국교회가 이를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제시하려는 것이 본 논문의 목표이다.

 

 제 2 절 연구의 방법과 범위

 

노인문제 연구란 여타 사회문제 일반이 그러하듯이, 사실상 이론이기보다는 현실적인 과정(process)이며, 운동(movement), 혹은 방법(method)이다. 이러한 현실적인 과정에서, 본 논문에서는 다음과 같은 제한된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노인문제 연구 이론과 목회학이 서로 다른 학문의 범주이기에 둘을 연결시키는데 있어 내용 및 방법론에 세련됨을 구사하기가 난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 연구자는 노인문제에 대한 교회의 자세 확립이 매우 중요한 과제라고 판단하고 이를 시도해 보기로 한다.

 

동시에 본 연구자는 이 논문을 쓰면서 항상 교회가 어떻게 오늘날 사회, 특히 한국사회에서 자기의 사명을 다할 것인가를 늘 염두 해 두었다. 본 논문에서는 주로 문서를 통한 자료를 취급하려 한다. 본 논고가 앞으로 많은 분들의 연구에 자극제가 되고 한국교회가 노인문제에 대하여 조그만 도움이라도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필자는 우선 노인의 전체성과 노인의 특성을 제시함으로써 노인의 개념을 파악하려하며, 성경에서 제시한 노인의 개념을 신학적, 기독교 윤리학적으로 파악하려 한다. 이를 기초로 하여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노인의 문제에 대하여 분석하고 그러한 문제에 대하여 과연 교회는 어떠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는가를 결론적으로 제시하려 한다. 오늘의 교회가 노인문제를 등한시해 왔음을 솔직히 시인하고, 노인 복지에 깊은 관심을 가진다면 사회에서 경영하는 어떤 단체나 기관보다 실제적이며 구체적으로 보다 효율적 가치를 나타내리라고 본다.

 

제 2 장 노인의 개념과 특성

 

제 1 절 노인의 정의

 

노인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노인이란 단순히 나이만을 가지고 구별할 수도 없으며, 또한 사회의 경제적, 문화적 배경과 전통과 습관에 따라 노화과정의 개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노인은 생물학적, 심리학적으로 갖가지 개체의 차이를 갖지만 대개 젊은 세대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보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일정한 부분에 있어서 쇠퇴가 현저한 사람을 말한다. 최근에는 노인을 연령이 65세 이상인 자를 지칭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경제적 활동에서 은퇴하고 있는 계층을 말한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65세를 넘으면 경제활동을 중지해야 할 신체적 한계를 보이므로 대체로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보고 있다. 그렇지만 나이를 한계로 하여 노인을 구분함은 쉽지 않고 또 그 의견도 구구하다. 일반적으로 노인은 생리적, 신체적 기능의 감퇴와 더불어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나 개인의 자기유지 기능과 사회적 기능이 약화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노인복지법(1981)에서 규정하고 있는 65세 이상자를 노인으로 지칭하는 것이 일반된 관례이다.

 

 제 2 절 노인의 성경적 정의

 

 1.성경에서의 노인의 개념

 

성경의 자료들은 노인으로 간주될 수 있는 나이를 제시한다.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왕들이 누린 수명들은 정상적인 인간의 수명을 보여준다. 또한 시편기자는 시편 90편 10절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 하였고, 레위기 27장 1-8절의 서원에 관한 법령을 보면 60세를 장년과 노년의 구분점으로 삼고 있다. 남자든 여자든세를 넘는 사람의 서원 값이 20세에서 60세까지에 속한 사람의 것보다 적다는 것은 60세 이후의 사람은 쓸모가 적어 졌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인지도 모른다.3)

 

 구약과 신약에서 노인의 정의를 어원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구약

 

 구약에서 노인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언급한 곳은 없지만 노년(old age)과 관련된 말씀은 약250여 곳이나 된다.4)

 노인에 해당하는 구약 히브리어는 동사 자칸(ן㰗ˆ㰕¾)에서 파생되고 있다. ‘자칸’은 ‘수염이 나있다’는 뜻으로 수염이 없는 사람과 반대되는 나이들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창18:12-13,19:31)5)

 

명사' 자칸'은 ‘수염’이라는 뜻이고 창세기 28장 10절의 조켄(zogen)과 창세기 21장 2절과 7절 제쿠님(zègunim)은 ‘나이 많이 든’이며 지크나(zignâ)는 ‘나이들어 가는’뜻으로 창세기 24장 36절과 열왕기상 11장 4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켄'이 바로 ‘수염이 나있는 사람’(삿 19:16-22, 삼상 28:14), ‘늙은 사람’(창 44:22)으로 오늘날 노인을 칭하는 말이다.6)

 동의어로는 '셰바'로 ‘백발’, ‘센 머리카락’이라는 뜻으로 노인을 칭한다.(삿 8:32, 호 7:9).

 '야세스'는 ‘나이든’.‘노쇠한’(욥 15:10, 대하 36:17)을 의미하며, 야시스(yãśĭś)는 ‘나이들어 존경할 만한’, ‘덕망있는’(욥 12:12)이라는 뜻으로 노인을 공경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을 의미하고 있다.

 그러므로 구약성경을 중심한 히브리어에서는 주로 노인을 모발 및 수염으로 희어지고 기력이 쇠퇴하여지는 60-80대를 지칭하고 있다.7)

 

 2) 신약

 

신약 헬라어에서는 노인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8)

 ① 게론(γερων)은 노인을 자녀 출산이 불가능한 늙은이(old man)로 묘사한다.(요 3:4)

②게라스(γηρας)는 노인을 늙은 나이(old age)로 표현했다.(눅 1:36)

③프레스부테스(πρεσβυτης)는 노인을 늙은이, 연장자(눅 1:8, 딛 2:2, 몬 9)의 뜻으로 자녀 생산의 능력이 없는 생리적 노령과 연령적으로 연장자를 말하고 있다.

 

 2. 노인에 대한 성경적 이해

 

 1) 구약적인면

 

 성경에서 장수는 축복의 개념이며(창 15:15, 출 20:12,등), 노인은 지혜의 상징(욥 15:10, 신 32:7)으로 공경하라고 명령한다. 또한 노인의 징조는 레위기 27장1절부터 8절에 나오는 서원에 관한 법령에서 60세를 장년과 노년의 구분점으로 삼는 것을 볼 수 있다.

 

 성경은 노인에 대한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두 가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긍정적인 면으로는 장수와 축복, 존경과 지헤의 상징으로 나타나며, 부정적인 면에서는 신체의 노쇠에서 오는 연약함과 우울한 모습이다.

 

 구약에서 노인은 첫째, 존경의 대상이다.

 

앞에서 살핀 것처럼 '야세스'라는 히브리어는 ‘나이든’, ‘존경할만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십계명의 다섯번째 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신 5:16, 레 19:3)는 말씀은 노인의 사회적 보호가 가족에 의해 보호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나타내주고 있다.

 

 늙은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대접을 받으면서 사회에서 공경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레위기 19장 32절에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은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고 하였다. 잠언 23장 22절에서는 “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노인을 공경하고 그들에게 공손하지 않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고, 부모를 공경하는 데서 하나님은 경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국가적인 차원에서는 노인을 존경해야 할 것을 가르치고 계시는데, 신명기 28장 50절에서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돌아보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시며 노인을 돌보지 않는 민족을 흉악한 민족이라 하셨다.

 

 둘째,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다.

 

이것은 노인들의 오랜 경험에서 오는 것으로서 그들의 가르침에 따라 살아 가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잠언과 전도서의 배후에 있는 지혜의 교사들은 대체로 노인들이었다.

 

 지혜는 노인들의 유산인 것이다. 또한 장로는 노년의 권자를 말하는 것으로 종교적 기능에서 지도자였던 것은 물론 가족과 부족의 장(長)위치에 있었고, 싸움의 지휘관으로, 재판관으로, 권면자로, 그 공동체의 핵심을 이루고 있었다. 이것은 노인들의 오랜 경험과 지혜 때문이었다.

 

신명기 32장 7절에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이르리로다”라고 하였다. 열왕기상 12장 6-8절까지를 보면 르호보암왕이 그 부친 솔로몬의 생전에 충성했던 노인들의 교도를 버리고 자기와 함께 자란 소년들과 의논함으로 나라를 잘못되게 인도하고 쇠퇴의 길로 갔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세째, 노인은 기쁨과 축복이었다.

 

 잠언 16장 31절에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고 하였고, 잠언 20장 29절은 “젊은 자의 영화는 그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운 것은 백발이니라”고 하였다. 노인의 백발은 영광스러운 면류관으로 참다운 기쁨이 되며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인 것이다. 장수는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것으로(신 4:40, 5:33, 11:21, 22:7) 히브리 사회에서 노인은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중보자의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놀랄 만한 위치에 있었다.13)

 

 노인이 축복의 말을 해줌으로 자녀들에게 축복이 임하였다(창 47:29, 49:33). 이것은 곧 노년은 고통이나 소외의 시기가 아닌 축복과 기쁨의 모습을 나타내는 시기라는 것을 암시한다.

 

 네째, 노인은 가르쳐야 하는 영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시편 17편 18절에서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권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는 나를 버리지 마소서”라고 고백한 것처럼 노인들만이 할 수 있는 독특한 사명이 노인들에게 있는 것이다. “늙어도 견실하며 진액이 풍부하고 빛이 청청하다”라고 노래한 것처럼 성경은 늙음을 퇴화나 무기력해 가는 현장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는 눈이 트여 원숙한 인격적 성숙과 영적 성숙의 시기임을 말해준다.

 

 2) 신약적인면

 

 신약성경에서는 첫째, 노인은 주의 진리를 가르쳐야할 특권과 사명을 지닌다.

 

에베소서 6장 1절부터 4절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고 하였다.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 노인과 젊은이의 위치와 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부모는 자녀들을 주안에서 진리로 양육시켜야 할 특권과 의무를 부여받는다. 디도서 2장 4,5절에서도 늙은 여자들이 젊은 여자들을 훈계하는 교육적 사명을 밝히고 있다.

 

둘째, 노인은 공경되어야 한다.

 

노인을 대할 때 부모에게 하듯 공경할 것을 가르치는 디모데전서 5장1절에서 9절까지를 보면 늙은 과부의 자녀와 손자들이 어떻게 그 어머니와 할머니를 공경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있으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늙은 과부를 경대하고 과부로 명부에 올려 대접하라고 말하고 있다. 디모데전서 5장 4절에서 자녀와 손자들이 노인에게 공경함을 가르치고 있다. 초대교회의 늙은 과부들을 구제하는 모습은 모두가 노인을 공경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본보기에 불과하다.

 

 세째, 노인은 영적 성숙의 시기이다.

 

 노인은 육체적으로는 노쇠하지만 신앙의 깊은 경지, 즉 체험적인 신앙과 변함없는 인내로 영적 성숙함에 이르는 시기인 것이다. 때문에 초대교회에서는 장로와 감독의 직분을 노인들에게 맡겨 모든 사람들의 사표가 되게 하였다.

 

 또 다른 예는 디모데전서 5장 5절에 “참 과부로서 의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라고 하여 가정의 모든 일에서 벗어난 여자노인들을 더 많은 시간과 힘을 교회와 기도생활에 쓸 것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장 16절에서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그의 육체적 노화에 빗대어 영적인 성숙을 고백하고 있다. 그리고 성경은 우리의 육체와 관련하여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다”고 말씀한다.육체적인 노쇠에 낙심할 일이 아니다. 영적인 성숙과 신앙의 열매를 맺을 때가 바로 노인의 시기이다.

 

 3) 기독교 윤리적 차원의 고찰

 

노년은 한 삶의 생애에 있어서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감퇴되는 죽기전 10년내지 20년의 시기이다. 산업혁명과 핵가족제도의 대두로 말미암아 노인에게 최소한의 생계비와 더욱 최근에는 의료혜택을 보장해 주는 경제적 제도가 여러가지 형태의 재정적 지원에 의해 제공되었다. 하지만 경제적 보장만이 노인들에 대한 대책의 전부는 아니다. 여전히 절실한 것은 종종 유용한 작업, 의도한 목표들, 의미있는 인간 상호간의 관계들과 같은 생의 의미를 발견의 필요성이다.

 

 노쇠의 원인에 대한 연구가 진보해온 현재 다음 10년안으로 인간의 노년기는 적어도 10년 정도위로 연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엄청나게 증가된 인구는 경쟁력이 없는 노인들에게는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의학은 생명을 연장시키는 수단들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고질화된 죽을 병에 사로잡힌 삶이란 본질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며, 이러한 생명의 연장은 뒤에 남겨진 자들에게 재정적으로나 정서적으로 극히 값비싼 희생을 치르게 한다. 유대 기독교 전통에 있어서의 근본적인 생명 보존의 필요성이 오늘날에는 의문시되어야 한다.

 

 죽음은 현대 의학에 의해 주장되듯이 환자의 노파 사진에 의해서 보다는 “마지막 숨”이라는 말로 정의할 때 더욱 절실하다. 우리들은 죽은 자들과 함께 있으면서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생을 종결짓게 하는 병에 대비하도록 도와야 한다. 죽는 자의 “평안한 임종”을 방해하는 무익한 기술적 간섭들과 제도적 관행들은 우리가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중지할 줄 알아야 한다.

 

 이같이 함으로써 생명을 보존하는 기독교의 전통이 생명 자체가 절대적 가치를 지님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한다. 생명의 길 즉, 생명의 존엄성의 핵심적 논쟁점이 되는 것이다. 이 점을 기독교 신앙은 강력히 말해야 한다. 생명을 하나님과 더불어 살 미래의 실존에 대한 짧은 예비로써 곧 “사라질 안개”로 제시되며 노년은 이러한 다른 삶에 대한 전주곡으로 제시되기 때문이다.(야고보서 4:14, 요한복음 12:25)

 

모버그(David.O.Moberg)와 기타 여러 사람들의 연구들은 기독교적 신앙이 노년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기독교가 제공하는 것으로는 삶의 의미에 대한 심원한 개념과 성도들의 친교에서 오는 삶의 위로이다.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각 자가 또한 서로의 지체가 되는 것이다. 노인은 모든 다른 성도들과 똑같이 목회되어야 하며 기도를 통한 노인들의 봉사는 존경과 감사로 여겨져야 한다.

 

참으로 노인은 교회 공동체에 매우 귀한 인생관을 제공해 준다. 장년은 자손과 재산, 높은 야망과 큰 포부로 채워진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노년은 건전한 판단, 생의 의미에 대한 재평가, 물질적 가치에 반대되는 정신적 가치를 재확인 시켜준다. 사회가 노인들을 소외시킬 때 교회는 노인에게 봉사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렇게 할 때 주님 앞에서 교회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본 절에서는 성경에서 노인의 개념과 성경에서 말하는 노인에 대한 이해와 기독교 윤리적 차원에서의 노인에 대하여 고찰해 보았다. 성경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민족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 것을 교훈 삼아 우리 사회도 노인에 대한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봉사와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장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주어진 것으로 노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며, 가족과 사회로부터 존경받아야 할 시기인 것이다. 교회는 이러한 성경을 근거로 노인에 대한 새로운 시각으로 노인들을 성경적, 기독교 윤리적 안목으로 흡수하여 하나님의 영광으로 주어진 노년을 보람있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제 3 장 노인과 사회문제

 

현대화는 보건 및 의료기술의 발전, 생산기술의 발전, 대중교육의 확대, 도시화를 핵심요인으로 하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현대화의 요인들이 인과적으로 다른 요인들을 유발시켜 사회에서의 노인의 지위를 약화시키고 있기 때문에 현대화의 정도가 높을수록 노인의 지위는 낮아지게 된다. 노인의 지위를 낮아지게 하는 요인들은 결국은 노인문제를 유발시키는 직접적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급속한 현대화의 과정 속에 있는 우리사회에서도 현대화의 요인들이 인과적 과정을 통하여 역할상실 및 여가시간 문제, 수입감소 및 문제라는 4가지의 유형의 노인문제를 유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도시화는 지역간의 이동과 핵가족화를 촉진시켜 세대간에 지리적으로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한편 도시화는 계층간의 이동도 촉진시켜 심리 사회적으로 거리감을 생기게 하여 결국은 노인이 자녀세대로부터 소외되고 고립되는 문제가 초래된다.

 

 제 1 절 보호대상자인 노인

 

 노인이 되면 신체적으로 노쇠해지며 두뇌가 점점 둔해지고 기억력도 감퇴됨에 따라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살 수 없게 되어진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전부다 그런 것은 아니다. 70세 이상의 노인 중에도 젊은이 못지 않게 활발히 일을 계속하고 있는 예도 적지 않다. 사람이 나이 많다는 것은 장수한다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사정에서나, 사회적, 정치적인 면에서 특별히 고려되어야 할 문제들이 적지 않다. 즉 노후의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직장의 정년제 연장도 필요하지만 노후 연금제도를 조속히 폭넓게 실시하여 산업화 사회에 적응하는 노후의 생활 대책이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노인이 병들었을 때 누구나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는 등 여러가지 해결해 나가야 할 일이 너무나 많다. 이와같이 노인들은 소득이나 의료보험 이외에도 사회적이 보완 등 여러가지 문제점들이 남아 있다. 과거와 달이 개인주의, 이기주의가 우리 사회에도 물들어감에 따라 자녀가 부모를 모시는 마음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이래서 노인들은 가정에서부터 점점 소외당하게 되었다. 이 사회를 원만하게 하려면 소외계층이 없이 모든 지혜와 힘을 합쳐서 공동목표 달성에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제 2 절 현대사회의 노인 문제

 

 1. 노인인구증가

 

한국인의 평균수명과 노인인구는 급속히 성장하여 왔고 이같은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1960년에 남자 53세와 여자 58세의 평균수명이 1990년에는 각각 67세와 75세로 되었고, 2000년에는 71세와 77세로, 2021년에는 75세와 79세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사회에서는 법적으로 65세를 노인 연령의 기준으로 하고 있다. 60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은 1960년에는 5.5퍼센트였는데 1990년에는 7.7퍼센트가 되었고, 2000년에는 10.7퍼센트, 2021년에는 17.7퍼센트가 될 것이다. 65세 이상의 노인인구 비율은 1960년에는 3.3퍼센트에 불과했는데 1990년에는 5.0퍼센트가 되었고, 2000년에는 6.8퍼센트, 2021년에는 13.1퍼센트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한국사회는 200년부터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같이 국민의 평균수명과 평균여명이 크게 연장되어 노인의 수와 비율이 크게 증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2. 핵 가족화

 

 우리의 전통적 사회의 구조는 논경사회에서의 생활수단이었고, 가부장적 가족제도는 봉건사회의 산물이다. 이와같은 제도하에서 노인은 가정을 가훈, 가교 등으로 다스리고 종족들을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은 예법으로 통솔하여 가문을 번성케하고 어린이들을 다스리는 가장으로서의 권위와 존엄을 가졌었다. 그러나 공업사회가 발달되자 가정과 직장이 분리되고 이 공업화, 산업화, 도시화는 어버이에게서 가부정적인 권위를 빼앗아가 버리게 되었으며 핵가족의 기능은 부부와 아이들 우선의 가치관으로 유지되는 사랑의 보금자리며 자식들의 양육의 장으로 단순화하게 되었다. 이것은 가족개념의 변질과 집의 역할 내지 기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는 가족구조의 진전은 노인이 가족으로부터 소외되고 마는 것이다.

 

 핵가족의 특징은 자유결혼, 소가족, 기혼자녀와 부모 별거 신거제(Neolocal system), 우미제, 균배상속, 독립생계, 자녀의 부모부양책임 면책 등이 보편적인 데다가 노년층 문제는 주로 물질적 복지에 부심하고 있기 때문에 세대간의 인간적 사회적 세대의 단절로 노인층에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핵 가족의 추세는 효도, 동거, 존경, 부양 등의 의식의 약화 노인의 권위 약화와 급격한 도시화, 산업화, 경제적 빈곤까지 겸하여 노인 문제를 지나 가정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핵 가족의 문제는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더욱 심각하며 1970년대의 경제 성장과 격심한 사회변동은 많은 사람을 대도시로 유입시켜 왔고 유입된 대다수의 수가 단신지층이며 이들이 결혼하여 함께 살 수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핵 가족에 대한 문제는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하며 도시화에서 오는 핵 가족의 최소의 문제를 보완하는 길은 현대적 효의 개념의 정립과 오직 신앙에 의한 해결밖에 없다고 할 것이다.

 

 3. 효의 문제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충,효를 민족의 기본정신으로 삼고 숭상해 왔다. 그러나 급속한 사회의 변천으로 전통사회에서 작용해오던 노인의 역할은 점점 감소되고 효 자체에 대한 개념과 그 가치가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현행은 가부장제도가 만들어낸 미풍양속인데 이러한 가정적 효행도 고도성장 정책이 올린 자본주의에 의해 점점 소멸되어 가고 있다.

 

동양적인 면에서 효는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를 규정짓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규범을 말한다. 부자관계에서 출발한 효의 개념은 두루 통념될 수 있는 기본 윤리가 되었고 “효”란? 어려서부터 부모를 섬겨서 가도를 바로잡고 자식된 도리와 가족된 책무를 다하고, 연령이 장성함에 따라 임금을 섬겨서 충성을 다하고, 자신이 출세하여 후세에 이름을 날려 성현으로 존경을 받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

 

 다음은 효의 의미를 현대에 맞게 재해석한 내용이다. 효를 인간사회의 영속적인 기본윤리로 해석하며, 분명히 인간이 규율하는 질서로 전제할 때, 부모를 잘 섬긴다는 것은 부모의 뜻이 되고 이 원리는 상향적으로 국가에 충성을 다한다는 충의 윤리의 보국윤리로 승화되는 동시에 하향적으로는 자녀를 올바르게 양육한다는 자애로 표현되어 수직성의 종적 사회 관계윤리로 나타난다. 또한 효의 윤리가 수평성 구조 사회 관계윤리로 승화되어 사회적으로 존경하고 우애롭고 생활을 영위하여 간다는 데의 윤리 또는 선으로 표현되어 교의윤리가 되며, 가정적으로 부부간의 화목으로 나타나는 사랑의 윤리인 협화윤리로 나타난다. 효는 모든 윤리체계의 근본인 것이다.

 

 오늘의 “나”라는 존재가 단지 부모와 이어지는 끈만이 아닌 나의 조상들, 나아가서는 단군의 홍익인간, 경천애인의 정신까지 이어져, 그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는 자세를 가지게 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충효에 어느 정도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은 과거의 행동규범을 그대로 현실에 적용 시키려는데서 오는 저항 때문이지 본질적으로 충효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효를 정착,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이 교육에 의하여 주도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즉, 교육은 인간답고, 바람직한 인간으로 만드려는 가치를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교육을 통해서 바람직하게 개인은 성장되고 이것은 국가, 사회발전을 위한 원동력 이 된다.

 

 기독교에서의 효의 개념을 살펴보면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효(Filial piety)는 히브리어로 “카바드”, “야라”, “샤마”란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 그 의미로는 효는 부모에 대한 자식의 바른 태도 또는 부모를 섬기는 도리를 말한다. 성경 가운데 효라는 말은 딤전 5:4절에 단 한번 나오는 데 “유세베오”(eusebeo)이다. 그러나 “카바드”(cabad cnf20:12), “티마”(tima, 엡 6:2 마 15:5)등이며 경외하라(yaed, 레19:3), 순종하라(청종하라)(Sama, 잠 1:8, 4;1) 등과 같은 표현으로는 여러 곳에 나타나 있다. 성경적 효의 개념은 신앙교육을 통해서 우리사회와 교회에 뿌리 밝혀야 할 것이다.

 

 

 4. 정년제(퇴직)

 

정년제란 종업원의 퇴직조건을 정한 제도로서 하나의 노동계약을 해제하는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노령화로 인하여 생기는 노인문제는 거의 대부분 퇴직, 실업과 관련되어 있다. 생계의 수단인 소득은 노동을 통하여 획득되고, 그러한 노동과 사회적 존경의 주요한 원천이 되며, 자아감을 성취시키는 일차적 수단이 된다. 다시말해, 직업을 통하여 사람들은 생계의 수단을 벌어들일 뿐만 아니라, 자기의 사회적 지위를 강화시키며, 인간 상호관계를 유지시킨다.

 

 직업의 역할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므로 만약 퇴직이나 실업 상태가 되었을 때, 본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퇴직이라는 것은 근로자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을 의미하며 역할상실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퇴직연령은 공무원, 교원, 군인의 경우는 법정화되어 있으나 일반 민간기업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또한 퇴직연령도 5급 이상 공무원이 61세이고 그 이하는 55세이며, 회사원의 경우는 관리 및 사무직이 주로 55세이고, 기술 및 생산직은 50세이다.

 선진국의 법정퇴직연령이 대부분 65세 (최근 70세로 연장됨)인데 비하면 우리나라의 경우는 5-15년 이상의 조기퇴직으로 인한 역할상실로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

 

 정년제에 나타나는 일반적인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①정년제가 너무 다양하다. 그러나 어느 곳이던 한번 정년되면 실업자및 노인이 되고 만다.

 

 ②현 정년제도의 40-50세가 점차 고령화 사회에 있어서 능력이 있지만 무능력자로 낙인찍히고 만다는 것이다.

 

③정년에 남,여별 계급별 규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은 퇴직 후 20-30년을 역할은커녕 소일거리가 없으니 노후의 생계불안과 더불어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정년문제에 대하여 사회적인 차원에서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다.

 

①직종별로 균형 있는 종합적인 재조종이 필요하다. 이 때에 고령자의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해야 할 것이다.

 

②퇴직을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4-5년 정도의 정년 연폭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③노년에 새로운 일거리를 마련해 주기 전에 종전에 익숙된 업무의 분야를 살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④노인을 고용하는 업체에 대하여 국가로부터 보조 지원과 능동 생산을 지원 받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5. 여 가

 

노인의 여가라 함은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는데 하나는 노령기에 있어서도 일정한 사회적 가정적 역할이 없어 그 역할을 추구하는 도중에 가지는 여유있는 시간을 말하고, 둘째로 자신에 부과된 일정한 역할이 없어 막연하게 보내는 긴 시간을 말한다.

 

 노인의 여가는 크게 은퇴에서부터 죽음이라는 마지막 과업사이의 긴 시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고, 또한 은퇴후 노인들의 계속되는 사회생활 사이 사이의 한가한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노후생활이란 여가생활이고 여가생활은 곧 어떤 활동들을 어떻게 하며 소일을 하고 여생을 보내느냐 하는데 초점이 모아진다고 하겠다. 따라서 노인들에게 있어서 여가활동이란 휴식과 오락 시간뿐이 아니라 직업은퇴 이후의 모든 생활(재취업도 여기에 포함된다)을 망라할 수 있다.

 

 6.여가선용 방안

 

만족한 노후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선 자신의 적성에 알맞은 취미를 개발해야 하며 또한 자신의 생리적 리듬에 알맞은 생활 설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술, 담배, 커피 등 기호식품을 알맞게 관리해 나가면서 여생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러나 노후의 인생관리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년기 현재에 관한 오해와 편견을 버리고 노년기가 의미하는 진실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정력을 쏟을 새로운 대상을 찾아 대리만족의 사회를 마련해야 한다. 즉 욕구발산처를 마련하는 것이다.

 

 ①자신의 취미와 기호를 살려 모든 것을 잊고 부담없이 열중할 수 있는 취미를 찾아야 한다.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도 노인에게는 여가가 많다. 그래서 여가를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것이 노후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해 준다.

 

②배우자와 자녀에게 향했던 관심이 자신의 내부로 취급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인간관계를 개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대상을 찾아 새로운 관계를 맞음으로 써 노년기의 고독과 실의를 극복해야 한다. 그래서 이웃을 자주 방문한다거나 또는 과거에 친교를 맺던 사람들과 동병상련의 기회를 만들어 대화를 갖도록 하는 것이 좋다.

 

 ③새로운 취미를 개발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감을 찾아 직장에서의 전공 분야와 연관있는 취미를 개발하는 것이 좋다.

 

 제 3 절 교회안에서의 노인문제

 

 교회안에서 노인들이 가지는 문제점은 다음과 같이 찾아 볼 수 있다.

 

1. 어떤 노인들은 젊은 교인들로부터 자기들이 축출되고 있다고 느낀다.

 2. 어떤 노인들은 경제적으로 봉사할 수 없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

 3. 어떤 노인들은 옷을 잘 입을 수 없기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

 4. 어떤 노인들은 질병과 신체적 허약 때문에 교회를 떠난다.

 5. 많은 노인들은 교회 안의 변화 때문에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6. 교회 안에서 노인의 역할 때문에 자격에 대하여 갈등을 느낀다.

 

 이런 고민스러운 노인들을 위하여 교회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한국 교회 실정에 지금까지 교회에서 특별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노인들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것을 느끼며 목회를 노인 목회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왔다.

 

 교회안에서의 노인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하여 많은 목회자들은 “재력과 지식과 가정을 가지고 있는 노인들이 많은데, 이분들이 가지고 있는 큰 문제는 가슴속에 있는 문제를 표출안한다는 것이다. 즉, 가정과 내면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을 감춘다는 것이다. 또, 오랜 시간 믿은 신앙이어서인지 믿지 않는 노인들을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고 말하고 있다.

 

제 4 장 노인목회에 대한 교회의 역할

 

 제 1 절 노인을 위한 교회의 사역

 

 1. 성경적 근거

 

교회가 노인에게 관심을 갖고 사역해야만 하는 근거는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 성경은 ‘인간의 존엄성’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가장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복지사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므로 노인 문제는 성경에서 가르쳐 주는 중요한 교훈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가 노인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사역에 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연적 책임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태대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누구든지 인간답게 살 권리를 부여받았으며, 또한 인간의 존재가치는 창조주 하나님께 은혜로 받은 것이지 인간 자신의 산물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추방된다. 하나님과 분리된 죄인이었던 인간이 성육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부여 받았으므로 어느 누구나 회복할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받았다. 이제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부여받은 인간의 존엄한 가치는 누구도 빼앗거나 박탈당할 수 없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인간의 가치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 “무엇을 할 수 있나?”, “얼마만큼의 능력과 기술과 힘을 가지고 있나?”가 인간가치 판단의 기준이 된다.

 

 존엄성보다 행위로 인간을 판단한다. “나는 누구냐?, 나의 목적이 무엇이냐?,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느냐?”라고 하는 인간의 궁극적 문제에 관심을 갖기 보다 행위에 기준을 두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노쇠하여 활동이 감소될 때 인격적 가치도 감소되는 것으로 알아 더 이상 생산적인 힘을 가질 수 없을 때 쓸모 없는 인간, 무가치한 존재로 판단한다.

 우리의 생명의 가치는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에 나이로 인하여 사회에서 소외되고 멸시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젊은 날의 내가 곧 늙은 날의 나다”라는 말은 진리이다.

 

 나이가 들어도 신체적인 외형의 모습은 변할지라도 인간가치는 그대로이다. 그러므로 나이가 들어 몸이 노쇠하여 활동이 감소되고, 삶의 기간이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우리의 노동을 주 안에서 청지기의 직분을 수행하며 떳떳하게 살아갈 책임이 있는 것이다.

 

 노인 공경의 원리는 모세 오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모세의 실정법에 하나님은 약자고 가난한자를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약자와 가난한자에 대한 학대는 하나님에 대한 학대이다.

 

 그뿐 아니라 이스라엘이 지키는 삼대 절기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의식이면서 동시에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를 위한 절기였다. 저절로 자란 수확물은 절대로 거두지 못하도록 하여 가난한 자들고 짐승이 먹도록 했다. 그리고 절기를 지키면서 “노비와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신 16:1-17) 가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절기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의무이다 그런데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의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매 3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일조를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고아와 과부들도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8-29)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십일조의 정신은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그 중심사상인 것이다.

 

 모세 오경의 실정법이 바탕이 되어 예언자들에게도 소외되고 천대받는 가난한자들을 보호하는 정신이 계승된다. 예언자들은 국가의 부정부패,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대하여 준엄한 비판과 독설을 주저하지 않는다.

 여기서 말하는 가난한자, 소외된 자. 약한자가 반드시 노인을 칭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복지 개념에서부터 노인을 공경하고 보살펴주고, 더불어 균형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신약성경의 복지 개념은 예수의 이웃사랑에 바탕을 둔다.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교훈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천국복음의 선포와 때를 같이하여 직접 갈릴리를 두루 다니며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고쳐 주셨다. 예수님은 늘 소외되고, 헐벗고, 굶주린 가난한 자들을 돌봐주면서 몸소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부자들에게는 소유를 팔아 자선을 베풀라 했으며, 소외된 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것이니라”(눅 14:33)고 하였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여자, 가난한자. 창녀, 세리, 죄인, 병자들과 함께 대화하고 식사를 나누면서 사랑을 베푼 것이다. 이들중 노인의 특성에 해당되는 사람은 나이많은 과부, 병자, 가난하여 소외된 억눌림 받은 계층의 사람들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도 외적인 모습과 노쇠로 인하여 불평등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된다. 기독교의 사랑의 원리는 가난한자, 소외된 자에게 관심을 갖고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이것이 모세의 실정법과 예언자들, 예수님의 교훈에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교회가 노인을 위한 사역을 해야할 분명한 근거를 보여주는 것이다.

 

 제 2 절 노인 목회

 

1. 정의

 

 노인목회의 대상은 노인이지만 다른 계층의 목회와 특별한 차이가 없다. 일반적으로 교회에서 청장년들에 대한 목회는 중요시하고 있으나 노인에 대한 관심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다. 교회에서 유초등부, 중고등부, 청장년까지 교회학교의 교육은 체계적으로 실시되고 있으나 노인은 장년부는 일방적으로 흡수되어 노인만의 독특한 목회를 하지 못하고 있다.

 노인의 수명이 늘어나므로 사회 고령인구는 계속 증가되고 있다. 교회내에도 노인들이 점차 많아져 가는데 노인을 위한 목회계획은 빈약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노인도 교육은 받고 올바른 대접을 받으며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노인은 늘 많은 문제에 봉착해 있다. 신체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인한 고생, 경제적 빈곤, 역할상실에서 오는 소외와 심리적 불안감, 배우자와 동료친구들의 죽음, 점점 다가오는 죽음의 문제등으로 불안해하고 있다. 이와같은 노인을 위하여 교회에서 관심을 갖고 도와주며, 가르치고, 친교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획하며, 노후생활을 편안하고 보람되게 보낼 수 있게 실시하고 목회형태가 노인목화라 할 수 있다.

 

 훼버와 하이제는 노인목회를 “노인들이 하나님의 빛속에서 그들의 존재를 경험하며 살도록 도와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리를 포함하고 있다.

 

 첫째, 노인을 북돋워 줘야 한다.

 

노인의 고독감과 역할 상실은 삶의 용기에 영향을 끼친다. 노인이 무엇을 하든지 자신의 존재를 귀하게 여기고 자신감을 갖도록 교회는 배려해 줘야한다.

 

둘째, 노인의 삶의 구조를 개선시켜 주는 것이다.

 

교회에서 모임에 참여하고 활동하므로 은퇴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 건전한 정신건강과 영적 욕구를 충족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한다.

 

세째, 노인에 대한 관심을 크게 가지는 것이다.

 

교회에서 노인에 관심을 갖고 그들과 교제하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생각하면서 적극적인 뒷받침을 해 줘야 한다. 이것은 곧 예수께서 고독하고 소외된 계층에게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교제하고, 함께 생각하면서 식사를 나눈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같이 노인목회는 교회에 노인 뿐 아니라 사회의 많은 노인이 누구에게 차별받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인간으로 대접을 받으며 살도록 그들을 교육하며, 봉사하고, 활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도와주는 목회라 할 수 있다.

 

 2. 필요성

 

노인목회가 왜 필요한가? 이것은 노인에 대한 종교심을 파악하면 알 수 있다. 노인은 종교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이것은 노인을 위한 선교에 긍정적인 비전을 줄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러므로 노인목회의 궁극적인 목적은 노인선교 때문이라 말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과거에 종교에 관심을 가졌던 것보다 더욱 많은 관심을 갖게 되고, 종교적 활동에도 열정적이다. 다만 노인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홀로 소외되어 활동하지 못할 뿐 교회의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싶어한다. 교회에 참석키 위해 누구보다 마음가짐과 옷단장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것도 노인들이라 한다.

 

나이가 많이 들수록 종교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어디 있을까?

 

 첫째, 종교에서 만족감과 행복감을 느낀다.

 

60세 이상의 노인이 다른 60세이하 부류의 사람들보다 신앙생활에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교회를 출석하고, 믿음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며, 선교방송을 듣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개인의 인격기능, 행복감, 사기, 생활의 만족도를 갖고 살게 된다.

 믿음생활을 규칙적으로 하며, 선교방송을 듣는 노인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 보다 개인의 인격기능, 행복감, 사기, 생활의 만족도를 갖고 살게 된다. 믿음을 갖는 것은 불행과 고독, 낙심이 될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므로 정신적, 심리적 안정을 얻게 한다.

 

 둘째, 죽음에 대한 자세이다.

 

 노인이 종교를 가지려는 것은 죽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종교를 가진자와 비종교인들 사이에는 죽음에 대한 자세가 차이가 난다.50)

 

 북케롤리나에 거주하는 60세 이상된 자원자 260명을 조사한 결과 죽음후의 영생을 믿지 않는 자들과 성경을 읽지 않는 자들이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죽음에 대한 두려울 더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그들에게 종교적 확신과 믿음은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가져다주므로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준비하게 된다.

 

노인은 젊은이들처럼 활동력과 생동감을 과시할 수 없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마지막인 죽음이 점점 다가옴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부활의 소망을 믿는다. 육신의 장벽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한가지 약속이 있다. 하나님이 죽음에서 새로운 생명의 부활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받아들여 두려움이 아닌 기대감을 갖게 된다.

 

 우리 나라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샤머니즘 신앙은 자기 스스로 속이는 것이며 불교는 인간의 수양과 노력으로 해탈한다고 하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유교는 성인들의 교훈을 지키는 것으로 그 근본 사상은 효이다. 효는 제사로, 제사는 조상신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그 동안 조선 500년동안 많은 폐습이 되어 온 것을 알고, 조상 제사는 신시대 맞게 간소화된 것을 본다. 이것도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죄로 죽은 인간을 살리려고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다(고후5:17).

 

이 신비한 세계는 학문이나, 철학이나. 어떤 종교가 해결하지 못하고 힘으로도 안되고, 능으로도 안도나 성령으로만 되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을 때에만 가능하다. 이 신앙이 들어 갈 때 노인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속사람은 새롭게 되는 것이다(고후4:16). 이런 소망의 신앙을 넣어 주는 것이 노인 목회이며, 이 사역의 중요성이다. 노인이 신앙생활하는 것은 그들에게 행복과 위안, 인격기능, 생의 만족을 줄 수 있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감소시켜 줌을 알았다. 그러기 때문에 교회는 종교에 귀의하고 싶어하는 노인을 선교하고 영적 성숙과 기쁨으로 주께 봉사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제 3 절 노인목회에 대한 목회학적 원리

 

노인에 대한 과학적 연구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것이 독립된 학문 즉, 노인학으로 규정되기까지는 관계 학자들의 많은 노력이 있었다. 선진국에서는 노인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영국, 미국, 프랑스, 덴마크등 17개국에서는 1940년대 후반부터 노인학회가 구성되고 이 학회들이 중심을 이루어 각 종 연구가 실시되고 있다.

 각 국의 노인학회들의 연구 결과를 상호 교류하기 위하여 1950년 7월에 벨기에 Liger시에서 제 1회 국제 노인학회가 개최되었다. 이 회의에는 각국의 전문가 95명이 참석하였고, 그 중 52명이 연구 발표하였다. 그 후 저 출산과 장수의 경향으로부터 오는 전체 인구의 노화현상과 노인인구의 급증은 노인학 연구의 새로운 자극제가 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1970년대에 와서야 인구문제 연구소가 개설되고 대한 노인회, 한국 노인문제 연구소, 각 대학의 사회 복지학과등에서 이 분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노인 문제에 대한 교회의 관심은 어떠한가?

 

 그레이와 오버그는 교회가 노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원리들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첫째, 노인들을 위해 특별히 계획을 수립한다.

 

 둘째, 노인들의 불안정, 자신없음, 소외, 죽음에 대한 공포, 젊은 날에 대한 후회와 죄책감등 노인의 영적 필요에 합당한 계획을 수립한다.

 

 세째, 세대간의 사회적, 영적, 사교적 접촉을 갖도록 기회를 제공한다.

 

 네째, 노인들의 육체적, 물리적 필요에 대해 민감하고 신속히 대처한다.

 

 다섯째, 정부와 사회의 노인복지 정책에 관심을 갖기고 협력하며,

 

여섯째, 노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교회의 프로그램을 수립하며 교육, 심방, 기도등 전반적인 교회 활동에 참여시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구와 필요성을 교회밖의 노인들에게 교회가 해야 할 일 들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관점을 고려하면서 우리 나라 노인이 갖고 있는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할 일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한 노인 목회의 근본적인 원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노인 목회는 노인을 대상으로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 전체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주신 것처럼(요3:16) 목회의 대상은 모든 인간이 되어야 한다. 불신자로부터 신자까지 그리고 어린아이로부터 당장 내일 모레 늙어 죽을지 모르는 노인에 이르기까지 목회의 대상에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 원리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목회자들은 교회에서 청.장년들에게 역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근시안적이고 이해 타산적인 잘못된 목회 방향이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원시안적이며, 근본적인 목회의 방향을 생각해 보면 천진난만하고 백지와 같은 순수한 어린이들의 마음에 귀중한 복음의 씨앗을 심어주어 키가 자라며 신앙도 성장하도록 지도해 주어야 하며, 더구나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있으면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기에 놓여 있는 노인들에게 우성 기독교의 귀중한 복음은 심어져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노인 목회의 중요성은 보다 원시안적이며 근본적인 목회의 방향으로써 인식되는 것이 마땅하다.

 

 2. 노인 목회는 노인 신학을 근거로 한다.

 

 노인 목회를 하려면 노인 신학을 알아야 한다. 성경은 노인을 영광스러운 존재(잠16:31), 존경의 대상(레 19:32), 지혜의 상징(신32:7),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자(창 12:1, 출 3:10)등으로 표현하여 인간들이 일반적으로 노인을 비참하게 생각하는 것과는 대조적임을 알 수 있다. 또한 노인들이 가장 두려워하기 쉬운 죽음은 이 땅의 장막집을 벗어버리고 저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들어가는 것이며(고후 5:1), 편히 잠자는 것이며(요 11:11, 살전 4:13), 죽은 후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가(살전 5:10),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게 된다(살전 4:16). 부활 후에는 변화를 받아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된다(고전15:44). 이상과 같은 성경에 근거한 노인 목회가 교회안에 이루어져야 한다.

 

 3. 노인 목회는 노인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기전에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사정으로 노인이 될 때까지 예수를 믿지 못한 사람들이 한국에는 너무나 많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이와 같을 영혼들을 불쌍히 여긴다면 목회자들은 위기의식을 가지고 또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는 그들에게 기독교의 생명의 복음을 전해 주어 구원을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자들에게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님의 보좌앞으로 갈 수 있도록 그들의 신앙을 지도해야 한다. 많은 노인 신자들은 죽어 천당가기만을 고대하여 현실 생활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인생의 나그네길에서 목적을 가지지 않고 방황해도 한되겠지만 정해진 목표를 향해서 꾸준히 전진하여 목적지에 바로 도착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노인 목회는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있는 노인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갖고 그들을 노인 신학적으로 지도하여 노년기를 보람있게 보내면서 인생을 완성할 수 있게 하고 궁극적으로는 그 영혼이 구원을 얻어 영생할 수 있도록 목회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4. 노인 목회의 본질은 봉사이다.

 

 목회라는 말은 헬라어 및 히브리어 번역으로는 기본적으로는 “서로봉사 하는 것”을 의미한다.54)

 영어 단어인 Ministry는 라틴어에서 온 것으로 단순히 “종”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지도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섬기는 것이라고 하신다(마20:27). 목회자는 종으로써의 태도가 필요하며, 항상 교회를 섬김으로 그리스도를 섬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너무 많은 명사들만 있고 진정한 종들은 없다. 만일 목회자가 섬기기를 원치 않는다면 목회하기를 사양해야 마땅할 것으로 본다. 특히 노인 목회에 부르심을 받은 목회자는 빌립보서 2장을 늘 상고하고 염두에 두며 목회를 실행해야 할 것이다.

 

 5. 노인 목회의 척도는 희생이다.

 

 존핸리 조훼트는 “아무 희생도 치루지 않는 목회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고 말하였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함이 아니오 섬기려 함”(막10:45)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다. 목회자가 종의 심정을 가지고 있다면 희생과 봉사는 병행한다. 참 목자는 양들을 위해 희생한다. 성경의 지도자들은 이 원리의 본이 되고 있다. 특히 노인 목회는 노인들을 위한 희생을 치루지 않고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6. 노인 목회의 도구는 하나님 말씀과 기도이다.

 

 교회의 역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했을 때 위대한 축복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이는 균형 잡힌 목회에 대한 호소이다. 만일 목회자가 말씀이 기도가 없다면 빛뿐이고 열이 없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와 반대로 기도만 하고 말씀이 없다면 빛없는 열만을 가진 셈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균형 잡힌 목회는 영적인 몸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행6:4)고 하였다. 비록 이 두 도구는 노인들로 하여금 즉각적으로 천국의 소망을 가지도록 야기시키지는 못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영속적 결실을 맺게 하는 원리이다.

 

 제 4 절 노인 목회를 위한 교회에 대한 제안

 

우리 나라 교회에는 많은 노인들이 참석하고 있다. 그런데 교회의 여러 제도나 시설 재원이 노인들을 위해 마련되고 있지 않다. 그래서 노인들은 여러 면에서 고통을 느끼고 있고 소외감마저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 실태를 몇 가지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대부분의 교회가 “노인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

 

주일학교에 노년부를 두어 노인들에게 알맞은 교육을 실시하고 무료한 시간을 뜻있게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하며, 노인들의 영적 요구를 만족시켜 주어야 한다. 모든 교회들이 청소년들만을 위해 재정적 투자를 하고 있는데 노인들도 꼴을 먹고 자라야 하는 양떼임을 알고 노인들이 교육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각 교회는 주일학교에 노년부를 두어 노인들로 하여금 배움의 기회를 갖게 하고, 외로운 노인들간의 유대 혹은 전도활동, 경로활동등의 기회를 갖게 하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노인부를 지도할 사람으로는 노인문제에 대하여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있으면 더욱 좋겠으나 교회의 목사가 맡는 것도 노인들에게 좋은 효과를 줄 것이다.

 

 둘째로 교회의 시설이 노인들을 위해서는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요즘 새롭게 증축되고 있는 교회나 새로운 건물의 여러 교회를 보게 되면 거의 대부분이 2층을 본당으로 쓰게 되어 있어서 노인들은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올 때마다 높은 계단을 오르내려야만 하는 고통을 겪는다. 또한 내부의 조명이나 의자들도 보면 분위기 위주로 설계된 조명기구들이어서 노인들의 눈을 매우 피로하게 만든다. 냉․난방시설에 있어서도 노인을 염두에 두고 설치 운영되어야 한다. 노인들은 젊은 이들보다 추위를 더 느끼므로 노인들의 자리를 따로 만들어 드리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째로 간행물이나 성경, 찬송가책 등의 작은 글씨들이 노인들을 짜증나게 한다.

 

어느 정도 큰 교회들은 한 주일 동안에 이루어진 모든 일들을 작은 주보안에 모두 실어야 하므로 깨알같은 글씨로 꽉꽉 에워 노인들은 읽을 엄두도 내지 못할 경우가 많다. 또한 찬송가나 성경도 노인들이 보기 쉽고 가지고 다니기 편하도록 글씨는 크고 책은 가능한 가볍게 만들어 노인들의 고충을 덜어 드려야 한다.

 

네째로 보행이 힘든 노인들을 위해서 차량을 운행한다.

 

요사이 교회마다 봉고버스나 대형버스를 구입하여 먼 거리에 있는 교인들의 교통편으로 이용하고 있는데 교인들의 집집마다 혹은 동네마다 경유하게 되므로 교회 버스들의 노선은 단거리이기보다는 장거리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이에 대해 노인 목회를 위해서는 노인들만을 위한 차량의 운행이 권장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다지 큰 차가 아니어도 될 것이며, 경비도 덜 들고 경로의 본을 교회가 보여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렇다면 교회가 노인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나라의 실정에서 노인을 위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마련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점이 있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의 정당한 실시를 위하여 시도하여야 할 문제들이기 때문에 필자는 구체적인 방안보다 먼저 노년부 교육을 위한 제안을 하려 한다. 지금까지 젊은이의 교육에 많은 관심을 가졌으나 이제는 전체 교인을 위한 균형 있는 교육을 실시하여야 할 시기이기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1) 교회는 노인들의 영적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많은 노인들은 불안정감과 무오성, 죽음에 대한 두려움 또한 과거 실패에 대한 후회감에 젖어 있다. 이들에게 자아의식과 유용성을 회복시켜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교회의 메시지는 위로와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죽음에 대한 신앙적 준비를 하게 되며 과거의 실패에 대한 후회를 잊고 사죄의 은총을 받게 된다. 죽음에 대한 교육이야말로 교회가 하여야 할 과업 중의 하나이다.

 

 2) 노인문제에 대해서는 전 교인들에게 교육을 시켜야 한다.

 

교회 교육은 자칫 젊은 이들만을 위한 교육이 되기 쉽다. 교회는 모든 교인들을 이해해야 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노인을 공경하며 노후를 준비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즉 노인 공경이 하나님이 주신 축복이며 이것을 통하여 모든 사람은 다 늙을 수밖에 없으니 자신이 노인이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살도록 해야 한다. 교회는 노인 공경을 가르쳐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며 성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이다(잠 1:7-9). 그러므로 교회는 전교인을 가르치고(엡6:1-3) 노인을 위한 특별 프로그램이 준비되어야 한다.

 

 3) 노인은 개개인을 돕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교회가 노인 개개인의 어려운 점들을 돕고, 노인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하여 노인들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며, 그들에게 이 프로그램이 하나님의 피조물 됨을 자각케 하고, 구속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한다. 이 프로그램은 노인들의 인격적 적응을 하도록 돕는다.

 

 4) 교회는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요한 도움을 주어야 한다.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장애요소가 생겼을 때 목회자와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노인들이 건강할 때에도 그들의 유용성을 자가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일을 맡기는 것이 좋다. 즉 교회학교 교사나 심방인 혹은 도서실 직원 등 각자의 능력에 알맞는 일을 주어 기쁨으로 봉사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5) 교회는 노인들의 사회적 욕구를 충족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사회적 관계와 그룹에 참여하려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 노인들이 젊었을 때의 활동에 대한 회상이 우울증적 증세로 나타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긍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6) 노인들을 위하여 시설 투자를 하여야 한다.

 

노인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교회안의 많은 계단이나 적은 활자의 주보, 희미한 조명, 냉․난방 시설의 미비등을 큰 글씨의 주보, 밝은 조명, 마이크 시설, 냉․난방시설 등 계단이 없는 노년부실 등을 고려 해야 할 것이다.

 

 7) 노인들을 위하여 지속적인 제도와 시설 유지를 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주일에만 국한될 것이 아니라 한 주간 동안 계속하여 노인들이 교회에 나올 수 있는 계획과 배려가 필요하다. 노년부실은 친교의 장소로 활용되며, 성경과 기도의 장소가 되고, 영적 경노당화 하는 시도가 있어져야 한다. 교회는 노인들을 위하여 접대하는 기회를 많이 마련하고 젊은 이들에게 노인 공경을 나타내 보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무의탁 노인들을 위하여 기독교 양로원 등의 복지시설 마련에도 보다 친밀한 계획으로 임하여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소외 계층화되고 있는 노인들에 대하여 기독교적 이해와 그들을 위한 교육방안의 마련은 우리에게 황무지와 같은 실정이다. 그러나 노인을 공경하고 그들을 교육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적인 효자상에서 그치지 말고 기독교 교육의 광역화 작업의 일환으로 우리의 교회학교에 노년부를 마련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교육하여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지며 천국에서의 소망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

 

노인들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도록 교회에서 헌신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우리 나라 교회의 현실에서 노년부 교육을 위해 목회자들의 특별한 관심이 요청되며 이것은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노년부 커리큘럼은 노인들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고려하여 마련되어야 하고 특히 성경을 바탕으로 하여 구체적인 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제 5 절 노인 목회를 위한 교회의 전략

 

노인 목회의 전략은 천만 성도가 노인 복지에 대한 관심을 철저히 가진다면 교회는 가장 효율적으로 노인문제에 대한 큰 일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들은 물질적인 도움이나 오락보다 우선 신앙적으로 지도하며 마음에 위로와 평안을 얻게 하며 영적 즐거움을 얻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신앙교육, 성경교육이 필요하다.

 

 1. 노인 여가와 교회 생활

 

 우리 나라 현 실정에서 노인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길이란 사회의 어느 단체나, 기관이나, 개인을 통해서 근본적으로 기대하기란 어려운 문제이다. 그러나 선진국 이상으로 보다 이상적이며 근본적으로 즐겁고 보람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있다고 확신한다. 그 길은 단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위진 교회 또는 기독교 단체들이다. 봉사의 생활로 일관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이것을 본받아 행하라(요 13:14-15)고 가르치셨다.

 

남을 돕는 봉사의 생활은 그리스도의 근본정신이다. 참된 기쁨은 섬기는 자에게 있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는 말씀을 실천할 때 노인에 대한 봉사는 가능한 것이다. 교회 안의 모든 신자는 한 권속이라고 한다(엡 2:18). 교회 안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대할 때 자기 부모님께 하듯이 친절하게 존경과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다.

 

 노인들은 일반적으로 여가투성이의 생활을 하고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할 일이 없이 지루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이 보통 있는 현실이고, 이러한 노인들은 하루 하루가 사는 것이 지겹고 재미가 없으며, 몸은 괜히 무겁고, 띵하고, 우울해지고, 고독과 소외감을 느낄 것이다. 이럴 때 노인 스스로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때에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러므로 노인 목회자들은 노인 성도들이 여가선용을 잘하여 다른 노인들의 모범이 될 뿐 아니라 보람있는 여생이 되도록 지도해야 될 것이다. 노인들은 교회안에서 대접만 받는 것이 아니라 교회 봉사에 직접 동참함으로써 즐거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교회안에서 노인들이 담당해야 할 일들은 많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것들을 들 수 있겠다.

 

 ①노인들은 젊은이들 보다 시간이 많다. 그러므로 체력에 따라 교회의 세벽기도회에 참여하며, 혹 집에서 집을 보살피면서 기도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다. 성경에 보면 늙은 노인 시므온과 여선지 안나라는 노파는 날마다 성전에 올라와 기도하였으며 성령의 인도로 메시야 아기 예수를 만나 축하를 드렸다.(눅 2:34-38)

 

 ②노인들은(60-75세) 교인의 가정을 방문하여 낙심된 자를 찾아 권면하며 병자를 찾아 위해 기도하고 위로해 부며 슬픔당한 자, 외로운 자를 찾아 위로와 권고를 해주며 보람을 갖는다.

 

 ③노인들은 교회안에서 선교단체를 조직하여 젊은이들 못지 않게 전도에 열심을 다한다. 오히려 젊은이들이 못하는 대외 전도에 많은 봉사를 할 수 있다. 교회마다 1/5에 해당하는 노인들, 저력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저력을 개발하지 못하고 귀한 일꾼들을 숨겨두고 있다. 이 노인들을 선교단체로 구성하여 일꾼으로 내세운다면 선교사업에 놀라운 성과를 거두리라고 확신한다.

 

 ④노인들은 성경 공부에도 열심히 있다. 노인들은 성경공부 시간을 가장 즐거운 시간으로 삼는다. 노인들을 위해 교회에서 할 일이 많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아직도 청소년 또는 장년들만을 위주로 하여 프로그램을 만들고 젊은이들 중심의 행사가 태반이다. 그러므로 노인은 자연히 소외의 대상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옆에서 주장한 바와 같이 교회는 이제 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금까지 교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연간 사업계획이나 사업비 정책에 있어서 노인을 위한 사업이란 어버이 주일 행사이외에는 별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 많은 사업비 예산에 노인들을 위해서 어떠한 예산을 세우고 있는가? 교회는 가난하고 주린 자의 구제와 마찬가지로 나이 듦의 외로움과 소외에 처해 있는 노인들을 위해서도 합당한 예산을 할애해야 할 것이다.

 

교역자들은 강단에서 “부모를 공경하라”, “웃어른을 섬기라”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 교회 안에서 노인들, 부모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문제이다. 노인들에 대한 가장 큰 대접은 그들로 하여금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일이다. 특히 교회 안에서 노인들일 할 수 있는 일은 노인들 스스로가 할 수 있도록 동참의식을 갖게 해야 한다. 이로써 노인들의 여가를 수렴한 교회 프로그램을 통해 노인들의 많은 시간을 교회를 위하여 활용할 수 있으며 노인들 스스로에게도 보람있는 일이 될 것이다.

 

 2. 노년부의 설치 운영

 

 교회학교 안에 영아부,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고등부, 대학부, 청년부, 청장년부, 장년부 등 많이 있는데, 유독 노인부가 없다는 것은 교육이란 노인들은 제외라는 사고방식이 아닌가 싶다. 인간이란 죽도록 배우는 것이다. 베움에서 새로움을 찾고, 즐거움을 찾고, 힘을 얻으며, 삶의 보람을 갖게 된다. 노년부는 다음과 같은 점에서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①교회학교에서 노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면서 가정에서 부모와 자녀간의 부조화를 해소시키고 고부 간의 불화를 화해시키며, 젊은이들을 이해하도록 하며, 자녀들에게 존경받는 노인들로 교육할 수 있다. 성경을 가르치고 배움으로써 이해와 관용을 가지게 되고 이로써 가정을 평화롭고 다정하게, 밝고 명랑한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②교회학교 노년부가 설치되면 자연히 노인단체가 구성이 되어 단체활동이 잘되어진다. 그 안에서 친교하고 그 안에서 힘을 합하여 교회봉사에 협력할 수 있다. 기도와 심방에 봉사하는 것은 젊은이 이상으로 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활동하는 노인들은 그 봉사 활동을 즐거움으로 삼고 가장 보람된 일로 생각한다.

 

 ③성경을 가르쳐 모르는 것을 깨닫게 할뿐만 아니라 영의 양식을 공급받음으로 그 영혼이 하늘이 소망으로 즐거움을 누린다. 노인들이 성경을 배우면 자녀들을 성경으로 가르친다. 디모데의 외조모 루이스는 성경을 알기 때문에 그의 외손자 디모데를 성경으로 양육하여 훌륭한 전도자가 되게 했다.

 

신구약 성경의 집필자 40여 명은 거의 노인들이다. 특히 신약 성경 중에 바울 서신, 공동서신이 모두 신앙의 많은 경험을 가진 노인 사도들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은 놀랍다. 노인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발전될 수 있었을까? 교회가 노인들을 무시하지 말자. 노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하루 빨리 교회마다 노년부를 설치하여 다른 청소년부에 못지 않게 계획을 세우고, 물질적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하겠다.

 

 3. 경로대학 설치운영

 

교회학교의 노년부가 교회 내적 활동이라면, 경로대학은 교회 외적인 대 사회활동의 일환으로 시행할 수 있는 좋은 기관인 것이다. 지역사회에 대한 관심이 최근 교회내에서 활발하게 조성되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또한 교회가 사회 조직의 한 부분으로서 사회로부터 공급받는 양만큼은 최소한 사회로 되돌려 주어야 하는 보상의 원리를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회에서 소외시하고 있는 주변적인 문제에 대하여 교회가 먼저 눈을 돌려야 한다.

 

이와함께 경로대학은 선교의 좋은 교두보가 도리 수 있다. 교회와 그 지역사회가 만나는 접촉점으로서, 경로사상이 아직도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교 문화권에 속한 우리 나라의 토착적인 여건을 생각한다면 교회의 새로운 이미지를 사회에 심을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경로대학을 설치하여 노인 뿐만 아니라 그 부모들을 모시고 있는 자녀들과도 자연히 접촉할 수 있게 되며 이를 통해 세대간의 갈등을 해소시키고 의사소통의 매체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교회는 그 지역사회의 대화의 광장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지도적인 사명을 완수하게 될 것이다.

 

 교회가 나오기가 낮설은 특히 폐쇄성이 강한 노인들을 흡수할 수 있는 길은 경로대학이 최적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회들이 이에 대해 보다 거시적이고 적극적인 태도를 가졌으면 좋겠다.

 

 4. 노인학교, 경로당 방문 위로교육.

 

 경로대학을 설립할 수 없는 소규모 교회이거나, 일차적으로 노인문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주변의 노인학교나 경로당을 방문하는 것은 유익할 것이다. 경로대학을 교회 안에 설립하기 위한 전초 작업으로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까지의 전례에 의하면 대개 크리스마스 때나 한번 불쑥 찾아가 선물을 건네주고 할 일을 다하였다는 자족감에 빠져버린 시행착오가 허다하다. 좀더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그들의 문제에 좀더 접근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본다. 교회학교 내에서 부서별로 순서를 정하여 순번에 따라 차례대로 방문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보다 이상적인 것은 결연관계를 맺어 개인적으로 틈나는 대로 찾아 뵙고 함께 담화나 식사 시간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가족관계가 소원한 사고무친의 노인들에게 의손 관계나 의자 관계를 맺도록 하는 것은 매우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마스터 플랜을 짜고 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그 심도를 더해가도록 하는 일이다. 목회자 자신이 이러한 개인적인 혈육관계를 맺은 것이 모든 이들의 귀감이 되어 가장 효과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5. 생보자 노인 생계보조

 

교회 구제의 일환으로 사고무친의 무의탁 노인들에 대한 생계 보조가 좋은 방편의 하나가 된다. 좀 더 이상적인 것은 무의탁 노인들이 거처할 장소를 마련해 주고, 그 경비를 교회가 부담하는 일이다. 이 방법은 개인적으로 사채를 털어 시행하는 사례가 극소수 있으나, 교회적으로 아직 그 조직적 사례가 없다. 고아원 문제에 매어 달였던 것처럼 시대적으로 이제는 양로원이 과제로 부각되었다고 생각된다. 교회 위치하는 지역사회에서 천거를 작아 순차적으로 그 보조범위를 넓혀 가는 방법이 좋을 것이다.

 

 6. 무료 진료

 

 전술한 바와 같이 노인들은 병고에 대하여 그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기가 쉽다. 그래서 병고로 시달리면서도 치려할 의욕을 읽고 만다. 육체적 쇠약과 함께 이 병고는 노년의 그대 적이다. 빈민 노인들의 경우 이러한 비극은 더욱 심각하다. 이를 위하여 교회가 무료진료의 활동을 펴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더욱이 교회가 성장하면서 의료 부문에 종사하는 이들이 많이 교회에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들을 자가 동원에서 빈민 노인들에게 무료진료의 혜택을 베푼다면 구제 사업의 효과도 얻을 수 있고, 또 그 무료진료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신앙도 아울러 진작시키 수가 있는 이중효과를 거두게 된다.

 

 7. 노인 상담소의 설치운영

 

노인문제에 대한 전문적 인력을 갖추고서 노인들의 생활 상담, 건강상담, 사회봉사활동 참여에 대한 상담, 가정문제 상담, 그 외 교양 오락등 노인 복지 증진에 필요한 상담을 해 주는 것이다. 상담활동에서 주로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욕구불만을 해소케 하고 왜곡된 정서를 바로 해주며 건전한 인격완성, 즉 자아실현의 방향에 목적을 두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한국 노인 복지회”에서도 전화를 통한 노인 상담을 하고 있는데 특유한 “말벗사업”도 전개하고 있다. “말벗사업”이날 외로운 노인들에게 청년층 봉사자들이 하루 내지 이틀에 1회씩 안부를 묻고 말벗이 되어 주도록 하는 사업이다. 노인을 위한 상담사업이 우리 나라는 아직 미비한 상태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회적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일을 교회가 감당한다면 더욱 의의있는 일이 될 것이다.

 

 8. 노인 결혼사업을 위한 교회의 참여

 

 Tunstall은 노인의 문제는 고독, 불안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노인들은 직업에서의 은퇴, 사회관계의 단절, 존경의 대상으로부터 탈락됨으로써 노인의 인간관계의 생활 범위는 가족관계 내지 부부관계로 축소되는데 만약 그 부부중 어느 한쪽이 먼저 사망하게 되면, 대부분의 노인은 고독을 넘어서 절망상태의 심정으로 돌아간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타인으로부터 사랑 받기를 원한다. 이것은 연령에 관계없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자연스러운 인간의 욕망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풍속은 노인의 재혼을 부자연스럽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변화되어 가는 사회에서는 자식이 노친을 모시지 않으려는 풍조를 고려하여 노인 결혼은 적극적으로 유도되어져야 할 것이다. 외로운 노인끼리 서로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이 일에 교회의 적극적인 지원과 참여가 있어야 할 것이다.

 

 9. 노인의 자살문제에 대한 교회의 역할

 

 구미 각국에서는 노인 자살율이 높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노인자살 방지를 위해 여러 가지 대비책을 강구하고 있는 것이 현대 서구 사회의 하나의 특징이다. 그러나 초근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노인 자살이 문제화도기 시작하고 있다. 노인이 자살하는 동기는 대부분 고독과 소외에서 오는 경우로서 신체적 질환으로 인한 비관, 가정 내에서의 갈등, 불화 등이다. 오일박사에 의하면 노인 자살자의 89%가 만성 뇌증상, 우울증, 급성착란증, 알콜중독증에 걸려 있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우울증에 의한 정신장애가 전체의 3/4를 차지하였다는 것이다.

 

 링켈교수는 우울증 외에 노망증을 들고 있다. 노망증 초기에 자살율이 많은 것은 자신의 정신기능의 약화를 의식하고 이것을 고민하는 나머지 자살로 이끌어 나간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 노인들에 있어서는 주거환경에서 오는(특히 아파트) 문제가 심각하며, 여기에서 오는 부수적인 심리적 압박감, 부적응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들의 자살을 막기 위해서 교회적 차원에서의 대책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겠다.

 

 ①교회는 노인 자살을 방지하기 위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노인을 개인적 접촉을 통한 문제해결을 해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 한편으로는 노인복지의 측면에서 사회적인 배려와 노력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에 의한 노인 생계가 안정되어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노인들의 역할을 증대 시키기 위한 정책적인 배려라고 하겠다. 노인들은 자신들이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이러한 사고는 훨씬 감소될 수 있을 것이다.

 

 ②무엇보다도 자살 행위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하거나 병들거나 의지할 것이 없는 고독한 자 일지라도 그에게 신앙심과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고, 생명을 하나님의 것으로 믿는 자이면 우선 자살이란 범죄행위가 되는 것으로 알게 될 것이고, 따라서 그런 죄를 번하지는 않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러한 문제를 지역사회 교회가 담당해야 할 것이다.

 

 이상에서와 같이 본 장에서 필자가 주장한 것은 기존의 사회복지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들도 있으나, 우리 교회에서는 전혀 엄두에 두지 못하고 있었던 것들이 많이 있다. 교회는 노인 목회를 위한 다양하고 많은 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자원들을 그냥 매장시키고 있다. 이제 교회는 노인의 문제에 대하여 깨어야 할 때이다. 교회의 모든 시설과 인력은 노인목회를 위하여 과감하게 투자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지금까지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에 실현하는 의미로써 도움이 필요한 가난한 자, 병든 자, 억눌린 자, 과부, 고아, 노인들을 돌보아 왔다. 이제 오늘의 교회는 보다 적극적인 참여의 차원에서 약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오늘날의 당면한 노인문제는 우리의 문제이며 교회의 문제이고 교회가 앞장서서 봉사해야 할 일이며, 그 일을 위하여 교회는 부르심을 받았다. 교회는 노인들의 제반문제에 답하고 그들의 영혼을 돌보아야 할 것이다.

 

제 5 장 결 론

 

 본 논문의 연구의 동기는 점차 사회문제화 되어 가고 있는 노인문제에 대해 교회가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지 않겠느냐하는 현실적 취지에서 시작 되었다. 오늘날 대부분의 노인들은 한국 사회가 근대화되어 가는 과정속에서 도시화, 핵가족화로 인해 사회속에서 외면 당하고 있고 가난과 질병, 무위와 고독 속에서 불행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노인들이 가지는 문제는 극단적인 경우 노년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살을 하는 사례로까지 발생하고 있다. 그러므로 노인들로서 자신의 삶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선처하는 노력이 범 사회적으로 요구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사실상 우리 사회에 있어서는 그들을 위해 마련된 사회 복지시설이 미비할 뿐 아니라, 정책적인 배려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채 소외시키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인구의 노령화 추세로 더욱 그 문제점이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와 같은 시점에서 이러한 환경에 처한 노인들을 위하여 보람있게 지낼 수 있도록 교회적 차원에서 그들에게 필요한 프로그램을 최대한으로 마련해야 하리라고 본다.

 

지난 100년동안 한국 교회가 성장을 계속 해왔는데, 이제 21세기를 향하는 시점에서 이제까지 외면해 온 사회 봉사의 측면으로 노인들을 위해 봉사하는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한 과감한 헌신과 재정적 투자가 필요하리라고 본다.

 

 실제로 이제까지의 교회들은 노인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못했다. 따라서 우선 목회자들이 노인 목회의 중요성과 필요성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만일 교회가 오늘날의 비극적인 노인문제에 대해 외면해 버린다면 결코 교회는 선교적 사명을 다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노인들”을 하나님 나라의 주체로 보아야 하며, 그들에게 대한 봉사와 헌신을 위하여 몇 가지 제안을 제시함으로 결론을 맺고자 한다.

 

 ① 교회가 노인정을 개설하거나 지원하여 노인들에게 여가시설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②노인학교를 설립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교육을 제공하고,노년은 인생의 쓸쓸한 종말이 아니며,인생의 완성기이고 내세를 위한 준비시기임을 새롭게 인식시켜 주어야 한다.

 

 ③목회자들은 영아부.유치부.유년부.초등부.중등부.고등부.대학부.청년부.장년부만 조직하지 말고, 주일학교 내에 “노년부”도 별도로 조직하여 언제 이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가장 긴급한 노인들의 신앙을 잘 지도하여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도록 신앙 안에서 지도해야 할 것이다.

 

 ④한국의 노인 복지문제와 양로원 사업은 교회에서 시작하여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현재는 산업화와 고령화로 가난과 소외와 고독감에 시달리는 무의탁 노인들이 급증하고 있다. 그들을 수용하는 양로원과 사회복지시설에 대하여 교회는 더욱 더 큰 관심을 가져 투자를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⑤교회는 노인들을 위하여 특별한 투자를 하여야 한다. 교회의 건물구조가 노인들의 신체적. 영적 성장에 방해와 큰 지장을 주고 있다. 교회당의 많은 계단이나 주보의 작은 활자, 희미한 조명, 냉.난방시설의 미비한 부분을 하루 빨리 보수와 확보를 하여야 할 것이다.

 

 ⑥교회를 개방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급격한 발전과 성장을 하고 있다. 목회자의 목회 또한 많은 분야에 관심과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목회자가 혼자의 힘으로는 모든 분야의 일을 충분히 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노인들을 위해서는 거의 관심조차 못 가지는 형편이지만 노인들의 신앙운동이 다른 어떤 분야보다 더욱 시급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힘을 쓴다면 교회성장은 더욱 가속화되는 동시에 일반사회에서도 교회에 보다 큰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구원받는 사람은 날로 더해질 것이다.

 

교회가 노인 우대하는 미덕을 꼭 보여주어야 하겠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 하리라”(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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