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나름대로의 존재의 목적이 있습니다.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러나 자신의 삶의 목적을 뚜렷하게 인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명한 목적 없이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임을 말씀하며, 그것을 사명이라고도 합니다.
삶의 목적을 상실한 인간은 곧 타락하게 되었고, 이어 하나님과의 동역 관계가 깨어졌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인간이 삶의 진정한 목적을 상실한 것은 교만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3에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고,
또 마태복음 18:3에서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겸손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치셨습니다.
성 어거스틴 또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야 할 덕목에 대하여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말함으로써 겸손의 소중함을 일깨웠습니다.
이렇게 무서운 교만에 대해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사람이 교만하면 어떻게 될까요?
야고보서 4:6의 말씀을 보면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뜻만을 구하며 이룩하려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적자가 되고, 훼방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겸손한 자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대로 드러내기 때문에, 다시 말씀드려 자신은 감추어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겸손한 자를 통하여 더욱더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속지 아니하십니다.
어리석은 자는 스스로에게 속고, 다른 사람을 속이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속이려 합니다. 이런 자를 어찌 하나님께서 가까이 하시겠습니까?
잠언 16:18 말씀에서는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선봉이요”라는 말은 ‘면전에’ 또는 ‘직면해 있는 공간적인 의미’를 말합니다.
“패망 이전에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만의 결과는 패망입니다.
이는 교만하면 자신이 올라가고 높아질 것 같지만, 결국은 패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얻으리라 생각하겠지만, 도리어 사람을 잃게 됩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할 수 있는 것이 있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입니다.
그리고 그 재능을 가지고 나보다 못하는 사람을 돕고 섬겨야지 다른 사람의 기를 죽이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잘하면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드러내지 아니하면 그 소중한 가치는 배가 되지만, 스스로가 그것을 드러내려고 할 때는 오히려 그 가치와 수고는 반감됩니다.
이는 “죽고자 하면 살 것이요,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그 맥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사람들도 겸손한 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사람이 왜 교만하게 될까요?
교만이 그렇게 나쁘다는 것이 분명한데도 사람들이 왜 교만하게 될까요?
첫째, 교만은‘자기 위치 이탈’에서 비롯됩니다.
피조물이‘피조물’이라는 자기 자리를 떠나서 창조주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이 자신의 소유인양 소유권을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빼앗으려는 행위와 같은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소유권 자리를 넘보는 것으로서 실로 중대한 결과를 초래합니다.
이사야 14:12∼17을 보면, “너 아침의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 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원수 사단은 자신이 마땅히 지켜야 할 자기 자리를 이탈하였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자리에 자신의 삶을 내어 드려야 한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사단이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저주받아 이 땅으로 쫓겨났고, 장차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지게 될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하나님 앞에서의 교만은 곧 멸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교만은‘자기 불안’에서 비롯됩니다.
교만하다는 것은 그만큼 내면에 담대함과 평안함이 없다는 반증입니다.
자기 스스로를 내세우지 아니하면 사람들에게서 잊혀질까 봐, 무시당할까 봐 두려운 것입니다.
삶의 무게 중심이 내 안에 있어야 하는데 바깥에 있기 때문이고, 그 중심이 말씀과 성령에 있어야 하는데, 자신의 불완전한 생각과 집착에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그만큼 삶의 자신감을 잃고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지 못하는 자임을 스스로 드러냅니다.
또한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에 속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높은 줄 알고, 사람들이 자기를 존경하는 줄 알고 계속해서 거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는 어리석게도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교만하면 사람들은 이미 그를 마음속에서 신뢰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하지만 말입니다.
이처럼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고, 사람한테도 따뜻한 존경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자신의 기를 죽이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따뜻한 마음으로 권면해 주고, 용기를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을 좋아하며 진실로 고마워합니다.
3. 이제 어떻게 하면 교만에서 멀어질 수 있을까요?
먼저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잘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이 인식이 중요합니다.) 죄인으로 죄에 종노릇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거저 구원받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의 권세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할 때 “죄인 중의 괴수”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에베소서 3:8에서 자신을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소개했습니다.
이는 아마도 과거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면서 한 말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구원받은 감격과 함께 과거에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그것에 얽매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잊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도록 영성훈련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과 욕망에 사로잡힌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모든 인간관계도 깨어지고 맙니다.
가정에서는 그 기초가 되는 부부관계에서 그 신뢰가 무너집니다.
남편과 아내를 각각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떠나게 되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치 아니하고, 결국 자신이 인생과 우주의 중심이 되어 교만하게 됩니다.
기도와 말씀 훈련에 특별히 힘써야 할 것입니다.
셋째로, 겸손과 섬김의 훈련을 거듭해야 합니다.
자신의 공로나 선행을 드러내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의식적으로 말입니다.
나를 쳐서 복종시키는 일에 적극적이어야 합니다.
자칫 자기를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날 때, 입을 다물고 말을 줄이고자 의도적으로 노력해 봅시다.
나의 마음에서 꿈틀거리는‘높아지고자 함’과 끈질기게 싸워야 합니다. 또한 대화석상에서 서로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음을 앞다투어 이야기하려는 모습들을 보게 되는데,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말을 급하게 막으려 하지 말고, 상대의 말을 참고 들어주는 훈련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좋은 점들을 그가 없는 자리에서 칭찬함으로 다른 사람의 장점 밑에 내가 내려가는 훈련을 합시다.
또 다른 사람의 흠을 들추어내는 이야기를 듣게 될 때에는“그래, 그 사람이 그랬어? 그 아주 나쁜 사람이군.”이라고 성급히 정죄하려는 자세보다 “나도 조심해야지. 나도 그럴 수 있는 사람이야.”하고 자신을 살피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14:8∼10에 보면 혼인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 처음에 말석에 앉으라는 교훈이 나옵니다.
내가 먼저 상석에 앉았다가 주인으로부터 자리를 내 달라는 말을 들으면 부끄러움을 당하겠지만, 말석에 앉았다가 상석으로 권함을 받으면 모든 사람 앞에 영광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지혜로운 처신이라 봅니다.
가능한 자기 스스로를 높이는 일을 삼가고, 할 수 있는 한 남을 섬기는 훈련을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 실천해 봅시다.
이처럼 삶의 모든 부분에서 겸손의 훈련을 거듭할 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되고, 나의 겸손함으로 인해 우리 모두의 공동체가‘섬김의 공동체’로 변화받고, 더 나아가 한국교회가 이 나라와 백성들과 민족 앞에서 겸손함으로 구원의 방주로서의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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