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리뷰

30/40대 위기를 극복하는 법, 고든 맥도날드

by liefd 2024. 2. 7.
반응형

 

 

30/40대는 성장과 재도약의 위대한 기회라는 것이 저자의 믿음이다.

 

130/40대의 실상

 

나는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홈런을 치겠다는 생각으로 인생의 야구 경기를 시작했다. 이제 내 인생의 야구 경기는 6회에 이르렀고, 이쯤에서 나는 그저 투수가 던지는 공에 내 몸 한 부분이라도 맞지 않고 경기를 무사히 끝내기만을 바랄 뿐이다.“

30/40대에 대해, 칼 융은 인생의 정오라고 불렀고, 나는 언제나 이 어구에 끌리는 편이다. 인생의 정오, 인생의 결정기, 내가 바로 이 지점에 와 있다. 저 유명한 베이붐 세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지점에 와 있다.

 

칼 융은 인생을 각각 네 단계로 구분해 놓고 35세에서 40세 후반 그리고 50대의 연령대를 인생의 정오로 보았다.

이 중심부쯤에서 삶의 정체성은 뭔가 극적이라고 할만한 지점에 이른다. 전환기라고 할 수 있고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은 30/40대 정도에 외서 정체성과 관련하여 드라마틱한 상황에 이른다는 뜻이다.

 

자연의 문제가 인생의 오전과 결부되어 있다면, 인생의 오후에는 문화라는 개념이 중요한 문제로 대두된다. 30/40대는 자신을 둘러싼 세계 문제를 인식하고 평가하고 즐기고 창조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말이다.

이 시기에는 극적인 변화가 발생할 것이라고 그는 경고했다. 성격이 변하고 습관이 변하며, 신념이나 확신까지 변한다.

아마 칼 융은 이 인생의 정오에 대비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대해 무엇보다 고심했을 것이다.

 

30/40대와 관련하여 지배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위기이다. 이 때의 삶은 하나의 드라마이지만, 그 드라만 안에서는 여러 개의 하위 드라마가 함께 작동한다.

첫째는 삶의 드라마이다.

대체로 우리의 생리적 변화에 대처하는 능력에 따라 인생의 오후의 건강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앎의 드라마이다.

변화하는 관계의 드라마이다. 부부관계, 우정, 자녀, 부모 등과 관련된 모든 상황이 어느 정도까지는 변할 것이다.

셋째는 행위의 드라마이다.

직업에 초점을 맞춘다. 성공과 실패라는 현실에 직면한다.

넷째는 믿음의 드라마이다.

한 개인의 신념과 그에 결부된 행위 및 헌신은 과연 어떻게 정오의 현실을 견디어 내는가?

 

인생의 정오에는 세 가지 사실이 한 다발로 묶여 있다. 과거, 현재, 미래의 세 차원으로 형성된다.

 

첫째, 30/40대는 최초로 자신이 그때까지 인생을 얼마나 잘 살았는가 하는 점에 대해 평가해야 하는 시기이다.

 

둘째, 전에 경험한 것과는 다른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셋째, 죽음이라는 경고의 깃발이 서서히 펄럭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알카 셀처라는 약품의 선전 문구, “환경은 바뀌지 않아도 당신은 바뀔 수 있습니다.”

19세기 화가 토마스 콜, 인생의 항해의 세 편의 연작이 있다.

첫 번째 작품은 유년”이다.

어둠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배 한 척을 그렸다. 배에는 긴장 어린 표정으로 주변 환경을 바라보는 아이가 타고 있다. 주변의 모든 사물은 아이가 처음 대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배의 고물에는 아이와 배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한 천사가 키를 단단히 붙잡아 쥐고 서 있다.

두 번째 그림은 청년이다.

이제는 상황이 좀 바뀌었다. 천사는 강가에 서 있고, 아이는 청년이 되어 직접 배의 방향타를 쥐고 있다. 천사는 손을 흔들어 청년에게 작별을 고한다. 이제 천상의 수호자에게 별 관심이 없는 청년은 정복과 소유의 꿈에 부풀어 강 너머 지평선 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한 손을 들어 그곳을 가리킨다. 배의 전면을 뒤덮은 하늘에는 권력과 성공을 상징하는 웅장한 성 한 채가 무슨 환영처럼 이스라이 빛나고 있다.

세 번째 그림은 어른인데, 30/40대이다.

이전에 빛나던 지평선은 어두워 보이고, 저 앞에서는 폭풍이 다가온다. 잔잔하던 강물은 곳곳에 박힌 험악한 바위 덩어리들을 타고 넘으며 급류와 폭포로 바뀌고, 강 주변의 무성한 나뭇잎들은 사납게 요동하거나 쓰러지고 부러진 채 사방의 모든 것을 찌를 듯이 위협한다. 배 안의 항해자는 더 이상 자신있게 방향타를 장악할 수 없다. 방향타가 부러지자 배는 제 멋대로 움직인다. 그는 이제 공포에 떨고 있는 듯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하늘을 향해 모아 쥔 두 손을 올린다.

빌립보서 121-24절에 보면 바울의 죽음과 삶의 철학은 두 가지다.

첫째, 바울은 주변 세계에 대한 섬김의 관점에서 삶을 보았다.

그가 볼 때 삶은 주는 것이고, 따라서 성장하는 것이다.

 

둘째 죽음은 끝이 아니라 과정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 그리스도와 함께 경험을 긍정하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30/40대라는 장벽 앞에서 달아나려 애쓴다.

두 번째 반응은 어떤 사람들이 장벽 앞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더 나아갈 용기도 그렇다고 되돌아갈 용기도 없다. 그래서 그들은 거기에 장막을 친다.

세 번째 반응은 어떤 사람들은 모든 인생의 하나님이 또한 그들의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이 있다.

 

30-40대에 이르러 처음으로 우리는 젊은 시절의 그 끊임없는 압박감에서 놓여날 가능성을 맞게 된다.

 

30/40대의 또 다른 가능성으로는 성공과 소유의 압박감에서 놓여날 수 있다.

 

30/40대란 무엇을 하고, 쌓고, 쫓아다니는 일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와 넓이로 살아갈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어떤 유명한 광고문에 이런 것이 있다. 어차피 한번 살다 갈 인생인데.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복음은 말한다.

그 기회를 인생의 어느 시기보다 많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바로 30/40대이다.

 

칼 융은 30/40-정오에 오는 또 하나의 기회로서 자신의 문화를 발견할 가능성을 언급한다.

30/40대는 궤도 수정의 기회를 제공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