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중요한 일이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잘 세우고 잘못 세우는 것의 차이는 교회를 이루는 다양한 원리들이 정상적인 위치에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원리는 원칙입니다. 원리는 바른 방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를 원리로 세운다는 것은 원칙대로 세운다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는 리더가 필요하다는 것은 교회를 세우는데 중요한 원리입니다.
리더란 사람을 말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의 조직이 필요합니다. 그 조직에는 반드시 리더가 있어야 합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지휘자 등 교회는 리더들의 역할에 의해서 부흥하고 많은 사역들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리더가 없는 교회는 교회의 힘이 약하게 되고 사역의 영역도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리더를 세워야하고 리더에 의해서 사역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리더의 마지막으로 모세를 중심으로 리더란 어떤 정체성을 갖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성경에서 모세보다 더 큰 일을 행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 운명을 결정하는 아주 중요한 네 가지 선택을 한 사람입니다. 모세 뿐 아니라 여러분들도 교회에서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인데. 여러분들이 직면하게 되는 하루하루의 문제들, 사건들에 대한 선택과 결단, 교회 안에서의 리더십에 의해서 여러분들의 삶은 결정됩니다.
구체적으로 모세의 삶을 살펴보면 우리는 모든 지도자에게 필요한 네 가지 질문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들은 자기 실체에 대한 질문이며, 책임에 대한 질문인 동시에,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확립될 때 여러분은 비로소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자리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네 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모세는 어떻게 응답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대답은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이기 때문입니다.
1. 정체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모든 지도자들에게 첫 번째로 던져야할 질문입니다. 모세는 유대인으로 태어났으나 이집트 왕실에서 성장했습니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었던 모세에게 이 문제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습니다. 그가 성장했을 때 내가 정말 누구인가? 라는 질문은 모세의 앞날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문제는 모세의 평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부분입니다. 모세는 파라오의 손자로서 인생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파라오의 손자로서의 인생을 선택한다면 그에게는 모든 명성과 호화로운 삶 그리고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모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이 길을 선택한다면 그는 궁전에서 쫓겨나서 비천함 삶과 노예로서 삶을 살아야만 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면 여러분들은 어느 길을 선택하겠습니까?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본질을 확인하는 일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정확한 자기본질을 선택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정직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거짓된 삶을 거절한 것입니다. 이 선택은 모세의 나머지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주는 결단이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23-27에서 우리는 모세의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24절에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모세는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했습니다. ‘칭함’이란 단어의 뜻은 ‘자신의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입니다. 모세는 거짓된 삶을 거절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만드신 본연의 모습으로 남기를 원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가장 먼저 직면하게 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로 부르시고 교회로 부르셔서 직분을 맡기는 모든 과정에 분명한 목적을 주셨습니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은 각기 다른 목적을 가지고 계십니다. 당신이 하늘나라에 도착하면 하나님께서는 너는 왜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지못했냐고 묻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하나님께서는 왜 너다운 네가 되지 못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당신은 오직 당신 하나뿐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당신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진실로 핵심적인 문제는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적을 가지고 창조하셨다는 것이며 성공한 그 어떤 사람들처럼 당신도 성공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기초입니다. 이것이 정체성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과 똑같은 사람이 되려는 시도를 이제 그만 두고 자신이 누구인지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나는 정말 누구인가? 여러분이 존경하는 어떤 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 사람의 몸짓, 목소리, 옷을 입는 취향, 그리고 생활 스타일 까지 모방해 보십시오. 성공적으로 모방한다고 해도 그 사람과 당신은 동일한 사람이 될 수 없으며 그 어떤 효과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할 때 거기에서 여러분들은 놀라운 자유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유전자, 부모, 그리고 환경까지도 하나님께서 선택하셨습니다. “주의 손으로 나를 만드사 백체를 이루셨거늘....”(욥10:8)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여기에서 “만드신”을 의미하는 헬라어 “포에마”의 어근은 “시(詩)”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의 창조적 예술 작품으로 고유한 존재입니다. 매일 같이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시를 쓰고 있으며 작품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당신과 똑같은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다른 어떤 사람과 비슷한 리더가 되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특성들, 능력들, 경험들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알고 있는 사람이 리더입니다. 여러분이 리더가 되었다면 그 부르심은 하나님의 전적 개입과 인도로 된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을 감사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2. 책임성에 대한 질문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인생 전반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누군가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말아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하여 불평도 멈추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내가 지도자라면 과연 어떻게 할까? 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삶을 통해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가에 대하여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현명하게 결단해야합니다.
히브리서 11:25을 보십시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본문에서 “좋아하고”로 번역된 헬라어는 “선택하다”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저는 구원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습니다. 이 사실이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 분의 형상으로 만드셨고 우리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지도자로서 여러분들의 리더십은 당신의 선택에 그 기초를 두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책임의 문제입니다. 내 인생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내 사역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서 결정되는 것입니다.
모세는 선택에 있어서 3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부정과 긍정의 선택을 잘했습니다.
히브리서 11:24에서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합니다. 25절에서 우리는 모세의 선택을 보게 됩니다. 여기 24절과 25절에서 서로 다른 점에 주목하십시오. 그것은 부정과 긍정의 선택입니다. 24절에서 우리는 부정적인 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25절에서는 긍정적인 면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크리스천의 삶은 단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해”라고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나는 앞으로 이런 것 저런 것을 하지 않을 것이야’라고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부정적 면과 해야 될 것에 대한 긍정적인 면을 어떻게 잘 선택하느냐가 탁월한 리더의 기준입니다. 모세는 먼저 거절했습니다. 그런 다음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선택했습니다.
둘째, 자신 스스로 가야할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어렸을 때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25절, 모세가 장성하였을 때, 이제 모세가 하나님을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아주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모세가 이 땅에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으로부터 구출해내는 사람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으면 이 계획이 변화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이미 당신도 선택하셨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 15:16).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받도록 선택 하실 때 당신을 사역자로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당신 스스로가 선택해야 할 때입니다. 히브리서 11:24을 보면 “모세가 장성하여”라고 했습니다. 모세의 선택은 그가 성숙하게 성장했을 때 행해졌다는 것입니다. 스스로가 영적 생활에 책임감을 인정하는 것은 성숙함을 나타내는 여러 표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세가 어린 시절, 그는 부모의 신앙을 떠나서 사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의 인생과 그의 실체에 대하여 결정해야만 하는 장성한 때가 왔습니다. 스스로 결정하여 길을 가야할 사람이 리더입니다.
셋째,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24절에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라는 것은 극도로 위험과 보통 사람 같으면 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며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리더는 일을 할 때 이런 상황을 만나게 됩니다. 명예와 권력과 평안과 만족, 부귀와 존경을 받는 자리가 되는 공주의 아들 지위와 광야의 고난과 배고픔과 십자가를 져야하는 어려운 상황에 대한 싸움을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어떤 쪽을 선택하느냐는 것은 리더의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궁전에 사는 것보다 광야에 사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적어도 리더는 이런 길을 가야합니다.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서 조금 편하고 자신에게 유익이 있다고 해서 공주의 아들이 되길 원한다면 결국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리더는 순간순간 자신이 선택을 하며 가야할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다음의 3가지를 유의해야 합니다.
첫째, 리더는 다른 사람들의 영적인 헌신에 힘입어 사역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개인적인 깊은 교제가 필요하며 스스로 사역해야만 합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의 기도만으로 여러분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장성했을 때 여러분 스스로가 모세와 같은 결단과 선택을 해야만 합니다.
둘째, 내 인생에 대하여 다른 사람에게 불평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대는 모든 것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의 탓으로 돌리고 불평하는 사회입니다. 세상에는 여러분들이 통제할 수 없는 일들이 있으며 다소간의 차이가 있지만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피해를 주는 일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자신에게 닥치는 모든 일들을 다 통제할 수 없지만 그러나 여러분의 책임 하에 있는 일들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대하여 불평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은 여러분들이 원하는 만큼의 영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자 하는 만큼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만일 ‘나는 왜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을까?’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여러분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거나 묵상의 시간과 기도하는 노력을 통해서 그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과 아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행위를 아나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안다고 했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불기둥을 보았으며, 반석에서 솟아나는 물을 보았고, 홍해가 갈라지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더 사랑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사람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선택을 한 것뿐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원하는 만큼 하나님과 가까워 질 수 있습니다.
셋째, 내 인생에 대하여는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자기 자신 외에는 그 누구도 내 인생을 망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인생을 망치게 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사탄도 당신의 인생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선택은 항상 당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다면 여러분의 선택을 아무도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을 통해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것은 내 책임의 문제입니다.
여호수아는 말하기를 자신이 모세와 동일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엣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 15)라고 자신의 태도를 선택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후계자이었습니다. 그는 선택적 삶을 사는 모세를 보아왔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지난 후, 그는 모세와 똑같은 선택의 문제가 왔을 때 이렇게 선포합니다. 당신들이 뭐라고 말하든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이런 사람이 리더입니다. 리더는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 책임의 사람입니다. 리더는 망설이며 때만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길을 가기 위하여 매순간 선택을 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3. 우선순위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 번째 질문은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입니다. 이 질문은 삶의 우선순위와 관련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영향력 있게 당신을 사용하시고자 한다면 당신은 자신의 일에 대한 우선순위에서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만 합니다. 여러분들은 가치 판단의 기준, 도덕적 기준, 윤리적 기준, 영적인 기준 그리고 우선순위에 대하여 명확한 기준을 세우십시오.
이것이 모세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했습니다. 히브리서 11:26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여기에서 “여겼으니”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여겼으니”란 ‘평가하다’를 의미하는 단어로 저울로 무엇을 측정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이 말은 무엇의 가치를 판단하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순간적으로 기분에 따라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내 인생이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이며 무엇이 의미 있는 나의 삶인가 신중히 생각해야만 하는 문제입니다. 누가 당신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을 받게 된다면 당신은 분명하게 당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하여 열거할 수 있습니까?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솔직하게 무엇이 내게 가장 소중한지 써보십시오. 그런데 소중한 것의 선택은 모두가 그 사람의 가치관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가치관은 그 사람의 인생 목적입니다.
예를 들어 모세의 가치관은 하나님 중심적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적 가치관으로 선택을 하지 않았으며 우선순위가 분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세상의 가치관입니까? 이 세상의 가치관은 3가지입니다. 아담을 유혹하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모세를 시험한 것도 예수님을 시험한 세 가지 속임수와 동일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단은 이와 동일한 세 가지 속임수로 여러분들을 시험하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욕망, 세상의 욕망, 이생의 자랑입니다. 사탄은 영적인 신자에게도 항상 이 속임수를 사용합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 유명해 지는 것과 다른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자 하는 생각 그리고 권력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쾌락을 추구합니다.
히브리 기자의 말처럼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25) 이런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누가 고난을 좋아하겠습니까? 사람들은 쾌락 즉 즐기며 사는 것을 훨씬 선호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리더입니다. 또한 모세는 권력도 이세상의 쾌락도 얻을 수 있는 재물을 거절했습니다. 2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모세 당시 세상의 모든 재물은 이집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했습니다. 금은보화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치관은 어떻습니까? 어떤 유혹이 어려분의 생각을 빼앗고 있습니까? 영적인 여러분들이 기억해야 될 사실은 때로 당신을 위해서 유익해 보이는 것이 하나님에게는 반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많은 신자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교회사역에 동참하려는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이 세상의 가치관에 대하여 과감히 거절할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하여 타협한다면 그 결과는 비참할 뿐입니다. 여러분들은 “아니요” 라고 말하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문제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하는 우선순위에 대한 것입니다. 모세는 자신의 가치관을 통해서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들을 거절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모세의 가치관이었습니까? 3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목적을 이 세상의 명예보다 훨씬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바로의 손자로서 그리고 왕권의 후계자로 모든 명예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 명예에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명예는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잠시 명성을 얻을 수 있지만 다음 순간 잊혀 집니다. 여러분들이 지도자로서 한 가지 배워야만 하는 것은 명성과 비난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여기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을 사랑한 사람들이 다음 순간 당신을 미워하는 사람들로 돌변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효과적인 교회사역을 하기 원하신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찾는 삶에 대하여 배워야만 합니다. 항상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의 쾌락보다 하나님의 일을 훨씬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나일 강의 동쪽에서 왕자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으며 무엇이든지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옳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쾌락과는 반대되는 고난을 선택했습니다. 사람들은 고난 없이 위대한 사역을 하기를 원합니다. 아이를 기르는 고난 없이 훌륭한 자녀를 원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모세는 고난의 길을 갔습니다. 주님도 관의 길을 갔습니다. 위대한 영적 리더는 모두 쾌락보다는 고난의 길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삶은 산 사람들입니다. 리더는 교회사역을 위해서라면 불편함과 고난을 기꺼이 감당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면 고난을 기꺼이 감당해야만 합니다. 우리는 이것을 봉사라고 부릅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고난 없이 봉사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역은 고난을 요구합니다. 대부분의 사역이 힘들고 어려우며 고난이 요구되는 사역이고 봉사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평안을 세상의 제물보다 훨씬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가치 있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미래를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금은보화가 내적인 평안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평안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때 비로소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재물이 인생의 의미와 자유 그리고 물건을 사는 기쁨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재물을 많이 소유한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이 얻기 위해서 평생을 허비하는 재물을 모세는 완전히 포기했다는 사실입니다. 모세가 이와 같이 결단하도록 만든 것이 무엇입니까? 26절에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가 그 대답입니다. 모세가 재물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미래의 꿈을 통하여 결정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의 가치관들은 여러분들의 비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모세는 비전을 소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 땅의 명예, 쾌락, 재물이 아니라 미래에 주어질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4. 헌신에 대한 문제입니다.
네 번째 마지막 질문은 나는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얼마나 온전히 헌신하고 있는가 입니다. 본문 27절을 보면 모세는 “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습니다. 모세는 목표로부터 눈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모세를 쓰신 이유입니다. 모세는 인내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가시화 해야만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시화는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여러분을 향한 그 분의 뜻을 묵상하십시오. 성공의 비결은 바로 인내에 있으며 인내의 비결은 바로 비전에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오직 마지막 목표를 향하십시오. 여러분들이 목표에서 눈을 돌려 발생하는 문제들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여러분들의 장애물입니다. 주의 사역에는 너무나 많은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모세의 사역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인내’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아무도 없는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2주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야만 했습니다. 일반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기다리며 인내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지도자들을 향한 믿음의 시험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응답을 얼마동안 기다릴 수 있으십니까? 속히 이루어지지 않아서 여러분들은 포기하는 경우가 없으십니까? 인내는 비전 성취의 열쇠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18).
여러분들이 사도 바울의 사역을 살펴본다면 그가 얼마나 많은 인내를 해야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1장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우리 마음에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고후 1:8-9).
인생이 길어야 70년 혹은 80년을 이 땅에서 살게 됩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삶과는 비교조차 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모든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힘겨운 시간을 통과하고 있지만 그러나 여러분들이 승리하게 될 때 누리게 될 그 기쁨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비전은 인내로 이루어집니다. 리더는 인내하는 사람입니다. 그 인내는 무조건 참고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비전을 바라보고 오늘을 극복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인내로 되어집니다. 교회 사역도 인내의 열매입니다. 행복이나 축복의 길은 인내에 있습니다. 리더로서 부름 받은 여러분들에게 있어야 될 가장 중요한 영적 성품과 자질은 인내입니다. 주의 일은 참으며 끝까지 견디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을 수 있고 어려움이 닥치고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교회 안에서 얼마든지 일어납니다. 이 땅에 세워진 어느 교회이든 문제가 없는 곳은 한 곳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은 사람을 통하여 이루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은 하나가 되기 어렵고 의견일치나 같은 마음을 품는 것은 인내로써 기능한 것입니다. 인내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이며 우리는 끝까지 주의 사역을 이루기 위하여 인내하는 사역자로 서야합니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리더의 일입니다. 최고 리더의 모습은 자기를 알고 바른 선택을 하고 우선순위를 알며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 상위 1%에 속하는 리더가 되어 우리 교회를 리더 교회로 세워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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