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로마 정부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15장 10절입니다. “이는 그(빌라도)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준 줄 앎이러라.” 가야바와 대제사장들의 시기심 때문입니다.
1. 대제사장의 시기심
시기심이란 단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좋은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의미가 있습니다. 좋은 의미로 사용된 곳이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입니다. 유월절이 가까이 왔을 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하시고 격노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동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노끈으로 채찍을 만들어서 양이나 소를 성전에서 다 쫓아내셨습니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습니다.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가져 가라고 책망하십니다. 내 아버지 집으로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호통을 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노발대발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 17절입니다.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여기에 나오는 열심이 좋은 의미에 있어서의 시기심입니다 반면에 나쁜 의미에서의 시기심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님이 넘겨 준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기심은 원한이 맺힌 경쟁, 혹은 대림관계의 의미로 사용된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대제사장들로 하여금 시기심을 유발시킨 결정적인 계기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성전 청결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유월절 기간 중 장사가 중단되었고, 그로 인해 돈을 벌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즉 안나스의 아들들이 성전 수입원에서 큰 손실을 본 것입니다.
2. 종교 카르텔
예수님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오히려 안나스의 아들들은 수지 맞는 사업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옉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성전에 와서 아무런 제한이 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안나스의 아들들은 희생 제물로 바칠 동물들을 비싼 것에 사게 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챙겼던 것입니다. .
예수님은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말씀하십니다(16절, 눅 2:19). 아버지의 집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당시에 유대인들은 성전에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예물을 준비해야 하는데 먼 곳에서 하나님께 바칠 양이나 소를 끌고 오는 번거로움이 있고, 도중에 다치면 제시용으로 불합격 판결을 받기 때문에 편의상 성전에서 구입하고 성전에서 사용하는 돈으로 환전을 하면서 높은 수수료를 지불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에서 당신의 종교적 지도자들은 이러한 판매를 위하여 로마의 관계자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이익 카르텔을 주도하였던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예배의 참된 대상이 누구인지 조차 모르고 그냥 예배를 떼우는 일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했지만 자신들을 위한 요식 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3. 헐라 그러면 일으키리라
이에 대해 유대인들이 예수께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보여주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님은 너희가 성전을 헐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 까요? 외형적인 제사, 형식적인 예배, 종교적인 행위로서의 껍데기 신앙은 헐어버리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잘못된 영적 상태를 책망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66장 3절입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이것은 이스라엘 벡성들의 잘못된 예배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습니다. 소를 잡아들이는 것은 사람을 제물로 드리는 것처럼 살인 행위에 불과합니다. 어린 양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은 그들이 경멸하는 개의 목을 꺾는 것과 같이 극히 혐오스러운 것입니다. 또한 돼지를 죽여 제물로 바치는 일 역시 이방 제사에서나 행해졌던 혐오스러운 것이었다(65:4).
이와 같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그 제사의 바른 정신을 깨닫고 그 정신에 입각해 드리는 제사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는 이사야 66장 2절에 나오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제사는 이러한 내면적 자세를 무시한 채 그냥 동물만 잡아 드리는 제사이기 때문에 이방의 제사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이 길을 고집하며 우상의 가증한 것을 기뻐하기 떼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이 유혹에 빠지게 하고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이 실제로 일어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이 성전은 46년 동안에 지었거늘 어떻게 사흘만에 일으키겠느냐고 대꾸합니다. 산헤드린 공회가 예수님을 고소하는 죄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마가복음 14장 58절입니다.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예수님은 너희가 헐라고 하셨는지 예수님이 헐겠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겠다고 하는 것은 성전 된 자기 육체를 가리킵니다. 즉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사건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몸돠 지체들이 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드려질 것을 예고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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