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처음과 끝이 보이지 않는 회사생활을 싫어합니다. 뭔가 손에 잡히는 , 내 이름이 들어가 있는 사업을 원합니다. 내 인생이 그 사업 안에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들 사업을 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기획하고, 내가 시작하고, 내가 마무리 짓는, 뭔가 내가 주도하는 목표들이 있어야 내가 의미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런 세대들입니다.
그런데 오니 기니스에 따르면 내가 다 알고 내가 다 할 수 있고, 내가 당대에 다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생각은 근대철학에서 생긴 사고일 뿐입니다”(내 인생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목표가 너무 크게 보이면 그것이 하나님이 됩니다. 우리의 목표가 하나님이 되면 그것이 우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구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평생 삶의 우선 순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평생 기도제목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자신은 인생의 푯대를 위하여 달려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거룩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본문 10, 11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입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도라.”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할 때 뿐만 아니라 복음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리스도 때문에 죽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스도 때문에 살아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 자체가 죽다가 살아나는 것을 날마다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당신은 지금까지 누구 때문에, 무엇 때문에 죽고 살아나는 것을 반복하셨습니까?
지나온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저는 두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 해온 곳애 대해 안주하지 마십시오.
본문 12절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우리는 그동안 할 만큼 했다는 것이 안주해서는 안됩니다. 끝까지 잘 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늘 부족함을 느껴야 발전이 있습니다. 이만큼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히는 순간 자만하게 되고 그것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금년 한 해동안 지나간 것을 잊어버려야 합니다.
13절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그동안 우리에게는 기뻤던 일, 슬펐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교훈을 발견하고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아야 하지만 그것에 붙잡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자책감에 빠지거나 상체에 붙잡히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는 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옮겨졌습니다. 뒤에 있는 것이 때로는 생각날 때가 있지만 잊어버려야 합니다. 패스해야 합니다.
그때 그 일이 문득문득 생각날 때가 분명히 잊지만 또 다시 자책감에 빠지지 말고 그래서 주님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감사의 기회로 삼으셔야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상처에 휘둘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받았던 상처와 아픔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상처가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부은 바 되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받은 상처를 은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많이 힘들었지만 당신 주변에 그러한 상처로 고통받는 사람을 위로하고 붙들어주는 도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대기의 먼지와 같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받으면 찬란하게 빛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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