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1. 십자가의 사랑을 믿는다 하더라도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자신의 (믿음)도 헛되고 더욱 (불쌍)한 자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6-19절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서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런데 예수님의 표적과 능력을 직접 체험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과연 믿었을까요? 여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었을 때에 여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서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눅 24:11). 이 여인들과 제자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24장 7절에 보면 이 여인들과 제자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고난을 당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2. 여인들은 부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제자들은 부활의 (사건) 자체를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해준 부활의 (소식) 자체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6절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친히 찾아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반가워하고 좋아하기는커녕 놀라고 무서워합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만큼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못박하신 사건의 충격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합니다.
더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특히 제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당시에 분위기 앞에서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8절에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고 반문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아직도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고 두려워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3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자신을 직접 만져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있을까요? 성경에 보면 사람이 죽었다가 살아나는 것이 여러 사례가 나타납니다. 샤르밧 과부의 아들, 수넴 여인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인성 과부의 아들, 베다니의 나사로, 선행과 구제의 여제자 다비다, 졸다가 떨어져 죽은 유두고가 있습니다. 요즈음도 의학적으로는 사망 신고서까지 다 쓰고 죽었는데, 다시 살아나는 소식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3. 지금까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부활)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얼마 후에 다시 죽었습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체로 계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이십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아담 이후로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왔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모든 사람이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언제 우리가 다시 살아나게 될까요? 고린도전서 15장 51-42절입니다. “보아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니.”
4. 지구상의 종말은 마지막 나팔, (일곱 번)째 나팔이 울러 퍼질 때 주 안에서 먼저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리고 그 때 살아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처럼 (육체적)인 형태가 그대로 간직하게 됩니다. 다만 다시는 질병과 고통과 죽음이 없는 (변화)된 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모습을 확인한 제자들은 아직도 믿지 못합니다. 누가복음 24장 41절에 보면 제자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깁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그때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니 예수님이 잡수십니다. 여기서 구운 생선 토막을 드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통해 우리도 부활하면 먹는 기쁨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활의 주님의 모습을 직접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아직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합니다.
5.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는 (성경)이 다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44, 46절). 제자들이 부활의 (말씀)을 듣고,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실 때 그들은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됩니다(45절).
오늘 이 시간 아직도 부활의 신앙을 갖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서 부활의 신앙을 가지시기를 소원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자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자발적으로 참예합니다.
빌립보서 3장 10-11절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침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욵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사도 바울은 지금 살아가는 동안에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기를 위하여 스스로 고난에 동참하기를 기뻐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이 당한 고난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저주받은 사람이라 여길 정도로 엄청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고난 가운데서도 사도 바울은 결코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하며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사도 바울이 이렇게 극심한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할 수 있었을까요? 과거에 교회를 핍박하던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렇게 남들보다 더 많이 수고하여 섬길 수 있었던 것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은혜일까요? 고린도전서 15장 전체는 부활에 관한 장입니다.
6. (부활)의 은혜를 받으면 주님의 나라를 위해 더 (충성)할 수 있고 (고난) 가운데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고 교회를 위해 염려할 수 있습니다.
과연 부활의 신앙을 가진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떤 고난에 동참하고 있습니까?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자신이 지금가지 신뢰했던 모든 자랑거리를 배설물처럼 여기게 됩니다(빌3:8).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사도 바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부활의 신앙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빌3:10). 이 세상의 삶이 우리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우리는 욕심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애굽의 모든 보화도 버렸습니다(히11:24-26). 모세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모세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천국의 상, 부활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에 세상의 부귀영화를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은 부질없는 것이 되고 우리의 삶은 일시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가 부활하게 되고 선악간에 행한 대로 심판받는 것을 믿는다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기뻐하고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7-19절입니다.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리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사도 바울은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당부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43절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한 유일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인간이 죽은 후에 무엇이 있는지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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