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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뉴 라이프(로마서 6: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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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황사 현상으로 별 일 없으셨습니까? 황사 현상 때문에 지난 목요일 대치동 주유소에서 세차를 하였습니다. 세차를 하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온갖 죄로 인한 황사 현상 때문에 나의 죄를 언제 세척하였던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기 때문에 과거의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이 사해졌습니다. 그런데 현재 거듭되는 죄의 실패는 언제 씻었던가요?

 

때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기는 하지만 죄에 대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고는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지만 나의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는 영적인 패배의식에 빠져있지는 않습니까? 결국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상실로 이어집니다. 신앙 생활은 오래했지만 새생명에 대한 감격이나 기대가 없이 그저 헌생명을 가지고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신자가 구원받은 이후에 음악부호로 따지면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아십니까? 대부분의 신자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디크레 센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이 크레센도(<)로 바뀌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본문 로마서 64절 하반절에 보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이 계속해서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아낌없이 나누어 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십자가의 고난은 신자의 생활 가운데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는 축복의 열쇠입니다. 고난 주간이 당신의 실제 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까? 한번 지나가는 연례행사가 아닙니까? 고난 주간이 이제 끝난게 아닙니까? 본문 3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오늘 세례를 받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미 세례를 받은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세례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세례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의식입니다. 본래 세례는 물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나옵니다. 그 의미는 우리의 옛사람은 이제 죽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 이미 못박혀 죽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따라하시기 바랍니다. “ 나 ooo은 예수님과 함께 이미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실 때 좌우편에 두강도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세상 가운데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좌우편에 강도가 있습니다. 두 사람은 다 흉악한 강도입니다. 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께 대항하고 조롱했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이 흉악한 죄인임을 깨닫고 그래도 양심의 가책이 되어 예수님께 매달렸습니다. 비록 내가 허물과 죄악이 많지만 나를 생각해 주십시오. 다만 그 차이입니다.

 

사실 우리는 두 번째 부류의 강도입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로 죽을 수 밖에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옆에 사람에게 이렇게 인사하십니다. 당신은 흉악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죄가 완전히 용서받았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었던 순간 당신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당신 자신을 용서하십시오. 이미 당신의 과거의 모든 죄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의 실패에 대한 좌절감도 이미 죽었습니다. 이래에 대한 불안감도 이미 죽었습니다. 계속되는 절망은 이미 죽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던 순간 당신의 과거는 이미 예수님과 함께 장사지내었습니다.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이제 당신의 과거의 모든 상처를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당신은 모든 추한 죄를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마음의 분노를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그것 때문에 다른 일을 할 수 없는 어두운 생각을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잘못될 수 밖에 없다는 불길한 생각을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죽음에 대한 두려움까지도 무덤에 묻어버리십시오. 더 이상 무덤에 있는 것들을 파헤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 부활하실 때에도 무덤을 파헤치고 부활하지 않으셨습니다. 무덤에 지진이 얼어나서 모든 절망과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서 부활하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그 가운데 거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연약해서 다시 죄를 짓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이렇게 외치십시오.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2). 다시는 그런 죄를 안 짓겠다고 결심하십시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이미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십시오. 나같은 죄인 살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십시오.

 

오늘 부활의 아침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예비하셨습니다. 만약 우리를 그대로 두셨더라면 이제는 도저히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끝났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엇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십니다. 4절 하반절에 보면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이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제 우리는 뉴 라이프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뉴 라이프는 아파트 이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하신 축복의 열쇠입니다. 자주 그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우리가 새생명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뉴 라이프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뉴라이프는 오토메틱이 아닙니다. 뉴라이는 스틱입니다. 클라치를 누르고 악셀레이트를 받고 경사진 곳에서는 브레이크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이것들을 잘 사용하지 못하면 시동이 꺼집니다. 특히 면허시험장에서는 잘 꺼집니다.

 

우리의 믿음의 드라이브를 잘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갈라디아서 220절을 잘 활용하면 됩니다. 다같이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산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는 매순간 신앙의 브레이크를 밟으십시오. 브레이크가 고장이 나면 대형사고가 납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사람의 불행은 내가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간혹 저는 그런 표현을 쓰곤 합니다. 안되는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 언제 철이 드는 지 아십니까?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더라는 생각이 들 때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철이 너무 늦게 들어서 철들자 죽고맙니다. 더 이상 내 방법으로 내 수단으로 내 힘으로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분노를 참을 수 없을 때에도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고 우리는 매순간 클러취를 잘 밟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의 시동이 잘 꺼집니다. 아무리 차가 좋아도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클러치가 무엇입니까?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알고 계시고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자신의 목숨까지 주신 그분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다. 불안과 좌절이 찾아올 때 오직 내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해주십니다.

 

또한 우리는 매순간 악셀레이트를 잘 밟아야 합니다. 운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브레이크와 악셀레이트를 잘 밟아야 합니다. 간혹 브레이크를 밟는다는 것이 악셀레이트를 밟아서 사고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내수단과 내방법으로 악셀레이트를 밟으면 언젠가를 무인카메라에 찍혀서 딱지가 날아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매순간 확인하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인생에 악셀레이트가 무엇입니까?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는지 그것을 날마다 확인하시면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만한 가치가 잇는 것으로 여겨 주셨습니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 내가 연약할수록 더욱 귀히 여기사 높은 보좌 위에서 낮은 나를 보시네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날 사랑하심 성경에 써있네이제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면서 새생명의 환희를 느끼십니까? 활짝 핀 개나리꽃을 보면서 하나님의 크신 평화를 느끼십니까? 진분홍 빛 진달래를 보면서 날 위해 피흘려 영생의 꽃을 피워주신 은혜에 감사가 절로 나옵니까? 지난 주 고난주간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제각기 다르게 생긴 하나님의 작품이 얼마나 멋있는지. 심지어 아파트 내에 대머리 중년 남자가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 대머리를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날 따라 얼마나 시원하게 보이는지. 그날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매순간마다 부활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은 반드시 고난의 십자가 뒤에 옵니다.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22) 하는 고통 이후에 반드시 여호와는 나의 목자가 되십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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