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그 사람은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좋은 직장 들어가고, 사업이 잘되고, 좋은 배우자 만나고, 건강하게 오래 살고, 자녀가 잘되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싫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 예수님도 좋아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러한 것들은 복이 아니라 진정한 복의 외적인 현상들에 불과합니다. 소위 세상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반드시 복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거지 나사로와 부자 집 주인 가운데 누가 복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당연히 나사로가 복을 받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그래도 부자 집 주인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엘리트 계층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복을 받았을까요? 아니면 대부분 순교를 당했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을 받았을까요? 만약 우리가 당시의 사람이었다면 어떤 계층을 부러워 했을까요? 이와같이 우리가 생각하는 복의 개념과 성경이 말하는 복의 개념과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가장 많은 복을 받은 사람이 누구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이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입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복의 근원을 누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신자들이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껍데기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이 보실 때 참으로 복 받은 자인가? 분명한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나 이런 복을 누리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사람들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3절), 애통하는 자(4절), 온유한 자(5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6절), 긍휼히 여기는 자(7절), 마음이 청결한 자(8절), 화평케 하는 자(9절),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10절)고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대체 이런 것들이 어떻게 복이 될 수 있을까요? 사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까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세상적으로 모든 게 잘 나간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비록 실패와 손해를 당했다 하더라도 그것 때문에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되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천국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나는 모든 것이 있다. 나는 상당한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인간은 허망해집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셔야만 됩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이 참으로 행복할 때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단순히 슬퍼하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죄를 탄식하고 진실로 회개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당신은 언제 울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무엇 때문에 우셨습니까? 자신이 못한게 생각이 나서 우셨습니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우셨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지은 죄가 생각나서 탄식하며 눈물로 호소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사랑에 빚진 자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 때문에 몸부림치면서 괴로워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부어집니다. 기도하는 동안에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리면서 네가 무엇 때문에 슬퍼하는지 내가 안다. 내가 너와 함께 해주겠다는 내면의 음성이 들려올 때 그 위로가 주는 힘은 엄청난 것입니다.
온유한 자는 역경에 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의로운 자를 보살피심을 굳게 믿는 자를 가리킵니다.
요즈음 시대에는 온유한 사람은 바보 취급당하기 일수입니다. 비록 억울하게 손해를 보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에 호소하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세상이 점점 거칠어져 가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온유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점점 이기주의 경향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상대방의 아픔을 헤아려주는 것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좀 힘들더라도 옛날 사람들은 삭일 줄 알았는데 이제는 그대로 내뱉고 맙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도덕적인 선을 행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을 말합니다.
영적인 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언제나 영혼의 욕구에 대해 민감하고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몸부림치게 됩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그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합니다.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바로 서지 못해서 늘 안타까와 하고 부단히 애쓰는 것을 말합니다. 남달리 영적인 욕구가 강하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는 채울 수가 없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고통과 비참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은헤를 체험함으로 타인을 향하여 긍휼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자들을 위하여 마치 그 일이 자신의 일인양 괴로워하고 어떻게 해주지 못해서 고통스러워 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자신도 모르게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들끓게 될 때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신유의 은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크신 긍휼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에게 물질적인 복이 따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두 마음을 품지 않은 자, 종교적인 형식을 통해서 이익을 추구하려는 음흉한 목적을 품지 않은 자를 말합니다.
신앙 생활 하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자신의 유익을 얻으려는 목적이 가미되면 하나님이 상당히 멀리 계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마음이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는 자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어떠한 것도 꺼리끼는 것이 매우 가까이에서 그분과 교제를 누리게 됩니다. 신자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체험을 하는 것만큼 기쁜 것이 없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평화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일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진정한 관계의 회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평화의 지배를 받을 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사람은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것은 많이 배웠다고 해서, 많이 가졌다고 해서, 나이를 많이 먹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를 가던지 화평케 하는 자의 축복을 나누는 사람이 되십시오. 21세기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점점 지신이 없어지고 불평해지는 경우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핍박을 당함으로 그를 통하여 복음이 선포됨으로써 받을 축복을 말합니다.
의를 위하여 오해와 멸시를 당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의를 위하여 수고하다가 핍박을 받는다고 해서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런 기회를 통해서 사랑으로 감동을 끼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복음을 전파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오히려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들 때문에 당신에게 축복이 쌓여 가고 잇다는 것 때문에 오히려 감사하십시오.
팔 복은 천국 백성이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천국 백성이 된 자들이 지켜야 할 삶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팔 복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가 있습니다.
처음의 네 가지는 신자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 나중에 네 가지는 신자와 다른 동료들과의 관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 여덟 가지의 축복은 신앙의 성장 단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의 기초가 되는 데 반해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가 가장 높은 신앙의 단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팔 복은 인간의 노력에 대한 대가나 보상이 아니라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팔 복의 개념은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관계의 개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축복입니다. 신자가 다른 동료와의 관계에서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엄청난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팔 복의 개념은 천국에서부터 시작하여 천국으로 끝납니다.
그 가운데 있는 것들도 모두 천국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과연 당신은 천국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긍휼히 여김을 받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해 왔습니까? 온유하다는 그 자체가 복이고, 의를 목말라하는 것 자체가 복이고, 형제를 긍휼히 여기는 자체가 복이고,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것 자체가 복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나는가?
당신이 예수 믿고 행복한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만큼 좋은 전도의 방법은 없습니다. 더구나 당신이 최악의 상황에 놓여 있을 때에도 절망하지 않고 내적인 평안함을 유지하고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그러한 모습이 불신자에게 강한 도전을 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전성기를 맞게 될 때에 세상적인 기쁨에 도취되지 아니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상대방을 깊이 배려할 때 불신자들은 당신에게 끌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신을 통해 많은 사람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사람입니다. 당신의 가정과 직장에서 교회에서 다른 사람이 도저히 따라올 수 없으리만큼 매사에 모범을 보이고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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