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준비할 때에만 곧 우리는 어떻게 살지를 배울 수가 있습니다. 전도서는 한 가지 확실한 미래의 사실, 곧 우리의 죽음을 받아들인 다음, 우리 삶의 모든 일상사와 결정과 고민거리를 그 지점으로부터 돌아보며 행동하라고, 또 마지막을 염두에 두고 이런 일들을 생각하라고 우리를 다독입니다.”(인생 전도서를 읽다). 죽음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제대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1.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라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본문 6절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졌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전제란 제물 위에 술을 붓는 것을 가리킵니다. 민수기 28장 7절입니다. “또 그 전제는 어린 양 한 마리에 사분의 일 힌을 드리되 거룩한 곳에서 여호와께 독주의 전제를 부어드릴 것이며.” 전제는 매일 어린 양을 잡아 번제로 드리기 전에 드렸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순교가 멀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떠나야 할 시가이 가까이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떠나다”란 단어는 닻을 올리고 출항하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으로, 영혼을 떠나는 기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2.현재의 삶을 돌아보라
바울은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최고의 가치를 위하여 살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본문 7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을 헌신했습니다. 신자는 선한 싸움을 위하여 싸워내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생애를 성공과 실패로 규정하지만 바울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삶의 가치가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싸움이 아니라 선한 싸움을 위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믿음의 생활은 어둠의 세력과 악한 영들, 정사와 권세자들과 공중에 권세잡은 자들과의 싸움입니다. 육신의 소욕을 거슬려서 성령의 소욕을 따라 싸우는 것입니다. 악으로 악을 갚는 싸움이나 악으로 선을 갚는 싸움이 아닙니다. 선으로 악을 이끼는 싸움입니다.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선언합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선한 싸움을 위하여 올인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선한 싸움을 싸우다가 나중에는 악한 싸움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끝까지 선한 싸움을 위하여 달려왔습니다. 바울의 생애는 마지막 죽음뿐만 아니라 자신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권능에 참예하기 위함이었습니다(빌 3:10).
우리 인생의 최고의 타켓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믿음의 교훈을 지키는 것입니다. 맡기신 사명을 완수했다는 ㅇ lal입니다. 돈을 지키거나 명예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신을 세 번씩이나 부인할 것을 아셨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들의 믿음을 굳게 하라고 하셨습니다(눅 22:32).
3. 미래의 삶을 기대하라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바라볼 때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되며 죽음을 제대로 준비할 수가 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의의 면류관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의로 사신 면류관으로서 하나님께서 그러한 면류관을 바울 뿐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주십니다.
당시에 그리스에서 2년마다 한번 열리는 올림픽 경기에서 우승한 사람에게는 월계관이 수여되었습니다. 의의 면류관은 충성스럽고 의로운 삶에 대한 하나님의 상급입니다. 만약 우리도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사모하여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맡겨진 사명에 충성한다면 우리는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킨 자들이 받기로 약속된 면류관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 그때가 언제일까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생명의 면류관이 주십니다.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오실 때에 바울 뿐만 아니라 주의 오심을 사모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실 것입니다.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사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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