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루터가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세 가지 회심이 있다. 마음의 회심, 생의 회심, 지갑의 회심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우리 모두 돈의 관리자로 지속적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고...(눅 16:10-11)
우리는 돈을 더 벌 수 있다면, 가난한 사람을 도울 텐데..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만일 우리가 현재 맡겨진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그분이 더 많은 것을 맡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누가복음 12장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와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가난한 과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과부와 어리석은 부자 중 누구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하나님이 참으로 모든 것의 소유주이신가?
시 24:1, 신 10:14, 레 25:23, 대상 29:11-12, 욥 41:11. 시 50:10-12, 학 2:8
무엇이 참된 재물인가?
참된 재물이란 하나님께서 가치있게 여기시는 재물로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 이다.
약삭 빠른 관리인의 비유(눅 16:1-13)는 우리가 각자가 물질, 은사, 기회를 영원까지 남을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데 주의 깊게 사용하여 자신의 영원한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달란트 비유는(마 25:14-30) 하나님이 우리 각자에게 서로 다른 물질, 은사, 기회를 맡기셨는데, 우리가 이 땅에서 그것들을 어떻게 잘 투자하였는지 하나님 앞에서 책임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분의 재산을 지혜롭게 잘 투자함으로 그분의 왕국이 확장되는데 쓰임받고, 주인의 다시 오심을 준비한다.
열므나의 비유(눅19:11-27)는 동등한 은사와 재산, 기회를 부여받은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그것을 투자하여 얼마나 충성되고 부지런하게 일했는지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과 결과적으로 하늘나라에 각기 다른 다스리는 지위를 얻게 될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람들을 사랑하고 물질을 이용하라고 만드셨지만, 물질만능주의자들은 물질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이용한다.
물질 만능주의의 열 가지 치명적인 위험
1. 우리의 영적인 삶을 방해하거나 파괴시킨다(계 3:17)
2. 물을 담을 수 없는 깨어진 그릇이다(렘 2:11-13)
3. 부의 저주로 우리를 눈멀게 한다(민 11:18-20).
4. 불행과 염려를 가져다 준다(마 6:31-34, 전 5:12).
5. 종착역은 궁극적으로 공허감이다(전 2:1, 8-10)
6. 인생의 많은 축복들을 깨닫지 못하게 한다(사 55:1, 계 22:17, 잠 11:4)
7. 하나님을 떠나게 함으로 믿음의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신 31:20, 호 8:14, 13:4-6)
8. 교만과 엘리트 의식을 갖게 한다(시 52:7, 욥12:5, 약 2:1-9).
9. 부정과 착취를 증진시킨다(암 5:11, 미 6:12)
10. 부도덕성과 가정의 황폐함을 가속시킨다
예수께서는 영적인 이유 때문에 가족들의 물질적인 필요를 공급하지 않는 어떠한 핑계도 배척하셨다(막 7:9-13).
그러나 부자병에 걸린 아이들은 극도의 가난한 환경에서 나타나는 우울증과 염려와 같은 증상이 나타난다.
물질만능주의 공허함을 가르칠 직접적이고 기억에 남을만한 방법은 없을까? 아이들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데리고 가보라. 그리고 당신의 가족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은 언젠가 이렇게 쓰레기장에 던져질 것이라고 설명해 주라.
번영신학이 근거로 삼고 있는 진리의 일부는 물질적 번영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연결한 구약의 구절들이다(신 15:10, 잠 3:9-10, 11:25, 말 3:8-12).
그러나 하나님은 부의 위험에 대해 경고하신다(신 8:7-18).
예수님은 일반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주신다(마 5:45)
이 땅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고난을 받을 수 있고 악한 사람이 형통할 수 있다(눅 6:20-26).
하나님이 때때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신다. 그 이유는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귀 위함이다(고후 9:8-11).
하나님이 당신에게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살펴보고, 거기서 당신이 꼭 필요한 것을 제하면, 나머지는 다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어거스틴).
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은 영원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다.
록펠러가 죽었을 때 사람들이 그의 회계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가 죽으면서 얼마나 남겼습니까? 회계사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가 가진 전부를 남겼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죽으면 가져 갈 수는 없지만 그것을 먼저 보낼 수는 있습니다.
하늘에 나라에 보물을 쌓으면 말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서 우리에게 맡기신 돈은 영원을 위한 투자자금이다. 매일 매일이 하늘나라의 주식을 더 많이 구입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이 땅의 재물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고, 이웃을 사랑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내어 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상하신다(눅 12:33-34, 딤전 6:18-19).
하나님의 돈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는 매일 매일의 결정과 행동을 일생동안 잘해야 한다.
선한 일을 하게 하려고 만드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시간과 재능, 기회, 돈과 소유와 같은 자원들을 맡기셨다. 그것들로 무엇을 했는지, 어떤 마음의 상태로 했는지에 따라 상급을 주실 것이다.
보상으로 동기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타락한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최초로 계획하신 것이다.
10퍼센트를 드리는 것으로 나미지 90% 역시 창조주 하나님께 속했다는 것을 선언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로 각기 다른 세 종류의 십일조를 드렸는데, 그중 하나는 매 삼년마다 했으므로 이것들을 합하면 소득의 23%에 해당되는 금액이다(민18:21, 24, 14:22-23, 28-29, 26:12-13).
십일조는 드림의 결승점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우리는 십일조를 총소득에서 해야 하는가? 아니면 순소득에서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드리는 것에 의하여 축복하신다면 당신은 총소득에서 축복을 받기 원하는가? 아니면 순소득에서 받기를 원하는가?
드림은 하나님이 돈을 모으시는 방법이 아니라 자녀들을 키우시는 방법이다.
십일조가 순종의 표시라면 자발적인 헌금은 사랑과 기쁨과 예배의 표현이다.
다량의 흙을 옮기는 기계를 발명한 RG 르투르노는 소득의 90%를 주님께 드리는 지점까지 도달했다. 그는 “내가 삽으로 돈을 퍼서 드리면 하나님은 삽으로 그것을 돌려 주신다. 그런데 하나님은 더 큰 삽을 가지고 계신다”(잠 11:24-25).
하나님이 더 많은 돈을 주실 때 우리는 이것을 축복이야라고 종종 생각한다, 하지만 이것은 시험이야라고 말하는 것이 성경적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삶을 도우라고 내게 주신 그분의 공급하심이다.
우리는 자신을 소유자로 생각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배달부로 바라 보아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이 내 손에 돈을 쥐어주셨다고 해서 그것을 내가 가지라는 의미는 아니다.
우리가 실재보다 더 많이 드리고 희생한 것처럼 보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면, 하나님이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행하신 것을 심각하게 상기해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드리는 것에 깊이 헌신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진기한 경험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하나님의 돈 관리자는 “얼마나 많이 가져도 됩니까?” 라고 묻지 않고 “얼마나 더 드릴 수 있습니까?라고 묻는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재물을 맡기신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 보다 못사는 사람들에게 긍휼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우리의 풍부함을 가지고 그들을 지혜롭게 도와야 한다는 책임의식은 가져야 한다.
요한 웨슬리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의 위치에 당신 자신을 두고, 하나님이 당신을 대하시는 것처럼 당신도 그들을 대하라.”
가난한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나쁜 일은 그들이 살 수 있는 정도로만 도와주고, 빈곤으로부터 헤쳐나올 수 있도록 충분하지 않게 돕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 그들을 도울 첫 번째 책임은 가족이다(딤전 5:3-4).
홍수와 집과 사럽터가 쓸러 내려가서 가난하게 된 사람들에게는 돈과 재료를 주어 다시 집을 짓고 사업을 일으키도록 돕는 것이 해결책이다.
불충분한 자연자원이나 불리한 기후가 가난하게 만든 원인이라면, 그들의 싱황을 최선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술 등을 나눠 줄 수 있다.
압제와 불의에 의해 가난하게 되었다면 법적, 사회적 개혁, 경제적 개혁 등을 청원하고 로비 활동을 할 수 있다.
방종으로 가난하게 된 사람들은 자신의 가지고 있는 것을 팔아 가족들을 먼저 먹이고, 수입을 낭비하지 말고 그들의 소득 안에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잠 21:17).
게으르기 때문에 가난해진 사람은 (잠 24:30-34) 더 이상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자극이 필요하다(살후 3:10-12).
구약 성경의 이삭 줍기의 관행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돕는 방법이다(레19:9-10). 자르지 않는 이삭들을 묶거나, 공정을 거치거나, 땅에 쌓거나, 자루에 넣거나 운반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 그들 자신이 거두는 일을 하게 해서, 존귀함을 빼앗거나 일하지 않는 것을 요구하는 제도에 의해 무책임하지 않게 하였다.
가난한 사람들 돕는 것이 우리의 생활 스타일로 들어와야 한다(사 58:6-8).
복음을 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세계 선교를 위해 교회 예산의 10퍼센트 이상을 써야 한다(고전 15:3).
우리는 지역 교회를 통하여 가난한 사람들 돕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행 4:34-35). 일반적으로 첫열매나 십일조는 지역교회에 드려져야 한다. 십일조 이상의 자발적인 드림은 훌륭한 선교기관에 드릴 수 있다.
당신이 후원하는 기관들을 선정할 때에 우리 사역의 웹사이트에 올려 놓은 ‘어떤 기관에 돈을 보내기 전에 물어야 할 19가지 질문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참고하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땅과 소유물을 가질 자격이 없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소유를 완전히 팔아 넘긴 것은 아니었다. 마가복음 1장 29절에 보면 그물을 버렸다는 기사 바로 옆 절에 그들은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갔다.“는 밀씀이 기록되어 있다. 이 제자들은 예수를 따르기 위해 집을 떠났지만 여전히 집을 소유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어머니 마리아를 사도 요한에게 부탁하실 때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때부터 자기 집에 모시느니라(요 19:27).
세리인 레위는 예수님이 나를 좇으라고 하셨을 때 레위의 집에는 만찬이 열렸고, 레위의 집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소개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를 따랐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재산을 모두 버리거나, 버리도록 요구받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사람이 예수께로부터 고침을 받고 나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간절히 원했을 때, 예수님은 집으로 가라고 지시하셨다. 그리스도는 이 사람은 자기 집을 중심을 사역하면 하나님 나라를 더 잘 섬길 수 있음을 아셨다.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 전임 사역자로 섬기기 위해 가족과 소유를 떠나는 부르심이 있고, 가족과 사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부르심을 받아서 더 이상 자신들이 충분한 소득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돈을 벌도록 하는 부르심이 있다.
성경은 아무 에게도 빚을지지 말라고 경고한다. 혹 빚을 졌다 하더라도 가능한 빨리 갚으라고 경고한다(롬13:8).
어떻게 빚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가?
1. 회개하라.
2. 하나님께 첫 열매를 즉시 드려라
3. 새로운 빚을 지지 말라
4. 현재의 빚을 체계적으로 없애 나가라
5. 신용카드를 없애는 수술을 단행하라
6. 빚을 지는 습관에 대한 합리화를 중단하라
7. 빚의 목록을 작성하고 필요하다면 채권자를 만나라
8. 모든 조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금이 부족하다면 빚을 없애기 위해 소득을 늘릴 방법을 강구하라
지혜로운 사람은 미래의 필요를 예상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미리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것을 다 써버린다(잠 21:20).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서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필요를 위해 준비하라는 것이다.
요셉은 칠년의 풍년 동안 수확의 20%를 저축함으로써 칠년의 기근이 닥쳤을 때 이집트만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다른 여러 나라들에게도 나눌 수 있었다.
먼저 드리고 그 다음에 저축하고, 마지막으로 소비하는 것이 지혜롭다.
당신의 연소득을 세계 부자순위를 계산하는 사이트에 입력해 보라(www.globalrichlist.com). 만약 당신이 작년에 50,000 달러의 소득을 올렸다면 당신은 전세계 최고 1퍼센트에 해당한다. 만약 25,000 달러의 소득을 올렸다면 최고 10퍼센트에 해당된다.
단기간의 필요를 위해 저축하는 것은 지혜로운 행동이 될 수 있지만 장래 수십년을 위해 많은 돈을 모으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가 오늘날 세상의 필요를 보고 돕지 않으면서 미래를 위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쌓으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순종하고 책임감있고 지혜로운 자녀들의 필요를 공급하실 것이다(마 6:33-34).
65세에 은퇴한 남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즉각적으로 치명적인 심장마비를 일으킬 확률이 두 배라는 연구 발표가 있다. 사례를 받지 않고 일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일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 땅에 남겨 두시는 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중에 많이 드릴 것이라는 생각으로 오늘 돈을 움켜쥐는 것은 당신 자신을 놀리는 일이다.
요한 웨슬리는 영원의 관점에서 어떤 가치가 있는지에 따라 모든 것을 판단한다고 말했다.
선교사 C.T.스터드는 ‘우리에게는 곧 과거가 될 하나의 삶만 있다. 그리스도를 위해 행한 것만 남을 것이다.
기회가 있다면 내가 언젠가 나누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왜 그것을 지금 나누지 않는가?
로또에 당첨된 육개월후 당신은 교통 사고로 온 몸이 마비된 것보다 더 행복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드리는 것을 연기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당신이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호인 앤드류 카네기는 말한다. “전지전능한 달러를 자녀에게 상속하는 것은 전지전능한 저주이다.
코네리우스 벤드빌트는 ‘상속된 재산은 도덕성의 마약처럼 일하려는 의욕을 말살시키려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헨리 포드는 “재산은 그것을 상속받는 사람을 파괴시킴으로 자멸하는 경향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상속)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한다(잠 20:21).
지금 드리는 것과 죽을 때 좋은 목적으로 쓰이도록 남기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상속 재산을 하나님에 일에 드리는 것은 좋은 일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의 상급은 그들의 행동이 믿음이나 희생에 근거하지 않았으므로 살아있을 때 드린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웨슬리는 그가 죽을 때 가능한 적게 남기는 것이 목표라고 명시하고 있다. 웨슬리는 찬송가와 책 인세로 약 5000파운드가 되는 엄청난 소득이 있었다. 그런게 그가 죽을 때 남긴 재산은 단지 28파운드 뿐이었다.
주후 390년에 존 크리소스톰은 그리스도인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일 당신의 자녀들에게 많은 부유함을 남기고 싶다면 하나님의 돌보심에 그들을 맡겨라 그들에게 재산을 남기지 말고 미덕과 기술을 남겨라.”
어린 자녀들이 돈 관리하는 것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가?
딸들이 일곱 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각가 세 개의 병을 주며 이름을 적고, 드림, 저축, 소비라고 적힌 레벨을 붙여 주었다. 그들이 돈을 벌 때마다 첫 번째 10%는 드림의 병에 넣고 너마지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른 두 병에 넣었다. 일단 드림이나 저축에 넣으면 다시 꺼낼 수 없도록 하였다. 저축이나 소비에서 드림으로, 소비에서 저축으로는 자유롭게 옮길 수 있었다.
자녀들에게 물건을 처음 보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잘 살펴보고 비교함으로 지혜롭게 사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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