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오늘날 크리스천들이 재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두 가지 극단적인 견해부터 언급하고자 한다. 한 가지 견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부요의 법칙의 일부만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가지는 극단론이다. 이들은 “이거야말로 내가 찾고 찾던 바로 그것이야. 나는 좋은 물건들을 갖고 싶어. 나는 돈도 더 많이 벌고 싶고, 나는 좋은 차를 타야하고, 나는 더 좋은 집에서 살아야 해. 그러기 때문에 나는 이 법칙들이 제대로 통할 것인지 한번 시도해 보고 싶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이들은 너무 많이 “나는...나는..."하고 말한다. 이것은 부요에 대한 세상적인 접근 방법이다. 크리스찬들에게 물질적 부요라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라고 믿는 반대편의 극단론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난을 경건이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물질적 풍요는 사람을 거만하게 만들고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진다고 믿고 있다. 물질적 부요에 대한 이러한 거부감은 사실은 세상적인 물질적 부요관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이런 식의 부요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도 거듭거듭 경고를 하고 있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부요해지는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 법칙대로 한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대로 부요해질 것이며, 이렇게 되어지는 부요에는 한점의 잘못도 없는 것이다. 돈 그 자체는 절대로 나쁜 것이 아니다. 성경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라고 말한다. 그렇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죄악이고, 돈을 섬기며 하나님보다 돈을 첫 자리에 두는 것이 죄악인 것이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하신 바에 따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을 상속받을 것이라고 분명히 가르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갈 3:14).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만약 하나님의 법칙에 따라 재산을 모으고 늘려간다면 번영하고 성공한다는 것은 조금도 문제될 것이 없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부요와 재물이 그 집에 있음이여…”(시 112:1-3).
예수님께서는 그의 모든 형제, 자매들이 번영할 수 있도록 그 자신이 완전한 값을 치르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부요의 법칙을 모두 따르셨기 때문에, 지상 사역의 전 기간에 걸쳐 재물에 있어서의 풍성함뿐 아니라 영과 혼과 육의 완전한 풍성함을 누리셨다.
요한복음 14장 12-14절은 우리가 바로 이 땅에서 살아갈 동안 예수님의 것과 똑같은 완전한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조금도 의심할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많은 부요를 누리고 있는 사악한 죄인들 대신에 그분의 자녀들이 번영하기를 원하신다. “그(악인)가 비록 티끌 같이 쌓고 의복을 진흙같이 예비할지라도 그 예비한 것을 의인이 입을 것이요 그 은은 무죄자가 나눌 것이며”(욥27:16-17).
하나님의 부요와 처방은 언제나 하나님을 최우선에 놓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다음의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다시 말해 우리가 삶의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놓으면 하나님 또한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서 어떤 필요든 채워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법칙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명예)과 생명(장수)이니라"(잠 22:4). 하나님의 방식으로 얻은 ‘부’는 조금도 문제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다. 무엇이 재물과 명예와 장수함을 얻는 하나님의 방식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경외스러움 앞에 지속적으로 우리 자신을 겸손하게 드림으로써 이런 것들을 얻는다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요법칙은 하나님을 우리 삶에서 완전하고 절대적으로 세상의 어떤 것보다 최우선에 두는 한에서만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칙은 그분에게 우리 삶을 완전히 바치는데 근거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축복은 우리 자신이 진실하고, 깊고, 지속적인 헌신을 하느냐에 따라 비례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A. 구약에 나타난 재물관
1. 가나안 정착 이전의 재물관
1) 족장시대
족장시대는 부족사회를 말하는 것으로 가장 작은 단위를 이루고 있는 ‘가족’, 그리고 가족들이 모인 ‘씨족’, 그보다 더 큰 단위인 ‘부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이들의 사회는 공동재산과 공동 파업의 개념을 바탕으로 생활하였고 사유재산은 의미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씨족 내에서는 빈부의 심한 격차는 있을 수 없었고 이러한 상황에서의 가난한 사람들이란 과부, 고아, 이민자, 등 가족과 유대가 끊어진 이방인들을 의미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사회적 공동책임 하에 보호되었다(출 22:21-22).
족장시대에 재산은 개인에게 속한 사유 재산이 아니고 부족 혈연 공동체에 속한 공동소유 재산이었다. 이 시대는 부족이 사막에서 유목인을 하던 때이므로, 재산이란 소나 양떼 같은 가축뿐이고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이동사회인고로 고정된 땅이나 주택은 없었다. 그래서 사막에서는 생존의 조건이 재산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혈연공동체의 결속에 있었다.
이 시대에는 사유재산이 없었으므로 최소한 부족 내에는 재산의 불균형이나 불평등이 없었다. 따라서 빈익빈이나 부익부라는 갈등 구조도 없었다. 혈연 공동 운명사회이므로 모두가 형제자매요, 한 조상의 후손들이었다. 따라서 족장 시대에 재산은 부족 모두의 공동소유 재산이므로 재산상의 갈등 문제는 있을 수가 없었다. 족장시대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열 두 지파 등으로 이어지는 시대를 가리킨다. 이 시대의 특징은 축복의 언약의 개념이 대단히 중요하다. 윌터 카이저는 족장시대의 축복과 언약의 개념에 대해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축복의 개념은 모험적 성공이나 혹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유해진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번성케 하다, 성공을 가져오다는 동사 salah(hisliah)는 축복하다(to bless, 창 24:1,40,52,56)는 동사 barak과 병행하여 창세기 24:21,40,42,56에 사용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족장들 위에 있는 것-그들이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지 성취케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결국 우리는 축복과 언약의 성취가 하나님의 뜻이었다.
우리는 축복과 언약의 두 개념이 두 시대를 연결하는 교량인 것을 확신하게 된다. 언약에 대한 특징적인 히브리 동사나 명사가 없는 반면에, 히브리 동사 barak 강조형은 그 당시에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하나님은 인류와 모든 피조물에게 성취의 수용력과 결과를 은혜로 공급하시는 때에도 미래의 구원에 대한 그의 행동을 계속 선포하셨다.』
창세기 12장 1-3절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을, 그리고 4-9절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두 개의 명령을 포함하였으며 각 명령은 약속을 수반하고 있었다. 첫 번째의 명령은 떠나는 것(너의 본토…을 떠나…땅으로 가라, 1절)이었고, 두 번째의 명령은 많은 번역 성경에서 부정확하게 번역되어 있다. NIV는 ‘너는 복이 될 것이라’라고 번역하여 예언으로 이해했지만, 문자적인 뜻은 ‘복이 되라’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바, 그것은 그의 순종이 커다란 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점이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세 가지 약속은 자신이 속한 땅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근거하고 있었다. 첫째는 큰 민족이요, 둘째는 아브람을 위한 복이요, 셋째는 창대한 이름이었다(2절). 이 약속들은 그를 ‘복이 되게’(2절의 두 번째 명령) 해줄 것이다.
이러한 순종에 입각해서 주어진 하나님의 세 가지 약속은 첫째로 그를 축복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고, 둘째로 그를 멸시하는 자들을 저주하며, 셋째로 그를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는 것 등이었다(3절). 아브람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것은 곧 아브람의 하나님을 축복하거나 저주하는 것이었다.
불행하게도 하나님은 종종 자신의 백성을 훈련시키기 위하여 다른 민족들을 사용하셔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에서 복이 되기는커녕 항상 불순종하기를 즐겨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의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게 복이 되셨다는 사실(갈 3:8,16; 롬9;5 참조)에서 완전한 성취를 보았다.
성경적 사상에서 처음에 부자는 계약의 율법들을 지키는 자들에게 하나님에 의해서 성공이 보장된 것으로 나타난다. 아브라함은 이런 부에 관한 확실한 관점의 생생한 예이다. 그의 재산은 순수한 축복이다. 의로운 자는 번성한다. 아브라함은 신앙으로 복종함이 번영을 가져다준다는 관점의 모델이며 대표이다.
아브라함은 천지의 창조자이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소돔왕이 자신을 치부하게 하였다고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소돔에게 속한 것은 아무 것도 가져가지 않겠다고 맹세하였다. 이 사건은 대승리를 거둔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는 사건이었다. 소돔왕 베라는 대단히 호감이 가는 협상을 제안하였다. 그러나 자신이 소돔왕에 관하여 무엇을 했는지를 알고 있는 아브라함은 소돔에게 속한 전리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신을 베라에게 예속시킬 것이라고 느꼈다. 그는 재물보다 더 지속적인 어떤 것, 곧 하나님의 기적적이고 항구적인 약속의 성취를 원했다. 신앙은 이 세상의 부를 넘어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고 계신 보다 높은 차원을 바라본다.
이와 같이 우리가 족장시대의 재물관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아브라함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물을 얻는 것에 관심을 두거나 사람에게 예속되지 아니하고 오직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딤전 6:17), 하나님의 방법으로 재물을 얻으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는 기회로 삼기를 원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이어지는 족장들은 단순한 재물의 축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동일한 약속의 유업(히 11:9)을 사모하였다. 여기서 하나님의 동일한 약속의 유업이란 일차적으로는 약속의 땅 가나안을 의미한다. 그러나 약속의 땅 가나안은 또한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다(히 11:10).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은 더 나은 본향(히 11:16), 곧 천국을 예표한다. 따라서 족장시대의 축복의 개념은 언약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주어지는 것이며 단순한 재물의 차원이 아니라 구원의 차원과 연관되어 있다.
2) 출애굽 과정의 재물관
애굽에 임할 재앙은 애굽 사람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은혜를 입히도록 요청받을 때 이스라엘 자손의 여인들(또한 11:2에 언급된 남자들)을 위해 은패물과 금패물과 의복(창 15:14하; 출 12:35-36)을 주도록 하였다. 하나님의 백성은 공수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이것은 400년 노예 생활에 대한 부분적인 보상이었을 것이다. 금과 은은 후에 성막을 세우는데 사용되었다(출 35:5,22).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인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어 이스라엘인이 무엇이든지 요구만 하면 이스라엘인들이 원하는 것을 애굽인들로 하여금 제공하도록 하신 것이다. 마음을 움직이시는 여호와께서 애굽인들로 하여금 이스라엘인이 원하는 것을 주도록 애굽인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던 것이다.
① 종들은 그들의 일한 만큼 그들의 주인에게서 품삯을 받으며, 만일 돌려주지 않을 때는 품삯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② 정복자는 정복한 적들로부터 전리품을 취하는 것과 같다. 바로는 ‘히브리인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한 죄로 그가 가진 모든 것을 몰수당한 것이다.
③ 신하들이 왕으로부터 그들에게 하사된 토지를 받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온 땅의 소유권자이시며 땅의 풍요도 그의 것이니, 그가 그것들을 어떤 사람에게서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주신들 누가 감히 항변할 수 있으랴! 이스라엘인들이 그들이 행할 바를 행한 것은 하나님의 명령과 지시로 된 것이다.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인들이 애굽에서 가져나온 예물들은 성소(성막) 건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예비시킨 것이다. 출애굽기 25장 1-9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성소(성막) 건축을 명하신다. 성소(성막)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한다.
1-2절을 보면 성막을 짓기 위해 예물을 드릴 것을 말씀하고 있다. 성막건설을 위한 특별헌금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2절에 보면 헌금하는 자세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고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바칠 것을 말씀하고 있다.
3-7절을 보면 그들이 드릴 예물의 종류를 말씀하고 있다. 이것은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것들이다. 금, 은, 놋 등은 비싼 것으로서 부한 사람들이 내는 것이다. 또한 베실이나 염소털 등은 가난한 사람들이 내는 것이다. 자기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기에게 있는 것으로 바치는 것이다. 그것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재물을 무엇을 위해 사용해야 하는 지 몇 가지 중요한 지침을 발견하게 된다. 재물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베풀어 주신 선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인간의 노력과 수고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지만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신 8:18).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재물을 우선순위에 따라서 사용해야 한다. 출애굽기 25장 8절에 보면 “내가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라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우리는 재물을 가지고 먼저 하나님의 집인 교회를 세우는 일에 드려야 한다. 이어서 출애굽기 28장 1절에 보면 제사장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즉 복음 사역에 필요한 부분을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명기 15장 9-11절에 보면 교회 안에 믿음의 가정을 돌아보고 다음에 주위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경험은 정의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출 20:21). 이러한 경험은 하나님이 과부와 고아들을 해롭게 하는 자들에게 가난케 되는 벌을 내리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오게 했다(출 22:21-24). 이 법전은 대여금에 대한 이자 취득을 금지하고 있으며, 채권자가 저당으로 잡은 채무자의 옷에 대한 사용권도 제한하고 있다(출 22:26-27). 그리고 자비하신 여호와께서 억압받는 자의 외침을 들으실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법전은 자선을 유도하는데 있어서 부정적인 방법으로 동기 유발을 시키지만,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확신시키기 위해 의도된 것이다. 즉 가난한 자들이 무시당하면,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실 터인데, 이는 부자들의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법전은 안식년에 대해 규정한다. 그때 밭들은 경작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을 것이며 가난한 자들의 소득원이 될 것이다. “너는 육년 동안은 너희 땅에 파종하여 그 소산을 거두고, 제 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네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출 23:10-11). .
2. 왕정시대의 재물관
족장시대나 출애굽 시대와 달리 가나안 정착시대에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하나님에 의하여 약속의 땅으로 주어진 가나한 땅을 지파의 가족에 따라 균등하게 분배하였다(수 13-18장). 그래서 가나안 정착과 함께 이스라엘 사회는 지파 간에 재산상의 불균형이나 갈등 없이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특징은 족장시대와 같은 지파 공동소유 재산제도인데, 족장시대에는 땅과 같이 일정한 고정재산이 없었으나 가나안 정착시대에는 고정된 땅이 공평하게 안배되었고, 그 다음에는 부족원들이 그들의 노력과 지혜로 재산을 더욱 증식시키는데 힘을 기울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지파 간에 재산의 한계는 하나님에 의해 공평하게 정해졌다는 것이고, 타인의 지계표를 옮기지 말라(신 19:14)는 말씀은 하나님이 정해준 한계를 침범치 말라는 뜻이다. 지계표를 옮긴다는 말은 이웃의 땅은 물론 하나님의 땅 소유권까지를 침범한다는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 비로소 군주정치가 실시되는데 이때부터 토지매매와 과세, 그리고 부역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사회적인 현상들은 사유재산의 개념을 낳았고, 사유 재산의 인정은 결과적으로 대지주의 출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대지주들 가운데는 자신의 힘을 이용하여 농토를 탈취하거나 고리대금업을 일삼는 경우가 있었으며, 이로 인해 많은 백성들이 농노로 전략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암 4:1-2; 5:7, 11-12; 8:4-6; 사 5:8).
사울 왕은 군사적인 면에서 성공을 거두어 백성들로부터 인정받는 다윗에 대하여 심한 질투심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백성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는 다윗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웠다. 사울은 다윗에게 그의 장녀를 아내로 주려고 했지만, 다윗이 이를 거절하자 다른 남자에게 주었다(삼상 18:17-19). 그런데 사울의 또 다른 딸인 미갈이 다윗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자 이를 빌미로 사울은 그의 계획을 다시 실행하려고 하였다. 사울이 다시 다윗에게 자기의 딸을 주겠다고 하자, 다윗은 이를 거절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왕의 사위되는 것을 너희는 경한 일로 보느냐? 나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이로다.”(삼상 18:23)
다윗이 자신을 가난한 자라고 표현한 것은 왕이 요구하는 신부의 몸값을 갚을 만한 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울은 아마도 그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돈을 요구하기 보다는 블레셋 사람 백 명을 죽여서 그의 의무를 행할 것을 요구했다(삼상18:25). 사울은 다윗이 그 일을 행하는 동안 죽임을 당할 것을 은근히 기대했다고 한다(25절). 다윗은 그 일을 감당해 냈으며 미갈과 결혼했다. 이 이야기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부유한 사람들에 의해 어떻게 취급받고 있는가를 잘 표현해 주고 있다. 사울은 그의 권력을 사용하여 가난한 자를 이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사울과는 달리, 다윗은 밧세바의 남편인 우리아를 죽이는데 성공했다(삼하 12:14-25). 다윗은 우리아가 죽음으로써 이 당혹스러운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했으나,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계획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나단은 부자에 의해 자신의 권익을 박탈당한 한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다윗 앞에 섰다. 나단은 다윗이 사울 앞에서 사용했던 말, 즉 자기는 사울의 가족과 결혼하기에는 너무너무 가난하다고 할 때의 바로 그 ‘가난’이란 단어(rash)를 가지고서 혹사당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다윗에게 전했다.
나단의 어린 암양에 대한 비유(삼하12:1-25)는 성서에서 발견되는 이야기 중 절대적인 왕권에 대항하여 항거한 가장 강력한 것이었다. 왕권에 수반되는 권력 남용에 대한 사무엘의 경고는 아무런 근거 없이 행하진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의 첫 두 왕, 즉 사울과 다윗은 선지자가 미리 예견하고 있었던 권력 남용의 죄를 그대로 실행하고 말았다. 백성들은 왕의 종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다른 어떠한 그룹보다도 가난한 자들은 왕이 부여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견디지 못하는 계층이 되었다.
솔로몬이 누렸던 큰 영광은 왕과 자신의 궁전 건축을 위해 거두어들인 세금과, 그러한 건축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강제로 동원했던 인력에 그 기초를 두고 있었다(왕상 4:7-19, 9:15-22). 당시 인력 동원의 책임을 맡고 있었던 여로보암은 선지자의 예언의 도움을 받아 솔로몬에 대항하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왕상 11:26- 39).
혁명이 일어난 이유는 이스라엘이 왕을 요구했을 때, 사무엘이 언급했던 권력 남용이 주된 원인이었다. 여로보암의 혁명이 성공한 후, 남 왕국 유다도 다소 안정을 찾았다. 그러나 북 왕국에서는 혁명이 끊이지 않았다. 북 왕국 첫 50년 동안, 왕위가 무력에 의해 세 번씩이나 바뀌었다. 오므리 왕조에 항거하는 예후의 유혈 혁명은 국민들의 지지와 선지자들의 지지를 받았는데(왕하 9-10), 이것은 오므리 왕조가 통치하는 동안 가난한 자들에게 너무나 심한 경제적 부담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성서 자료들과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볼 때, 오므리 왕조의 통치 기간 동안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사이의 틈은 더 많이 벌어졌던 것 같다. 어려운 시기가 되면, 가난한 자들은 부유한 자들에게 비싼 이자를 지불하고 대부받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토지를 저당 잡히고, 심지어 그 자신과 처 자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는 몸을 저당물로 내놓아야 했다(왕하 4:1).
아합의 통치 때에 큰 기근이 들었는데 이 때 많은 농민이 파산하고 말았다(왕상 7-18). 그들은 부유한 자, 즉 그들이 채권자들에게 토지를 넘겨 줄 수밖에 없었고, 그 부유한 자들은 거대한 토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지주들은 약 100년 후 아모스와 같은 선지자에게 책망을 받게 된다. 아합 왕과 나봇의 이야기가 대표적인 좋은 예인데, 당시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척도이다. .
이스라엘의 각 가정에 그들의 생계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땅을 주신 분은 다름 아닌 여호와셨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후의 이스라엘 역사는 이러한 신성한 뜻을 왜곡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왕을 요구하였는데, 이러한 요구가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는데 더욱 부채질했다. 그 백성 중의 일부가 그들에게 할당된 토지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땅까지 빼앗으면서 소유하려고 했기 때문에, 결국에 가서 이스라엘은 그 땅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부요하고 권력 있는 자들은 추방당하여 망명 생활을 하게 된 반면, 가난한 자들은 그 땅에 남게 되었고, 땅은 그들의 영원한 유업이 되었다.
다윗 왕국 출현과 함께 공동소유 재산은 사유재산 형태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 당시에도 약속의 땅은 판매가 금지되었기 때문에 땅의 분배 균형은 유지되었다. 그러나 각 지파에 속하지 않은 땅, 즉 가나안 원주민이 사는 땅은 판매와 개인 소유가 가능했다. 이 시대의 특징은 군주의 출현으로 권력에 의한 재산의 편중이 심화되어 권본주의(權本主義)에 따른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구조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또한 자급자족 경제에서 도시화로 인해 물물교환의 시장경제가 나타나면서 부의 사유화 편중이 가속화되었다. 초기 이스라엘 생활이 유목이동 생활이었다면 왕정 시대는 도시 정착시대였다.
따라서 빈부의 차이가 심하고 가난한 자들이 속출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대변하는 예언자들은 빈부격차가 극복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는 정의사회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왕정 말기에 시드기야 왕은 재산의 원상회복을 위해 50년에 한 번씩 실시되는 희년(jubilee year)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렘 34:8). 그러나 이런 국가적 조치도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은 이스라엘 왕정이 막을 내리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BC 586년).
가나안 정착과 더불어 왕정시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재물관의 특징은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조직이나 제도가 강화되면 될수록 가난하고 힘이 없는 자가 더 큰 고통을 받게 된다. 법으로 통제하고 세금을 올리면 가난한 자가 그 만큼 더 많은 부담을 안게 된다. 예를 들면 국가에서는 집을 많이 가진 자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려고 하지만 그 부담은 세입자의 부담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왕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경우에는 백성들을 위하여 선정을 베풀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오히려 왕이 백성들에게 폭정을 가하므로 고통과 불행을 안겨 준다. 점점 세계가 글로벌 시대가 되면서 편리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가난하고 힘이 없는 개인이나 나라는 그만큼 많은 불행과 고통을 당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재물의 특징을 잘 파악하여 진정으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사명을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고도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