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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친근하게 다가온 낯선 사람-사랑의 직물짜기

by liefd 2024. 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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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은 사랑의 직물을 짜셨다. 낯선 사람이지만 가까이 다가가셨다. 피곤하셨지만 이야기를 나누셨다. 유대인이었지만 사마리아인을 섬기셨다. 1세기 당시의 남자였지만 시골 여인을 정중하게 대하셨다. 진지하셨지만 즐기셨다. 동정심을 보이셨지만 또 솔직하셨다. 옳았지만 강요하지 않으셨다. 시장하셨지만 배가 부르셨다. 그 어떤 사람과도 같지 않으셨다. 예수님을 더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우리가 얼마나 깨어지고 부서져 있는지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연합-친밀감을 불러오는 사랑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17:21), 두 분은 같은 목적과 같은 지식과 같은 애정으로 하나가 되셨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예수님의 묘사는 하나됨의 의미가 이기심이 없는 순수하고 지속적인 동정심을 가진 상태를 말하는 것임을 요약해 준다. 상대방의 필요는 순수하게 나의 필요이기 때문에 내가 네 안에있다. 또 나의 필요는 순수하게 상대방의 필요이기 때문에 너는 네 안에있다. 둘 사이에는 비밀이 없다. 서로의 마음이 완전하게 닿아있다. 각지 자신이 가진 전부를 상대방에게 준다. 둘의 기쁨은 서로에게 완전해진다.

 

사랑의 노력은 친밀감을 불러오고 기쁨이 솟아나게 한다. 기쁨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릴 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 때도 느낄 수 있다.

 

사랑은 죽음을 이긴다

1. 겸손해지는 길-낮은 자리를 취하는 사랑

사랑은 누군가의 필요를 보고 한번 쯤 도움을 주고 마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해야 한다.

예수님의 모든 명령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낮은 자리를 취할 때 우리는 분명하게 볼 수 있다. 아래로 내려가면 다른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과 하나님이 더 잘 보인다.

 

왜 낮은 자리를 취해야 하는가? 왜 그곳이 예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낮출 때 지위에 신경쓰지 않고 사람들을 배려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마더 테레사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굴용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 슬픔을 포용하는 사랑-사랑이 큰 슬픔을 불러올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거절당할 때

 

사랑하는 것은 고통받는 것이다. 사랑을 통과하는 길은 깊은 슬픔을 통과하는 길이다. 슬픔은 쉽게 자기 연민과 자기도취로 흔들릴 수 있지만 예수님의 슬픔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까운 친구에게 배신당할 때

 

우리는 마음에 고통을 느낄 때 대부분은 화를 내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면 슬퍼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정반대였다. 고통을 느끼며 슬퍼하셨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셨다. 우리는 외적으로 사랑해야 하며 내적으로는 슬픔을 느껴야 한다.

 

슬픔을 느끼면서 사랑하는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

 

좋지 않은 슬픔은 비통함과 자기 연민과 부인이 뒤섞여 끝이 없다. 좋은 슬픔은 적당하며 단순하며 솔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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