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31절)
1969년 7월 20일 주일 오후 3시 정각에 지구를 떠난 최초의 우주선이 감격스럽게도 토끼가 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달나라에 착륙을 하였습니다. 최초에 달에 착륙했던 우주 비행사 암스트롱과 엘드린이 특별히 마련된 캡슐을 달에 안치해 놓았습니다.
거기에는 시편 8편도 들어 있었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창세기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 천지 창조" 에 관한 기사는 단순히 세상의 시작과 기원에 대한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과연 당신은 어떠한 하나님을 믿고 계십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가장 대담하게 하나님을 경멸하는 사람이 나뭇잎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제일 크게 놀랍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얼굴로부터 피하려고 그들은 도피처를 구하고 그들의 마음 속에 그것을 지워보려고 애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두려움에 빠져들게 됩니다. 때로는 무섭고 두려운 꿈에 시달리기 때문에 자는 동안에도 평안히 쉴 수가 없습니다.
불신자들 가운데도 마음 속에 하나님의 개념이 조금씩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선천적으로 인간의 마음 속에 뿌리 박혀 있습니다. 로마서 1:19절에 보면 "이는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우주만물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땅과 하늘과 바다를 창조하시고 그곳에 생물들을 만드시고 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생물들을 향하여 생육하고 번성하여 충만하라고 복을 선포하셨습니다. 땅에는 온갖 식물과 짐승들이 가득하고 하늘에는 온갖 새들이 날아다니며 바다속에는 각종 물고기들이 헤엄을 치며 다니게 하셨습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우주는 하나님의 속성들을 나타내 주는 한 권의 책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세워진 극장입니다.하나님은 세계 모든 부분에서 자신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원하는 곳에 눈을 돌리기만 하면 하나님을 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세계는 적어도 하나님의 영광의 섬광이 빛나지 않는 곳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서만 자신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알려 주십니다.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망각에 빠지는지, 그리고 각종 오류에 쉽게 빠지는지, 새롭고 허망한 것에 쉽게 굴복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그의 말씀의 빛을 더하여 주신 것입니다. 다윗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시 19:1-2)하고 했습니다.
이어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는도다"(7-8절)라고 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당신은 분명히 믿으십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에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이 첫째 날에서 여섯째날까지 모두 일곱 번 사용되고 있습니다(4, 10,12, 18,21, 25, 31절). 그런데 둘째 날에는 전혀 없고 세째 날에는 두번 나타나고 여섯째 날에도 두번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여섯째 날에 두번의 평가가 있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전체에 대한 총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여기서 "좋았다"는 표현은 위대한(시 11:2), 놀라운(욥 37:14), 완벽한(신 32:4), 아름다운(전 3:11) 등의 뜻으로 사용됩니다.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을 이루어 가는 새로운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들을 보완하면서 아름다운 일들을 전개해 가는 한 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좋았다고 하는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참 좋았다고 하는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는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1.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31절)
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할 당시의 상황은 혼돈하고 공허했으며 어두움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혼돈과 무질서로부터 질서있고 아름다운 세계를 만드셨던 것입니다.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창조의 사역이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빛을 만드심으로써 일차적인 생존환경을 만드셨고, 이어 궁창을 만드심으로써 공간을 분할하셨습니다. 그후 바다와 육지를 만들어 생물이 서식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었고, 동물을 창조하기에 앞서 식물을 창조하심으로 먹이사슬의 가장 기초적인 기반을 만드셨습니다. 그후 각종 동물들을 만들었으며 최후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을 만드시어 지금까지 창조한 모든 피조 세계를 지배 관리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창조가 질서와 조화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사실은 오늘의 우리에게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 사역을 통하여 모든 세상의 질서를 세우시고 조화를 이루게 하심으로 세상을 아름답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 오시기 전에 우리의 삶은 혼돈스럽고 공허하며 마치 흑암 가운데 있는 것같이 무질서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 참된 기쁨과 질서를 찾게 되었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역사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를 통해서 성공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줄 믿습니다. 인간의 모든 좌절과 어려움을 통해 더 크게 역사하시는 줄 믿습니다. 환란과 곤고가 우리에게 몰려와도 기도하면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해 주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반드시 선을 이루시는 줄 믿습니다.
일전에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에 간 일이 있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악보를 앞에 펴놓고 지휘자의 손끝에 따라 혼연일체가 되어 손과 몸을 움직였습니다. 바이올린,비올라, 첼로, 더불베이스, 플루우트, 피아노, 작은 북, 큰 북, 하아프, 심벌즈에 이르기까지 여러 악기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소를 내고 있었으나 그것은 아름답게 조화된 하나의 화음이요 하나의 선율로 감미롭게 흐르듯이 연출되고 있었습니다.
심벌즈를 치는 사람과 큰 북을 울리는 사람은 기나긴 시간동안 자신의 차례를 애타게 기다렸다가 이윽고 차례가 오면 정확한 크기로, 박자로, 음색으로 음악의 효과를 높였습니다. 또한 바이올린을 매우 잘 켜서 자랑하고픈 마음으로 가득찬 사람일지라도 다른 바이올린 연주자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작은 소리를 내야 할 때는 작게 큰 소리를 내야할 때는 크게 하여 자신의 소를 튀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주회의 모습은 마치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하나님께 예배 드리며 봉사활동하는 교회의 모습과 같았습니다. 신자들은 연주자들이 제각기 다른 악기들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다른 은사들을 부여받았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처럼 각기 자신의 은사를 자랑하려 들거나 혹은 자신의 은사를 경시한다면 전체적으로 아름답기는 커녕 시끄럽고 정돈되지 않은 음색만을 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모습이 아닌 줄 압니다. 진정 우리는 찬양을 드릴 때나 예배를 드릴 때나, 말씀을 전할 때나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은 뒤로 하고 먼저 하나님과 교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귀를 기울여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이 가라사대 그대로 되니라(29절)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자주 나타나는 표현은 창조될 때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는 말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6일간의 창조기사에서 10회나 반복 사용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로 공허하지 않고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자신의 생각과 기뻐하시는 뜻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곧 사건이요 행동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은 말씀의 능력과 말씀의 중요성을 깨우치기 위함이며, 하나님이 인격적인 존재이심을 계시하는 것인 동시에 피조물인 인간은 반드시 그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밑바닥에는 하나님께 대한 무지와 그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배우고 순종하기를 꺼리는 인간의 태도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 생활 중에 가장 중요한 언어 중의 하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아멘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0:20-21)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향하여 "아멘", 땅을 향하여 "아멘"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면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당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면 그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내게 유익한 일을 위해 목회자가 "하나님이 가라사대"하면 제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행복과 불행의 차이는 "내가 가라사대"에 순종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이 가라사대"에 순종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네덜란드는 튤립으로 유명한 나라입니다. 그 나라 전설에 세 쌍둥이 튤립 뿌리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튤립 세뿌리의 이름은 '아니. 혹시. 그리고 '순종'이라고 했습니다. 세 뿌리는 함께 상자 바닥에 살고 있었습니다. 가을이 왔을 때 셋은 각자 자기들의 운명에 대하여 곰곰히 생각했습니다. '아니' 뿌리가 말했습니다. "이 세상 어디를 가도 이처럼 편안한 곳은 없을 꺼야 다른 곳에 가면 죽을지도 몰라 나는 여기에 평생토록 살거야." 이번에는 혹시 뿌리가 말했습니다. " 여기보다 훨씬 더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모르지 그것에서 나의 꿈을 이루게 될지도 몰라. 그렇지만 난 두려워."
마지막으로 순종 뿌리가 말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능력에 맡기면 그분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신다는 걸 나는 믿어." 어느 날 커다란 손이 튜립 뿌리 상자 안으로 내려왔습니다. '순종'은 그 큰손에 얼른 안겼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흙속에 묻혔습니다. '아니' 와 '혹시' 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두려워 몸을 움추렸습니다. 그런데 흙속에 묻혀 죽은줄로만 알았던 ' 순종 '이는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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