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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

by liefd 2024.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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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어느 날 어느 시에 하나님께서 천국으로부터 무슨 말씀을 하실 예정이라는 믿을만한 발표가 방송을 통해 흘러나왔다고 하자. 아마 그러면 온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날이 오기를 간절히 기대할 뿐 아니라 그 날 그 시가 되면 만사를 제쳐놓고 우리 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미 말씀하셨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1-2).

성경에는 그리스도의 마음, 즉 하나님 자신의 마음이 계시되어 있다. 그 외에는 다른 계시가 없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119:130).

 

하박국 선지자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판에 명백히 새기라고 했는데 오늘도 마찬가지다.

오직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내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30:14).

 

우리가 기꺼이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하면 우리의 지적 수준이 어떻든 그런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며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7:17).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법을 보게 하소서"(119:18). 하나님의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고자 하는 자 만이 그 눈이 열릴 수 있다.

 

하나님의 율법은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는 사실을 알고 믿게 될 것이다(7:12). 하나님의 말씀은 항상 그렇듯이 오늘날도 여전히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한다(4;12). 성경만이 유일한 계시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지으셨음을 믿을 뿐 아니라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다(1:17)는 것, 즉 만물을 한 데 모으신다는 것을 믿는다. 만물이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다. 성경은 우리 주님의 생애와 교훈, 그리고 우리를 향한 뜻에 관해 기록하고 있을 뿐 아니라, 구약을 보면 주님이 이 땅에 오실 것을 위해 온 세상이 어떻게 준비되었으며 또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한 백성을 어떻게 준비시키셨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인간은 자연이나 하나님의 섭리나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구원하는 지식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 이상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을 알기 원한다. 그리고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기 계시는 분명하여 믿을 만하고 충분하다는 것이다. 성경은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오직 성경만이 하나님을 계시하는 거룩한 책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하는 책은 성경 밖에 없다. 지금까지 주어진 계명들 가운데서 가장 분명하고 놀라운 계명 중의 하나는 바로 구약의 의를 요약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황금률이다. 이것뿐 아니라 성경 전체의 모든 가르침이 성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인간 안에는 우상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은 자기 생각대로 내버려 두면 절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한 분만을 예배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는 애굽, 북이스라엘, 남 유다, 모압, 다메섹, 두로, 바벨론, 앗수르, 바사국의 스물 아홉 왕이 기록되어 있으며, 그들과 관련하여 십 개국이 언급되어 있다. 그런데 이 스물 아홉 왕은 성경에는 물론이요 역사적인 기념비에도 기록되어 있다. 실제 역서 속에서 추적해 본결과 모두 성경에 나오는 그 나라 그 시대의 왕들이었다.

 

에스겔 26:12에는 두로에 대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네 성을 헐 것이며 네 기뻐하는 집을 무너뜨릴 것이며 또 네 돌들과 네 재목과 네 흙을 다 물 가운데로 던질 것이다. 당시 두로는 난공불락의 도시 중 하나로서 산헤드립이 그 성을 13년간이나 포위하고도 끝내 무너뜨리지 못할 정도로 강력한 성이었다. 그런데 에스겔이 예언한 지 40년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이 그 성을 함락하고 물건들을 약탈하였다. 그러나 그때도 그 성과 집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곳 주민들은 야음을 틈타 그곳으로부터 약 800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한 성으로 도망갔다. 거기서 방비를 단단히 하여 요새화된 성을 또 하나 건설했다.

 

그런데 그로부터 2세기후인 기원전 315년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을 침공했다. 그때 알렉산더는 자기 군대에게 고대 두로의 무너진 성과 집들을 헐러 그 돌과 재목과 흙을 가지고 그 해안으로부터 두로의 새 도시가 건설된 성까지 방파제를 쌓으라고 명했다. 이로 인해 에스겔 선지자의 예언이 성취된 것이다. 성경은 지성이 아닌 가슴을 향한 하나님의 호소이다. 하나님의 형벌은 절대 보복적이지 않다. 하나님의 형벌은 모두 불순종에 대한 당연하고 필연적인 결과다

 

우리는 사도 요한이 그 죄패에 쓰인 글은 헬라어, 라틴어, 히브리어로 쓰여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19:20).

당시 히브리어는 종교적인 언어요, 라틴어는 정복자 로마인들의 언어요, 헬라어는 어느 곳에서나 통용되던 상용어였다.

아마 사도 요한은 히브리어로 적었을 것이다. 그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었다(18;16).

 

사도 누가는 헬라인 전통을 이어받은 혼혈아였테니 당연히 헬라어를 인용했을 것이다. 마태 사도는 세리였으니 틀림없이 자기 정복자의 언어인 라틴어로 적었을 것이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기록되어 있는 주님의 족보 차이가 이를 반영한다. 마태는 예수님의 아버지인 목수 요셉을 따라 우리 주님의 혈통을 추적한 반면, 누가는 그 어머니 마리아를 따라 주님의 혈통을 추적하였기 때문이다.

 

마태 사도는 특히 유대인들을 위하여 복음서를 썼다. 그 계보를 유대인들이 자기들의 조상으로 생각하고 있던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를 인자로 말하고 있다. 그분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없이 온 인류를 구원하신 구속주요, 두 번째 아담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태는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한다(1;1). 누가는 예수님으로 시작해서 거꾸로 올라간다(3:23). 누가복음 3:23에서는 요셉의 헬리의 아들로 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1:16에서는 요셉에 야곱의 아들로 되어 있다. 가장 간단한 설명은 여자의 이름은 법적으로 족보의 명단에 오를 수 없다. 마리아는 헬리(혹은 엘리)의 딸이었다. 따라서 요셉은 헬리의 사위요, 야곱의 아들이다.

 

모세는 내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다고 했다(32:30).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하나님은 영이시다(4:23).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이다(딤전 6:16). 아브라함이 기도를 드렸던 분은 주님이셨다(18:3, 22).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

 

사울의 회심한 이야기 가운데[,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9:7), 나와 함께 있는 자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씀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22:9), 26:14에는 네가 소리를 들으니.

이는 같이 가던 사람들이 무언가 들리는 소리만 듣고, 사울아 사울아...라고 부르는 분명한 소리를 듣지 못햇다.

 

삼하24:24에 의하면 다윗이 은 오십세겔(7파운드)로 타작마당과 소를 사고, 대상 21:25에 보면 다윗이 그 기지 값으로 금 육백세겔을(1500파운드)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7파운드는 계약금으로 해석하려는 분이 있다. 대상 21:25은 타작마당의 기지(), 하나님의 성전으로 건축되는 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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