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의 과거를, 부족을 용서하라는 것과 같다. 자신의 실패를 용서하면 자신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 베드로와 가롯 유다가 나온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고 예수님 앞에 당당하게 말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제자가 배신해도 자신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고 외쳐댄다. 그러나 예수님이 군인에게 끌려가 채찍을 맞는 현장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당신도 예수와 함께 있었던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을 때 베드로는 두려운 마음으로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다.
가롯 유다는 예수님을 로마 군인에게 팔아 넘겼던 제자다. 3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앞장서 헌신했던 제자이다. 베드로와 가룻 유다는 둘 다 예수님을 배신했다. 그러나 가롯 유다는 자신의 행동을 비관해 목을 매 자살하게 된다. 베드로 또한 자신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어 낙심하며 힘들어 한다.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베드로에게 사랑을 보여 주신다. 베드로는 결코 자신을 용서하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가롯 유다와 베드로의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자신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와의 결과는 천양지차다.
자존감 높이기
자신의 자존감을 높이고 자신의 행복을 우선 추구하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자신을 내세우면 세상 사람들이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부치는 경우가 많다. 자기 중심주의를 부추긴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
내 자신의 성장을 위해 노력하고 있어'라고 얘기는 하지만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들은 내면의 뿌리싶은 결핌과 박탈감에서 오는 건강하지 못한 자기 탐닉에 빠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강인한 자아로 보지만 이는 결코 좋은 자아가 아닌 보잘 것 없는 자아일 뿐이다. 자신의 행복을 우선 찾는다고 남을 무시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좋은 자아관을 갖고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야 하고 매우 중요하다.
자존감이 낮은 경우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선생님을 위해, 배우자를 위해, 친구를 위해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남한테 좋은 소리를 듣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남들이 나에게 갖는 기대에 내 자신을 맡긴다. 이런 복종적인 관계로는 자존감을 절대 높일 수 없다.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하고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정하여 목표로 세워야 한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알아야 한다. 매일 시간을 내서 일기를 쓰거나 해서 '내가 누구인지' 탐구해야 한다. 그리고 결코 난 안된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남을 위해 사는 것이 올바르다고 교육을 받아왔다. 누군가 착하다고 해도 그 이유는 "그 아이가 얌전하고 말을 잘 듣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 다른 사람을 위해 사는 것" 이 좋은 것이라고 얘기하면서 자존감 보다는 '복종'에 더 관심을 보여왔다. 이런 복종은 우리의 자존감을 해칠 뿐이다.
과거에는 여성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만을 강요해왔고 그것은 "여성들의 한"으로 승화되어서 고급스럽게 표현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자존감을 버리라고 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들이 자신의 어떤 성공적이며 행복한 삶을 추구하기 보다는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자식한테 모든 기대를 걸어야 하는 것"으로, 그것이 올바른 어머니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아니면 "남편을 위해, 모든 기대는 남편에게 거는" 형태로 변했다.
하지만 이런 어머니의 사랑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 며느리에 대한 경쟁의식으로 인한 고부간의 갈등, 아들을 독차지하고자하는 열망, 아니면 남편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리고 그 자식들이 크고 남편이 성공한 뒤 남는 것은 "나는 도대체 왜 살았나"하는 회의이다. 왜냐면 그들의 성공과 행복은 바로 나의 성공과 행복이 아님을 그때서야 깨닫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을 위해, 남의 행복만을 위해 사는 것으 결코 상대방도, 우리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어쩌면 이런 얘기를 듣고 그렇다면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얘기인가요?라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기주의는 자존감을 높이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이기주의, 나르시짐 등은 자아 도취된 것으로 "내가 무조건 우선"이며 나만을 위해, 나를 탐닉하는 것을 말한다. 남이야 어떻게 되는 나만 우선이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와 반대로 남의 생각을 존중하고 의견을 들어줄 수 있는 여유가 있게 된다. 왜냐하면 남들이 자기를 해칠려고,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남이 나를 사랑안할까봐 불안해 할 필요가 없고 그렇기에 남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오히려 "사회적인 화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자존감 회복을 위한 기독교 상담적 접근
낮은 자존감이란 문제를 만들어 낸 과거의 기억과 그 뿌리, 그리고 현재를 직시하고 결단하는 부분, 미래적으로 행동을 바로잡는 부분까지 일반심리학의 다양한 통찰력을 활용하는 것은 유익하다고 본다. 그러나, 더 나아가 낮은 자존감을 치유하는 근원과 가능성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보면서, 자존감 회복을 위한 기독교 상담의 과정을 5단계로 나누어 본 글의 결론으로서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자신을 이해하기: 낮은 자존감의 문제성을 직면하라.
보통 자신의 자존감이 낮다는 발견을 하게 되거나, 또는 지적을 받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자신의 현실을 직면하기 보다 부인하거나, 그렇게 지적한 대상에게 투사하여 화를 냄으로 그 상황을 회피하려 한다. 이와 같이 반응하는 이유는 변화에 대한 완고함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익숙한 감정과 상황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때 상담자는 공감적인 이해와 따스함, 관심, 존중, 비밀 보장과 진지함을 통해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변화에 직면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하는데, 이때 그는 자신의 문제성을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그러나 여기에서 상담자는 여러 가지 상담 기술을 이용하여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자신을 객관적으로 발견할 수 있고 결단할 수 있게 해주지만, 궁극적으로 피상담자는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며 낮은 자존감의 근본원인이라고 생각될만한 과거의 고통스런 경험들을 직면하는 일이 필요하다.
이것은 인생에 있어서 고통스럽고 받아들이기 힘든 경험들을, 우리의 죄악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 드러내는 것이다. 이렇게 무의식에 영역에 있는 고통스런 과거의 기억을 떠올림으로 직면하고 그리고 자신이 손댈 수 없는 용서의 문제를 은혜의 하나님께 내놓을 때, 자신을 괴롭히는 무의식의 악영향을 차단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2) 자신을 수용하기: 자신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장단점, 능력과 한계를 파악하는 일인데, 이것은 타인과 비교함으로 발생하는 낮은 자존감의 폐해를 막기 위해 필요한 작업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 - 나의 말과 생각, 행동, 상상력, 느낌, 필요, 관계성 등- 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으로서, 이렇게 되면 자신의 행동과 태도 가운데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치고 고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자기 수용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사랑의 근원이다.
나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교에 대한 기초는 나 자신이지 타인이 아니다. 이것이 올바른 자기평가이고 자존감의 근거이다. 자신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주신 자질과 능력 안에서 자신의 노력을 자신의 능력에 비교하면서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자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다. 완벽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기억할 때, 우리는 자신을 칭찬할 수 있으며 죄성을 가진 인간으로 자신에게 완벽을 기대하지 않을 때 자신에 대해 기분 좋게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보기: 자신의 자존감을 상향 조정하라.
사람의 심리구조는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에 맞추어, 스스로 그 예상에 맞도록 행동하는 성향이 있다. 밴두라(Albert Bandura)는 이것을 자기 이행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 즉, "사람은 자기가 선정한 기대에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맞추어 간다"고 표현한다. 낮은 자존감을 갖은 사람은 자신을 "실패자"와 같은 사람으로 생각함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 거기에 맞추어 행동하게 되므로 자기 패배적인 삶을 살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의 자존감을 상향 조절할 필요가 있다.
낮은 자존감을 가진 신앙인들이 자기사랑에 실패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들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을 부인하도록 배워왔기 때문에,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하나의 죄악으로 느끼는 것에 있다. 참된 자기사랑은 자기도취("나는 나의 세계의 중심이다")와 순교정신("나는 필요 없는 고통도 겪을 것이다")을 벗어나 자신을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존재("나는 구속함을 받은 하나님의 사랑스럽고 소중하며 능력 있는 피조물이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즉 높은 자존감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이제껏 자신의 내면에 흐르던 부정적인 자기묘사를 과감하게 버리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관점을 잘 나타낸 성경 구절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3)에서 보듯이, 천지를 지으시고 그 가운데 나를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나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마땅히 가져야 할 자신의 가치에 합당한 것은 낮은 자존감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와 능력, 소속에 대한 하나님의 관점인 것이며, 이 때 우리의 자존감은 높아질 수 있다.
4) 완전주의 성향의 탈피: 자신에게 현실적인 요구를 하라.
우리가 지닌 자존감은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자신과 이상적인 자신을 비교하는데서 오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원하는 모습에 더 가까울수록 더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파악하고 합당한 요구를 할 때 자존감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계속적으로 요구함으로 낮은 자존감을 형성케하는 것이 완전주의이다.
완전주의는 자신을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 나는 남들보다 낫기 때문에 이러이러 해야해" 라고 자신에게 요구하는 모습이다. 이러한 요구가 자존감의 상실을 유발하는 이유는 실제로는 자신이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실적인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현실적이고 합당한 요구를 할 필요가 있다. 물론 때로 우리의 능력에 넘치는 일을 감당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자신이 완전치 않으며 실수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실수를 통해 앞으로 나갈 수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5) 자신을 개방하기: 지원그룹을 활용하라.
최근 들어 교회 안에서 소그룹 운동이 강조되고 있는데, 낮은 자존감에 대한 상처를 치유함에 있어서도 소그룹 활동은 효과적이다. 특히 같은 종류의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함께 도움을 주고받는 지원그룹은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지원그룹은 1920년대 빌 윌슨에 의해 시작된 알콜중독자를 돕기 위한 모임(AA: Alcoholics Anonymous)을 시초로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지원그룹의 특징은 스스로를 돕는 그룹으로 회원은 안정감을 느끼고 사랑하는 분위기 안에서 서로의 경험을 나눔으로써 서로를 돕는 것이다. 여기서 그들은 감추어져 있던 정서적 고통을 만나고, 상처받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고, 치유에 대한 소망, 용납, 사랑,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체험함으로 치료를 경험하게 된다. 지원그룹 안에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도 나처럼 상처를 받고 있다는 인식을 통해 치유에 대한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들은 자기 고백을 통해 치유의 능력을 경험하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을 통해 자신을 보다 분명히 알게될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그룹은 그룹원 간의 유대 관계를 형성해 주기 때문에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으며, 고백과 용서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생활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통해 영적인 치유의 경험을 하게 된다.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결혼식 기도문 (0) | 2024.03.18 |
---|---|
인간이란 무엇인가? (4) | 2024.03.13 |
제직세미나 강의안 (9) | 2024.03.05 |
혼자 있을 때 조심하라 (1) | 2024.03.05 |
성경적 인간론 (3) | 2024.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