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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의 빛(요일 2:8-11),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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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노화고령사회 연구소에서 100세 이상 장수하는 노인들의 특징을 분석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장수 마을을 찾아가 그들의 공통점을 찾은 결과 공통된 특징 세 가지를 보고하였습니다. 그 중 두 가지는 운동과 채소를 중심으로 한 소식(小食), 마지막 한 가지는 관계성입니다.

 

2년에 걸쳐 전 세계 100여명의 학자에게 행복에 대해 물었습니다. 각 나라의 상황에 맞게 행복에 대한 1000개의 단어가 조사하였는데 그 단어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로 관계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 가운데 하나가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신자의 삶 가운데는 반드시 사랑이 드러나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사랑의 계명은 새 계명이 아니라 처음부터 있었던 옛 계명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해야 하며, 더구나 신자들에게 있어서 서로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조건입니다(5:2; 2:8; 벧전 2:17). 예수께서는 세상의 참빛으로 오셔서 사랑의 빛, 소망의 빛, 구원의 빛을 비쳐주셨습니다(1-5-7;8:12).

 

본문 9절에 보면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었던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는 말씀은 빛 되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빛 가운데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사랑치 않는다는 것은 모순된 것입니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것은 몸짓이나 말을 통해 저절로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지금까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빛 가운데 거하며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스스로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을 뿐더러 타인에게도 걸림돌이 되지 않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좋지 않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두움 가운데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며 눈이 멀어서 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삶의 의미와 목적과 방향을 상실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남기는 인생을 사는데 반해,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후회하는 인생을 사는 사람입니다. 당신 주변의 사람들을 살펴 볼 때 당신이 후회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들인가? 언젠가는 당신에게 후회를 안겨줄 사람인가?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13:20).

 

당신이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는다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아야 할 만큼의 사랑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종착지가 아니라 수단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도구입니다(12:28-31, 5:43-47).

 

잘못된 과거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보다 자신에 대한 사랑을 더 우선시하기 때문입니다. 관계회복의 열쇠는 당신이 과거에 얼마나 잘못했는지를 깨닫는데 있습니다. 관계를 회복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긴 여행이 모두 그러하듯 아버지와 화해하는 과정에도 굴곡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오랫동안 서로 반목하던 사람과 화해하는 길에는 땅이 움푹 꺼진 곳도 솟아오른 곳도, 꺾어진 곳이나 평탄한 곳도 있습니다.

 

성경의 가장 중요한 교훈 가운데 하나는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베풀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탕자의 비유에서(15:20-32), 진정한 사랑은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고 베풀고 또 베풉니다.

마음으로부터 기꺼이 내 줄 수 없다면 아예 주지 않는 게 낫습니다.

 

온전히 사랑하고 온전히 내어 줄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충만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틀어진 관계를 바로 잡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로 가득한 마음에서 사랑하고 베푸는 일입니다. 두 사람 사이의 상처를 성공적으로 치유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베푸는 것입니다. 사랑을 베풀고, 당신이 가진 평화와 아량을 베풀고, 마음을 베풀라. 무엇보다도 용서를 베푸는 것입니다.

 

상처받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면 조건없는 사랑을 줄 수 없습니다. 상처입은 사람은 점점 더 자기 중심적이 되고 자기 만족을 추구하게 됩니다. 우리의 과거의 상처들, 거부당했던 일, 이런 저런 경험들을 통해 모든 것을 걸러내게 되면 하나님을 믿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만약 당신이 시험에 빠져서 실족하고 남을 용서하지 못하며 죄를 회개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진리에 이른 것이 아닙니다(딤후 3:7).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교회를 떠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당신이 갈 교회를 선택하는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고전 12:18). 시험에 든 사람은 하나님의 지시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자기 생각에 옳은 것처럼 보이는 대로 행동하고 상황에 대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고 항상 그분의 뜻을 구했는데 하나님이 별 말씀이 없으시다면 그때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게시는 것입니다. “그냥 여기 있어라. 상황을 바꾸지 마라.” 시편 9213절은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음이여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고 했습니다.

 

플로리다 주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이 추울수록 오렌지'가 더 달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방해요소를 피하지 않고 직면한다면 우리의 뿌리조직은 더 강하고 깊어질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우리의 열매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 풍성하고 달게 느껴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더욱 맛좋게 느껴질 것입니다.

 

실족한 그리스도인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잘라내 버립니다. 고립된 사람은 자신의 욕심을 추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무 조언도 받지 않으려 하고 결국 속아 넘어갑니다. “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18:1).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는데 잇어서 분노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분노는 3단계로 구성된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생각의 단계입니다. 난 지금 부당하게 취급받고 있다는 의식입니다. 자신은 정당하고 상대는 부당하다는 논리를 성립시겨 갑니다.

 

두 번째는 신체적 반응 단계입니다. 교감신경계와 근육이 신체적 공격을 위해 동원되며 근육은 긴장하고 혈압과 심장박동수는 치솟습니다. 소화가정이 정지되며 뇌의 중추가 자극을 받고 뇌의 화학작용은 공격모드로 돌입합니다.

 

마지막은 행동단계입니다. 분노의 행동 단계는 파괴적입니다. 언어를 통해 상대방의 정체성을 훼손하게 됩니다. 말로도 상대방의 공격에 만족하지 못하면 물리적 행동을 자행하게 됩니다. 결국 관계의 파국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갈등이 생긴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상대에게 내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5가지 사랑의 언어의 저자인 게리 채프먼 박사는 갈등을 겪는 부부들에게 상대방이 해야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시도해 보라고 권면합니다. 당신의 행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사람과 장소, 물건이 당신에게 행복과 만족을 줄 것이라는 기대는 모두 포기하거나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아무리 해도 효과가 없다는 말은 내 배우자의 습관과 행동이 계속 나의 삶을 고달프게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당신을 변화시키기를 원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 당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당신뿐이다. 그래도 변화되지 않으면 뜻 밖에 변화가 일어날 것을 기대하면서 여지를 남겨두라. 변화의 초점을 자신에게 맞추면 상대방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하기 전에는, 즉 삶 전반에 대한 걱정과 근심, 두려움에 대해 진정으로 마음을 열기가 힘듬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15:7). 당신에게는 늘 당신을 위해 거기 있어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당신의 경험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누군가 있다면 힘이 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상대하다 보면 우리가 견지해야 할 좋은 감정과 태도가 소진되게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 다시 한 번 으혜를 베풀 수 있도록 또 다른 은혜의 공급원을 찾아야 합니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과 서로의 관계에서 발견한 좋은 점을 인정하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게 가장 바람직합니다. 당신이 장점을 인정해 줄 때 상대는 안전감을 느끼고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럴 때 그들은 경계하는 입장이 아니라 사랑받는 입장에서 당신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습니다. 대화 초반에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면 내적인 대화가 정리되어 당신의 말을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당신이 그 사람을 나무라는 게 아니라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진정한 사랑의 위력은 서로 용납하는 것입니다. 용납한다는 것은 용서하고, 같이 견디다는 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볼 수 없는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용납하는 곳입니다. 세상은 서로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합니다. 자존심을 세우고 성급하고 자신을 높이기 위하여 서로 경쟁하고 싸워 이기기 위해 살벌한 전쟁터와 같습니다. 교회는 서로가 품어주고 용납하고 사랑을 하고 받아주고 함께 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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