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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갑절의 축복(욥 42:10-17),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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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겪는 모든 문제, 즉 인간관계에서나 정서상으로 겪는 모든 어려움은 함께 함의 부재에서 옵니다. 한 영혼의 가장 참된 부분이 다른 영혼의 구석진 텅빈 곳에 가 닿을 때, 즉 결속이라는 깊은 만남이 일어날 때, 생명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 전달이 됩니다.

 

지난 주에 저는 신자의 진정한 축복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면서 살아가는데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이 진정한 부흥의 열쇠입니다. 하루에 7분씩 기도하며, 7분씩 말씀을 대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셨습니까? 8월 한달 동안 각 기관별로 지역사회에서 한 가지 이상 봉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웃을 격려하며 위로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생명의 길이 열리기를 소원합니다.

 

이번 주는 본문 말씀을 통해서 신자의 진정한 축복이 사람과의 관계 회복에 있음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본문 10절은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성경의 인물 가운데 욥 만큼 어려운 곤경에 처한 사람이 있을까요? 욥은 하루 아침에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려버리고 말았습니다. 두고 두고 아쉬운 부분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저도 간혹 부산에 가면 광안리에 있는 옛날 우리 집 근처는 이상하게 보기가 싫습니다.

 

욥은 한순간에 믿음직하고 사랑스런 73녀를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좋아했던 자녀들의 모습이 언제나 눈에 생생했습니다. 게다가 사랑하는 아내가 욥을 향해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당신 하나님 잘 믿는다고 하더니 꼴 좋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요“. 그뿐입니까. 신앙이 있다고 하는 친구들조차도 찾아와서 욥의 속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된다는 것은 죄 받아서 그래. 그러니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게!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더 큰 일을 당할지도 몰라. 그럴 때마다 욥은 내가 도대체 뭘 잘못했다가 그러는 거야!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고 했습니다.

 

욥은 자신이 처한 상황이 너무 힘드니까 이전에 아플 때 그때 죽었더라면 좋았을텐데, 괜히 살아서 이런 꼴을 다 보다니!’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이제는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욥기 2410절에 보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신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돌이킬 수 있는 길이 반드시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곤경을 돌이켜 주셔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매.우리 자신이 어떻게 해서든지 곤경을 돌이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물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때때로 찾아옵니다

 

전도서 911절에 보면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는 시기와 우연이 모든 자에게 임함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시기와 우연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반드시 있습니다. 과거의 내가 잘못 살아서 이런 고통을 당하는 게 아닌가?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지 마십시오. 정말 모든 것 잘 해보려고 했는데 안되는 것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마십시오. 우리 자신이 곤경을 돌이키려고 하면 오히려 꼬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의 곤경을 돌이켜 주시면 반드시 길이 있습니다. 나는 더 이상 나이가 많아서 이제는 끝났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본문 12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나니.하나님께욥에게 처음 복보다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단순히 영적인 축복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축복에 있어서도 더 큰 복을 주셨습니다.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양이 칠천마리요, 약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요, 암나귀가 오백(1:3) 이었는데 지금은 양이 일만 사천 마리, 약대가 육천 마리, 소가 일천 겨리, 암나귀 일천(42:12)을 두었다고 했습니다.

 

욥이 받은 갑절의 축복은 특히 장자의 권리였습니다. 아버지가 그가 가진 재산에서 장자에게는 두배의 몫을 줌으로써 그가 맨 처음에 태어났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두 배의 축복을 주심으로 그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다시 갑절의 축복을 베풀어 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이도 많아서 안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모년에, 즉 욥의 나이가 많을 때 많은 축복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안되지만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하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나는 그래도 자본이 없어서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자본을 가지고 우주를 창조하셨습니까? 만약에 창조를 위해서 자본을 투자했다고 하면 얼마나 많은 돈이 들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온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도 효력이 여전히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셨듯이 나의 곤경을 돌이켜 주신다는 말씀을 그대로 믿으면 됩니다.

 

욥이 무슨 자본이 있어서 재기한 것이 아닙니다. 누가 자본을 대어 주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시니 갑절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요 나의 하나님입니다. 욥이 나이가 늙어서 아무것도 없을 때 하나님께 다시 축복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다시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생각할 때는 아무래도 안될 것같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됩니다. 그래도 안되면 어떻할까? 하는 생각 가지고 살아 오셨더라면 이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된다는 믿음 가지고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시기 전에 욥에게 부탁하신 것이 있습니다.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그의 친구들과 불편했던 마음을 풀어 주라고 했습니다. 본의 아니게 마음이 상했던 부분을 다 용서해 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셨습니다.

 

뒤집어서 말씀을 드리면 욥이 비록 잘못한 것은 없지만 마음에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을 위하여 용서의 기도를 드릴 때 문제가 풀리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기에 욥은 아직도 고통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과거에 소유했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집도 없고 잿더미 위에 앉아 있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확실히 욥에게 필요한 것은 우선 자신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먼저 그들의 친구를 위한 기도를 하게 하셨습니다. 욥이 그 자신을 위한 기도를 전적으로 포기하고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다시 축복하시는 방법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까? 그동안 마음에 너무 상처를 주었거나 정말 못할 짓을 했던 사람이 생각이 난다면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만날 수 있으면 그 관계를 회복하십시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곤경을 빨리 돌이켜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시기 전에 그의 친구들에게 부탁한 것이 있습니다. 8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이러한 희생 제물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값비싼 것입니다. 이는 사태의 심각성과 희생의식의 중대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친구들에게 욥에게 가서 번제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들이 비난했던 욥과 먼저 화해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나서 그 친구들은 욥의 기도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용서의 기도를 해주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야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친구들을 기쁘게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욥을 기쁘게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의인의 중보적인 행위가 확실한 효력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신자의 진정한 관계의 회복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가운데 마음에 꺼리끼는 사람이나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분에게 찾아가서 나의 잘못을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그런 부탁을 당신이 받았다면 반드시 그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당신도 그 사람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곤경을 돌이켜 주십니다. 물론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마음의 문을 열고 그 사람을 용서 해주고 싶은 데 그 사람은 여전히 계속 잘못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그 사람을 미워하지 마십시오. 어떠한 경우에도 저주하거나 악담을 퍼붓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 자신이 하는 일에 꼬이게 됩니다. 오히려 그를 위해 축복하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당신이 하는 일이 열리게 되고 그 사람도 속히 변화받게 됩니다. 이것이 인간의 감정의 차원에서는 이해가 안됩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이것이 죄 많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사용하신 방법입니다.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을 살려내는 방법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의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합니다.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합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과의 관계회복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셔야 됩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켜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19:13). 그러나 지금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도로 가깝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셨고 그의 친구들에게 욥을 옹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들은 모두 욥 주위로 몰려 들었습니다. 욥의 가까운 형제들이 진작 찾아와서 위로해 주었더라면 좋았을텐데. 왜 그랬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있게 해두는 것이 필요해서 그런지도 모릅니다.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데 괜히 찾아가는 것 자체가 부담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릅니다. 평소에 관계가 안 좋았던 사람들은 무슨 부탁이라도 하면 부담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 안갔는지도 모릅니다. 그 모든 재앙이 자신들에게 내릴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욥이 자신이 가장 힘들었을 때 그들이 자신을 멀리 했다는 것 때문에 욥은 마음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l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다시 욥에게 찾아와서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을 주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물질로 욥에게 봉사하게 했습니다. 동방에서는 재앙을 당하고 난 고위 계층의 사람들을 방문할 때는 선물을 갖고 가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러한 의식은 그들이 욥과의 신뢰 관계를 예전처럼 다시 회복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괴로움을 당할 때 멀리했던 사람들의 손에 의해 원상태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다시는 자신의 삶을 회복시켜 주시리라고 상상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은 사라졌습니다. 오직 죽음의 확실성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인생에도 봄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일을 처리하는 방식에는 겨울 다음에 반드시 봄이 찾아옵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만 다시 축복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로 그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욥은 다시 자녀들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녀들은 갑절의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73녀 그대로 주셨습니다. 아마 자녀들까지 갑절의 복을 주시면 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특히 딸들은 얼마나 이쁜 지 아마 그 당시에 미스 코리아 대회에 나갔더라면 아마 진선미를 다 차지할 말 큼 아리따웠습니다(15). 어떤 분을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아내까지도 갑절을 복을 주셨는냐?고 꼭 묻는 분이 있습니다. 주로 남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경우는 갑절의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수명까지도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욥이 일백 사십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4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욥이 다시 받은 축복은 이렇게 완전한 축복이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서로에게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그동안 잘 해주었던 사람들로부터 실망이 크다 보니 점점 그렇게 되는 것같지 않습니다. 혹시 나에게 서운하게 대했던 사람들로부터 당한 상처를 아직도 풀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자의 진정한 축복은 잘 해주고 싶은 마음을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를 회복하는데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역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가능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힘들어지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하면서 여러분의 생애를 묶어 놓는 것으로부터 자유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곤경을 돌이켜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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