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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내 영이 메마르지 않는 연습

by liefd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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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라고 대답함의 비밀(91:1)

 

재정적 어려움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엄마가 있었습니다. 절박함에 극에 달하는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에 그 엄마는 기도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거실 소파에 앉아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갑자기 도움이 필요하시면 911로 전화하세요. 음성이 너 뎃 번 계속 반복되는

것입니다. 그 소리는 지하실에서 들려온 듯했습니다. 그래서 그 엄마는 조심스레 지하실 문을 열었습니다.

물건들은 제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아들의 장난감 구급차가 지하실 한 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 장난감을 집어든 엄마는 비상등 옆에 달린 버튼을 눌러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까와 같은 음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도움이 필요허시면 911fh 전화하세요". 그런데 그 순간 성령께서 그 엄마에게 감동을 주십니다.

시편 911절을 읽어 봐라. 성경을 펼쳤더니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에 사는 자여".

그 엄마는 하나님과 은밀한 곳에서 자신의 재정적인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었고, 새롭게 헌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지존자와 은밀한 관계를 맺을 때 하늘의 능력이 부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기도할 때마다 당신의 생애의

가장 값진 진주를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과 은밀하게 교제하는 것은 축복이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을 통해서 역동적인 생명을 누리는 성도들 찾rl가 힘들어졌습니다.

우리가 지친 삶에서 긴장이 풀리고 피로의 회복을 위해서 텔레비전을 봅니다. 하지만 남는 것은 공허뿐입니다.

 

때로는 당신이 훌륭한 설교를 듣기 위해 예배에 참석하지만 이 또한 결국 공허만 남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신이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머물면 당신은 하나님 나라의 참된 비밀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신의 삶에 열매맺는 능력은

전능자의 그늘에서 시작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이방인으로서 최초의 신자가 된 고넬료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기도의 은밀한 곳에 헌신한 경건한 이방인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은 고렐료의 네 가지 측면에서 그의 경건함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고넬료는 정기적으로 구제를 했습니다. 고넬료는 경건한 삶의 방식을 살았습니다. 고넬료는 금식을 했습니다.

고넬료는 기도의 은밀한 곳을 지켰습니다.

 

이 네 가지 삶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은 고넬료와 그의 가정에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고넬료를 이방인의 첫열매로

삼아주셨습니다.

"고넬료야, 은밀한 곳을 향한 너의 열정과 확신 덕분에, 너의 삶은 열매를 맺는구나. 그러니 나는 너를 성령을 받은 첫 번째 이방인으로 지명해야 겠다. 나는 은밀한 곳에 머물려는 너의 은밀한 결단을 모든 나라에 소개할 것이다!"

 

하나님은 고벨료를 열방을 구원하는 통로로 삼으셨다. 하나님과은 자신과의 은밀한 삶을 갖는데 우선순위를 둔 고넬료를 인정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삶에 찾아온 뜻밖의 결실에 고넬료는 놀랐을 것입니다.

 

이제 당신도 은밀한 곳에 자신을 내어 드릴 때 하나님께서 당신 안에 일을 시작할 것입니다. 그분의 때에 하나님은 당신을 동서남북으로 뻗어나가게 할 것입니다. 이는 실로 놀라운 비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갈망할 때 우리의

가슴에 타오르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그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당신의 주님의 임재 안에 오랜 시간 머물 때 당신의 영혼의 분자 구성이 달라집니다. 이제 당신은 은밀한 곳에서 지존자가 말씀하실 때 예라고 대답할 때 당신의 생애는 놀랍게 변화될 것입니다.

 

2. 닫힌 문의 비밀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6:6)

 

마태복음 66절은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축복의 말씀이다. 모든 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그분이 직접 하신 말씀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며, 특별한 기쁨을 찾는다.

 

기도에 대해 가르치실 때 예수님은 유독 은밀한 곳을 강조하셨다. 사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가르치신 곳도 은밀한 곳을

우선하라는 것이었다. 마태복음 6장에서 예수님은 기도하는 방법을 가르치시지만, 그보다 먼저 말씀하신 것은 바로 기도의 장소였다.

 

혹시 당신은 하나님과 단절된 듯하여 괴로웠던 적은 없는가? 혹시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껴지는가?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 당신과 함게 계시고, 늘 당신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은가?

 

이 세 가지 질문에서 단 하나라도 ""라는 답변이 나오는가? 그렇다면 당신에게 들려줄 놀라운 소식이 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임재로 들어가는 백 퍼센트 확실한 방법이 있다. 아버지와 즉각적인 친밀함을 누리는 보장된 길이

있다. 예수님은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기도하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미 은밀한 곳에 가 계신다는 뜻이다.

"그분은 벌써 너보다 먼저 들어가셨어. 그분이 그곳에서 너를 기다리고 계셔. 네가 은밀한 곳에 들어가는 순간, 아버지의

임재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단다.

 

예수님은 이 진리를 같은 장에서 두 번이나 말씀하셨다. 또 다른 말씀은 마태복음 618절에 나온다.

"이는 금식하는 자로 사람에게 보이지 않고 오직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게 하려 함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두 번이나 강조하여 말씀하셨으니, 정말 확실한 말씀이다. 우리 아버지는 은밀한 곳에 계신다. 더 나아가 예수님은 이 은밀한 곳을 어떻게 찾는지도 알려 주신다.

 

은밀한 곳에 들어가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고민하고 있는가? 예수님은 분명한 답을 주신다. 우리는 그곳의

문만 닫으면 된다.

방에 들어가 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아버지의 임재 안으로 들어간다. 바로 그 순간이다. 이대 영적 상태나 감정은 중요하지 않다. 그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방에 발을 들여 놓았음을 확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밀한 곳은 보좌로 가는 길이며 하늘을 맛보는 자리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관한 가장 큰 비밀이니 그대로

마음으로 받으라. 아버지의 임재 안에 있음을 알 때, 우리의 영과 혼은 진리를 아는 지식에 진심으로 교감하여 반응한다.

이 지식으로 말미암아 우리 영혼은 자유로이 비상한다.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사람은 반석 위에 선 것이다. 삶의 기초를 제대로 세운 것이다.

마태복음 724-27절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명료하다. 산상수훈에서 가르치는 것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인생의 거친 폭풍도 견뎌 낼 기초 위에 설 것이다. 분명한 사실이 있다. 인생의 폭풍은 반드시 온다.

문제는 그 폭풍을 견딜 기초가 당신의 삶 가운데 놓여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 기초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흠없는 은밀한 곳에서의 삶이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아버지와 친밀함을 매일

경험하는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인생의 가장 거센 폭풍도 견뎌 낼 힘을 얻는다.

이 비밀을 절대 잊지 마라. 은밀한 곳으로 들어가 문을 닫으라.

 

3. 들음의 비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10:27)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서 홍해를 거쳐 시내산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은 산위의 불로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셨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음성으로 말씀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경험을 감당하기가 너무 두려웠다. 그래서 결국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자기들에게 전해 줄 것을 요청한다.

 

시편 기자는 이 장면을 독특하게 묘사한다. "내가 너를 건졌고 우렛 소리의 은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시며"(81:7).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의 만남을 은밀한 곳에서의 만남으로 보셨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부르신 이유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고 계명을 주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은밀한 장소에서 응답하고 말씀하신다. 때론 우렛 소리 같은 어머어마한 음성으로 우리를 사로잡으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듣고 반응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어하신다.

우리가 진정으로 그분의 음성을 듣고 싶어한다면 우리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은밀한 곳에 들어가 문을 닫고 관심을 빼앗는 모든 소리를 차단해야 한다.

 

시편 817절 말씀입니다. "내가 고난 중에 부르짖으매 내가 너를 건졌고 뇌성의 은은한 곳에서 네게 응답하며 므리바

물가에서 너를 시험하였도다".

예수님의 가르침 가운데 들음의 중요성을 자주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귀있는 자는 들으라"(13:9)고 외치셨다.

하나님 나라의 모든 것이 "말씀을 듣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 나라의 가장 귀한 보화는 말씀을 듣는 일에 숨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에 따라 행할 때 모든 것이 변한다. 들음은 영생의 샘이며 하나님 나라의 능력과 권세의 근원이다. 또한 지혜와 명철과 삶의 방향성의 원천이다.

그 무엇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오는 확신과 권위를 대신할 수 없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내 마음의 유일한 소망,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갈망을 충족해 주는 유일한

근원이다.

 

하나님께 이야기 드리는 것도 큰 기쁨이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느끼는 기쁨은 더더욱 크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우리가 하나님께 할 말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실 때는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

내가 천마디 말을 해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 한마디라도 천지를 창조하실 수 있다.

은밀한 곳에서 우리가 할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다.

때로는 그 순간을 놓쳐서 하나님 말씀을 분명하게 알지 못할 때도 있다.

하지만 말씀하실 때 언제든지 들을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이다.

 

성경은 "만일 오늘날 너희가 그 음성을 듣거든"(95:7)이라고 기록한다. 이 말씀에서 보듯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우리의 의지에 달린 문제다. 그렇다 우리는 조용히 그분의 음성을 듣기로 결단해야 한다.

누구나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주님은 "내가 불러도 그들이 듣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이

불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7:3)고 말씀하셨다.

이는 "내가 말했을 때 너희는 듣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너희가 말할 때 듣지 않을 것이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그분도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은밀한 곳의 가장 소중한 비밀이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거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나 이는 절대 진실이 아니다. 이 거짓말을 믿지 마라.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도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10:27)고 말씀하셨다.

당신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모든 것을 멈추고 하던 일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라. 하나님을 구하라.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라. 그분은 당신과 대화하기를 간절히 기다리신다.

 

하나님께 귀 기울일 때, 종종 그냥 해야 할 일들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이 생각들은 그분의 음성을 듣는 일에 방해가 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실질적인 제안을 하겠다. 은밀한 곳에 들어갈 때면 노트를 들고 들어가라. 그리고 잡다한 생각이 떠오르면 노트에 해야 할 일을 적으라.

하나님의 음성 듣는 일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은 비단 당신뿐만이 아니다. 그러니 용기를 가져라. 그리고 경청하는 훈련을 평생의 목표로 삼으라.

 

 

4. 즉각적인 순종의 비밀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핵심은 은밀한 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이다. 이 때 기억해야 할 점은 듣는데서 끝내면 안된다는 점이다. 들었으면 반드시 즉시 순종해야 한다.

즉각적인 순종이란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순종을 말한다. 이것은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하는데서 끝나지 않고 넘치도록

풍성히 완수함을 뜻한다. 신약에서 순종한다는 단어, '후파코에'는 순복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진지하게 경청한 후 온전히 따른다는 것이다.

 

내적 순종은 선한 일을 하는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발 앞에 앉아 말씀에 귀 기울이는데서 시작된다.

은밀한 곳에 헌신하는 일은 성도의 크고 첫째 되는 순종의 행위다.

이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그분을 기다리고 그분의 음성을 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그분이 말씀하실 때만 행동하는 데 온힘을 기울이라.

핵심은 결국 단 한가지다. 바로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으로 말미암는 유익은 너무나 많다.

 

순종은 풍성한 영생의 삶을 열어 준다

예수님은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줄 아노라"(12:50)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할 때 그분 안에 거하는 생명이 우리에게 흘러 들어올 것이다.

 

순종할 때 하나님은 시선을 우리에게 고정하신다.

하나님은 순종을 결단하는 사람에게 특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이신다. 그분은 무릇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고 내 말을 듣고 떠는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66:2)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떤다는 것은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 하나님이 말씀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둘째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행하려는 열심히 있다는 뜻이다.

 

순종은 더 큰 친밀함을 낳는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14:21)

순종은 사랑의 증거이며, 이 사랑으로 우리는 아버지와 친밀함을 나눌 수 있다.

더 나아가 순종은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문을 연다. 예수님은 열린 마음에 자신을 계시할 수 있다.

 

순종은 요둉치 않는 기초를 놓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헤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7:24-27).

 

예수님 말씀대로 행한 자와 행하지 않은 자 모두 폭풍을 만난다는 사실을 아는가? 분명히 폭풍은 당신에게도 다가온다.

문제는 그 폭풍을 견딜 수 있는 가?이다. 당신이 쌓아 놓은 기초는 비바람과 홍수를 견딜 만큼 강한가?

곧바로 순종하는 사람은 오래전부터 폭풍을 대비해 온 사람이다. 그래서 반드시 폭풍을 이겨낸다. 바람이 거세면 거셀수록 순종하는 사람은 그 바람을 힘차게 가루고 올라가 하나님께 아름다운 향기를 드린다.

 

순종에 대해서 우리는 두 가지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마리아의 말은 순종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낸다.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2:5)

 

주인이 명령하면 그대로 행한다.

자신의 생각이 더 나을 것 같다면 조언하려고 하지 말라. 아무리 말이 안되는 일을 맡겨도 절대 불평하지 않는다.

그 일을 당장 할미 말지 기분이 내킬 때 할지 결정하려 들지도 않는다. 혹시 그 일 때문에 자기의 체면이 꺾이는 것은

아닌지 판단하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 일을 할 뿐이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니라"(17:10)

 

또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수록 더욱 순종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길을 알았기 때문에 더 높은 수준의 순종을 택했다. 모세는 이 행동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문제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저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인가? 에 관심을 두었다.

한 예로 모세가 시내산에 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명하셨다. 바위틈에 숨어 있으라. 너를 보호하는 바위를 벗어나

내 얼굴을 보게 되면 너는 죽을 것이다. 지금 너와 나는 너무 가까이 있다. 자칫 잘못해서 내 얼굴을 보면 너는 심장마비로 즉사할지도 모른다. "

하나님과 가까이 있을 때는 그분의 말씀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따르고 명하신 곳에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순종해야 한다.

 

5. 신속한 회개의 비밀

 

내 심령으로 내가 내 마음으로 간구하길(77:6)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17:3, 21:34, 또한 출 19:12, 4:23, 11:16, 17:21, 5:35, 20:28 참고)는 구절은 성경에 여덟 번이나 나온다. 그중에 두 번은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스스로 조심하는 일이야 말로 은밀한 곳의 주된 역할이다.

기도는 영혼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일이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영적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점검하는 삶의 방식이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높은 차원의 친밀함을 경험하고 싶다는 순수한 열망을 품은 사람의 경건의 훈련이다.

경건한 사람은 영적인 열심과 경각심, 신실함, 정결함, 사랑, 순종, 은혜 안에서 성장하려고 끊임없이 점검한다.

 

은밀한 곳은 "내 심령으로 내 마음으로 간구"하는 곳이다. 나는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 분의 뜻을 알고 싶다.

그래서 혹시 내 안에 회개해야 할 부분은 없는지 마음 깊은 곳을 두루 살핀다.

그래서 주님과 나의 관계나 그분의 뜻을 가로막는 게 있다면 그 무엇도 허용하려 들지 않는다. 마치 황금을 찾는 기분이다. 정말 열심히 찾아도 언제나 내가 원하는 만큼 발견할 수 없는 황금 말이다.

 

나와 비슷한 갈망을 품은 당신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회개를 잘하는 자가 되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길은 회개 뿐이다. 회개가 쉽지 않다면 교만의 문제를 극복하라. 당신은 곤고한 자다. 당신에게는 주님의 자비가

필요하다. 두려우리 만큼 절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회개의 기술을 배우고 터득하라. 당신의 죄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라. 자신을 낮추라.

 

신속한 회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의 통로를 열어 준다. 은밀한 장소에 머무는 시간을 보내라. 그리고 당신의 믿음 없음과 굳은 마음을 속히 고백하라. 하나님이 설득하실 때까지 버티지 마라. 그분께 바로 동의하라.

여기서 말하는 회개는 눈에 보이는 죄가 아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숨어 있는 잘못이다. 우리의 죄는 생각, 동기, 감정, 반응, 타락한 본성이다. 교만, 반역, 불신앙. 시기, 이기심, 탐욕, 탐심과 같은 죄는 교묘히 숨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안주머니에 죄를 숨긴다. 하나님이 도우셔야만 그 죄를 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데 어찌 회개할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신다.

 

우리의 죄과를 드러내시기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불을 사용하시는가?

디모데후서 219-21절 말씀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강력한 실체가 우리 삶의 기초라고 말한다. 그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아신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 죄를 알면 거기서 벗어날 수 잇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환경의 불과 말씀의 불을 사용하셔서 우리가 보지 못했던 죄를 깨닫게 해주신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완전하심을 바라보면, 우리 자신을 새로운 관접에서 볼 수 있다. 연약하고 부족한 우리를 사랑으로 무조건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또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길 원하시는 그분의 심정을 깨닫게 된다. 그 순간은 놀라운 기회다. 그때 우리는 신속히 마음을 돌려 온전히 회개할 수 있다.

회개의 시간은 경건한 자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때이기도 하다.

회개는 사랑을 가록막는 장벽을 무너뜨릴 좋은 기회이다.

우리가 지금껏 알아왔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큰 친밀감을 경험할 수 있는 촉매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신속하게 회개할 때 아버지의 기쁨을 확실히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 얼굴의 빛이 우리 마음을 만지면 그분의 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의 불로 수면 위로 떠오른 죄를 회개하는 일은 곧 불로 연단한 금을 사는 것과 같다(3:15 참고).

신속한 회개를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주인이 귀히 쓰는 금그릇과 은그릇이 된다.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은 나무 그릇과 질그릇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즉 주인이 하잖은 목적으로 사용하는 존재일 뿐이다.

결론적으로 죄과를 신속히 회개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큰 집에서 더 귀한 목적으로 쓰일 수 있는 존재로 빚어진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다.

 

6. 씨뿌림의 비밀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7-9)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부분은 '다람쥐 쳇바퀴도는 느낌'이 아닐까 싶다. 기도하고 묵상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느낌말이다. 무기력함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뭐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도와 묵상 시간에 아무 것도 얻지 못했다는 생각에 크게 좌절한다. 나머지 태만의 늪에 빠지는 사람도 있다.

갈라디아서 67-9절에 숨어있는 놀라운 비밀은 '은밀한 곳에 시간을 드리며 성령으로 씨를 뿌리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두게 된다'라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한, 씨를 뿌렸는데 그에 합당한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여기서 씨를 뿌린다는 것은 은밀한 곳에 시간을 드린다는 의미다. 하나님과 매일 은밀한 곳에서 오래도록 만나는 습관과

생활방식을 형성해 나간다는 의미다. 우리의 씨 뿌림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중에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이것은 당신을 변하게 하고, 나아가 당신 주변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열심히 구하지 않으려는 강한 유혹이 들어와도 항상 이겨낼 수 있다. 한 예로 금식할 때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금식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이 밀려온다. 그러면 계속 씨를 뿌리면 언젠가 반드시 거두게 되리라는 사실을 떠올린다. 지금 느끼는 좌절에서 시선을 떼고 인내하면, 때가 됐을 때 거둘거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한다. 때로는 은밀한 곳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무미건조하고 심신하다는 생각을 자주하지만, 뒤돌아보면 모두 하나님과 함께 한 놀라운 순간들이었다. 은밀한 곳의 실제 영향력은 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난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문화는 즉각적인 결과를 기준으로 우선순위를 정한다. 이 세상은 이룬 것이 무엇인지 당장 보이라고 강요한다. 그러나 보여주기 위한 경쟁에 휩쓸리다 보면 은밀한 곳에 많은 시간을 드리지 못하게 된다. 얼마나 많은

프로젝트를 완수했는지, 얼마나 많은 일을 완성했는지가 영적성장을 평가하는 척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도생활은 텃밭에 씨를 뿌리는 시간과 같다.

오늘 뿌린 씨앗이 눈에 보이는 결실로 나타나려면 반드시 성장의 계절을 지나야 한다.

 

대개 씨 뿌림은 극도로 지루하고 평범하며 하찮은 일로 느껴진다. 씨를 뿌리는 동안 그것의 유익을 곧바로 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씨 뿌림의 유익이 드러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또 씨를 뿌린 즉시 참된 영적 추수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비밀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언젠가는 추수하게 될 것을 확신하며, 낙심하지 않고 성실히 씨를

뿌린다.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거니와"(12:11).

 

추수하려면 먼저 마음 밭을 갈고 나서 그 밭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아주 힘 있는 씨앗이라서

우리 마음 밭의 상태만 좋으면 언젠가는 넘치도록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

은밀한 곳에서 보내는 매순간이 투자다. 영생의 실체에 투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수고를 늘 지켜보시며,

그 헌신을 어떻게 존귀한 것이 되게 하실지 생각하신다. 은밀한 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당신의 마음에는 지금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 당신이 믿음과 사랑으로 인내하면, 그 씨앗은 분명히 많은 결실을 낼 것이다.

 

그러니 무엇을 하고 있든 멈추지 마라! 아무 소용없는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고집을 부려 더 많이 뿌려라.

오늘 당신 마음에 뿌려진 말씀은 싹이 트고 자라나서 뿌리를 내리고 위로 가지를 뻗어 열매를 낼 것이다.

이 비밀을 놓치지 마라.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거둔다!

 

 

7. 피난처의 비밀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폭풍우를 만날 수밖에 없지만 피할 곳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인생의 폭풍을 피할

피난처가 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서 나를 숨기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27:5).

주께서 그들을 은밀한 곳에 숨기사 사람의 꾀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비밀히 장막에 감추사 말다툼에서 면하게

하시리이다“(31:20).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성소에 숨기신다. 성소를 피난처와 도피처로 정의한다.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전쟁에 지친 병사의 성소이자 적의 침입을 막는 요새다.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63:2)

 

다윗이 기록한 위 시편의 제목은 다윗의 시, 유다 광야에 있을 때에이다. 다윗이 자기의 생명을 지키려고 사울 왕에게서 도망하면서 성소에서 하나님을 바라고 있다. 다윗은 광야에서 몇 년이나 숨어서 지냈다.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성소 근처에는 도저히 갈 수 없는 처지였다. 그렇다면 다윗이 발견한 성소는 무엇일까요? 다윗은 자신의 영혼을 마구

공격하는 격한 감정과 고난의 광풍을 피할 피난처를 찾았다.

바로 그곳에서 다윗은 불안감을 토로하고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으로 새롭게 되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마음을 다스리고 거절감 때문에 생긴 상처를 치유할 수 있었다.

다윗은 그곳에서 계속 걸어나갈 힘을 얻었다, 그곳에만 있으면 다윗은 늘 안전했다.

모든 환경이 폭풍으로 변하여 몰아 닥쳐도 안식과 평안의 지성소를 발견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은밀한 곳에서는 폭풍과 평안을 동시에 경험한다. 은밀한 것으로 피한다고 폭풍이 멈추는 건 아니다. 사실 오히려 더 거세어지기도 한다.

 

은밀한 곳에 찾으려 들수록 자신을 둘러싼 영적 전쟁이 더 치열해진다는 사실에 힘들어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파도를 피할 피난처를 찾은 줄 알았는데, 격랑을 발견한 격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 때문에 혼란에 빠진다. 그래서 몇 가지를 이야기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기도장소는 면책의 장소인 동시에 사단이 경건한 자를 가장 맹렬하게 공격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다니엘을 무너뜨릴 방법을 찾았던 사단은 그의 기도생활 속에서 유일한 틈을 발견했다. 그래서 경건한 기도생활을 이유로 다니엘을 공격했다. 또한 가롯 유다도 예수님을 대제사장들에게 넘겨주려고 했다. 이를 성사하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배신하였다.

 

이처럼 은밀한 곳은 성소인 동시에 사단의 전략점 공격 지점이 된다. 그러나 우리가 굳세게 붙들 수 있는 약속이 있다.

기도의 장소에서 사단이 우리를 공격할 때 하나님 아버지는 그 모든 일에 주권적으로 역사하신다는 약속이다.

높은 뜻을 이루려고 하나님 아버지가 허락하신 공격이 아니고는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면 우리는 완벽히 보호된다.

 

시편 91편은 안전함과 격랑, 이 둘 사이의 긴장을 이야기 하고 있다. 첫 구절은 강한 확신을 준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 사는 자여“.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은밀한 곳에 있으면 누구도 나를 건드릴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편 91편을 읽다가 보면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된다. 우리가 사냥꾼의 올무에 걸리고 심한 전염병에 시달리다 건져내질 거라고 생각한다(3).

시편 기자는 이어서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오는 화살, 어두울 때에 퍼지는 전염병, 밝을 때 다가오는 재앙을

기록한다. 15절에는 크나큰 개인적인 고난을 이야기 한다. 물론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시며 반드시 건져

주신다는 말씀으로 위로받는다. 하지만 때로는 주님이 건져 주실 때까지 기다리기가 몹시 힘에 부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은밀한 곳에서 헌신할수록 영적 전쟁이 더 치열해진다는 사실에 힘들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내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91:7). 여기에서 좌우에서 엎드려지는 사람들은 당신의 전우들이다. 이들은 열심히 하나님을 믿었는데 이런 재앙조차 막아 주지 않으시다니라고 생각하며 분을 참지 못한다.

 

그러나 만 명이 구원을 얻지 못한다 해도 주님은 당신의 구원자가 되실 것이다. 시편 91편은 모든 믿는 자가 아닌 믿는 자 중에서도 극소수를 위한 시로 이해해야 한다. 즉 전능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사람을 위한 시다. 무수히 믿는 자들이 이런 저런 일들로 인해 넘어져도 당신은 안정하다. 당신은 은밀한 곳에 머무는 법을 배웠기 때문이다.

주님과 가까워질수록 우리를 둘러썬 전쟁은 더욱 치열해진다. 그러나 공격이 거세어질수록 우리의 부르짖음도 커진다.

주여 나를 숨기소서!” 갈수록 심해지는 괴롭힘과 핍박 때문에 몸과 마음은 힘들지만 우리의 영은 전능자의 그늘 아래서 더 큰 위로와 인식, 친밀을 누린다(고후 4:8-11).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은 우리에게 더 큰 평안과 위로를 주신다. 우리의 영혼이 예수님을 향한 열정으로 타오르게 하신다. 이럴 때 사단은 오직 분노할 뿐이다.

 

지금 당장 마음에 결단을 하는 은혜가 당신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당신의 자아를 포기하고 지존자의 은밀한 곳을 구하라. 이는 곧 십자가의 길이다. 십자가는 엄청난 공격을 받는 자리이지만 온 우주에서 가장 안전한 자리다.

당신은 또한 이 피난처로 달음박질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머릿속에 광풍이 몰아치는가? 그렇다면 주님께 달려가라!

피난처는 당신이 달려가 숨는 곳이다. 이곳은 저절로 형성되는 곳이 아니다. 반드시 구하고 찾고 달려가야 한다.

 

성경은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6:18).

하나님이 당신의 피난처가 되시려면 당신이 먼저 그분께로 도망쳐야 한다. “오 주님 제가 죽을 것 같습니다. 주님께로 달려갑니다. 저를 숨겨 주세요라고 부르짖어라.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71:3).

오 주여 은밀한 곳을 선물로 주시니 감사합니다.

 

 

8. 결정의 비밀

 

"내게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32:8)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가? 그렇다면 은밀한 곳으로 달려가라. 당신이 무엇을

결정했던지 하나님은 그 결정을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리도 당신이 그 결정을 어떻게 내렸는지도 똑같이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무언가를 결정할 때 그분과 친밀함을 누리는 가운데 선택하기를 바라신다.

 

예수님도 중요한 결정을 내리실 때마다 은밀한 곳으로 가셨다. 예수님은 장차 세상을 바꾸게 될 열두제자를 선택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아셨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아버지와 단 둘이 시간을 보내셨다(6:12-16).

예수님은 자신을 배반할 가롯 유다를 선택하실 때도 기도하셨다. 사실 가롯 유다를 선택하실 때는 특별히 더 기도하셨다. 장차 가롯 유다가 자신을 처참한 파멸과 고통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이런 중대한 결정을 해야 했기에 주님은 홀로 밤이 새도록 온 힘을 다해 기도하셨다.

 

하나님 아버지는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하신다. 당신의 삶에 벌어지는 모든 일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시며, 당신이 결정을 내리는 과정에 함께하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직접 이렇게 말씀하셨다(32:8-9). 말이나 노새에게는 재갈과 굴레를

씌우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주인 곁에 오는 법이 없다. 이 구절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너와 멀어진 상태에서 너를 인도하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너를 억지로 굴레를 씌워 이리저리 끌고 다니고 싶지 않다. 그제 내게 가까이 오기를 바랄 뿐이다. 내 마음에 가까이 다가오라, 친밀함과 교제의 장소에 너를 인도하고 싶구나.

 

말과 노새는 무지한다는 대목에 주의하라. 그래서 쉽사리 주인 곁으로 오지 않는다. 주인에게 가까이 하면 상상할수도 없는 유익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런데 노새와 말은 주인에게서 벗어나 자기 길로 가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노새는 무익할 뿐 아니라 쓸모가 없다. 꼭 노새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자만심으로 생명과 양육을 멀리한다. 그러나 시편은 하나님을 찾는 것이 지각의 증거라고 분명히 기록한다(14:2).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그분을 전심으로 구하는 일이 이 땅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지혜로운 일이다.

 

친밀함을 구할 때 우리는 인생의 가장 위대한 비빌을 발견한다. 하나님은 친밀한 가운데 당신을 인도하시며, 그분의 마음을 당신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환경과 상황을 따져보고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주위를 둘러보는 대신 위를 올려다보고 방향을 결정하기를 바라신다.

주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그분의 입술을 바라보라. 가야할 길을 일러 주실 때까지 그분의 눈을 바라보라.

외부데이타에 근거하여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사회의 온도계다. 그와 반대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마다 하나님 안에서 발견한 것을 근거로 삼는 사람은 사회의 온도조절기다. 이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문제들을 이 땅에서 온전히 실현하기 위해 세상에 달려가 영향을 미친다.

 

통찰력보다는 친밀함이 먼저다. 목적보다는 열정이 우선한다. 은밀한 곳에 들어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게 제대로 된 길을 택하였는지에만 신경쓰시는 분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느끼고 누리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느끼고 누리고 싶어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뜻대로 사는 개 아니라 하나님 가까이에 다가가 그분을 더 알아가기를 가장 바라신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걷고 싶어하신다.

은말한 곳에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행동이다.

이 일은 또한 당신의 가장 높은 목적을 찾게 해줄 열쇠다.

잠시 멈추고 당신의 친구 되신 그분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라. 그리고 시간을 즐겨라.

 

9. 차선책이 없어야 한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62:5)

 

하나님과의 친밀에서 가장 큰 비밀은 그분을 유일한 소망과 도움의 원천으로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주님 제게는 차선책이 업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대안이 하나도 없습니다. 저를 도와주실 분은

주님뿐입니다."라고 고백하며 나아가라.

오직 주님이 도우신다고 믿으며 그분만을 바라보는 당신의 모습을 주님은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기껏해야 나무토막에 헛된 소망을 걸고 있는 그들의 우상숭배를 질책하셨다(44:14-20).

오늘날 돌이나 나무에 새긴 형상을 숭배하는 사람은 현대 문화에서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너무나 많은

거짓 신이 존재한다. 우상숭배자들은 나무토막에 '당신은 나의 신이니 나를 구하소서'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들에게 있어서 신이란 우리를 구해줄 힘이 있다고 믿는 대상이다.

 

현대사회에서 수많은 거짓 신이 있다. 위기 상황이 닥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대상이라면 무엇이든지

거짓 신이다.

, 건강보험, 병원치료, 처방전, 국민연금, 퇴직연금 및 연금보험, 신용카드, 통합대출, 마약, , 쾌락, 오락, 여가, 스포츠, 섹스, 외로움에서 건져줄 친구, 상담자, 소송, 개인 파산신청 등

이러한 거짓 구세주는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라며 아우성친다. 어디를 가든 세상 문화의 신들이 자신의 능력을 자랑한다.

텔레비전 광고는 우리를 구해줄 대안들을 속속히 제시한다. 나를 한번 써보세요, 당신의 고통을 치유해 드릴께요,

제가 바로 당신이 찾던 답입니다. 더 찾아볼 필요도 없어요, 나에게 와요. 내가 당신을 구해줄께요.

 

하지만 우리는 이런 거짓 구세주를 바라보며 아닙니다. 하나님 주님만이 나의 구원자이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당신의

영혼은 힘차게 뛸 것입니다. 오직 주님을 사랑하면 당신의 영혼은 부드러워지고 하나님은 새롭게 역사하신다.

하나님이 당신의 사랑에 화답하신다고 생각해 보라. 그 기쁨은 무엇에다 비할 수 없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는 도움이 필요할 때 가장 먼저 주님 앞으로 나아온다. 그는 먼저 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그분의

지시를 기다린다. 지혜와 계시를 주시는 그분을 부르짖는 문턱이 바로 은밀한 곳이다.

 

때때로 성령은 "이번에는 네가 오직 나만 기다리길 바란다. 내가 이 상황에 주권적으로 개입할 때까지 믿음 안에 굳게

서기 바란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럴 때 당신이 할 일은 안전띠를 단단히 매는 것이다. 당신은 곧 하나님의 영으로 들어가서 기적을 발견할 것이다.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부활의 능력이 나타난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62:5-8). 주님이 제 유일한 도움이십니다. 주님이 저를 구하지 않으시면 저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저를 치유하지 않으시면 저는 치유될 수 없습니다. 주님이 저를 건져주시지 않으시면 저는 건져질 수

없습니다. 제게는 다른 의뢰할 것이 없습니다. 차선책도 다른 계획도 없습니다. 다른 대안은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 한분뿐입니다. 주님을 경배합니다. 주님이 저의 하나님이십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몸이 밝을 것이요"(6:22). 네 눈이 하나이면, 초점을 한 곳에 둔다는

뜻이다.

당신이 하나님 한 분만을 구원자로 바라볼 때 그분은 당신의 모든 존재를 채우신다, 이미 준비해 놓은 풍성한 빛을

당신 안에 부으신다.

다윗도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도했다(86;11). 다윗은 일심으로 주님을 경외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것은 곧 주님께만 전념하는 마음을 주시고, 경외하고 경배할 대상이 오직 주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주님을 바라보게 해달라는 고백이다.

 

주님이 때때로 우리 삶에 큰 폭풍을 허락하실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즉각적인 도움을 찾고 모든 대안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그 폭품이 당신을 더 높은 차원으로 끌어올리려는 하나님의 계획은 아닐까 생각해 보라. 나는 당신이 이 비밀을

깨닫기를 소원한다. 폭풍이 오거든 은밀한 것으로 달려가라. 그리고는 영혼을 굳건히 하고 결연하게 하나님께 고백하라.

오직 주님만이 나의 소망이십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을 두지 않는 자들에게 그분의 강한 능력을 나타내길 기뻐하신다.

 

10. 타오름의 비밀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느니라"(1:7)

 

여기서 타오름은 예수님의 얼굴과 그의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불타는 열망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불을 던지러

왔다고 말씀하셨다(12:49). 예수님은 그분의 열정과 소망으로 우리를 타오르게 하려고 오셨다는 뜻이다.

당신의 가슴에도 살아있는 불꽃이 되어 주님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전 존제로 그분을 경배하며 죽음에 이르도록 자기

생명을 사랑하지 않는 열정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 보냄받는 기쁨으로 타오르고 싶은 열정이 있다.

당신은 거룩함에 대한 갈망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이다(23:29). 하나님의 임재는 그 불에 완전히 휩싸여 있다(1:4, 7:9).

하나님께 다가간다는 것은 활활타고 있는 불에 다가가는 것이다. 불붙으려면 하나님과 가까워야 한다. 영적으로 춥고

거리감이 느껴질 때 웬지 하나님과 동떨어진 것 같다면 그때가 바로 기도할 때다.

하나님의 말씀의 화로 앞에 앉아 식어가는 열정을 다시 회복할 때다. 회개하고 결단하고 화답하는 것이 좋다,

 

주님을 위해 계속 불타오르려면 기도의 골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성령의 불을 사모하라.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에 다가서면 말씀의 불이 붙는다. 하나님의 불을 끌어안으면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을 위해 타올랐던 사람이다. 그 안에 하늘의 불이 있었다. 마침내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 그는 살아있는 불꽃 자체가 되었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을 켜서 비추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셨다(5:55).

그 불을 보려고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위험한 일을 하라. 하나님과 단 둘이 있으라. 오직 사랑만 남을 때까지 하나님의 소멸하는 불이 당신의 삶 전체를

태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역자를 불꽃으로 삼으시는 분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동의하기만 한다면 당신도 불꽃이 될 수 있다.

 

 

11. 침노의 비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11:12)

 

지금은 영적인 침노의 열정으로 하나님을 구할 때다. 말세에는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구하고, 자신을 부인할 때다.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거 열정과 순결, 인내의 경주를 위하여 달려갈 때다.

말세의 표징이 매우 분명하다. 그리스도의 재림이 임박했다. 성령 안에서 긴박함이 느껴진다. 바로 지금이 잠에서 깨어나서 그 어느 때보다 강한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좇아 달려갈 때다.

 

히브리서 116절을 읽어 보라.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분을 좇는 자에게 상 주실 것을 굳게 믿기에 목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지 않는다.

영적인 침노는 기도하고 경배하고, 바라보고, 금식하며, 말씀을 읽고 연구하며 묵상하여 듣고 진리를 흡수하는 훈련에

헌신하는데서 침노가 시작된다. 나는 암송이라는 말 대신 진리를 흡수한다고 표현했다. 성경 구절을 외워도 말씀이 심령을 뀌뚫고 들어와 삶의 방식을 바꾸지 못할 수 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소통에 파고 들지 못할 수도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침노는 당신의 시간을 빼앗는 모든 일과 싸우고, 은밀한 장소에 들어가려고 끊입없이

노력하는 것이다.

한참 바쁠 때는 여러 군데에서 목소리가 신경을 써달라며 고함을 질러댄다. 과연 어떤 목소리가 이길까요?

하나님과의 은밀한 삶을 가로막는 마수에게 검을 휘두르라.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시간을 확보하라.

충분히 휴식을 취하는 일도 중요하다. 지헤로운 사람은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을 하나님과 보내려 할 것이다.

우리는 육신적인 열심을 참된 영적 열심으로 바꿔야 한다.

아무도 계속 보지 않을 때도 계속 타오르도록 거룩한 불을 열정의 원천으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하늘을 침노하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를 주셨다. 그것이 바로 금식이다. 금식은 기도와

병행하면 효과적이다. 특히 영적으로 태만하다고 느낄 때 경주에서 속도를 내게 해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금식은 영혼을 부드럽게 하신다. 하나님의 음성을 더 민감하게 듣게 하시며 그분의 은혜가 더욱 신속하게 들어오고 흘러가게

해준다.

 

지헤로운 자는 지혜의 근본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더욱 그분을 구한다(2:4-7). 예수님은 모든 믿는 사람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으신다. 더 열심히 구하는 자에게 더 후히 주신다. 열 두 제자 가운데,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가장 친밀하고 놀라운 순간을 경험했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예수님을 매우 열심히 좇았다.

당신은 주님께 더욱 나아가라. 주님을 진심으로 좇아가라. 그럴 때 주님은 상상할 수 없을만큼 가까이에 당신을

부르실 것이다.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더 사랑하신 이유는 그들의 인간성이 좋거나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누구보다 더

주님을 더욱 사랑했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을 진심으로 구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신다.

신앙생활은 치열한 경쟁을 하는 경주를 하는 것과 같다(고전 9:24). 하나님은 우리의 경주를 지켜 보신다.

성 프란시스는 20대 초반이었을 때 하나님을 정말 열정적으로 구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나의 하나님 나의 전부이시여라는 기도만 반복했다고 한다. 하나님을 향한 이 열정적임 마음이 놀랍지 않은가?

하나님을 좇아가라. 누구도 당신의 경주를 막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사역을 알아주든 상관하지 말고 하나님을

좇으라. 성도의 무리가 하늘 가장 자리에서 당신을 응원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경주를 마쳤다.

러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외친다(12:1).

 

12. 겸손의 비밀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삼하 6:22)

 

우리는 침노의 열정으로 하나님을 좇아야 한다. 그런데 이 때 반드시 온유와 겸손의 영으로 좇아야 한다.

겸손은 모든 기도의 기초다.

주님, 주님의 충만함이 없다면 저는 텅빈 존재입니다. 주님의 온전함이 없다면 저는 깨진 존재입니다. 주님의 힘이 없다면 저는 무력한 존재입니다. 주님의 지혜가 없다면 저는 바보일 뿐입니다. 저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저는 주님이 필요합니다. 겸손은 바로 이런 고백이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교만의 첫 번째 징후다. 스스로 대단하다고 느낄 때, 미래가 아주 밝다가 느낄 때 지금 나아가는 길이 맞다고 확신할 때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시간을 슬그머니 줄인다.

아굴은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30:2-3)라고 고백했다. 아굴이 지혜로운 이유는 그가 자신의 어리석음을 정확하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깨달음이 있기를 기도해야 한다. 다시 무릎을 꿇어 모든 지혜의 근원인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심과 우리 자신의 초라함을 깨달으면, 주님 앞에 자신을 낮추는데서 오는 기쁨을 누리게 된다. 장로들이 어린양의 보좌 앞에 면류관을 던지며 느낀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요? 이들은 자신의 모든 성취한 것들을 주님의 발 앞에 내려놓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시는 이유는, 그것을 다시 돌려받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시작되어 그분에게서 끝난다. 하나님은 전부이시다. 오직 하나님과 연합할 때,

사람의 연약함은 하나님의 영원한 충만함과 위대함 속에서 종적을 감춘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108:1). 하나님과 단 둘이 있겠다고 결단할 때 다윗은 항상 자신의 마음을 정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던졌기에 " 나의 마음을 다하여"(영어성경은 나의 영광을 위하여, with my glory)라고 이야기 한다.

다윗은 왕으로서 모든 영광을 누렸다. 부와 명예, 지위, 존귀, 영예, 권력 등을 가졌다. 또 시편 기자와 선지자로서의 영광도 누렸다. 다윗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것과 자신을 통해 이루신 모든 것을, 찬양과 노래로 그분께 다시 드렸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광대하신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도 커진다. 삶에서 이룬 모든 것을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으며 주님의

위대하심을 온 마음으로 느끼다니 얼마나 큰 특권인가? 큰 존재가 될수록 주님 앞에 내려놓는 기쁨도 커진다.

 

하나님은 우리가 겸손과 헌신으로 주님 앞에 내려놓기를 바라신다. 우리를 자녀 삼으시고, 영광과 용납과 왕 됨과 목적과 의미와 부와 명예와 구원과 지혜와 계시와 명철과 지위와 성품과 거룩함과 승리로 영화롭게 하신다. 우리가 가진 전부를

그분의 발 앞에 내려놓는 가장 큰 특권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다 하나님 임재의 보좌 앞에 엎드려 온 힘을 다해 찬양하며

내 자신을 온전히 비울 수 있다. 얼마나 거룩한 특권인가?

그 무엇에서도 소유를 주장하지 않는 종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인재 안에서 자신을 낮추는 길을 찾는다.

"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삼하 6:22). 오늘 그분의 발 앞으로 나아가라.

그분의 가장 높은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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