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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요셉의 진정한 용서(창 50:1-2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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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형제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까요? 아무래도 모임의 기회가 적어지고 평소에 좋지 않은 관계가 있는 경우 이전보다 더 나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형제들의 관계가 좋아지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신 이후에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혹시 자기들을 미워하여 앙갚음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게 됩니다.

 

아버지가 계시는 동안에는 요셉의 형들은 안전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이제 안계셔서 무슨 일이 일어나지 그들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죄책감이 그들을 짓누르기 시작했습니다. 루터(Luther)는 말하기를, "죄는 범하기 쉬우나 범한 뒤에는 그것이 늘 양심을 찌른다"라고 하였습니다.

 

죄의 기억은 이렇게 사람의 머리를 떠나지 않고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들은 이미 용서를 받았지만, 정작 과거의 죄가 자꾸 떠올라 불안해 지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미 회개하고 용서받은 죄가 기억나는 경우에는 그 죄를 이미 회개하고 용서받았음을 자신에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카드 결재하는 경우 영수증을 잘 보관해 두어야 합니다. 보이스 피싱 전화가 걸려오는 것처럼 사탄이 이미 회개하고 용서받은 죄를 다시 기억나게 할 때, 이미 지불한 카드 영수증을 제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회개한 죄를 다시 기억도 아니하십니다(8:12).

 

사탄은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과거 자신이 지었던 죄를 다시 기억나게 해서 괴롭힙니다. 죄책감에 시달리게 합니다. 죄의식에 사로 잡히게 합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인데 마치 자신이 지금 그 죄를 짓고 있는 것처럼 정죄합니다. 그러면 목회자가 싫어지고, 설교가 싫어지고, 교회 가기가 싫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카드 영수증을 제시하면서 과거에 내가 그런 죄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그 죄를 하나님께 회개했다. 하나님이 그 죄를 용서해 주셨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사탄아 더 이상 나를 괴롭게 하지 말고 떠나가라.“ 이제 더 이상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지 말고, 속죄받은 자로 밝게 살아가야 합니다(8:33-34).

 

회개와 용서는 죄를 없앨 수 있는 놀라운 은혜이고 능력입니다. 자신이 지은 죄를 없애는 카드는 회개이고(요일 1:9), 다른 사람의 죄를 없애는 카드는 용서입니다(20:23). 사람이 죄를 지고 회개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그는 죄책감과 죄의식에 사로잡혀 고통스런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이 심해지면 정신적인 질환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도 나와 상관이 없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카드로 없애지 않으면 그 사람의 죄가 내 안에 머물게 되고, 그 사람의 안 좋은 것을 본받게 됩니다. 그 죄가 내 안에서 분노하게 하고, 나를 우울하게 히고, 나를 힘들게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결국 그들은 요셉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래서 사람을 보내어 자신의 죄를 용서해 주라는 부친의 말을 전하게 됩니다. 요셉은 형들이 이미 용서받은 죄들에 대해 다시 갈등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동해 눈물을 흘립니다. 왜 요셉이 눈물을 흘렸을까요? 그들이 요셉이 전에 한 용서를 온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형들이 자신이 한 말을 실제로 믿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용서의 근거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치 어떤 장면을 쵤영한 필림에 빛이 들어가는 순간 그 필름 속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습니다. 이것이 죄사함의 은혜입니다. 자신과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대개 다른 사람과도 관계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된 이유는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 때문입니다.

 

요셉은 다시 한 번 형들에게 용서에 대한 안도감을 주게 됩니다. 본문 19절입니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17년 전에 창세기 45장에서 이미 용서를 했는데 그들은 죄책감과 보복에 시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악한 일에 대한 처벌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요셉은 자기를 낮추면서, 형들의 잘못을 책망할 위치에 있지 않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형을 용서하는 여부가 자기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미 용서했던 사람의 잘못을 또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사탄에게 당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주기적으로 사탄은 내가 이미 용서했던 그 사람의 잘못을 기억나게 합니다. 이미 용서한 것을 다시 기억나게 해서 우리로 분노하게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고 그것을 계속 내 안에 품고 있으면 그것이 분노가 되고, 불면이 되고 괴로움이 됩니다.

 

용서는 마음에서 바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의 적용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조절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압살롬과 같이 오히려 화를 부를 수가 있습니다. 용서와 용서의 적용 사이에는 요셉이 형들이 잘못을 용서하는 과정과 같이 회개의 진정성을 보이는 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천년 전에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믿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시점은 우리가 지은 죄를 깨닫고 슬퍼하며 진정으로 회개할 때입니다. 미리 용서해 놓으시고 우리가 회개할 때 그것을 그대로 적용해 주십니다.

 

요셉은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고 악한 일을 행하였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20절에 보면 하나님은 다른 계획을 가지고 형들의 악한 의도를 결과적으로는 선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으니.“ 요셉은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과 은총을 입었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28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다시 부드러운 말로 형들을 위로합니다. 본문 21절입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오히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과 당신의 자녀들을 내가 보살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들에게 위로 하고 따뜻하게 말해줍니다. 용서는 무한 리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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