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요일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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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초보 강도가 어떤 집에 들어가서 누워 있는 집 주인에게 “꼼짝마. 손들어”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손을 들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강도가 “왜 손을 안 들어. 죽고 싶어?”라고 협박했더니 그 사람은 “제가 오십견이어서 손을 들 수가 없네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집 주인의 말을 들은 강도는 “오십견이세요? 저도 오십견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았습니다”라고 말하며 칼을 놓더니 집 주인과 오십견에 대해 치료 정보를 나누고 그냥 가버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방황하고 나그네 되고 노예 되었을 때 용서받고 구원을 받았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2024 예람교회 복음축제에 오신 한 분 한 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꼭 초대하고 싶은 분들을 위하여 가슴 졸이며 준비해 오신 모든 분들께 특별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보다 오랫동안 여러분을 기다려왔던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저는 복음축제에 오신 여러분들을 위하여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라는 제목의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 어디에서도 답을 주지 않는 인생의 세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지 모르겠네요”라는 질문입니다. 돈을 가져도 명예를 가졌고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만족하지 못합니다. 인생은 여전이 공허하고 불안합니다.
또 다른 고민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닌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세상에 사는데 집착하고 모든 것이 걸려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약에 인간이 죽어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다른 세계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마지막 고민은 인간은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할까요? 무엇이 꼬여 있어서 그런가요? 성경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명확하게 진단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 모두가 인생의 세 가지 고민에 대한 해답을 찾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1.인간의 고통과 불행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생각지 않은 고통과 불행이 찾아오곤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상하고 많이 힘들어합니다. 인간의 이러한 고통과 불행을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까요? 이사야 53장 6절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습니다. 성경은 잘못된 방향을 가고 있는 인생들을 양들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양들은 순할 까요, 고집스러울까요? 양들은 말을 잘 들을까요, 말을 잘 듣지 않을까요?
양들의 10가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양은 눈이 나쁘다고 합니다. 잘 속습니다. 잘 넘어집니다. 넘어지면 일어나지 못합니다. 중심을 금방 못잡습니다. 이기적이고 제멋대로 입니다. 방향 감각이 없습니다. 반드시 왔던 길로 다시 돌아옵니다. 방어력이 제로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온순해집니다. 양들은 착해 보이고 순하게 보이지만 고집이 세다고 합니다.
간혹 그 사람은 교회는 안 다니지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착하게 살고 정말 괜찮은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순히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가, 연결되어 있는가로 진단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과녁에서 벗어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제시해준 과녁을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빛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등지고 그늘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 없이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죄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하고, 다른 하나는 죄가 없어야 합니다. 과연 이 세상에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이 있을까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중에 이런 것이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두 여인이 찾아왔습니다. 한 여인은 자기는 큰 죄를 지은 죄인이라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고, 또 한 여인은 자기는 일생 이렇다 할 큰 죄는 짓지 않았지만 자질구레한 잘못은 많다고 했습니다. 목사는 두 여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들 수 있는 가장 큰 돌덩이를 가져 오시오. 그리고 당신은..." 목사는 이번에는 일생동안 이렇다 할 큰 죄를 지은 기억이없다는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 자디찬 돌멩이를 치마폭에 가득 주워 오시오." 한참 후에 두 여인은 목사가 시키는 대로 하여, 한 여인은 커다란 바윗돌을 낑낑거리며 옮겨 왔고, 다른 여인은 새알만한 잔 돌을 치마폭 가득 주워 왔습니다. 그러나 목사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그 돌멩이들을 제 자리에 갖다 놓고 오시오." 큰 바윗돌을 가져온 여자는 다시 낑낑거리며 바윗돌을 제 자리에 갖다 놓았습니다. 어디서 가져온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새알만한 잔돌을 치마폭에 가득히 주워온 여인은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매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거요!"목사가 소리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은 죄도 바로 이런 것이요, 당신은..." 목사는 일생 동안 별로 큰 죄를 짓지 않고 자질구레한 잘못만 저질렀다는 여자에게 말했습니다. "하루하루 이러저러한 죄를 지으면서도 하나님께 죄책감 없이 일생을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죄를 짓고도 회개 한번 하지 않았소, 그러나 이 여인은 큰 죄를 짓고 이렇게 통회하고 자목하고 있으니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이 함께 하실 것이요."
성경은 우리가 예수 믿기 이전에 상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단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 보면 우리가 예수믿기 이전의 상태는 허물과 죄로 죽었다고 했습니다. 3절에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좌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장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 하나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나타날 수 없는 사랑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랑은 감추어진 사랑이 아니라 나타날 만큼 분명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그동안도 당신을 사랑해 오셨고 지금도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창조를 통해 나타내셨습니다. 마태복음 5정 45절입니다.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주심이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일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을 통해 살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의 죄를 그분이 담당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이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를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두 가지 길이 있습니다. 그대로 두면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지만 영생의 길로 가는 길이 있습니다. 영생이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사람이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멸망의 길에서 영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요? 인간은 죄로 인해 불행과 고통과 죽음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장 10절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줄 아시고 이렇게 준비하셨습니다.
로마서 5장 6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별 볼 일 없는 상태에 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나 가족을 위하여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직장을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와 같은 죄인들을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확증하고 싶어하셨습니다. 그 시점이 언제일까요?
모든 게 잘 풀리고 잘 나가고 있을 때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꼬이고 잘 안풀리고 포기하고 싶을 때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왜 나를 이렇게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전혀 없는데 왜 날 사랑하십니까? “예수님 날 위해 죽으셨네 왜 날 사랑하나 왜 날 사랑하나 ?
본문 10절입니다. “곧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회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 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다만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사랑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내 죄가 용서함 받았습니다. 예수님 나의 인생에 구주가 되시고 주인이 되어 주십시오. 이렇게 고백할 때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은 단 한 가지면 충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나도 받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제겐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를 사랑해주세요.
사업에 실패한 사람이 투신자살을 하려고 고층빌딩의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함께 탄 목사님이 대뜸 “형제님은 구원을 받았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엘리베이터 안에는 단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 그 사람은 “목사님, 저는 지금 천국에서 너무나 먼 거리에 서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은 “구원과 천국은 형제님을 위해 언제나 예비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했고 남자는“그렇다면 그 거리가 얼마나 됩니까? 무슨 노력을 해야 합니까?”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목사님은 품 안에서 성경을 꺼내며 “단지 한 걸음만 다가오시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마음속에 영접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천국이 임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형제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살을 하러 가려던 자신의 처지를 목사님에게 설명을 했고, 목사님이 청년을 위해 기도한 뒤에 자기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했음을 시인했습니다. 삶의 기로에 서서 결정이 너무나 힘들 땐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향해 내미는 주님의 손을 꼭 잡으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시는 것을 통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을 통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통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통해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향한 구원의 계획을 다 이루셨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생각할 때 아직도 멀은 것 같지만 나를 향한 주님의 구원은 다 이루셨습니다. 그 사실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시면 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당신 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더 이상 미루지 마시고 지금 그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영접하시면 됩니다. 다같이 영접기도문을 함께 읽겠습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 아버지, 저는 죄인입니다.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죄를 씻어주시옵소서. 저를 위하여 죽으시고 저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구주로 모셔드립니다. 지금부터 영원토록 주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하나님은 내 아버지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저를 구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