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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본받고 싶은 참된 스승(요 13:12-20),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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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예수님은 이러한 행동은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분명한 교훈을 심어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스승을 잘 모셔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셨습니다.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하나니”.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완전히 격이 다르다는 것을 예수님은 확실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예수님은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성품의 차원이 아니라 섬김의 교훈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자신이 섬김을 받을 줄 몰라고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다 알면서도 섬기는 것이 복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누리면서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 때문에 섬기며 살아가는 것이 큰 복입니다. 섬긴다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운 일입니다. 나만 손해 본다는 생각이 때로는 듭니다. 그때마다 주님의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 14-15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함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단순한 프로그램이나 행사용으로 하신 것이 아닙니다. 스승의 참된 역할이 제자들을 섬기는데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37-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시장에서 문안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대접받는 것을 좋아하지 말라고 말슴하셨습니다. 오히려 11-12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언제나 우리는 큰 자가 된 것은 섬기라고 주신 기회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절박한 부탁을 받았을 때 처음에는 자신의 신변의 안정을 위하여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매우 강력한 어조로 이렇게 말합니디. 에스더 414절 말씀입니다.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의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라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기회를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게 생활하는 동안에 제자들은 스승을 특별히 잘 섬겼던 사례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아직도 자신이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제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만 베드로가 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만류하긴 했지만 자신이 직접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마 섬기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혹시 무시당하는데 싫어서 그랬는지도 모릅니다. 적어도 주님만큼은 섬기고 싶었는데 너무 튀는게 아닌가 망설여졌는지 모릅니다.

 

마가복음 104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어떠한 경우에도 우리는 섬김을 받는 것을 매우 불편해 해야 합니다. 섬기는 그 자체로 즐거워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인간의 참된 행복은 성공 그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성공을 통해서 누리는 것만이 진정한 행복이 아닙니다. 성공을 통해서 섬기는 기회로 삼을 때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는데 있습니다. 스승의 역할 역시 섬기는데 있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예수님의 교육 방법은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행동으로 보여 주신 것뿐 아니라 그렇게 행하도록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교육은 진정한 삶의 변화를 위한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은 지식의 주입을 통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데 만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교육은 먼저 예수님처럼 행동으로 보여 주고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의 부모나 학교의 교사나 , 사회의 지도자나, 교회의 교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먼저 내 자신이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기도의 본을 보이고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말씀을 읽고 그들로 하여금 말씀을 읽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그들로 하여금 섬기게 해야 합니다.오늘날 우리 사회의 가장 안타까운 모습은 바로 가르치는 사람은 많은데 본받아야 할 사람이 별로 없다는데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교육의 장소는 바로 가정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의 행동을 보면서 그대로 닮아가게 됩니다. 만약 자녀들 앞에서 좋지 못한 습관을 보여 준다면 자녀들은 그대로 본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높습니다.열왕기상 1525-2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유다의 아사왕 둘째 해에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이 이스라엘 왕이 되어 이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니라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길로 행하며 그가 이스라엘로 범하게 한 그 죄중에 행한지라“. 구약의 왕들 가운데 악명 높은 이름이 등장하는데 바로 여로보암의 길로 행했다는 표현입니다. 반면에 본받아야 할 왕들 가운데는 다윗의 길이란 표현으로 등장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31절 말씀에서 참된 스승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참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바로 사랑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이제 세상을 떠나야 할 때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인 가롯 유다가 자기를 팔 것도 알고 계셨습니다. 심지어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게 될 것조차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진정한 교육은 끝까지 사랑해주는 그 길이에 달려있습니다. 자기 목숨까지 내어 주시는 사랑의 분량에 달려있습니다. “자기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 비록 순간적인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용서하고 다시 회복시켜 주는 사랑의 차원에 달려 있습니다.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거기에는 반드시 가롯유다와 같은 학생이 있게 마련입니다. 무척 힘들게 만들고 마음을 상하게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사랑하는 것만큼은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돈을 받고 자신을 팔아 넘길 가롯 유다까지도 식사 자리에 초대하셨습니다. 자신을 팔아 넘기는 사건 가지도 주님은 감정적으로 처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때로는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마음을 상하게 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학생을 특별히 나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이유를 생각하면서 끝까지 사랑하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너무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을 때 가롯유다에 대한 주님의 심정을 생각하면서 용기를 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의 양을 부탁하시면서 세 번씩이나 확인하셨던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요한복음 2115, 16, 17절에 보면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영향을 끼치는 교사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교사를 임명할 때에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영혼을 진정으로 사랑하는가?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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