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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직설, 박영선 + 김관성

by liefd 2024. 6.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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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았을 때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믿었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1부 삶을 묻다

 

1.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물으십시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막연한 게 아니라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삶의 대원칙은 생명에 대한 본능입니다. 삶의 대원칙은 본능에 충실하자는 것입니다. 살려고 힘을 쓰는 것이 생명의 원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본능과 현실의 저항이 벌이는 대립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굳건히 간직해야 할 내용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성실하심입니다(34:6).

일을 하면서 일을 함께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예수 믿는 사람의 바름, 인격, 성격, 관용이 드러나야 합니다. 도덕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로서 성도가 가진 넉넉함을 나타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단지 버티고 견디는 삶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때가 찬다는 것은 각자 정해진 시점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 시대에 가장 필요한 일이 이 여백, 이 기다림이라고 생각합니다.

 

2. 진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순종하게 성실하게 사는 것이 큰 무기인 것처럼, 잘못하고 좌절한 일들도 굉장한 자산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담으시는 은혜를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진지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때에 맞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때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공적 예배에서 지나치게 회개가 많은 것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지난 한 주일 제대로 못 산 얘기는 그만 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후회가 되려면 더 잘 살기 위한 열심히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흙탕물에도 뒹굴 수 있도록 힘을 길러야 합니다. 등장하는 모든 사람이 팀입니다. 그러니 자구 비판만 하지 말고 상대와 서로 호흡을 맞춰야 합니다. 화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하나님이 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나이 든 사람은 주연 역할이 아니라 뒷 배경이 되어주면 됩니다.

나는 내 순서에 제대로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절대 막 살 수는 없습니다.

 

3. 죽음 이후가 아니라 하나님을 보십시오.

 

실제로 죽음으로부터 사람을 붙잡아 두는 마지막 보루가 관계, 혹은 책임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의 절망 자체가 승리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었습니다. 절망을 극복하고 이기는 차원이 아니라 절망 자체에 매몰됐을 때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정황을 바꿈으로써 기적이 있음을 보여줬다면 이제는 같은 정황의 사람들이 불평하고 비명을 지르는 현장에서 기쁨으로 이를 이겨내고 있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옛날에는 기도하면 다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 기도가 보이는 보상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어야 합니다. 자기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스티븐 잡스가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문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닌데도 점의 연결에 대한 얘기를 하더군요. “그땐 몰랐습니다. 되돌아보니 엮이더군요. 믿음을 갖고 사십시오. 자기 마음을 따르십시오.”

 

4. 성숙해 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죄의 모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고 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잘한 것으로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고 잘못한 것으로도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분명 잘한 것이 아닙니다. 잘못한 것임을 알아야 하고, 마음에 갖고 있어야 합니다.

 

5. 하나님이 일하심을 믿으십시오.

 

우리 기독교 신앙 이해에 있어서 우리보다 하나님이 먼저 일하시고, 매일 인생과 역사를 여시고 개입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이끌고 지키신다는 것이 먼저 강조되어야 합니다. 우리와 이해와 순종은 보상을 받는 조건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목적과 뜻에 맞는 존재와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요. 그런 증거가 되는 것이요, 그런 완성체가 되는 것이다.

 

2부 신앙을 말하다.

 

1. 무엇보다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내가 어떻게 전체에 영향력이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없으면 내가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인과법칙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목사님들 중에 행복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인간의 최고의 가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보상을 못받아도 좋다는 것입니다. 신앙관계를 이해관계로 전환해서 그에 대한 보상을 보이는 것과 작은 것으로 삼게 되어 교회의 가치, 신앙의 가치가 무너진 것입니다.

 

2. 하나님을 향한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믿음이라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말고도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자신이 아는 방법과 기대와 능력보다 더 큰 분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무엇인지, 예수 믿는 게 무엇인지 잘 생각하며 살라.

믿음은 인간이 자신의 능력보다 큰 대상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3. 하나님 없는 것이 죄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단 하나입니다. 하나님 없음, 하나님 거부, 하나님 부정 그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없다는 것은 생명의 근원에서 분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에서는 죄를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부족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는 것이 죄입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분노밖에 할 수 없습니다.

 

전기가 끊어진 냉장고 속에 넣어둔 생선은 썩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것은 이렇게 썩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은 한 존재와 가치가 가지는 최고의 경지를 말합니다. 사랑이란 상대방이 불편하면 내가 불편한 것입니다.

모든 존재의 가치보다 관계가 더 가치가 크다고 말합니다.

 

의는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옳은 것을 도덕이라고 합니다. 더 나가면 윤리, 책임라고 하지요. 성경에서 의는 하나님과 관계의 정상화를 뜻합니다. 믿음은 옳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인 것이지요. 하박국 선지자가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했는데(2:4)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화되면 하나님의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의 통치은혜를 목적으로 살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용서는 잘잘못을 완결짓는 방법이 아닙니다. 죄를 계속 짓는 속에서 하나님도 계속 일하고 계신다고 말하는 것이 용서지요. 우리가 죄를 계속 지을 때 하나님도 일하고 계십니다. 반복적으로 실패해도 하나님은 계속 승리하고 계신다는 것이 용서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 적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라는 말씀은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탕자의 비유처럼 나간다고 하니까 내버려두시는 것이지요. 원래 나간다고 하면 혼줄을 내주어야 합니다. 아이도 망칠뿐 아니라 부모로서의 책임과 권위에 금이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보내십니다. 그것도 재산을 달라고 하는 자녀에게 재산까지 내주어서 보내십니다. 그것이 인생이고 역사입니다.

 

그리고 살아보고 나서 이야기 하자는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말과 믿음이라는 말은 하나님이 우리와 대등한 지위에서 관계를 가지시겠다는 것입니다.

실패했어도 하나님이 함게 하셨으면 그 잘못이 본인에게는 일생일대의 전기가 되고 교훈이 됩니다.

 

4. 교회는 생명을 맡은 곳입니다.

 

교회를 다니는 이유는 사실 조사할 필요가 없습니다. 모두 붙잡혀서 가는 거지요. 습관적으로 가는 것입니다. 안 가면 불편하고, 다녀오는 게 낫기 때문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교회가 이러저러했으면 좋겠다고 기대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고 보는 게 아니라 보고 압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 와서 졸든지, 열심을 안내든지, 진정성이 없든지 개의치 않습니다. 그렇게 말 배우듯이 천천히 배우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교회는 하나님이 부르신 백성의 영혼을 채워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조직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일하심이 그분을 향한 생명들에게 쏟아져, 그들의 목마름을 풍성하게 해결해주는 곳입니다.

 

교회란 가정입니다. 보편적이지 않고 각각 특수하고 유일한 존재들이, 특유의 존재로서 화음을 내고 밀고 당기고 합의하고 복종하고 대립함으로써 만들어 내는 것이 가정입니다.

 

공부, 신앙, 신학이라는 추상명사와 명분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을 하는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복합적으로, 그리고 삶을 닮아내는 것으로 구체화한 예술성이 없습니다.

자신은 자신이 한 일을 말하고 책임지면 됩니다. 자꾸 남의 일을 끌어다 자기의 정체성과 가치를 인정받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교회가 힐 일은 하나님이 세우신 곳에서 하나님의 생수를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이 본질을 놓치면 안됩니다.

교회는 해당 시대에 가장 평범한 문화, 경제, 정치, 사회 수준을 성실히 반영하는 동시에 구별될 만큼의 차이를 가지면 됩니다.

우린 자기 교회의 소중함과 독특함과 가치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5. 결국 하나님이 답이십니다.

 

우리 인생은 수동적으로 결정되어 있습니다. 결혼을 하려면 목숨을 걸만큼 무언가 씌어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를 보면 이 모든 일의 주체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요셉은 수동태로 묘사됩니다(105:16-20).

 

운동선수 감독이나 예술분야 감독들은 제자들에게 한 번도 칭찬을 안한다고 합니다. 자꾸만 한계를 깨야 하기 때문입니다. 후회하고 회개하면 책임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 다시 해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담배 끊는 것이 제일 쉽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에 20번 담배를 끊는다고 하던군요.

 

해리 포터 시리즈의 저자 조앤 롤링은 하버드 대학 졸업식사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내가 아닌 것을 하려고 하지 말자. 유명해지고 멋있어지는 것 다 집어 치우고 지금 내가 붙잡힌 것에 올인하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 그리고 한 걸은 더 나아가서 내 이웃에게 고마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은 계몽주의입니다. 계몽주의를 앞세운 서구의 역사적 공헌은 바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시민사회란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납득시킨 결과입니다. 기독교는 정치, 경제, 사회, 국방 교육, 모든 것의 근거가 됩니다. 바로 생명입니다.

 

우리가 겪는 불만은 조직, 규칙, 명분, 지성, 양심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들어오셔야 해결이 됩니다.

인간의 본질적인 내용이라면 인간성을 키우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명분에는 도덕, 윤리, 덕목, 능력 등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에서는 이런 것들을 지키면 우월감으로 바뀌게 됩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감사사 되어야 합니다.

 

이 시대에 성도가 세상에 보여줄 가장 중요한 신앙적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지요?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해 주는 것, 인간의 운명에 대해 낙관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들이 하나님의 손아귀에 있고,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일하신다는 낙관과 가치를 살려주는 것이 가장 필요한 시점입니다.

세상은 법칙 속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인격 안에 있습니다.

 

3부 교회를 희망하다

 

1. 가르치고 배우되 그 내용을 넘어서십시오

 

단순 교육자는 정보와 명분을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한편 스승은 본질이 달라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다음 세대에 반드시 전달해야 할 신앙적 가치와 내용은 무엇일까요? 명분이나 자랑이 아니라 실체를 구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말이 안되는 자라도 그의 존재를 인정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강요되는 순간 복음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온유한 심령으로 그들을 바로잡으라는 것은 교정하라는 뜻이 아니라 회복시키라는 것입니다(6:1).

 

2. 설교는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설교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하는 설교의 무게만큼, 자신이 설교하는 자의 실력만큼 하면 되는 것입니다. 짧은 설교란 내용이 간단한 것이 아니라 짙게 만드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사 100년이 가지는 성경 분문에 대한 이해 부족을 한 번 더 깊게 설명하거나 또한 최소한 풀이를 해보고 싶습니다.

 

설교할 때마다 그 자리 그 청중, 각각의 다른 정항 속에서 온 사람들 앞에 대고 같은 소리를 반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설교자는 우선 말을 배워야 합니다. 말을 외우고 흉내 내야 합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증언하고, 거기에 자기의 인생을 걸고, 자기의 명예로 알고, 거기에 존재의 가치를 두는 것입니다.

 

3. 목회는 필요한 내용을 나눠주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신앙생활하는 것은 정신세게와 구체적인 현실을 가져야 합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고유한 성품은 관용과 분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인간의 가치는 유용성이나 도덕성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리더의 가장 큰 덕목은 책임입니다. 책임을 지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 거기에서, 어떤 결정을, 내가 해야 하는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라는 것은 잘못한 것을 보상하라는 것이 아니고 욕을 먹으라는 것입니다.

방향은 길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리더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먹목, 자질이 방향과 때입니다. 때는 무엇입니까? 타이밍입니다.

한 사회에서 각각의 역할들은 분별과 유익을 기본 이해로 가져야 합니다. 분별이란 큰 주제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융통성과 구체성이 생깁니다.

 

우리가 책임을 지고 경험해야 하는 것들이 수없이 많지만, 그것이 하나님이 배울 기회로 끊임없이 도전하시는 은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하면 상대가 자신의 짐을 덜어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적으로, 정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어히려 족쇄 같이 느껴지지요. 그것이 결국 우리를 책임있게 만듭니다. 그래서 가정을 가지지 않으면 책임과 인내를 가지지 못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참는 가장 큰 이유는 가족 때문입니다.

 

혈육이라는 관계는 모든 명분과 이해와 설명과 납득을 초월합니다. 그것을 심어 주십시오. 그러니까 꾸짖고 타일러도 그보다 관계가 우선하다는 것을 늘 확보하십시오. 기독교 신앙은 관계가 우선입니다.

 

부모라면 자녀에게 해서는 안되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야단을 쳐도 관계를 의심케 하거나 공포가 들어오게 해서는 안됩니다.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이러면 안해요 하는 말을 해서는 안됩니다. 반대나 주장도 공포가 되고 포기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어야 할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집에 오면 모든 걱정이 끝난다는 휴식처입니다.

자녀를 꾸짖을 경우 부모의 자존심을 지키려 말고 자녀의 자존심을 격려하고 분발시켜야 합니다. 부부 싸움도 예의와 공감을 근거로 가져야 유익과 진전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대상, 이것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죄악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혼자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부요하심을 나눠서 합창으로 하라고 하십니다. 만나서 반가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역사 속에서 감당할 몫이 있습니다.

 

우리 현실이라는 자막에 성경을 자막으로 삼아야 합니다. 현실에 성경 자막을 입히는 방식은 설교입니다. 구약이 원래 화면입니다. 그리고 신약이 자막이지요. 구약은 모든 인생의 경우를 다룹니다. 그런데 신약의 자막을 보면 이 모든 실패와 절망의 화면에 은혜, 구원, 회복, 승리, 영광을 다루고 있습니다. 구약의 실패를 신약이 어떻게 바꾸어가는 지를 내 인생으로 자막화하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대꾸 없이 순하게 욕을 먹는 것이야말로 신앙의 고수만이 할 수 있는 경지입니다. 한국 사회는 납득을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납득해야 하는 불편을 굉장히 싫어합니다.

 

지금 포기할 수는 없다는 갈증은 성화에 있어서 중요한 자각 증세입니다. 처음도 하나님이시고 심판자도 하나님이시면서 과정도 하나님이십니다. 모순과 혼돈 속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결국 하나님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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