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더 많은 정보에 노출된 채 선택의 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또 다시 우리는 심각한 가치관의 갈등을 빚게 된 것입니다.
1. 상징적인 그리스도인(막 1:1-7)
어느 외국인 선교사님의 설교 가운데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없어야 했던 사람, 둘째는 있으나 마나 했던 사람, 셋째는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없어야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강도입니다. 두 번째로 있으나 마나 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레위인과 제사장입니다. 높은 사회적 신분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하나님 보시기엔 있으나 마나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강도 만난 사람을 들쳐 업고 주막으로 가서 실제적인 도움을 주었던 선한 사마리아인입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증거했던 최초의 전도자요, 최초의 증인입니다. 또한 모든 시대를 초월한 상징적인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참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모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의 소명을 분명히 알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의 소명은 바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1세기에 핍박 가운데 고백된 복음입니다. 복음의 초점은 예수입니다. 예수가 구원이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마가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마가는 선교사역에서 잘못해서 바울에게 버림받았습니다. 나중에 변화됩니다. 바울이 이제는 저가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마가가 변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러하니라(벧전 5:13). 바벨론 교회는 로마교회를 바벨론 교회라고 부른 것입니다. 바울이 멀리한 마가를 베드로가 품고 양육해서 도 한 명의 위대한 제자로 만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만났을 때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물고기 표식을 사용했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하는 가장 중요한 준비가 있다면 그것은 죄로부터 돌이키는 회개입니다. 사람들이 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이유는 죄가 좋아서입니다. 죄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 고민하고, 죄에서 떠나길 원하는 사람, 그리고 죄로부터 정결해지기 원하는 사람에게 주님만이 용서해 주실 수 있습니다(히 9:22).
요한은 모든 시선을 그분에게만 돌렸습니다(막 1:7).
2. 예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막 1:14-20)
우리는 주님이 하신 사역의 정체성을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일이고, 둘째는 복음을 전하는 일꾼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전하기
당시 전 세계를 통치하고 있던 로마 황제 가이사, 즉 시저는 자기가 통치하고 있던 로마 황제 가이사, 즉 시저는 자기가 통치하는 속국에 전령을 보냈는데, 그 전령이 가져오는 메시지를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 내용은 대부분 식민지 사람들을 실망시키는 내용이었습니다. 세금이 올라가야한다든지 부역을 해야 한다는 소식이었기에 당시 사람들은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4절에 보면 차별을 두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으로 했던 것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이 복음입니다(15절). 하나님이 통치하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회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사람 만들기
예수님을 복음을 전하는데서 멈추지 않고 복음을 계속해서 전할 사람을 세우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야만 복음이 그들을 통해 계속 전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살펴보면 시몬과 베드로는 예수님을 벌써 만났습니다.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나서 너무 좋아서 자기 형제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 일년쯤 지났습니다. 이미 두 제자는 예수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에는 아직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야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그들을 만나 복음을 전해 주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일, 이 일을 위해서 나를 따라 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곧 그물을 버려두고 좇으니라(18절). 그들은 처음부터 계산할 줄 모르는 사람, 단순하나 열정적인 사람, 무언가 정말 보람있고 소중한 일을 위해 인생을 헌신하고 던지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3. 귀신이 무서워하는 것들(막 1:21-28)
첫째로 귀신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24절).
귀신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로 귀신이 무서워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어마어마한 힘과 권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요, 능력이요 힘입니다. 찬송을 부르면 귀신이 무서워합니다. 찬송에는 권능이 있습니다. 찬송가 가사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찬양을 부르기 시작하면 그 찬양은 영혼들을 해방시키고 구원할 것입니다.
세 번째로 귀신이 두려워하는 대상은 예수님 자신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두려워할 뿐 아니라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관계 맺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4. 예수께서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막 1:29-31)
첫째, 문제가 해결됩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31절).
셋째, 예수님이 우리 집에 들어오시면 우리는 섬기는 자가 될 것입니다(31절). 예수님게 수종들었습니다(마 8:15). 헬라어 원문에 보면 계속해서 수종들더라.
5. 예수님의 기도생활(막 1:35-39)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기를 쓰면서 일합니다.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도 좋지만 나와 함께 좀 있어 주지 않으래.
A.W, 토저,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 범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과오는 하나님의 일에 너무 바빠 하나님과의 교제를 게을리 하는 일입니다.” 토저 박사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등한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만간 하나님의 일에 대한 의욕조차 잃어버리고 시험에 들 가능성이 많다.
첫째, 예수님은 기도의 열망을 가졌습니다.
그처럼 바쁜 하루를 지낸 이튿날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님은 일어나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35절). 예수님에게 기도는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요 안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스트레스를 기도로 극복하셨습니다.
둘째, 교제의 열망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기도의 교제를 위해서 적합한 시간과 장소를 결정하셨습니다.
기도를 계획하십시오. 빌리 선데이는 야구 선수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가 교회에 나갔을 때 교회 지도자 한 사람이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자네 신앙생활에 성공하고 싶은가? 세 가지를 계획하게!. 첫째, 날마다 15분 기도하기, 둘째 날마다 15분 성경 읽기, 셋째, 날마다 15분 내가 만난 예수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
세 번째, 전도의 열망입니다.
병을 고치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전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다른 마을에 가서 전도하자.
NO라고 말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성숙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6. 한 생명을 위하여(막 2:1-12)
빚을 갚기 위하여
엘바트 슈바이처가 아프리카 남 바레네로 떠나기 직전, 한 기자가 질문했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결단력을 하셨습니까? 빚을 갚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제 인생이 온통 빚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철이 들어서야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나는 "빚진 자"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을 지배했던 삶의 동기는 빚을 갚기 위해 사는 것, 은혜에 부답하기 위해 사는 것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석양녘에 이르러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빚을 갚을 수 있을까요? 탈무드에 이런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빚진 자들이여, 빚진 자들이여, 힘을 합하십시오, 그리고 누군가 당신 곁에 있는 한 사람에게 축복의 등불이 되어 주십시오. 결국 이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난 축복의 근원이 되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의 출발은 믿음으로 데려가는 것이다(5절).
나는 도울 수 없어도 내가 도와주어야 할 그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 갈 수는 있습니다.
사랑의 완성은 행함으로 나타난다(2절).
영적인 도움을 베풀라(5절)
교회의 첫 번째 사명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필요도 채워 주어야 한다(11절).
주님은 중풍병자의 병을 치유하시기까지 도움을 베푸셨습니다.
장기기증캠페인(이 설교 후에 지구촌 교인 1350명이 장기기증에 헌신하였습니다.
7. 그가 죄인 위해 오셨다면(막 2:13-17)
교회, 병든 자들의 클리닉
가정생활이나 직장생활, 교회생활에서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갈등을 겪게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교회를 떠나거나 아예 예수를 안 믿겠다고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 가운데 가장 이상적이고 역동적인 교회 시대는 1세기 초대교회 때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바울이 3년 동안 목회했던 가장 영적이고 모범적인 교회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4장 25절 이하에 보면 교인들 가운데 거짓말쟁이가 있었고, 도둑질 하는 사람, 이상한 말로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났을 때 어떻게 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기 위하여 오셨다고 말씀합니다(17절). 소문난 병원에는 각종 병자들이 다 모입니다. 좋은 교회는 각종 죄인들과 병든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입니다. 병을 고침 받는 경우도 사람마다 다릅니다. 오래 결려서 낫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금방 고침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자기를 존중하고 친절하게 대해 줄 것을 기대합니다.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사람들을 보시는 방식대로 우리들도 사람들을 보려고 애써야 한다는 것입니다(14절).
에수님은 지나가시다가 일부로 세리를 보셨습니다. 유명한 성경학가 위리엄 바클레이는 “예수님은 레위라는 이름을 가진 이 세리를 보았을 때 위대한 전도자 마태를 보았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현재의 있는 모습 그대로만 보지 않으시고 미래의 가능성을 보십니다.
1500년대 초 이탈리아의 플로렌스에 도나텔러라는 유명한 조각가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생애 최고의 고작 작품을 한번 남겨 보려고 좋은 대리석이 나오는 유명한 카레나라 지방에서 비싼 값을 지불하고 많은 대리석을 사왔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서 그 대리석을 성전 뒤뜰에 그냥 버렸습니다. 그런데 무명의 젊은 조작가가 그 버려진 대리석을 보고 잘 만 쓰면 괜찮은데 하면서 몇 개를 가져다가 2년 동안 열정을 퍼부어 조각하기 시작했습니다.
1504년 1월 25일 플로렌스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가운데 이 조각상을 덮고 있던 베일이 걷혀졌을 때 수많은 시민들이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입니다. 그는 거친 대리석 속에서 위대한 조작품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내게 상처를 준 사람,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십니까?
두 번째로 예수님을 사람들을 본 후에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우리도 사람들을 만날 때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그들을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14절).
신앙생활이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 가장 먼저 할 일은 예수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그래야만 구원을 얻게 되고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쫓아가면 우리는 제자가 됩니다. 예수님을 쫓아가면 신이 나고 삶에 보람과 기쁨과 풍성함이 있게 됩니다. 이것이 영적 성숙입니다.
가나안의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때 가장 큰 방해 요인이 바로 제자들이었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을 만나려고 했을 때 제자들이 오히려 방해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데 방해가 되는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세 번째로 이웃을 정말로 주님께 인도하려면 예수님처럼 사람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넘어서야 합니다(15절).
왜 우리가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을까요? 복음이 이웃들에게 전파되지만 힘이 없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주님의 심장이 아닌 선입견과 편견을 가지고 대하기 때문입니다.
8. 생명을 구할 것인가, 죽일 것인가?(막 3:1-6)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해서 생명을 죽이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첫째는 마음의 완악함 때문입니다.
완악함이란 자기 외에는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사람, 철저함 이기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대학교 화장실에 이런 낙서가 쓰여 있더랍니다. “기억하라, 당신이 사색에 몰두해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들은 사색이 되어간다. ”
그들을 살인자로 내몰았던 또 하나의 원인인 독단적 신앙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신앙생활을 절대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빠진 두 가지 독단주의적 오류는 첫째 금식에 관한 생각인데, 문제는 금식에 대한 그들의 선호를 절대화시켜서 금식하지 않는 이웃들을 정죄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안식일에 대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유익을 위해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종교의식이나 전통을 절대화했습니다. 안식일을 안지킨다고 사람들을 정죄하고 다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첫째, 사람들을 정죄하는 말을 통해 무거운 짐을 지움으로써 죽이는 것입니다.
둘째 편파적 행동으로도 이웃을 죽일 수 있습니다. 선택적 교제가 그 한 예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어찌하여 죄인, 세리들과 함께 비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생명을 살리는 대표적인 분은 예수님입니다. 유대인의 고전에 따르면 손을 쓸 수 없는 그, 사람은 석수쟁이였다고 합니다. 돌을 깎아 일하는 사람의 손이 말랐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 도와줄까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의식구조를 갖지 못했습니다. “새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넣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율법적인 의식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복음이 되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중요시 여기고, 그들을 어떻게 도울 것인가 진지하게 모색하는 두 가지 삶의 태도가 그것입니다. 우리는 약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소중히 여기고 실제적인 도움을 베풀어야 합니다.
9.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막 3:13-19)
위대한 음악가가 위대한 음악을 만드는 것이지 위대한 악기가 반드시 위대한 음악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사람을 세우는 전략을 사용하셨습니다. 유대인에게 12라는 숫자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하늘과 땅을 대표하는 숫자를 곱하여 얻은 완전수입니다.
첫째, 주님은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사람들이 필요했기에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13절).
예수님이 선택하신 제자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12제자들을 세우신 두 번째 이유는 그들과 함께 하시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14절, 고전 1:9).
바로 이 목적을 위해서 주님은 열 두 제자들을 불러 세우셨습니다. 동일한 목적으로 주님은 저와 여러분을 불러 세우십니다. 이 부르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10. 주님의 영적가족(막 3:31-35)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다는 말씀 한 구절만 가지고 예수님의 효도관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고르반"이란 제도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만든 제도에 불과하다. 사람들이 만든 제도를 악용해서 부모를 버리다니 이것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위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머니 옆에 있던 사랑하는 제자 요한에게 나 대신 어머니를 모셔다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장 8절에서 누구든지 가지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한 성경 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본문을 주신 이유는 가족관의 지평을 넓히기 의해서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의 로얄 페밀리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가족이 되려면 첫 번째 영적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 체험은 거듭남의 체험입니다.
두 번째로는 영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거듭나는 순간 우리에게는 영적인 직관력이 생깁니다.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는 세 번째 방법은 영적 목표가 있어야 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한 입니다.
세상 살기가 힘들고 직장도 사업도 어렵지만, 그럴수록 주님의 높은 산에 오르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꿈을 꾸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와 함께 걷자, 복음을 전하자. 사람들을 사랑하자. 그리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자.
'책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신감, 전병욱 (1) | 2024.06.16 |
---|---|
인성 교육 노하우, 현용수 (1) | 2024.06.15 |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 (1) | 2024.06.13 |
사도행전,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2) | 2024.06.12 |
잠언 속에 나타난 3대 의무 (0) | 2024.06.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