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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브올 사건(민수기 25장)-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1.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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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기 22장부터 24장까지의 주인공은 단연코 발람입니다. 22장부터 24장까지 발람의 이름이 51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 25장에 가면 발람의 이름은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발람이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버렸을까요?

아닙니다. 발람은 24,000명이 죽는 비극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 민수기 25장의 배후에 숨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 14절을 보면그러나 네게 두어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민수기 25장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음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원인이 바로 발람의 계략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이를 숨기고 다른 사람들을 속일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처럼 다 드러나게 된다는 교훈을 말해줍니다.

 

1. 발람의 변화된 전략

민수기 24장까지는 발람이 꽤나 훌륭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발람은하나님께서 저주하지 않은 자를 내가 어찌

저주하랴?”고 말하면서 발락의 요구와는 반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도리어 세 번 축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민수기 24장까지는 발람의 정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발람의 마음속에는 이스라엘을 저주하여 모압왕 발락에게 재물과 명예를 얻고자하는 욕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주하는 일에 실패해서 약속된 사례를 받지 못하자 그 마음에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모압을 떠나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작전을 바꿔 직접 이스라엘을 저주하지 않고 발락에게 사악한 계교를 일러 줍니다.

 

그 계교는 바로 이스라엘을 죄에 빠뜨려서 스스로 저주받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었는데, 바로 행음과 우상숭배였습니다.

발람은 발락에게발락이여, 모압과 미디안의 아름다운 여인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하게 하십시오.

그래서 바알의 제사에 참여하게 하십시오라고 제안합니다. 이 모압 백성들의 음행은 단순한 음행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음행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종교행위였습니다.

 

땅에서 남자와 여자가 음행을 하면 하늘에서 남신인 바알과 여신인 아스다롯이 자극을 받아서 운우지정을 나누게 되고,

그러면 하늘에서 비가 내려서 땅이 비옥하게 되고 농사가 잘 된다는 종교의식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압 여인들과

미디안 여인들이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음행을 저지른 것은 단순히 음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상숭배의 죄까지 범하게 하는 행위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략을 통해 드디어 발람의 음모는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저는 민수기 25장을 보면서 다섯 가지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우 급속하게 죄에 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매우 짧은 기간에 죄가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것입니다.

짧은 기간에 24,000명이 염병으로 죽을 정도였으니까 죄가 퍼진 속도와 범위가 놀랍습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매우 쉽게 죄악에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고기 냄새와 모압 여인의 미소에 그냥 넘어가버렸습니다.

 

네 번째는 이들이 비록 40년 동안 광야에서 신앙훈련을 받았지만 그 마음에 죄성이 매우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압과 미디안이 아주 쉬운 미끼를 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유혹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참 놀라운 사실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성이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은 스스로 의롭게 살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큰 성공을 거둔 것처럼 보였을 때, 아마 발람은 뒤에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발락으로부터 얼마간의 사례를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이 다 잘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25장에서 성공한 발람의 탐심은 결국 민수기 31 8절에 가서 끝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디안 다섯 왕을 죽일 때에 발람도 잡아 칼로 죽였더라고 했습니다.

탐심은 우리에게 잠시 잠깐의 만족을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패망입니다.

발람의 죄는 민수기 25장에서는 들키지 않았지만 결국 민수기 31장에서 그 결말을 보게 되었고요한계시록 2장에 가서 들키고 만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의 죄악과 심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처럼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죄악에 빠졌습니다. 죄악의 내용은 음행과 우상숭배 두 가지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바알브올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바알브올은브올에서 섬기는 바알이라는 뜻인데, 바알신의 지역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알브올에 예속되고 음행한 이 두 가지 죄 때문에 이스라엘에 염병이 돌기 시작했고 무려 24,000명에 달하는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 8절에서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23,000명이 죽었다고 했는데

오늘 본문 9절에서는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24,000명이었더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하루에 23,000명이 죽었다고 했고,

민수기에서는 전체적으로 24,000명이 죽었다고 했으니까 아마 첫날에 천명이 죽고 이튿날에 23,000명 죽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날 1,000명이 죽었는데 다음 날 23,000명이 죽었으니, 이백만명이 모두 죽는 것은 시간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멸망의 위기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염병이 내렸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주 엄중한 명령까지 내리셨습니다.

4절에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의 두령들을 잡아 태양을 향하여 여호와 앞에 목매어 달라. 그리하면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리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 지도자 전체를 이렇게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하라고 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의 지도자 전체가 죄악에 빠졌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책임을 면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지도자들의 죄는 백성들의 죄악을 방관하고 그들의 행위에 무관심한 것이었습니다. 14절을 보면죽임을 당한 이스라엘

남자 곧 미디안 여인과 함께 죽임을 당한 자의 이름은 시므리니 살루의 아들이요, 시므온인의 종족 중 한 족장이며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지도자 살루의 아들이었던 시므리조차도 모세가 보는 앞에서 이런 음행을 저질렀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과 자녀들이

잘못하면 꾸짖어서 바로 잡아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관하기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연대책임을 물으시고 지도자 전체를 공개적으로 교수형에 처하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모세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5절 말씀을 보니 모세가 이스라엘 사사들에게너희는 각기 관할하는 자 중에 바알브올에게 부속한 사람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사사들은 지도자들이기 때문에 사사들이 죽어야 할 사람들인데 오히려하나님께서 너희들 꾸짖으시니까 너희 족속 중에 바알 브올에 속한 사람들이 있으면 죽여라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오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명령에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아무리 위대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것으로는 사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직접

징계를 내리셔서 24,000명이 죽게 된 것입니다.

 

무려 24,000명이 죽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막문에 모여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죽었으니 얼마나 많은 장례가 치러졌겠습니까? 6절을 보니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울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목전에서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 형제에게로 왔습니다.

 

모세와 모든 백성들이 울면서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하는 판국에 심판의 원흉이었던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오다니

이 얼마나 한심한 일입니까? 이 사람이 바로 지도자 살루의 아들이었던 시므리였습니다. 이 시므리가 고스비라고 하는

미디안 여인을 데리고 장막으로 들어갔는데 모든 형제들이 다 기다리고 있을 정도였으니 이 얼마나 부패한 집안입니까?

 

3. 비느하스의 열심

이같은 상황을 목도하자 분연히 일어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요,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였습니다. 비느하스는 창을 들고 시므리를 쫓아가서 한 창에 두 사람을 죽여 버렸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이를 보시고 하나님의 진노를 제하셨습니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을 가지고 질투하여 나의 진노를 풀고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속죄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비느하스의 질투와 열심을 보고 이스라엘을 건지겠노라

말씀하셨습니다.

 

비느하스 한 사람의 열심이 결국은 망하는 국가를 살려냈습니다. 11절을 보면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구원하고 죄악에 빠진 사람들을 건져내는데 최고로

열심 있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그런 열심이 있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 2절에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 했습니다. 비느하스도 하나님의 열심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멸망에서

건져내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의 대상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13절 후반에그가 그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은 오직 하나님을 위한 열심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하나님을 위한 열심입니다.

비느하스는 바알 숭배에 대항해서 여호와 하나님의 예배를 바로 세우고자 했습니다. 또한 음행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법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비느하스는 하나님과 바알 사이에서 머뭇거리는 이스라엘의 우유부단에 대항해서 진리에 대한 단호함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비느하스의 열심이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갈라디아서 418절에서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에 열심을 내는 것은 언제나 유익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열심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상급으로 갚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의열심에 대해서 두 가지 유익을 주셨습니다.

 

첫째로는 이스라엘을 국가적 진멸의 위기에서 건짐 받게 하셨습니다.

국가가 위기에 처한다면 누구나 걱정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에 대한 열심을 가지면 하나님은 위기에서 건져주십니다. 우리가 국가의 위기를 보면 늘

정치가나 지도자들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사실 근본 잘못은 우리 성도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게 된 것도 백성들의 죄와 죄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위기의 상황에 직면할 때, 다른 사람을 비판할 것이 아니라 비느하스처럼 하나님의 열심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자로서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사회적인 죄악을 방관하지 않으며 하나님의ㅠ열심을 품고 기도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는 비느하스는 큰 복을 받았습니다.

그 복은 바로 비느하스의 후손으로부터 대대로 제사장이 나올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비느하스의 열심으로 집안이

대대로 축복을 받게 되었는데, 비느하스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평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평화의 언약(Covenant of Peace)이라고 명하시며 비느하스를 축복하신 것입니다.

 

마치기

 

발람은 배후에서 도모한 자기의 악한 궤계가 대성공을 거두었다고 아마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발람의 궤계처럼 죄에 빠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마치 망하게 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때로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고 죄에 빠져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발람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유다서 1 11절에 보면 발람의 길을어그러진 길이라고 평했습니다. 발람은 어그러진 길을 통해 결정적인 오류(error)를 범했는데 하나님의 백성이 망할 수

있다는 착각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조금 징계를 받고 다시 일어났지만 하나님의 백성을

부패시킨 발람은 31 8절에 가서 결국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도 때로는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고 죄악에 빠져서 징계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결코 망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열심있는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서 하나님의 교회를 정화하고, 다시

하나님의 교회가 확장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부흥되다가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셔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될 때, 영원한 부활의 몸을 입고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될 것입니다.

 

마치 비느하스가 열심을 가졌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열심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는 평화의 사신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말씀을 우리에게도 선포하십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3:19)

 

여러분,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열심을 내시되 우리의 열심은 한계가 있으니 하나님의 열심을 내 영혼에 부어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민수기 25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다시 한번 요약하자면

내 열심을 너희 마음에 품어라. 비느하스의 열심을 품어라. 열심은 내가 기뻐하고 축복하노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뜨겁게 임하여서 비느하스의 축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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