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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는 사람(욥 8:20),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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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스카우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 영혼의 가치와 탁월성은 그가 사랑하는 대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영혼이 얼마나 가치있고 탁월한 가를 아는 척도는 그 영혼이 가장 즐거워하는 대상이 얼마나 가치있고 탁월 하나로 알 수 있습니다.

 

신자에게 한 가지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다른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모든 면에서 축복을 받아야 하는 것 아닙 니까? 그런데 축복은 고사하고 생각지 않은 고난을 당하게 될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합니까?

 

이러한 복은 우리가 갖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복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정말 주고 싶어하시는 것은 영혼이 잘 되는 데 있습니다. 지혜로운 성도는 하나님이 주고 싶어하시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깁니다. 명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보다 기도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것이 가장 귀한 축복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물질적으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그것보더 힘든 것은 자녀들이 나보다 먼저 죽음을 맞게 되는 일입니다. 또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일을 중단해야 할 만큼 중병이 찾아왔을 때입니다.

 

이 모든 고난을 한꺼번에 스트레이트로 당한 인물이 있습니다. 그는 동방에 갑부였는데 하루아침에 재산이 다 잃고 말았습니다. 그의 자녀 73녀가 태풍에 기둥이 쓰러져 한꺼번에 죽었다는 비보를 접해야 했습니다. 한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만 들어도 모든 것이 끝난 것 같은 데 10남매가 다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의 충격은 어떠했을까요? 그가 누구일까요? 우리가 잘 아는 욥입니다.

 

 

고난은 믿음의 순도를 높이는 과정입니다

 

욥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했을까요? 욥은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이유를 말씀해주시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욥은 하나님께서 사탄 앞에서 욥을 칭찬할 만큼 그는 순전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는 사실입니다(1:8). 욥은 자녀들의 신앙 교육도 철저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탄이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지 아십니까? 한번 욥의 재산을 다 빼앗아가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의 몸에는 손을 대지 말고 소유물을 빼앗아가도 좋다고 허락합니다. 이로 인해 욥의 재산이 한꺼번에 다 빼앗기게 됩니다. 그렇게 사랑스런 욥의 10남매가 하루아침에 생죽음을 맞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욥의 순전한 신앙을 사탄에게 칭찬합니다.

 

그랬더니 사탄이 욥이 아직도 자신이 건강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지 건강을 치시면 틀림없이 주를 향하여 욕을 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그러면 욥의 건강을 쳐도 좋다. 그러나 욥의 생명은 해치지 말라고 하십니다. 욥은 자신의 몸에 악성 종기가 생겨서 너무 가려워 기왓장으로 빡빡 긁으면 피가 터져나옵니다.

 

이번에는 욥의 아내가 그에게 찾아와서 당신이 그래도도 자신의 순전함을 굳게 지키겠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욥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순전함을 놓치지 않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한 것은 죄악 때문이 아니라 따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차원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욥이 불행한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친구들이 찾아와서 욥을 위로합니다. 정말 욥을 사랑하고 아끼는 친구들이였기 때문에 밤낮 7일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욥의 고통을 같이 했습니다. 그들은 욥의 회복을 위해서 좋은 조언을 그들은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후에 욥은 슬픔의 단계에서 분노의 단계로 나아갑니다.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고 태어난 날을 저주하고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거나 일찍 죽어야 했다고 탄식합니다.

 

보다 못한 욥의 친구들은 욥의 회복을 위해서 도와주려고 합니다. 먼저 욥이 이런 재앙을 당하게 된 것은 욥이 범죄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므로 회개할 것을 강조합니다.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진단 이전에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충분히 들어주고 위로하고 공감하고 같이 울어주고 난 후에 본인이 먼저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상대가 그 사람의 문제를 지적해 주면 그것이 깊은 상처를 안겨주는 부메랑으로 작용합니다.

 

교인 중에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직장에서 해고 당할 때 신앙 생활을 잘못해서 이런 일을 당했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같이 마음 아파해 주시고 함께 해주시면 됩니다. 생각지 않은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때 그 자체는 힘이 들지만 다른 차원에서 위로와 소망을 갖게 해야 합니다. 세상적으로는 꺾이는 아픔을 당했지만 그것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에 눈이 뜨여지는 기회가 되었다면 그것이 복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시작은 미약하지만 나중은 창대합니다.

 

그러나 욥의 친구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욥의 경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정답이라 하더라도 다양한 상황에 다양하게 젹용해야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빌닷을 포함하여 욥의 친구들이 주장하는 것은 이분법적 사고입니다. 즉 악인은 징계를 받고, 의인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욥기 47절에 보면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이에 대해 욥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너무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푸념합니다. 친구들의 입장에서는 욥이 자신이 힘들다는 것만 이야기 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습관화되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다 잊어버려도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안됩니다. 연세드신 권사님들 가운데 아주 드물게 침해로 자신과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심방 갈 때마다 제겐 걱정이 됩니다. 저를 알아보실까? 하나님을 잊어버렸으면 어떻게 할까? 찬송가를 잘 따라하실까? 그러다가 예배 시간에 찬송을 따라 부르시는 입술의 모양을 보고 감격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기도합니다. 연세 드신 성도님들 마지막 순간까지 요한복음 316절 말씀 붙잡고 승리하게 해 주세요.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위험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시달린 나머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평일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면 당신은 영적으로 위험한 상태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야 합니다. 세상의 일에 마음을 다 빼앗겨 있으면 하나님을 잊어버린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어버리지 않고 마음에 떠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4:9).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왕골과 갈대가 수분이 있을 동안에는 무성하고 신속하게 성장하나 수분이 말라버리면 곧바로 메말라 죽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은 아직 새순이 돋아 아직 뜯을 때가 되기 전에 다른 풀들보다 먼저 시들어 버립니다. 갈대는 수분이 없으면 서서히 시들어갑니다.

 

출발은 좋은 것 같고 뭔가 되는 것 같은데 한 순간에 무너집니다. 당신이 믿고 있었던 것이 끊어질 날이 옵니다. 당신이 의지했던 것은 거미줄과 같이 끊어집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은 마치 거미줄과 같습니다. 거미가 얼마나 힘을 들여, 많은 시간을 소요하여 정교하게 자기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거미줄은 매우 약하기 때문에 외부의 조그마한 충격에 의해서도 쉽게 끊어져 버립니다.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거나 큰 비라도 내리면 순식간에 망가져 버리고 맙니다. 거미줄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사라집니다.

 

악인의 성공이나 권력도 이와 같습니다. 거미가 허공에 거미줄을 쳐서 지은 집처럼 오래 보존되지 못하고 결국 망하게 됩니다. 빌닷은 욥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 세상적인 것에 의지함으로써 현재의 고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은 다른 무언가를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가 기댈 곳이 없어서 집에 기대어도 집이 서 있지 못할 것이요 그가 단단히 붙잡아도 집이 보존되지 못할 것입니다. 여기서 집이란 가족, 짐승, 재산 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을 기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도 다 남겨두고 이 세상을 언젠가 떠나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17-19절에 보면 자신의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라고 합니다.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고 합니다.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사람도 갑자기 크게 잘되기도 합니다. 마치 갑자기 자라나는 풀이나 무성한 잡초처럼 왕성하게 성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번성은 일시적인 것이요,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생명력이 강한 식물 가운데 어떤 것은 돌 무더기 사이를 헤치고 뿌리를 박기도 합니다. 악인은 끈질기게 생명력이 강합니다. 대부분 암석과 자갈로 이루어진 팔레스틴 지방에 있어서 식물이 암석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뽑히게 됩니다. 만약 그곳에서 뽑히면 그 자리도 못 본체하고 내가 너를 본 적이 없다고 하며 밀어낼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대단한 것 같지만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습니다. 악인은 결국 자신이 믿었던 것으로부터 버림을 당하는 비참함을 맛보게 됩니다.

 

물론 악인에 대한 심판이 때로는 연기되기도 하고 종종 악인의 흥왕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의인은 축복을 받는 대신 악인의 압박을 받거나, 이유 없는 고난의 굴레를 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항 속에서 의인은 자신의 순전함을 결코 놓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버림받은 느낌이 드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당신을 붙들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도 너희가 나를 버렸다는 말씀을 종종 하십니다. 역대하 2420절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스스로 형통하지 못하게 하느냐 하셨나니 너희가 여호와를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너희를 버리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언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듣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을 때입니다.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할 때,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질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의 오랜 생활에 젖어서 그런지 불편한 생활이 닥치면 하나님이 계신지를 의심하였습니다. 과거에 버림받은 상처가 있는 사람은 늘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농담으로라도 너희를 버릴지 모른다는 하지 마십시오.

 

욥기 84-6절에서 빌닷은 욥의 죄가 아니라면 너의 자녀가 죄를 지어서 이런 고난을 당한다고 권면합니다. 지금이라도 그 죄를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의인도 자신의 죄와는 상관없이 고통과 징계를 받기도 합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고난당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붙드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일까요? 하나님은 순전한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라도 잠시 동안은 도와주시지만 계속 붙들어 주시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전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순전한 사람은 때로는 넘어지지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어납니다.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이 있지만 선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신 것 같은 그런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의 순전함을 놓지 않겠다고 결단합니다.

 

욥기 272절입니다.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물질 시험, 자녀 시험, 건강 시험이 한꺼번에 겹친 최악의 상황에서 욥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5절 입니다.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하지 아니하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가까운 친구들에 의해 자신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순전함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서 우리를 유익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게 됩니다. 고난의 과정은 믿음의 순도를 높이는 기회입니다. 우리가 고난 당할 때 버림받은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죄 때문에 하나님과의 단절을 경험하실 때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셨습니다. 그러면 순전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불들어주시지 않으실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야곱이 형의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고 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신갈 때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내가 너에게 거기서 허락한 모든 것을 다 이루기까지 떠나지 않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야곱이 범죄하고 연약할 때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가장 위험한 케이스가 있습니다. 현재의 어려운 상황에서 너무 시달린 나머지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고 길이 생긴 것처럼 이것이 습관이 되어 버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자의 길은 다 이와 같고 저속한 자의 희망은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사람을 결코 버리시지 않습니다. 확고하게 보호하고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 나가는 사람 같아도 누군가 붙잡아 주지 않으면 설 수가 없습니다. 악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형통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않으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켜주지 않으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보호해주시고 지켜주시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떤 의미에서 가장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신자들은 어떤 의미에서 세상에서 손해를 보면서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잠시 도와주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붙들어 주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아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욥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마침내 욥의 곤경을 돌이키사 갑절의 복을 받았다는 데 있습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믿음의 순전함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의 손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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