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은 영혼의 창입니다. 사람들의 마음 상태는 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눈의 상태를 잘 살펴 보면 몸 전체의 건강 상태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수년 전에 터기를 방문했을 때 집집마다 창문이 얼마나 깨끗하게 딱여 있었습니다. 제가 가이드에게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슬람교 신자의 집의 창문은 항상 깨끗합니다.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의미로 그렇게 한다고 합니다. 이슬람교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절차와 의식에 도전을 받게 됩니다.
신자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깁니다. 세상에 나아가서는 빛이 자녀로서 어두움을 비추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등불을 켜서 은밀한 곳에 두거나 그릇으로 덮어두는 사람은 없습니다. 등불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등잔대 위에 얹어두어서 집안에 들어오는 사람이 환하게 보게 해야 합니다. 말씀의 빛이 당신의 내면에 있는 어두움을 몰아냅니다.
여기서 빛은 신자가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방의 빛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는 복음의 빛,생명의 빛, 구원의 빛, 사랑의 빛, 소망의 빛을 발해야 합니다. 신자들은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어두운 가운데 고통당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추어야 합니다(마 5:14-16). 교회의 빛이 흐려지면 세상은 어두워지게 됩니다.
몸의 등불은 눈입니다. 몸은 눈의 지배를 받습니다. 눈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몸은 그 사람의 전인격을 말하는데 등불에 비유된 눈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분별력, 영적 안목을 가리킵니다. 영적인 시간은 예수님과 그 말씀을 바로 알고 이해하는 시각을 말합니다. 눈이 좋으면 온몸이 밝을 것입니다. 그러나 눈이 나쁘면 몸도 어두울 것입니다. 잠언 20장 27절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눈이 밝은 사람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에 귀기울이고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눈이 어두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의 악한 생활 방식대로 살기 때문에 인생이 어둡고 허망합니다.
따라서 당신 안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않은가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어두움 속에 있다면 우리의 영적인 삶에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의 광채를 영혼 깊은 곳에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환하게 비추게 됩니다. 그가 보는 모든 것이 밝게 보일 것입니다. 그 빛은 인간의 내면에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빛에서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조명을 통해서 빛을 반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과거에 받은 상처로 인해 마음이 어둡거나 돈에 대한 걱정으로 인해 마음이 울적합니다. 마태복음 6장 22-23절에 보면 눈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돈에 대한 가치관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보물을 땅에만 쌓아두는 사람은 영적인 눈이 어둡고,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는 사람은 영안이 밝은 사람임을 보여 줍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고 다른 사람을 너그럽고 따뜻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인색하고 비열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의 온 몸이 빛으로 가득하여 어두운 부분이 하나도 없으면 마치 너희 등불이 너희를 환하게 비출 때처럼 너희 몸도 온전히 빛날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9-12절에 보면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냐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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